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찰의 기도


인간은 높아지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악세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정 내 자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가꾸지 않습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계급장을 붙여도 내면을 살피고 가꾸지 않으면 나중에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내 자신을 살피고 가꾸는 것이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성령의 임재 중에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진정 자신은 가난한데 부요한 줄로 알고 보잘 것 없는데 위대한 줄로 착각합니다.

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남에게 속지않고 자신에게 속습니다.

남은 잘 다스리나 자신은 못 다스립니다. 남은 잘 가꾸려고 하지만 자신은 가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자동차를 늘 정비하고 점검하고 깨끗이 세척해야 하듯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얼굴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꽃밭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더러운 것이 자꾸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의 안을 더럽힙니다.

내면을 가꿉시다. ‘성령님 나의 부족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깨닫게 해주세요’ 하고 늘 요청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투자입니다. 시간과 정력을 여기에 투자합시다.

이러한 자기성찰은 성령님이 기뻐하시면서 함께 일하러 나서시는 사역입니다.

우리 내면은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것을 꼭 치유해야 합니다.

내면의 일그러진 부분 상처 감정 죄악 허물을 바로잡아 주러 나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이를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과 함께 높은 부분을 낮추고 낮은 부분을 높입시다.

세례요한처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길을 준비합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는 기도생활로 마음-언어-성품-실생활의 순서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합시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치유함을 받읍시다.

교육은 환경과 다른 사람을 비판 판단 관찰 분석하는 능력을 주지만 기도는 영적으로 자기자신을 보게 합니다.

교육은 눈을 밖으로 돌리게 하지만 기도는 안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교육받은 이성은 다른 사람을 비교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 정작 중요한 자신을 볼 수 없게 합니다.

자기 성찰의 기도는 자신의 영적 현주소(하나님과 자신 세상 물질을 대하는 태도 양심상태)

위치 상태 궁핍 불안정 무질서 독선 양심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이 때문에 통회 자복 회개하게 합니다.

이러한 통회가 진정한 통회입니다. 자신의 양심 신앙심 감정 의지로 통회하려고 하면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도움을 받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제대로 통회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죄 부족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먼저 자신을 보게 하신 후에 남을 보게 합니다. 영적현상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남을 보기보다는 먼저 나를 봅시다. 남을 고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고칩시다.

자식을 고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을 고쳐야합니다. 자신을 보고 진솔하게 고쳐달라는 마음의 부르짖음이 바른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계속하면 당연히 우리는 변합니다.

우리는 환경의 변화가 급하지만 하나님의 급선무는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하나님은 환경을 당연히 고쳐주십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내적치유이고 이러한 내적치유는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자기성찰은 희미해진 양심의 등불을 밝혀서 옳고 그름을 더 예리하게 분별하게 해주며

마음을 질서를 찾게 해주고 자신의 나약하고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진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하며

점차적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나를 알게 되며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내 안으로 이끌어 들일 때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성찰의 역할입니다.

회개는 자기성찰을 통해야만 가능합니다.

목욕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청결케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이 회개는 지나간 삶과의 관계에만 있지 않고 건강한 내일을 위한 교량의 역할을 합니다. 긴 시간 내가 회개하는 것보다 성령이 도우심으로 짧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에는 위력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요청해도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것은 내안에 성령님을 막고 있는 요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내어야 합니다. 이 때 두리 뭉실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못합니다.

‘내 속에 무엇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누가 불행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고쳐주세요.’

이런 기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기도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무릎 꿇고는 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의사 앞이라 생각하고 편안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의 의사 앞에 다 들어내놓읍시다. 그리고 치유함을 받읍시다.

기도 시간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를 치료하고 정돈하고 세웁시다. 기도 속에서 내가 세워져야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1). 미움

미움은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약함으로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함으로 내 속에 있는 미움을 뽑아내야합니다.

현대인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자꾸 먹는 것이 아니라 몸 안의 좋지 않은 것을 빼내고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기도도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속에 있는 불순물을 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남을 짓밟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불안해하고 화내고 무안주고 의심하고 복수심을 품는 것과 같은 마음을 빼내어야 합니다.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미움 아픔 슬픔이 기쁨을 억누름으로 나에게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냅시다. 미움 슬픔 고통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뿌려준 나쁜 씨앗입니다.

이것은 나 혼자서는 빼어내지 못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꾸 빼내야 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아픔들 고통 미움이 있어요 이것들을 빼내어주세요. 치유해주세요.

나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 이렇게 늘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적치유입니다. 이런 시간을 짧게라도 많이 가집시다.


2). 두려움

힘든 일을 만나면 물러서려는 마음 일을 하다가 쉽게 피하려는 마음 귄위자나 높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것 다른 사람과 있기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 것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 등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이러한 두려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우리 속에서 미리미리 빼내어 두어야 합니다.

 

3). 죄의식

죄는 회개해도 죄의식은 남아있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생각.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포자기적인 생각은 오직 기도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이성은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감정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정은 엄청난 기억으로 우리를 붙잡고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은 좋은 감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마귀는 불안과 미움과 두려움과 시기 질투 좌절감 우울의 감정을 넣어주어 여기에 빠지게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늘 감정을 정돈해 둬야 합니다. 기도로 내적치유로 좋지 않은 감정을 청소해버립시다. 좋은 감정으로 우리 안에 채워놓으라.

좋은 감정이야말로 성공하는 삶의 자본입니다.

 

4). 열등감

사람들 앞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자신의 의사표시를 못하는 것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 다른 사람의 비평 충고에 쉽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 쉽게 실망하는 것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입니다.

경쟁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입니다.

 

5). 자기연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하는 것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과 자주 비교하는 것 환경조건에 관하여 심하게 불평하는 것은 자기연민 때문입니다.

 

6). 불순종

 

7). 교만

이러한 좋지 못한 감정은 자꾸 빼내야 합니다. 내면을 정돈해야 합니다.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감정적 표현을 너무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감정에 찬 설교는 전혀 은혜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설교에서 감정을 빼야 합니다. 감정적 표현은 관계를 깹니다.

감정을 빼고 의사소통을 해야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감정으로 일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살지 않고 하나님 지혜로 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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