웨슬레의 성령론의 특징과 성결


* 본내용은 한영태 교수의 “삼위일체와 성결” (웨슬레의 성결론 1) 중 제5장 [성령과 성결] 요약입니다.(성광문화사, 1992.05.01)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따라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성령의 역사이다. . .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크리스챤이 아니다. . .

성결이나 기독자 완전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구원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인간 심령 속에서의 구원의 역사와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다.

성령 하나님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서 인간 주체성의 내면으로부터 활동하시면서 인간을 살리시고 성화시키 신다.

따라서 성화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행위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영혼을 죄로부터 해방시키시며, 성령 충만에 의한 사랑으로 온전케 하시는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웨슬레가 성결을 성령론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는 주로 기독론적인 용어로 성결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웨슬레 역시 구원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라고 보았으며,

나아가 성화를 성령세례로 보는 플레쳐의 견해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고, 플레쳐의 견해도 성화의 한 면으로 인정하였다.

 

A. 요한 웨슬레의 성령론의 특징과 성결

 

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이는 삼위일체적인 틀 안에서의 현존이다.


- 구원론적인 면에서 볼 때에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화 구체화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신다.


- 만약 사람위에 강림하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그리스도는 하나의 모형이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남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심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성령의 임재로서 실현된다.


- 웨슬레의 성령관에서 중요한 점은 성령이 하나님의 내재를 나타내며 또한 그가 사람의 요구를 섬기기 위해 항상 함께 계신다는 점이다.


 

2. 구원의 사역자(Redemtive Agent)

 

모든 진실한 믿음과 선한 사고와 행동 즉 구원의 전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서 죄인을 깨우치시고 회개케 하시며 믿음으로 인도하여 거듭남은 물론 성결케 하신다.

이러한 구원사역은 우리 안에서 인격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인데, 곧 성령이신 하나님이다.


- 웨슬레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의 구원에 있었으므로 성령론에 있어서도 구원론적 직능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 성령의 구원 사역은 죄의 자각, 죄값으로서의 사망을 일깨움, 인간 지성의 계몽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깨닫게 하심, 인간의 의지와 감정에의 작용을 통한 선한 생각의 환기이다. 즉 성령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거룩한 것과 선한 것의 원천이 되신다.


- 성령의 주요 과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용납하도록 도와주고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계시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주의할 점은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성부와 성자의 구원 계획을 수행하는 “자발적인 사역자”라는 점이다.


 

3. 성결의 영(롬 1:4)

 

우리를 모든 진리와 성결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이 오심은 단지 우리 이성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활의 회심과 온전한 성화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은 경외심을 가지고 영접해야 한다.


-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이 중생하고 성결케 하심으로 성결을 그에게 전달해 주시며,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 ‘그의 성결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


성결은 그 시작에서부터 완전에 이르기까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경험할 수 있는 영

 

나는 언제나 참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종교의 알맹이를 빼놓지 않고, 또 종교의 알맹이가 아닌 것을 첨부하지도 않기 위함이다.

우리는 성서와 경험에 의하여 알거니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은 상관 관계에서 역사하신다.


- 웨슬레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 웨슬레가 의미하는 경험이란 인간이 사랑의 하나님의 임재를 뚜렷이 직감하는 것이다.


- 웨슬레는 자신의 복음적 회심 체험에 근거하여 성령에 의한 마음과 생활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참 종교란 하나님과의 산 관계에서 이룩되는 것인데 이는 성령에 의해서 가능하다.

성령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산 관계를 맺게하고,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


- 그렇지만 모든 궁극적 권위는 성서에 있다. 성령에 의한 신앙 체험은 다양하고 가변적이기에 경험은 규범적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경험은 성서의 시금석에 종속되어야 한다.

  

 

B. 성령의 사역 : 성결의 단계

 

웨슬레에게는 기독교는 곧 구원이요, 구원은 곧 성결을 의미한다.

구원이 종말론적인 목표로 상승하는 것이라면, 성결은 여러 단계 또는 과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결의 단계가 서로 다른 종류를 뜻하는 것이 아닌 정도(Degree)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는 더욱 거룩해질 수 있다.

  

1. 관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 : 칭의 / 객관적, 외적 변화.

 

우리가 칭의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시작되는 데, 우리가

다시 나며,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관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진정

한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내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 관계적 성결이란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칭의는 실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용서를 뜻하며,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그에게 전가(Imputed)된 것이다. 즉 거룩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 칭의의 조건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눅17:5; 고전 12:9).

- 따라서 웨슬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총, 용서와 변화의 능력은 성령과 동일하다.


 

2.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우리가 중생할 때에 성화, 내적 외적 성결은 시작된다.


- 칭의와 중생은 시간적으로는 동시적이지만 논리적으로는 구분된다. 칭의가 단지 법적인 사죄 선언이라면,

중생은 실제로 의로워지는 내적 영적 변화이다.


- 웨슬레는 중생을 가리켜 성화의 시작이며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3. 점진적 성화(Gradual or Progresive Sanctification)

 

칭의와 중생은 그 자체가 완전 성화는 아니며 이것은 성화의 문이요,

입구이므로 완전 성화까지는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중생한 자는 물론 성화된 자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죄가 그를 완전히 지배하지못하며,

또 정죄 받음도 없으나 그에게는 죄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자는 비록 성화되었다 하나, 이것은 부분적일 따름이요,

그 속에는 죄성이 그대로 남아있어 육체는 성령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 점진적 성화는 의인, 중생에서 온전한 성화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이러한 과정은 신자의 성장과정이다.

이 때에는 내적 신앙의 외적 증거이며 열매로서 선행의 필수성, 중요성이 나타나게된다.



4.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는 순수한 사랑-죄를 물리치며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는 사랑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죄를 추방하는 사랑이다.

음을 채우며 영혼의 전체 기능을 지배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마음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 마음에서 죄가 발붙일 곳이 있겠는가?


- 온전한 성화는 바로 “온전한 사랑” 또는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즉 칭의에서 자범죄의 죄책이 용서받으나, 원죄의 부패성은 성화에서 변화된다(“원죄에서 씻음받는다”).


-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는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부분 순간적인 역사라고 결론짓는다(Commonly, if not always).

이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 속에 남아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김을 받으며, 사랑과 봉사에 더 큰 힘을 얻어 승리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 성화를 가져오는 신앙에 의해서 신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이다 (롬5:5).


 

5.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완전은 성결의 다른 말일 뿐으로 같은 사실의 두 다른 낱말이다.

성경적 의미로 볼 때 성결한 자는 완전한 자이다.


- 기독자의 완전이란 인격의 완전이며 이는 곧 사랑이다. 이러한 완전이란 완전하고 조화된 인격을 의미하며

이는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라는 이념에서 형성된 것이다(H.Lindstrom).


- 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은 절대적, 천사적, 아담적인 완전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완전이란 무지, 과오, 결점, 유혹받을 가능성 등에서의 완전이 아니다.

이렇듯 그가 말하는 완전은 “제한적 완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는 “인간적 완전”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최종적인 칭의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곧 “최종적인 완전” “영화”라고 한다.

바로 이 상태에서만이 타락하고 부패한 연약한 인간성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


 

C. 성령 충만과 성결

 

1. 성령세례와 중생 - 두 가지 입장

 

-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입장 / John R.W. Stott, Anthony A. Hoekema 등

: 성령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주(主)로 영접하는 순간에 동시적 사건으로 성령세례를 받게되며, 이는 다시 반복되지 않으므로 신자는 이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 중생과 성령세례는 별개의 경험이라는 입장 / Andrew Murray, C.H.Spurgeon 등

: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별도로 행해진 성령의 사역으로서, 중생한 신자는 성령세례를 따로 받아야 한다(19세기 미국의 성령 부흥운동에서 주로 발견).


 

2. 성령세례와 성결

 

- 대부분의 웨슬레안들은 오순절적인 체험을 신자가 중생한 후에 이차적으로 체험하는 온전한 성화와 연관하여 이해하려 한다.

전통적인 웨슬레안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는 두번째 은총의 경험으로서 성결의 체험을 의미하며, 이는 성령충만과도 동의어이다.


- 웨슬레안들은 성령세례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케 하며,

그래서 유능한 기독교의 증거자로 세우는데 중점을 두고 해석한다(William Greathouse).


- 성령세례는 순간적인 역사이며, 이는 오직 이미 회개하고 믿어 신자된 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행2:28).

따라서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성령세례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성령세례는 정결케 하는 역사이며(눅3:16,17), 섬김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준다(행1:8).


- 성령세례 : 은사로서의 성령을 주심과 정결케 하심의 최초의 충만.

성령충만 : 새롭게 하심과 능력 주심이 따르는 성령세례의 계속적 상태(행4:8, 13:9).

 

3. 성령충만과 성결

 

- 웨슬레는 이차적인 성결의 체험을 성령세례로 부르는 것은 간접적으로만 승인하였다.

그는 1770년에 이차적 체험에 대해서 “성령을 받는다”라고 부르기를 꺼려했다.

그 까닭은 모두가 칭의되는 순간에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차적 체험이 중생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웨슬레는 이를 “완전한 성화”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a. 구속사의 단회성 : 성령세례 /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오순절 사건의 의미.

 

- 성령세례는 오순절날 보혜사 성령이 교회에 거하시기 위해 인격적으로 왔을 때 유일회적으로 주어졌는데,

  이것은 구원의 단회적 완성이며 지금까지 진행된 그리스도 구속 역사의 절정이다.

- 약속으로 주어졌던 성령세례는 오순절에 단회적으로 성취되었다. 따라서 성령세례는 반복될 수 없다.

 

b. 경험적인 연속성 : 성령충만

 

- 구속사적인 면에서 오순절 사건은 반복될 수 없으나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오순절의 체험은 신자들의 경험속에서 반복되어질 수 있고, 또한 반복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오순절은 유일회성과 함께 영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따라서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의 성령받은 사건들과 오늘날 교회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구속사 사건의 현재적 경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성령세례는 구속사적 용어지만 성령충만은 양(Quantity) 또는 정도(Degree)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유일회적으로 반복될 수 없으나, 성령충만은 거듭 거듭 반복될 수 있다(행2:4, 4:8,31, 9:17, 13:9; 엡5:18).


- 구속 역사의 현재적 체험의 영속성으로서 성령충만은 개인의 성화의 경험으로 보아야한다.

성령충만을 통해 죄씻음(행15:8,9), 능력받음(눅24:49; 행1:8), 사랑의 충만(고전13장)을 받음으로 사랑 안에서의 완전(요일4:16,18), 즉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

성령세례는 객관적 역사적 사건이며, 성령충만은 주관적 현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D. 성결의 확신 : 성령의 증거

 

1. 교리의 근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이와같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 .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의 독특한 특권의 하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확신에 관하여 나는 초대교회가 이 주제를 기쁘게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 .

그러나 나는 로마의 클레멘트, 익나시우스, 폴리갑, 오리겐, 그 외의 교부들을 주의깊게 읽으면,

그들 자신이 이 확신을 소유했거나 이 확신을 가진 참 신자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루터, 멜랑크톤 및 개혁자들 중에(모두는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든 신자는 자기가 하나님께 용납되었다는 의식과 이것이 초자연적 증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빈번하게 그리고 강하게 주장한다.


- 웨슬레의 확신의 교리는 성화론과 더불어 그가 기독교에 공헌한 요소 중의 하나로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 확신의 교리는 일차적으로 성서에 증거되어 있으며 이성에 의해 해석되어지고 초대교회 시대부터 강조되어 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늘날 신자의 경험으로 확증된다. 

 실제로 웨슬레의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은 이 교리를 더 분명하게 해주었다.


 

2. 증거의 성격과 내용

 

-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 증거와 간접 증거의 두 종류가 있다.

성령의 증거는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인데, 하나님의 영이 이것을 통하여 나에게 직접 증거하는 바는. . .(직접 증거)


아주 똑같다고 할 수 없으나 거의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증거와 같은 것이니, 이는 우리가 우리 영 안에서 느끼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여 행하거나 또는 이성적으로 추리한 결과에서 오는 확신이다. 엄격히 말해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 .(간접 증거)


- 웨슬레가 강력히 주장한 것은 이 모든 것 배후에는 우리의 어떤 의식보다 선행하고, 어떤 형식이나 예식과는 별도로 성령의 직접적이고 본래적인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 성령의 증거 :

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것을 내게 말해준다.

② 우리 영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증거한다.

③ 성령과 우리 영은 우리 자신의 칭의, 중생, 양자됨을 증거한다.

④ 성령은 우리가 성결케 되었음을 강조한다.


- 확신의 폭 또는 정도의 3단계

① 신앙의 분명한 확신 : 의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신앙,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특권으로 설교되는 것.

② 신앙의 충만한 확신 : 의심, 두려움없이 용서에 대한 완전하고 내재적인 신앙.

③ 희망의 충만한 확신 :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


- 이 중에서 희망의 충만한 확신은 신자가 온전한 성결 안에 거한다는 조건 위에서 순간순간 계속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한번 성령의 증거가 있었다고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가 범죄할 때에는 이 성령의 증거는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것(확신)을 부정하면 우리들의 종교는 형식적인 것으로 떨어져 버릴 위험이있다. . .

그리고 이것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무엇을 인정하는가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열광주의의 방종에 뛰어들기 쉽다. . .

이 중대한 진리는 성서적,이성적으로 확증해야 한다.


- 웨슬레는 당시의 이성주의에 물든 영국 국교회와 무절제한 신비주의자들을 경계하면서 외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확신의 또다른 증거로 강조했다.

이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신앙 관계는 내적 및 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러한 확신의 교리는 오늘도 성도의 신앙 생활에 현재적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함께 미래의 구원에 대한 산 소망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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