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잭 R. 테일러


 제 1 장 : 찬양의 관점

찬양은 올바른 관점의 결과이다. 운명론자는 주님을 절대로 찬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운명론자들의 사상 저변에 흐르는 철학은, 삶이 결국에는 가치 있는 것이 되리라는 것과 어떤 좋은 일이 삶에 찾아온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또한 비관론자도 기쁨과 찬양의 노래를 결코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그렇게 할 만한 근본 철학이나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4장 속의 밧모섬의 요한은 예수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섬에 있게 되었다.(계 1:9). 그는 노령에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는 곤욕을 치르고 남은 생애를 외로운 땅에서 살아야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희망이란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란 모두 사회의 찌거기로 취급되던 사람들이었다. 이와같은 자신의 생애에서 어두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요한은 찬양의 핵심에 도달하게 된다. 요한은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요한계시록의 4장에는 요한이 펼치는 찬양의 관점이 밑받침되고 있다 . 요한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하고 하였다(계 4:1).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는 요한과 하늘나라 사이에 열린 문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즉시 들러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문을 인하여 주님께 찬양하자는 것이다. 즉 요한이 본 그 열린 문은 이 땅과 저 하늘나라 사이에 있는 문이요, 가시적 실재 세계와 불가시적 실재 세계 사이에 있는 조리개인 것이다.


열린 문이 보이고 나서 곧바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들리기를,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다(계 4;1). 이것은 하늘문은 열려있고 그 나라의 왕께서 친히 들어오라고 초청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역사의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은 후, 요한은 4장 2절에서 "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라고 하였다. 그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본 것은 보좌였다. 그 보좌에 앉아 계신 이는 지존하신 하나님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조정하고 통치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요한은 또한 돌연히 자신이 어마어마한 찬양 행사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석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십사 장로들이 작은 보좌들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며 그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주님을 찬양하였는데 이 장면은 이사야 6장의 것과 놀랍개ㅔ도 흡사하다.


찬야의 관점이란 이 우주의 왕실과 그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는 눈 그 자체인 것이다. '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바로 찬양이 기초이며 근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눈이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찬양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섭리에 대한 헌신과 고백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찬양이 결여되어 있음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올바름 관점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분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우리는 찬양을 할 때, 하늘나라와 연결된다는 것은 알게 된다.



제 2 장 : 찬양의 예고편

찬양은 이 세상이 탄생했을 때 둘렀던 포대기였다.- 하나님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이 땅은 찬양으로 감사였었다. 우리가 권세의 정상에 서서 보니, 영원전의 때는 찬양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된다. 그때에 창조된 모든 것들은 찬양의 합창에 함께했다.


찬양은 우주 자체 속에 내재하고 있는 법칙인 듯하다- 모든 것은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엡 1:13-14, 사 43:21, 시편 148 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복음서 기자인 누가도 19:37 하38에서 잘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류의 역사가 이 땅에서 막을 내리게 되면 찬양이 온 천지를 메우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가 찬양과 함께 시작되었듯이 또한 찬양이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말은 찬양과 관계된 말로서 "아멘"이 바로 그것이다. 시편 기자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이 말을 사용하셨다. 구약 성서에서도 찬양의 용어로 자주 사용되었다.


찬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시편 22편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찬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이다. 찬양은 그 분의 영원한 본적지인 셈이다. 찬양은 그의 가정의 한 요소이며, 그는 찬양 가운데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신다. 하나님은 찬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에 그는 찬양중에 보좌에 앉으시고 찬양중에 그 전능한 힘을 발휘하신다.


찬양은 감사와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찬양은 하나님의 집의 한 요소이자 그의 거처이므로, 우리는 찬양함으로 그분에게 찾아가는 것이며 그 거처의 뜰 안에 서게 되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결과로 받으시는 보답이다-찬양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그보답으로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축복이다. 찬양은 근심을 제거하는 옷이다.- 그 어떤 운동이나 약도 찬양만큼 낙담의 병을 잘 고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근심과 찬양은 공존할 수 없다.
찬양의 유무에 따라서 이 땅의 수확이 좌우된다. - 찬양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최대의 수확을 내리시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시편 67편 5-7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수확은 최대로 되며 성취감이 생기고 좌절은 없어지게 된다. 이렇듯 찬양의 유무는 모든 상황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기적적인 구원의 전주곡이다.(대하 20장-여호사밧의 예, 요나 2:9, 그리고 바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찬야은 신자의 무기 중에서도 적을 대항하는 데 쓰는 주된 무기이다.-이것은 찬양의 신비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이다.(시편 8편 2절, 시편 149편 4-9절 )



제 3 장 : 찬양의 과정

여호사밧에 대한 이해-여호사밧은 유다의 왕으로서, 그 이름이 뜻하는 바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이다. 난국이 타개되는 단계들- 첫째로, 여호사밧은 문제의 핵심에서 출발했다.


둘째로, 여호사밧은 인간적인 방법에 대한 모든 신뢰를 중단하였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셋째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만 관심을 집중하여 매달렸다. 넷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계속 기다렸다. 다섯째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였다. 내번째와 다섯번째 단계 사이에 매우 중대한 일이 있었다.그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여섯째로, 그들에게는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일곱째로, 그들은 위기에서 오히려 많은 보물을 거두어들이게 되어다. 이것이 바로 찬양의 보상이다.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생존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번창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난국을 타개하는 일곱 단계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여호사밧에게 적용되어 그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찬양의 열쇠였다. 찬양은 그 모든 과정의 서문이었고 과정 전반을 메은 본문이었으며, 또한 그 과정이 끝난 후의 후기였던 것이다.



제 4 장 : 찬양의 약탈

본 장에서는 과거의 역사가 주는 신랄한 경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분명한 교훈은, 교회가 가장 소중한 것, 즉 찬양을 도둑 맞아서 굉장히 큰 타격을 입어 왔다는 사실이다.


약탈에 대한 비유를 열왕기상 10장 14-15절, 10장 16-17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유를 통한 교훈-영적 방어가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 있는 우리들에게서 교회의 보물, 성경적인 찬양을 우리의 대적자가 탈취해 간 것이다.


금과 찬양의 유사성- 금은 더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상태의 물질이다. 그것은 가치의 척도이자 축복과 우수함돠 순수함의 표상디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늘나라가 금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되어 있다. 찬양도 그와 같은 것이다. 금과 찬양은 공통점이 매우 많다.


방패가 상징하는 것- 방패는 전투에서 방어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 방패들은 전쟁이 아니라 징표를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뜻하는 것이었다. 빼았긴 방패들-시삭이 와서 금 방패들을 포함하여 그 밖의 값진 보물들을 빼삿아간 것은 이스라엘의 국력이 극도로 약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치된 방패들- 찬양의 방패는 약탈당하고 우리는 그 자리에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금은 왕을 환영하고 왕의 모든 휘황찬란함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찬양은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환영하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금은 탁월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다. 찬양도 마찬가지다.


찬양의 가치- 찬양의 가치란, 원수들이 교회로 하여금 그것을 되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방해할 만큼 굉장한 것이다.



제 5 장 : 찬양의 대상

하나님은 도저히 인식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의 이름들을 통하여 그야말로 유한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오심으로 마치 한 인간과 같이 되신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불가지한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의 이름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흔히 사용된 것들을 살펴본다.


엘로힘-창세기 1장에서 접하게 되는 이름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2700회 이상 사용되었다. 이 이름의 어원은 일반적으로 '위대하고 전능하며, 두려운 자'라는 뜻을 가진 '엘'(EL)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가 바로 '엘로힘'의 하나님이다.그가 말씀하시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의 세계로 가져오는 분이시다.


엘 샤다이-'샤다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48회 나오며, 이 말은 항상 '전지 전능한'(Almighty)으로 번역된다.이것은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돠 언약을 맺으시려고 나타나셨을 때의 이름이다. "나는 엘 샤다이다'(전능하신 하나님')라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아도나이- 이 호칭은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구약성서에서 약 300회 정도 언급된다. 이 낱말은 하나님을 지칭할 때 거의 복수형으로 쓰인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주 되심(Lordship)과 우리 편에서는 청지기 됨(stewardship)과 순종을 의미한다. 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은 헬라어 구약성경에서는 '퀴리오스' 즉 '주님'(Lord)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호와-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한 호칭으로 가장 많이 사영된 이름이다. 이 호칭은 6800회 이상이나 사용되었다. 이것은 '존재하다'로 번역되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호와 이레-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호칭은 창세기 22장 14절에서 찾을 수 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하나님이 준비(provides)하신다'는 뜻이다. '이레'라는 말은 '본다'라는 뜻이다.


여호와 로페- 이 이름은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에 의해 호칭된 '여호와 이레'와는 달리, '여호와 로페'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주어진 호칭이다. '로페'라는 말은 언제나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 닛시- 이 호칭은 출애굽기 17장 15절에서 언급된다. '닛시'는 '표상' 또는 '깃발'을 의미한다. 여호와 카데쉬-이 호칭은 레위기 20장 7절에서 발견된다.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 카데쉬"("너희를 거룩케 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로 우리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이 말은 성화를 가리키는 것이며, 구약성서에서 약 700회 정도 사용되었다.그것은 '거룩하게 쓰기 위해서 갈라놓는 것' 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해 봉헌된 제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여호와 살롬- 사사기 6장 24절에서는, 기드온이 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부른 것을 읽게 된다.'살롬'이란 말은 '평화'(평안)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충만한', '완전한', 완성된, 또는 '완벽한' 등읭 의미로도 번역된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안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전한 평안이시다.


여호와 로히- 시편 23편 1절 첫부분울 보면, 찬양과 관계 있는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는 것이다. 이 호칭이 갖는 분위기는 시편의 나머지 부분에ㅐ서 완벽하게 나타난다.


여호와 찌드케누- '찌데크'라는 말은 '엄격한' 또는 '곧은'이라는 뜻이다.다시 말해서, 그것은 원래 '옳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완전히 공의로운 자'시다.
여호와 삼마 -에스겔 때에 와서는 성전에서의 찬란했던 영광은 사라졌고,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자신에게 임한 희망의 환상을 일러주었다. 그 영광스런 환상의 마지막 부분은 한 성읍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성읍은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고 불려졌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바울은 그러한 사실을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나타내고 있다.


** (하나님의 호칭에 대한 여덟 가지 언약의 이름) **
1. 하나님의 속성은 그의 이름들을 통해 나타난다.
2.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드러내신다.
3. 우리의 구속의 본질은 그의 이름을 통해서 나타낸다.
4. 우리는 그의 이름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5. 우리는 그의 이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된다.
6. 우리는 그의 이름들을 통하여 우리의 참 신분이 주는 축복에 대해 알게된다.
7.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각 이름의 특정한 속성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는 이 모든 것-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의 이름 안에 있으며, 그러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은 이제 우리 안에 있다.



제 6 장 : 찬양으로 인도하는 길


기뻐하기를 선택함-성경은 기쁨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편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또한 기쁨의 구주이신 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던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의 생애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기쁨의 생애였고, 바울도 역시 기쁨의 사도였다.


우리가 신약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는 기쁘과 즐거워하는 것이다. 기쁨이란 감정이 허락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선택이다.
쉬지 않고 기도함- 우리는 기뻫기를 선택해야 한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할지라도, 우리가 늘 기도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즐거운 가능성이다. 감사하는 자세- 우리는 성경 어느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끼라"고 명령받고 있지 않다.우리는 "감사를 드리라"고 명령받았다.


감사하고 싶지 않을 때 감사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며, 아무 느낌도 없지만 감사하는 것은 믿음인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이 옳고, 하나님은 선하시며 절대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믿고 있다는 공공연한 선언이다. 찬양으로부터 인도하는 길응 선택하여 기뻐하기를 선택하고, 끈임없이 기도하며, 감사하는 자세를 확립하라



제 7 장 : 찬양의 방식

이사야의 놀라운 예배 경험에서 우리는 찬양의 방식, 또는 찬양의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예배의 대상 - 이사야는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둘러싼 제왕적인 영광에 대해서는 설명하였다. 하나님은 왕좌에 앉아 계셨다. 예배하는 자들- 스랍들에 대한 신비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예배하기까지는 풀리지 않겠지만, 그들의 예배 모습은 우리에게 예배의식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예배 광경을 목격한 자 -처음에 이사야는 단순히 방관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참된 예배의 광경에서는 그 누구라도 계속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 하늘나라의 찬양을 하는 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암시해 주는 세 가지의 압운적인 말이 나온다. 첫번째 말은 '화'(woe)이다.이것은 깨달음과 고백의 말이다.찬양의 분위기에서는 언제나 올바른 자기 평가가 선행되기 마련이다. 두 번째 말은 '보라(lo)이다(6:7). 이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왕을 뵈었고, 그거은 자신의 죄를 개닫게 해 주었다. 세번째 말은 '가라'(go)이다. 이것은 사역을 뜻하는 말이다. 거룩한 사력으로 귀착되지 않는 찬양은 진정한 찬양이 아니다.



제 8 장 : 찬양을 뜻하는 핵심 단어(할렐루야! ,구약성서의 할렐루야)

구약성서에서 찬양을 뜻하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할랄'이다. '할랄'은 '자랑하다',
'뻐기다', '칭찬하다', 혹은 '어리석게 보일 정도까지 자랑하다'라는 뜻이다. 또 하나는 '야'라는 말로서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이 축소된 말이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를 나타낸다 - 우선 창조에 있어서 그의 목적이 있다. 두번째로, 우리는 할렐루야가 언급된 시편들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보게 된다. 할렐루야는 능력과 권세를 나타낸다-'할렐루야'는 하나님의 위댜성에 비추어볼 때 가장 타당한 반응인 듯하다.또한 할렐루야는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다-할렐루야는 불가피하게 영원한 것이다.


**(신약성서의 할렐루야)**
완성된 구원을 뜻하는 할렐루야-역사적 배경(요한계시록 17,18장), 완전한 보상을 뜻하는 할렐루야-모든 정의 체계는 보상과 보답의 문제를 다룬다. 확인된 통치를 뜻하는 할렐루야, 절정을 이룬 관계를 뜻하는 할렐루야-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한마디의 '할렐루야'는 다가오는 역사의 위대한 사건을 위해 남겨둔 바 되었으니, 이 사건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신랑과 신부가 영원한 결합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 9 장 : 찬양에 대한 히브리어 연구

'할랄'은 구약성서에서 아흔아홉 번 용되야데, '찬양'으로 번역된 다른 어떤 단어보다도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이 낱말은 거의 삼 시편에 나와 있으며,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사용되었다.이 낱말은 '칭찬하다', '축하하다','바보스러울 정도로 시끄럽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야다'는 구약성서에서 '찬양'이란 말로 번역되는 것 중 두 번째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말은 '두 손을 치켜 올리다'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종종 영역에서 '감사'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바락-이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찬양과 관련된 낱말 중 매우 중요한 것이다.그것의 독특성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흠정역 성경에서 그 말이 '찬양'이라고 번역된 것을 보면 더욱 뚜렸해진다.200회 이상에 걸쳐서 이 말은 '축복' 혹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또는 사람 사이의 축복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나타내는 경우는 70회 정도이다. 테힐라-구약성서에서 찬양에 관한 낱말 중 네 번째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서 50번 이상 나타난다.이 낱말은 '노래하다' 또는 '칭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자마르-이 단어는 거의 시가에서만 사용되었다. 이 낱말을 '악기의 줄을 퉁기다', '노래하다', '찬양하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주로 음악적인 낱말이며 주로 음악의 즐거운 표현에 관련되어 사용되는 것이다. 토다-이 말은 헌납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며, '찬미의 제사' 또는 '감사' 그리고 '감사제물을 드리기 위해 손을 내밀다'의 뜻으로 샛길수 있다.'토다'는 아직 승리와 해결 또는 해답을 보지 못한 그러한 찬양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바흐-이 말은 '외치다', '큰 소리로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찬양의 감탄적인 형태이다.



제 10 장 : 찬양에 대한 헬라어 연구

아이네시스, 아이노스, 아이네오-'아이네오'는 '찬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할랄'과 '야다'에 해당되는 것이다. 독사(명사),독사조(동사)-이 말은 '여기다','가정하다'는 뜻을 지닌 말에서 온 것이다.또 이것은 '견해', '추정', 또는 '한 훌륭한 견해로부터 얻어진 영예' 등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이 '영광'이나 '영광을 돌리다'로 번역이 되든 혹은 '찬양하다'로 번역이 되든, 이 용어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훌륭한 말이다.


에파이노스(명사), 에파이네오(동사)-"에파이노스(칭찬:approval,찬양)의 유일한 가치는 그것이 일반적이 사회의 판단이나 대중의 평가를 나타내는 데 있지 않고, 오직 그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을 나타내는 데 있다.


율로게토스,율로기아-이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해서만 사용되는 말이다. 이 말은 '복 된'(blessed) 또는 '찬양받으신'(praised) 등의 뜻이다. 엑소몰로게오마이-이것은 '고백하다' 라는 뜻의 '호몰로게오'에서 파생된 말이다. 휨네오, 휨네스-이 말은 단순히 '찬양의 노래' 라는 뜻인데, 단 한번의 경우에서만 '찬양'으로 번역되었다. 메갈뤼노-이 말의 의미는 '크게, 위대하게, 길게 만들다' 혹은 '확대하다'이다. 프살로(동사),프살모스(명사)-이 낱말은 '영적인 무아의 상태에서 찬양의 노래를 하다', '가락을 짓다'라는 의미이다. 이 낱말이 지닌 가장 중요한 사실은 70인역 성경에서 약 40회 정도 나오는 '노래하다',악기의 줄울 퉁기다' 라는 뜻의 '자마르'에 대한 헬라어가 바로 이것이라는 점이다.



제 11 장 : 찬양을 방해한 인물들과 문제들

미갈-여기서는 감정이 고조된 다윗 왕이 찬양을 행한 것에 대한 미갈의 반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찬양에 대한 그녀의 반발을 야기시킨 원인으로 분명한 것은 그녀는 그 사건이 지닌 영적인 의미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달랴-아달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서슴지 않고 살육을 감행했던 여왕이다. 아달랴는 찬양과 불의가 오랫동안 병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에 찬양에 반발한 것이다. 욥의 부인- 어떤 면에서 보면 욥의 부인도 찬양에 대해 반발했다. 바리새인들-바리새인들은 찬양이 울려퍼지는 곳마다 반기를 들고 나섰다.숨겨진 죄악들-신자의 삶 가운데 있는 고백되지 않은 되 때문에 찬양은 제한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하고도 철저한 회개는 거침없는 찬양의 필요조건이다.


또한 찬양의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는 만연되어 있다.대체로 오늘날의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찬양은 모든 종류의 자만심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자만심은 순수하고도 성서적인 찬양에 의해서 그 가면이 벗겨지는 것이다.



제 12 장 :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

찬양하는 사람들을 찬양을 받게 된다. 순한 법칙이다.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지도자로 따르도록 만드는 어떤 속성이 드러나게 된다. 찬양하는 사라들은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예배를 위해 가장 잘 준비된 사람들이며, 찬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다.찬양으로 인한 명백한 내용-기도에 대한 응답, 가정이 단합한다. 권능을 받는다. 찬양하는 자에 대한 보호가 있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복자들이다. 찬양하는 사람들의 대표자(사자-어린양):사자요 어린 양인 우리 주 예수가 찬양하는 이 거대한 무리의 우두머리인 것이다.



제 13 장 : 찬양의 생리와 온전한 정신

이방 왕국에 대한 찬양의 노래-다니엘서에는 찬양을 주심으로 전개되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하나있다.여기에서 우리는 철저한 헌신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니엘의 성품을 접하게 된다.다니엘서 2:19-23은 찬양에 관한 구절 중에서 이 구절의 탁월성에 병행할 만한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찬양에 의하여 하늘의 은밀한 것이 밝혀지고 승진이 초래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단의 방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 찬양이 사라질 때 자만심이 끼치는 영향-느부갓네살은 찬양의 노래를 용납하였으며, 이방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찬양이 사라질 때 그에게는 자만심이 들어갔다.


정신 이상에 대한 찬양의 영향-느부갓네살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그의 정신이 회복되었다. 찬양은 정신이 회복되도록 만드는 것이 동시에 그 회복도니 정신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찬양은 곧 온전한 정신이 지속됨을 말한다.



제 14 장 : 물질 봉헌을 통한 찬양의 실천

물질 봉헌은 찬양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 없이는 찬양이 계속될 수 없다.또한 이것은 끊이지 않는 찬양의 회로 중 필요한 부분이다. 봉헌은 모든 찬야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노래할 때, 우리는 봉헌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 건축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역대상 29장을 보면, 장차 솔로몬이 짓게 될 영광스러운 성전 건축을 위해 다윗이 그 자금을 모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에 언급된 봉헌은 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모아진 헌납이었다.
다윗의 원리와 마게도냐의 예- 첫째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에 대한 인정이다. 둘째로, 인간의 기본적인 청지기 직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진리와 짝을 이루는 진리이다. 셋째로, 물질 봉헌을 통한 찬양의 결과가 있다.



제 15 장 : 찬양의 이유들

본 저자는 찬양의 이유를 230가지가 넘게 있음을 발견했다. 성경 구절과 함께 몇 가지만 열거해 본다. 시편 145편은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된 찬양의 이유를해 놓고 있다.그는 광대하시며 찬양받으시기에 지극히 합당한 분이시다. (3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좋고 즐거우며,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147:1)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것을 책망하고, 예수께 그것을 중단시킬 것을 요청하였P지 않으면 돌들이 우리들을 대신하여 찬야할 것이기 때문이다.(눅19:40) ,또한 성경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찬양 속에서 우리는 찬양의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을 수 있으니, 이는 곧 예수께서 머지않아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제 16 장 : 개인적 찬양을 위한 실제적 조언

찬양하기로 결단한 사람이 기대할 수 있는 것-즉각적인 활기의 상승이 있게된다.찬양의
실천보다도 기쁨의 샘을 더 잘 자극하는 것은 없다. 영적 전쟁이 즉각적으로 더 치여해진다. 영적 진리에 대한 인식이 증가된다. 공중 예배의 특권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이 증가된다.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에 찬양이 필수 요소가 됨에 따라 경건의 시간이 새로운 차원에서 행해지게 된다. 찬양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게 된다. 찬양은 하나의 습득된 기술로서 점점 더 세련되어지며, 우리를 꽉 잡고 있는 그 손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게 된다.


실제적인 조언-1)정결한 마음을 가져라. 2)하나님의 말씀, 특히 찬양에 관한 말씀을 dkar하는 데 시간과 주의를 집중하라. 3)찬양에 대한 성경연구를 절대로 중단하디 말라. 4)찬야에 대해 발겨한 사실들을 당신의 친지들과 함께 나누라. 5) 개인적인 찬양에 찬송가집을 사용하라. 6)제 5 장에서 다뤘던 하나님의 호칭들을 개인적 찬양에 활용하라.



제 17 장 : 공중 찬양을 위한 실제적 조언

찬양을 위한 환경 조성-찬양을 실천하는 데는 공중예배에 대한 건전한 철학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찬양을 자극하는 분위기는 사람들이 찬양하기 위해 모여들 때 연주되는 악기 소리의 첫 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제안들-1. 담임 목회자는 초보적인 방식으로 찬양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교인들이 찬양에 익숙해지도록 할 필요가 용 코러스들 중에서 훌륭한 것들도 사용해야 한다. 4. 주일 아침 찬양과 주일 저녁 찬양을 통해서 여러 가지 필요가 충족된다. 5. 찬양 예배를 위해 특별히 코러스들을 모아 소책자로 만들어 쓰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6. 우리 교회에서 실시한 결과, "이 달의 코러스"를 실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 좋아하는 찬양 찬송가와 코러스에 대한 조사를 하여 "애창곡 20"표를 작성하라.


공중 찬양에서의 성경 사용-공중 찬양에서 찬양의 시기로서의 기도 시간 -개회 기도는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찬양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찬양 시간으로서의 헌금-헌금을 드리는 동안에는 아주 훌륭한 예배의 기회가 주어진다. 찬양의 경험으로서의 침례식-침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을 축하하는 것이다. 침례가 베풀어지는 사이사이에 간증의 노래들을 사용할 수 있다. 찬양의 시간으로서의 주의 만찬-우리가 일단 주의 만찬이 갖는 깊은 의미와 뜻을 깨닫기만 하면 그 시간도 결국은 찬양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제 18 장 : 찬양의 정점

시편 24편의 구절들-1)실제적 관점: 이 엄청난 서사시의 배경은 다윗 왕정 초기이다. 법궤가 다윗성에 당도했을 때,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문들이 들어올려졌고, 합쳐진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찬양의 노래와 외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법궤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상이 이 시편의 역사적인 배경라고 믿어진다. 2)예언적 관점: 이 시편은 우리 주님의 재림을 예고하면서 앞을 내다보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앞으로 영광의 왕이 다시 오셔서 그의 구원을 완성시킬 날이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의 성전으로 오실 것이다. 3)개인 관점:그가 영광가운데 오실때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광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분은 올바른 분위기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보이신다. 그 분위기는 다름아닌 찬양이다.
이 구절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1)순종해야 할 권유가 있다. 2)들어오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3)신분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4)이 내용이 암시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다. 5)거기에 선 자들에 대한 약속이 있다.



제 19 장 : 찬양에 대한 덧붙임말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구절들-찬양은 원수들이 뚫을 수 없는 방어책이며 영적 전쟁에서는 무적의 무기이다. 찬양은 피고한 영혼에 즉각적으로 잘 듣는 강력한 약이며, 무거운 영혼을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 요법이다. 찬양이 없는 환경속에서 번식하게 되는 무수한 세균을 닿자마자 죽여버리는 찬양은 강력한 살균제이다. 찬양은 영적인 행위 중에서도 최상의 위치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앞서 우리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찬양은 정신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 결정적인 청약금이며, 그 면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아멘'이 찬양의 말이라는 사실이다.그것은 동의하는 말이다.



제 20 장 : 성서에 나타난 주요 찬양 구절

출애굽기 15:1 하-2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
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신명기 32:3-4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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