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의 예배와 음악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예배이다. 종교개혁은 10세기를 흘러온 중세 교회의 전통으로부터 독립된 개신교 교회를 출범하게 하였다. 그 중심에는 신학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루터가 성경에서 발견한 이신칭의 교리는 새로운 교회 역사를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후 많은 것이 변했다. 개혁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중세 교회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예배에서 사용되던 음악이다.


590년 교황 그레고리 1세(Gregory I)의 재위와 함께 중세 교회가 출발하였다는 것이 교회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전례를 매우 중시한다. 그 중심에 '교회 전례의 아버지'라고 칭함을 받는 그레고리 1세가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로마교회의 전례 양식의 전통의 뼈대를 구축한 장본인이다. 그가 이루어놓은 공헌 중에 하나는 교회음악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레고리오 성가'를 교회에 도입한 것이다. 그레고리 성가는 반주 없이 단선율로 부르는 성가를 말한다. 성가를 담당하기 위하여 소년과 남성들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키는 성가대의 전통이 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예배에 음악의 위치가 확고해 진 것이다.


단성 음악인 '그레고리 성가'는 다성음악, 즉 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세속음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쉽게 설명하자면, 소프라노 하나로 부르던 노래를 알토, 테너, 그리고 베이스를 넣어 화음으로 부르는 음악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세속 음악의 발전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이 전수받은 교회의 전통이란 범주에 그레고리 1세가 출발시킨 교회음악의 전통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들은 미사를 위한 음악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럴수록 그들의 전통을 고집하였다. 참고적으로 현재 로마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그레고리 성가를 중시하지 않는다. 교회의 전통보다 현대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회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모였던 1960년에 열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생긴 일이다.

음악가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음악가였다.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음악 훈련을 받았다. 여가 시간에 악기 연주를 위해 레슨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다. 라틴어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았고,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음악이론과 악기 연주법 그리고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남다른 음악성을 타고 태어났다. 음악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풍성해 지는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자신이 신학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이런 교육의 영향으로 루터는 평생 음악 속에 살았다. 음악은 그의 삶의 한 부분이었다.


루터의 음악사랑은 그가 주도하였던 종교개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가 중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성경에 비추어 점검하고 개혁을 감행하면서, 자연적으로 예배에서 사용되는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즉시 질문을 갖게 되었다. "왜 초대교회의 전통이 사라져버렸는가?" 초대교회의 예배에는 회중 찬송이 그 중심에 있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9). 성도들이 함께 마음과 목소리를 합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 것이다.


루터는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드렸던 예배의 음악이 사라진 것을 지적하였다. 마치 중세 교회의 전통으로 인하여 성경이 성도들로부터 멀어진 것을 한탄하였던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진 것이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하였다. 성도들이 모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정당성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루터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하여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확신하였기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예배 시간의 회중 찬송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찬송은 마음의 고백이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을 찬송에 담아 하나님께 드린다. 그러나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미사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회중이 아닌 사제와 성가대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것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가사로 작곡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세속 음악은 눈부시게 발달되어 교회 밖에서는 흥겨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교회에 오면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는 노래를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성가를 맡은 자들의 삶도 성직자의 타락과 버금갈 정도로 큰 문제로 여겼다. 음악을 맡은 특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 갇혀 살았다. 음악가들의 부패와 함께 교회음악이 부패한 것이다. 교회 음악의 발전은 신앙과 상관없는 기교 중심이었다. 성가대에 속한 자들이나 오르간을 연주하는 자들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어떤 방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루터의 음악 개혁 

루터가 구상한 종교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회중이 직접 참여하는 예배였다. 그 중에 하나가 예배를 위한 음악의 개혁이었다. 루터는 음악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에 조애가 깊었다. 그의 종교개혁에 차지하는 음악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의지도 있었고 능력도 따랐다. 그러므로 개혁 정신을 교회음악에 직접 적용하였다.


그는 음악 자체가 지닌 고유의 기능을 잘 이해하였다.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음악을 구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와

함께 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음악이란 도구를 소유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음악 자체가 개인에게도 큰 유익을 주는 도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루터는 음악 사랑에 빠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음악은 인간의 근심 걱정을 몰아내고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음악이 있는 곳에 치유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음악 자체에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런 음악에 대한 그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예배를 음악이 지닌 성격이 매우 독특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예배 음악은 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본인이 영적 유익을 경험하는 유익을 주는 것으로 국한되어 생각할 수 있지만, 루터는 예배를 위한 음악의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선포적인 요소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음악을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다.


음악은 예배에 임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분명히 나타냄으로서 신앙에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 음악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뒷짐을 지고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선포를 맡은 자들이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교회에서 음악을 맡은 자들은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가장 먼저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분명하여 자신의 음악성이나 기술이 아닌 하나님을 드러내는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의 음악을 맡은 자들은 뛰어난 음악성과 함께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선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루터는 성직자들도 음악적인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이 분명하게 선포되는 예배가 되기 위함이었다.



회중이 부르는 찬송

루터가 1526년에 저술한 “독일어 미사”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는 독일어로 된 예전을 신중하게 작성하면서, 아예 음악으로만 구성된 예배의 형태를 제시하였다. 설교와 주기도문 해설을 제외한 모든 순서를 음악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전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예배였다. 루터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이에 필요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사로 하여 작곡된 음악이 흘렀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런 예배가 드려지면서 회중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생겨난 것이다. 개혁을 통해 성경이 성도들의 손으로 돌려진 것처럼, 루터는 교회의 전통에 갇혀있던 회중 찬송을 해방시켰다. 루터는 과감하게 회중 찬송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가 성경을 번역하면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이 있었다면, 누구든지 그의 번역본을 읽는 자들에게 그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와 개념이 쉽게 이해되면서도 원문의 뜻이 충실하게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열중한 것이다.


회중 찬송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음악적으로 훈련을 받지 못한 성도들도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호하였다. 음악적인 기교나 아름다움을 전혀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찬송을 부르는 성도가 가사가 지닌 의미와 곡조가 지닌 수단의 중요성을 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루터는 작곡가였다. 모두 41편의 코랄 형식의 찬송시를 썼다. 그중에 하나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다. 그는 1528년에 시편 46편을 근거로 하여 이 찬송시를 쓰고 작곡하였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약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예배에 이 찬송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개신교 교회를 주도한 종교 개혁자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음악적으로 현대인의 감각에 절대로 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터는 회중 음악을 위해 자신이 작곡한 찬송뿐 아니라, 세상에서 사용된 음악이나 중세 교회의 음악을 조심스레 도입하기도 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흑백 논리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특정인이 제시하는 기준에 의해 이것은 수용할 수 있고 저것은 생명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지 않았다. 예배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음악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점검이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한다. 자신의 음악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어야 한다. 누가 작곡한 어떤 행태의 곡을 선택하느냐 보다, 과연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에 근거하여 그 분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1세기 교회의 개혁의 출발점은 반드시 신앙적인 것이어야 한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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