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찬송은 어떻게 시작 되었나?


이미 언급한 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은 구약시대의 유대교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시말하면 기독교의 뿌리는 유대의 전통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시작은 그 특징과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 의식과 전통에 있어서 까지 유대교와 같았다. 조상들의 신앙과 의식을 철저히 고집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밀착 관계는 초대교회 시절 두 집단이 회당과 성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므로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 찬송가로 사용했던 시편은 기독교 예배를 위하여 아주 적절한 찬송가의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었다. 이와같이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사용되어온 시편은 기독교 찬송가의 근본이며 동시에 찬송가가 가져야할 근본 정신을 시편이 모두 가지고 있었다. 시편은 교회에서 사용되어온 어느 노래 보다도 가장 훌륭하고 가장 모범적인 찬송가이다.



1. 히브리인들의 음악


히브리 사람들은 음악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예배의식에서 음악 사용하는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리만치 음악을 높히 평가 하였고, 영적 요소로서의 음악의 중요성도 이미 히브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서 또는 구약의 예언서를 통하여 노래에 관한 많은 기록을 볼때 노래는 그들의 삶속에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의 축제에서, 또는 결혼식과 같은 의식에서 늘 노래가 불려졌던 것을 볼수 있다. 신앙이 좋은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회당이나 성전에서 이미 불러 익히 아는 시편 노래를 들에서 양을 칠때나 또는 일을할 때 자연스럽게 불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Theodore (C 350-428/29; Mopsuestia 사람으로써 당시의 위대한 성경 주석학자요 주교였음)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잘 모른다. 그러나 시편을 외우는 사람은 많았고 이들은 시편을 집에서, 길에서, 장터에서 반복해서 외워 불렀다. 그들은 시편의 신성한 선율이 감정을 진정시켜 주는 힘을 느끼면서 불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전 밖에서 부른 노래와 성전 안에서 부른 노래는 같은 노래였을 것이고 일부 교회음악이 세속음악이 되고 세속음악이 또 교회음악이된 셈이다.

아무튼 이때 부른 노래중에 몇몇 선율은 성전에서 예배드릴때 사용되는 노래도 있었다고 한다. 후세에 Luther와 다른 찬송작가들이 대중들로 부터 애창될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 위하여 새 찬송에 아름다운 선율을 붙이려고 할때 대중에게 이미 잘 알려진 민속 멜로디를 사용한 것은 바로 히브리인들의 선례를 따른것이라고 볼수 있다.

히브리인들이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예언자들의 말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예언자들이 죄악을 행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의 죄악에 대한 결과를 절실한 마음으로 경고할 때 “이 땅위에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던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언된 재앙이 와서 백성들이 슬픔에 빠져있을때 그들의 용기를 복돋아 주기 위하여 예언자들은 또 “죄악의 길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 온다면 이 땅위에 다시 감사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될 것” 이라고 약속 하였다. 이와같이 그들에게 음악이 없는 것은 죄의 정죄이기도 했고 음악이 울려퍼지는 것은 의로운 삶의 보상이기도 했던것 처럼 음악이란 그들의 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했던것임에 틀림 없다.



2. 성전에서의 예배


유대교에서 가장 고귀한 신앙 표현의 형태는 성전에서의 제사였고, 이 제사는 대단히 인상적인 종교 의식이었다. 다윗은 제사의식에 음악인이 조직적으로 참여하여 제사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 공헌을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성시의 음악적 발전에도 큰 공헌을한 사람이었다. 유대 교회의 예배의식이 아름답고 장엄한 의식으로 꽃 피우게한 장본인이 바로 다윗이엇다. 그들의 의식과 의식음악이 가장 발달한 시대의 것이라해도 오늘날의 표준에 비하면 그 음악은 조잡한 것이었다.

예술을 활용하고, 그 예술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지식이 오늘날의 것보다 훌륭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히브리인들의 음악은 예술음악이 아니었고 신성한 제사에서 사용한 의식 음악이었을 뿐이다. 이들 음악의 선율은 대개 좁은 음역안에서 불려지는 영창(recitative) 정도의 것이었다. 오늘날 유대교의 회당에서 성경을 영창하는 것이 그 시대 음악의 잔재가 아닌가 보는 사람도 있다. 화성이란 것은 알지도 못했으며, 기악 반주라는 것도 노래의 선율을 따라 unison이나 octave로 연주했음이 틀림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상식화 되어 있는 세련된 음악적 표현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 예배를 담당한 음악가들의 조직(합창단) 이 셋이나 있었고, 그들 전체가 모였을때 그 수가 4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 시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내에서 음악이 낼수있는 효과를 최대한으로 하기 위하여 그 시대의 가장 좋은 예술적인 수단이 동원 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쌀터리” 와 “하프” 라고 하는 두개의 현악기와 풀룻등의 악기 반주로 시편을 영창하는 훈련받은 가수들의 대 합창단을 상상해 볼때, 독창자가 선창을 하고 합창단이 답창을 하는것, 엄숙한 Antiphon에서 이 합창단이 저 합창단에게 응답 하는것, 또 음악의 어느 구절을 알려주기 위하여 씸벌을 치고, 합창단이 쉴때 나팔이 울려 퍼지고, 그리고 셀라(selah)라는 단어가 나오면 모든 합창단은 기악이 간주를 하도록 일제히 쉬고, 예배를 드리는 많은 사람들이 의식에 따라 “할렐루야”, “아멘” 또는 “그의 자비 영원하여라”라고 응답을 할때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고 은혜가 되었겠는가도 쉽게 짐작이 간다.

물론 그들의 소리가 발성이 잘된 블랜드된(blended) 소리, 공명된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고, 악기 연주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련되고 웅장한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현대인의 세련된 귀에는 음악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운 조잡한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시적인 시대의 원시적인 단순한 사람들의 영혼속에는 그와 같은 음악이 오늘날 우리가 가장 좋은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영혼이 감동되고 격양되는 경험을 갖듯이 꼭 같은 위엄있고 장엄한 경험을 가졌으리라고 상상된다. 이때의 음악은 현재 찾아 볼수가 없다. 오직 가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시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시대 성전의 찬송가 책이 었다. 시편은 그 시대 유대교의 찬송가겸 예전가였었다. 유대교의 의식에서 어떤 시편을 노래할 것인지는 대개의 경우 미리 결정 되어 있었다. 시편의 많은 부분이 유대교 공동예배에서 불려 지도록 정해져 있었다. 예배자들의 무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함께 가는 도중 단계 단계에 따라 부르는 순례자의 노래가 있고, 성전으로의 입장노래가 있었다. 그들이 예배드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역사적인 이유를 밝힘으로 국민의 신앙을 불러 일으키는 국가 의식의 노래가 있었고, 종교적인 큰 축제때 부르는 노래등 다양한 종류의 노래가 있었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부르는 노래, 기도회에서 부르는 노래, 십일조를 바칠때 부르는 노래, 서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봉헌을 드릴때 부르는 노래 등이 있었다. 시편은 유대교의 제사의식답게 하기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요소였다. 올바른 의식은 올바른 예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 의식이란 예배라고하는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은 예배가 예배되기 위하여 중요한 요소이다.



3. 시편의 영적 가치


시편의 중요성이 오직 종교의 외형적인 예전의식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수세기 전 기독교의 예배에서 유대교 의식이 사멸할 때 함께 벌써 없어지고 말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전의식이란 것이 인간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접근 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상실할때 예전의식 자체의 존재 의미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시편이 가지고 있는 역할은 예전의식 그 자체가 아니고 예전의식에 영적인 생기를 불어 넣어 그 예전에 참여한 예배자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강림할 수 있게 하고, 영적으로 고취된 경배를 드리어 영적인 헌신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 시편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 예배라고 하는 의식이 있고 그 의식자체에 시편을 통하여 영적 생기를 불어 넣게되면 예배는 영적인 예배가 되어 하나님의 성령과 예배자의 영간에 영적 통로가 생기기 때문에 예배의식에서 시편이 갖는 역할은 대단히 크다. 시편이 장구한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은 시편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같은 깊은 영적인 요소 때문이다.

시편에는 우주적인 신앙, 경험, 감정의 표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배드리는 인간의 영적 표현수단으로는 가장 적절한 것이다. Athanasius( 293-373 : Alexandria의 주교로써 삼위일체론을 반대하는 Arian 이단과 대항해서 싸운 사람으로 유명함)는 “시편은 시편을 부르는 모든 사람의 영혼의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시편 속에서 우리는 영혼의 활동과 영혼의 느낌과 표현을 감지하고, 생각의 변화와 감정의 상태등 인간의 삶 전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Calvin도 같은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였다. “나는 이책(시편)을 영혼의 모든 것을 다룬 해부학책이라고 부른다. 이 거울에 비치지 않는 영적 활동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슬픔과 공포와 번뇌와 의심과 희망과 절망과 고통과 당황과 폭발 직전의 분노등 인간 영혼의 모든 활동이 성령에 의하여 진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우리 인간의 육체에 흐르고 있는 붉은피가 책 전체를 통하여 흐르고 있고 오랜 세월동안 인간들이 느낀 감정을 그 속에 집어 넣었기 때문에 시편의 언어 뒤에는 지금도 지난날 그들의 맥박이 그 속에서 뛰고 있는 것을 느낄수가 있다.

시편 저자들의 외치는 소리에는 우리들의 죄와 슬픔, 회개와 희망, 참패와 승리,또 우리의 의심과 주저함등 우리 자신의 영혼의 소리가 실감있게 내포되어 있다. Heine도 “시편에는 하나님과 인간 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이 세상에서 태양이 뜨고 해가 지기까지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다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시편은 영혼의 노래이다.

시편은 자연히 처음부터 초대교회의 찬송가가 되었다.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사적 또는 공적 예배에서 항상 시편이 사용된 것을 볼수 있다. 후세에 와서 기독교에는 새로운 찬송가가 많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편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Athanasius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저녁 예배를 드릴때 다윗의 노래가 처음, 중간, 마지막에 불려 졌고, 장례식 때와 하관식에서도 다윗의 노래가 처음 중간 마지막에 불려 졌다. 수도원들의 수도사들도...,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본 받으려는 성모 수녀원의 수녀들도 다윗의 노래를 처음, 중간, 마지막에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같은 시편은 오늘날 기독교의 모든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편은 우리의 헌신적인 마음을 일으키고,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고, 진작시켜 준다. 또 시편은 전 세계의 기독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우주적인 기도책이요, 가장 완전한 예배의식서이며, 가장 사랑받는 찬송가이다.



4. 교회 찬송가의 네가지 형태


현재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되는 찬송에는 네가지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 첫째는 시편의 가사 그대로를 본래의 히브리어, 또는 리듬에 맞추어 번역한 라틴어, 또는 방언으로 번역된 것을 영창하는 것인데 이런 시편영창은 히브리인, 라틴어를 사용하는 천주교인,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개신교인들 만이 시도하고 있을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은 시도해본적이 없다.

히브리 사람들은 Cantilation이라는 방법으로 시편영창을 하지만 이것은 일반 회중이 부르는 것은 아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천주교회에서는 Plainsong이라고 알려진 동방교회에서 유래한 시편 영창법을 사용했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Plainsong 방법으로 영창하든가 아니면 새로 개발한 Anglican Chant로 노래하고 있다.

찬송의 두번째 형태는 시편을 운율시로 바꾼것이다. 이 유절형식의 운율시편은 찬송가 곡조에 붙여 노래하는데 그 선률과 리듬은 플레인쏭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써 선율의 흐름이 완만하고 리듬도 플레인쏭의 리듬이 그렇듯이 단순한 것이나 그 형태는 오늘날의 찬송가와 같은 것이다. 가사도 가능한한 본래의 시편에 근접하게 되어있고 시편의 내용을 철저히 유지하기 위하여 시적인 표현과 서정적인 면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한 운율시편이다. 이러한 형태의 찬송은 Calvin의 ?Genevan Psalter?라든가, 또는 ?Scottish Psalter?에 담겨져 있는 찬송을 말하는데 이런 시편가는 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찬송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셋째는 시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의역하면서 자유롭게 시를 쓰는 방법이다. 이를 paraphrase라고 한다. 이것은 예배의 찬양으로 택해 부르는 시편이 수천년 전의 낡은 구약의 언어로 되어 있고,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찬송이라기 보다 나와 내 민족과 상관이 없는 다윗왕과 솔로몬왕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찬송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시대와 각 민족의 언어에 맞지 않는 시편찬송을 부르는데에 분노를 느낀 Isaac Watts가 처음으로 시도한 기법이다.

시편의 모든 말을 신약의 말로, 현대의 사고로, 자기 민족의 상황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하여 쓴 찬송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기 까지 이 강에서 저 땅끝에 이르기까지 다스리리니”라는 시편 72편을 읽어 보면 이스라엘의 왕을 두고 말하는 것이 확실한 구절이 있다. 구약의 언어와 유대교의 신앙 바탕을 기독교 신학으로 바꾸고 현대의 보다 확실한 언어와 현대인들의 사고에 보다 적절한 내용으로 의역하여 paraphrase한 내용을 다음과 같은 유절 운율시(영어의 원시에는 운율시로 되어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 번역 시에는 운은 없고 율만 있다고 본다)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왕이 되시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나라 왕성 하리라”(통 52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시편 저자의 사상을 현대의 찬송가 형식으로 새로 의역하여 그 본래의 사상이 새 찬송가의 내용속에 신약의 언어와 현대인의 상황과 새 시대의 사고로 바뀌어 새 찬송가의 내용속에 본래의 의미가 그대로 남아 숨쉴 수 있도록 한 것이 세번째 형태의 찬송가이다. 이것이 두번째 유절형식의 운율찬송과 다른점은 운율가사에서는 시편의 구절을 생략한다든가, 그 순서를 바꾼다든가, 또는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사상을 현대의 사고에 맞도록 고치는 일이 절대 금지되어 있는데 비하여 세번째의 paraphrase(의역)의 방법에서는 시편 내용의 순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내용을 생략 할 수도 있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본다.

마지막 네번째의 찬송형태는 순전히 창작된 것으로 찬송가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부분에 속하는 많은 찬송이 성경의 말씀에 근거해서 쓰여지긴 했지만 순수 창작 작품이란 인상이 더 진하게 풍기는 내용의 찬송이다. 오늘날 우리가 찬송가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이런 것들을 말하고 이 부류의 찬송가는 복음찬송가(gospel hymns)인 경우가 많다. 찬송가를 임의로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워서 좋은 점도 있으나 동시에 신학적인 배경과 성서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임의로 찬송시를 쓸 때 이단적인 요소가 그 찬송시에 끼어들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시편이 우리 찬송가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우리가 매주일 아침예배 에서 애창하는 많은 찬송가가 시편에서 연유된 것이 많다. 시편은 운율시편뿐 아니라 의역된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예배찬송에 파고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좋은 찬송가는 모두 시편을 근거로하고 있기 때문에 찬송가를 알기 위하여 시편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는 불가피하다.

찬송가와 선교


본래 찬송가(Hymn)란 단어의 참 뜻은 종교적인 예배에서 불려질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고대 희랍시대에는 신과 영웅과 훌륭한 사람들을 찬송하는 갖가지의 노래를 Hymn이라고 불렀는데, 그 어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그리스에서 기원전 약 150년 경에 Apollo신을 칭송하기 위한 두개의 찬송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기독교 초기에는 주님을 찬양하는 모든 노래를 “찬송가”란 말로 불렀다. 그후에는 “찬송가”라고 하면 새로 가사를 써서 만든 음악만을 말했고, 성경에서 나온 노래는 “시편가” 또는 “Canticle”로 불렀다.

성 어거스틴은(354-430)은 찬송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찬송가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확실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 찬송가이다. 만약 그 노래 가사에 찬양의 내용은 있으되 하나님을 찬양하는 구체적인 것이 없으면 그것은 찬송가가 아니다. 또 찬양의 내용도 있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찬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노래로 불려지지 않는다면 찬송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노래가 찬송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찬양하는 것이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다음은 노래 불려져야만 한다.”


성 어거스틴이 내린 찬송가에 대한 이러한 정의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 실려 있는 모든 노래를 비판해 볼 때 얼마나 많은 찬송가가 이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개인의 신앙고백이라든가 또는 개인의 놀라운 구원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래하는 것, 또는 교인들을 교육하기 위한 의도로 쓰여진 노래, 그리고 전도와 선교를 위한 노래는 위의 성 어거스틴의 정의에 의하면 찬송가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성 어거스틴의 정의에 한 가지 덧붙여 보충 설명 한다고 하면 “찬송가는 찬양하는 것이어야 하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어야 하고, 노래 불려지되 회중에 의하여 노래 불려져야만 한다”고 정의 할 수 있겠다.


찬송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편가나 Canticle처럼 성경의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 쓴 가사로 되어 있되, 이 가사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며, 또 종교적인 모임에서 대중에 의하여 불려진다는 것이다. 찬송가의 가사를 아무나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모임에서 불려짐으로 해서 찬송가라고 일컬어 지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1) 찬송가의 시작
지금까지 본 것과 같이 초대 기독교는 시편찬양을 강조하였고, 예배에서 사용한 모든 노래의 가사는 성서에 근거한 것만을 강조했다. 따라서 예배 순서중에 비 성서적인 내용으로 된 부분, 즉 미사의 통상문 같은 것은 다른 것에 비하여 그리 중요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성서적인 내용의 통상문이 미사에서 중요시 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이후 부터의 일이다. 신앙고백이 12세기 까지 로마교회 예배의식에 없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비 성서적인 것을 되도록 예배에서 배제시킬려고 노력한 것은 의도적인 처사였다. 비 성서적인 내용에는 항시 인간의 주관적인 견해가 침투되 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 성서적인 내용의 가사를 성만찬 순서에서 자주 사용하게 되자 교회는 즉시 이를 제지시켰다. 이와 같은 비성서적인 것은 곧 이교적인 내용 또는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오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세에 교회의 정력과 조직력이 강화됨에 따라 비 성서적인 내용의 노래가 예배(미사)에 사용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시키는 사건이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강한 창작의욕과 새로이 창작된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열렬한 애호로 인하여 비 성서적인 노래가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예배의 내용 속에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교회측에서도 이러한 노래를 공식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비성서적인 인간의 노래가 교회의 공식 예배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자 재주있는 시인과 음악가들이 다투어 많은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예배 음악에서 파생된 음악 형식이 여러가지가 생기게 되었고, 각각의 형식에 맞는 작품이 또한 쓰여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찬송가를 비롯해서 Trope, Seguence(續唱), 의식극(Liturgical Drama), Conductus, Motet등이다.


이상과 같은 비 성서적인 가사의 노래가 예배(미사)에서 많이 불려지게 됨에 따라 예배의 본질적인 내용이 흩으러지게 되고 급기야는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1545-1563)에서 예배의 의미와 중심을 흐트리는 모든 요소를 제거 시키고 페지시키는 강력하고 과감한 조처가 취해진 바 있었다. 예를 들면 많은 Sequence 중에서 부활절 Sequence와 성령강림 주일 Sequence, 성체주일 Sequence 그리고 진혼곡(Reguiem)에서 불려지는 Diesirae등 네개의 Sequence를 제하고는 모든 Sequence를 폐지시킨 것은 그 좋은 예이다. (Stabat Mater는 1727년에 재 사용하도록 허용되었고, Domincan 수도원 계통에서는 크리스마스 Sequence도 사용하고 있다.)



2) 찬송가와 이단운동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의 비 성서적 노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가 찬송 가(hymn)이다. 찬송가는 처음에 성만찬에서 사용되었고, 황홀한 기쁨의 알렐루야 처럼 감상적인 내용의 가사로 된 것이었다. 찬송가의 가사는 신부(목사)나 신학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수 있기 때문에 그 가사가 개인 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으며, 쉽게 교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이교도적인 요소가 노래를 통해서 기독교에 침투될 수도 없지 않아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세기 경에 그노시스(Gnostics)라고 하는 이단운동이 있었는데 이 이단운동의 지도자 Bardaisan은 희랍 철학과 동양의 신비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에서 나온 여러 理想을 총합에서 하나로 종교화하여 구원이란 영혼과 관계된 영감적인 지식을 통해서 이루워진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이 자기 종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쓴 가사를 대중적이고 민속적인 선율에 붙인 찬송가로 만들어 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즉 자기들의 교리를 전파하고 종교를 선교하기 위하여 찬송가를 사용하였고, 강력한 기독교의 교리와 투쟁하기 위한 일종의 무기로도 사용하였다. 이들의 영향은 대단히 컸고 그들의 세력이 3세기에 와서 막강해졌기 때문에 교회 당국은 즉시 이에 대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이르렀다.


교회 당국은 교회음악 역사에서 첫 위대한 찬송작가인 성 에프렘(St. Ephraem)을 발견하여 Bardaisan이 했던 것처럼 찬송가를 쓰되 기독교와 기독교 교리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찬송가를 Syria語(Syria 지방에서 3세기부터 13세까지지 사용되어 온 고대 아람어(Armaic)로 예수도 생존시에 이 언어로 말을 하였다)로 쓰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찬송가 맏라사(Madrasa)가 출판되었는데, 이는 이방교회,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노시스의 지도자 Bardaisan,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일체가 아니고 순수한 인간이었다고 믿는 아리아인(Arians)등을 반대해서 쓴 시로 집대성되어 있고 주로 기독교의 교리를 지지하고, 예배와 관련된 찬송가로 되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의 찬송가가 수도원의 예배에서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聖務日課(office)에서도 사용되었다.


Ephraem도 찬송가의 선율로 대중적이고, 민요적인 것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가사내용의 뜻이 노래를 부르는 교인들에게 쉽게 이해되었고, 그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교회 당국은 교회 당국대로 찬송가를 통하여 교회의 교리를 지키고 선교하는 데에 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쉽게 부를 수 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찬송가를 통해서 이단교회의 교리가 기독교에 침투될 위협을 느낀 서방교회에서는 차라리 찬송가를 예배 중에 부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라오디케아 공의회(The Counil of Laodicea)에서는 361년 예배에서 찬송가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와 같은 교회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는 거둘 수 없었다.


이교도의 교리를 가사로 해서 대중음악의 선율에 붙여진 이교도들의 찬송가는 교회 당국에서 금지 시킨다고 해서 쉽사리 대중들의 입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알아차린 성 힐라리(St. Hilary of Poitiers: 310? - 366)는 망명해 있던 Syria에서 Gaul (지금 불란서 남부와 이태리 북부지방)에 돌아와서 Ephraem의 Syria 찬송과 꼭같이 이교도들의 찬송가와 맞 싸울 수 있는 라틴어 찬송가를 많이 만들었다. (성 힐라리가 Syria에 망명해 있는 동안 Ephraem을 알게 되었을는지도 모름)
그러나 이들 찬송가는 대중들의 애호를 받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Hilary의 찬송가는 대중들의 마음을 끌만치 대중적이 못되었던 것이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Hilary가 라틴어 찬송가를 만든 근본정신은 그 시대 알(Arles)시에 대단히 성행했던 “예수를 순수한 인간으로만 보는 아리아주의자들”과 맞싸우기 위한 일종의 무기로 라틴어 찬송을 보급시켰던 것이다.


기독교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사람은 성 암브로스(St. Ambrose :340?- 397)이다. Ambrose의 찬송가는 후세 모든 찬송가의 모범 찬송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Ambrose도 Hilary와 마찬가지로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목적으로 찬송가를 썼다. 그런데 Ambrose의 찬송가는 성공적이었다. 교인들이 많이 애창하여 곧 대중화 되었고, 얼마 안가서는 예배의식에까지 침투되어 Ambrose가 감독으로 있었던 밀라노(Milan)의 교회에서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교회에서도 Ambrose의 찬송가를 예배(미사) 중에 부르는 것이 허용되었다.


현재 8개의 찬송가가 Ambrose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중 4개만 이 성 암브로스의 찬송이라고 확신할 수 있고, Ambrose가 작곡까지 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Ambrose는 그 시대에 이미 유행되고 있던 대중음악의 선율에 새 가사를 붙여 찬송가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Ambrose의 찬송은 8세기까지 모든 찬송가의 표본이 되어 왔고, 9세기에는 찬송가 사용을 엄격히 저지했던 로마를 제외한 구라파의 모든 지역에서까지 예배와 기도회에 점차 침투되어 갔다. 특별히 Ambrose가 감독으로 있었던 북부 이태리 지방과 시인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컸던 불란서 지방에서는 예배에서 찬송가 사용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이상에서 본 찬송가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1) 비 성서적인 가사로 되어 있고,
(2) 교리 및 교파를 선전 또는 선교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교리선전과 대항하는 데에도 좋은 무기가 되었다.
(3) 그러나 찬송가 가사는 누구나 쓸 수 있으므로 해서 주관적이 고도,

     개인주의적 경향에 쉽게 빠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홀한 경지의 자기 표현이나 또는 감상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본래의 의미에서 이탈되기 쉽고
(4) 가사와 음악이 대중적이므로 쉽게 이해되고 쉽게 애창될 수 있어 그 영향력이 무엇보다 크다.
(5) 찬송가 가사의 형식은 유절형식으로 되어 있어 각 절은 같은 선율에 의하여 반복 노래 불려지고,
(6) 교회의 회중으로 하여금 노래 부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이 찬송가는 제일 처음 이교도들이 자기 교파의 선교를 위해서 사용하였고, 기독교에서도 이교도의 교리와 맞 싸우기 위한, 즉 기독교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으나 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바꾸어 기독교의 교리 전파와 선교의 목적으로 찬송가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이후 찬송가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원천이 되어 왔고, 로마교회의 예배통일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창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찬송가를 계속 만들 수 있는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교회의 예배를 돕는 기능으로서의 찬송가 뿐만 아니라 예술의 한 형태로서의 찬송가로도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3) 종교개혁과 찬송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수세기 전부터 천주교회에서는 이미 회중이 미사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일체 금지하였다. 온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찬양은 흠이 없는 온전한 것이어야 함으로 평신도들이 준비 없이 틀린 음정으로 찬양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올바른 발성법으로 완전히 준비된 찬양을 드려야만 한다고 해서 예배 중의 모든 음악은 훈련받은 음악가들이 평신도를 대신해서 부르게 하였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거나 또는 방관자의 입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들은 라틴어로 읽는 성경과 예배문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성가대의 노래도 라틴어여서 이해하지 못하고, 노래 부르지도 못하여 제단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연주)을 바라만 보는 관람자로 있다가 나오곤 하였다.


평신도들이 가창을 통하여 예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였다. Luther는 비 기독교인들이 좋은 노래와 음악을 즐기는데 교인들은 예배에서 노래(찬송)를 부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마귀들에게 좋은 음악을 몽땅 빼앗길 수는 없다”고 말하고 평생동안 이 신조를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다가 죽은 사람이다. Luther는 lute(만도린과 같이 생긴 목이 대단히 긴 악기)와 풀룻(flute)을 연주하고 작곡도 한 음악가였다.


그는 동료 친구 Johann Walther의 도움을 받아 1524년에는 8개의 찬송가를 수록한 조그마한 찬송가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찬송가는 Plainsong으로 되어 있는 고대 찬송과 민요로 되어있는 찬송 그리고 새로이 작곡한 찬송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Luther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찬송은 시편 46편을 내용으로 한 것으로써 종교개혁의 주제 찬송으로 불려졌다. 종교 개혁자들과 종교개혁 추종자들은 이 찬송가를 마치 전장에 나갈 때 부르는 군가처럼 불렀다.


Luther가 인도하는 집회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드는 것을 본 반 개혁파 신부들은 Luther가 평신도들로 하여금 찬송가를 부르게 하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드는 것이지 그의 웅변 때문이 아니라고 평가를 한바 있다. 중세시대에 이단운동과 반 이단 운동에 찬송가의 역할이 컸듯이, 종교개혁에서도 찬송가가 담당했던 역할은 반 종교개혁파 신부들이 말한 것처럼 대단히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Luther는 훈련받은 전문인들로 구성된 성가대를 예배에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고 동시에 교인들이 찬송가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인들의 찬송가 가창운동을 위하여 그는 시편을 운율에 맞추어 개작하는 일을 하였으며, 또 운율형 시편을 그 당시의 대중가요에 붙여 노래부르게도 하였다. 이것이 독일 코랄(Chorale)의 시초가 되었고, 20년 후 Bach에 와서 그 발전의 극을 이루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코랄은 위에서 말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비롯해서 ”다 감사 드리자“ ”오 상하신 그 머리“ 등을 들을 수 있다. Luther가 살던 시대에는 교회 성가대들이 주중에 길가에서나 또는 어떤 집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순회연주를 했기 때문에 독일 코랄(찬송가)을 교회에서 뿐아니라 집에서도, 길에서도 들을수 있어서 코랄이 가정과 사회, 학교와 기타 기관에 두루 전파되어 애청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므로 독일 코랄은 시편을 가사로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 이면서 동시에 종교개혁을 위한 선교 음악의 역할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Calvin은 교인들의 가창과 찬송가의 가사에 많은 제한을 두었고, 그 제한에 어긋나는 찬송가를 일체 예배에서 부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교회에서 악기 사용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Calvin은 교회음악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고 비난을 받고있다. 그러나 그의 본 뜻은 음악을 남용하는 것을 제지했을 뿐이지 오르간을 부순 것처럼 음악 자체를 제거하려고 한것은 아닐 것이다.


Calvin의 찬송가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제지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한계를 알게 되었고 인간이 쓴 찬송가가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것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Calvin의 사상에 관해서는 拙稿 “교회 음악에 관한 Calvin의 신학” (교회음악 1983년 가을/겨울호)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의 본래적 의미를 명확히 규정지어준 Calvin의 공헌은 이런 의미에서 크다고 본다.



4) 복음 찬송가 (Gospel Song or Gospel Hymn)
선교음악으로 가장 큰 공헌을 한 교회음악을 들라면 복음 찬송가(Gospel Song)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 찬송가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부흥운동과 더불어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교회음악 이었는데 이 형태의 음악이 미국에서 세계 곳곳에 파송한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하여 각국에 널리 전파되었다. 이와같은 노래를 복음찬송가 (Gospel Hymn)또는 복음 찬송가 (Gospel Songs)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시대 유명한 복음 찬송가 작가인 P.P. Bliss의 찬송가 책 이름이 ?Gospel Songs?(1874)"라고 되어 있고 또 Bliss와 Sankey의 찬송책이 ?Gospel Hymns and Sacred Songs?라고 불려진 데서 유래한다.


미국에서 유래한 복음 찬송가는 미국 대중가요의 많은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복음 찬송가의 가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주관적이며, 하나님에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에게 자기의 노래를 들으라고 말하는 내용으로 된 것이 많고 또 한 구절(phrase)이 반복되어 연주 된 후 각 절마다 후렴이 합창으로 불려지는 양식으로 되어있다. 가사의 주제는 주로 개인의 개종이나,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것, 구원과 내세와 하늘나라에 관한 확신등이며 그 가사의 성격에 있어서도 군가와 같은것, 교육적인 것으로부터 명상적인것 심지어는 감상적인것 까지 다양하다.


복음 찬송가의 선율은 주로 장조로 되어 있어서 주 삼화음과 속 삼화음 그리고 하속 삼화음으로 된 단순한 화성적 언어로 되어 있고 화성 리듬(harmonic rhythm)도 대단히 완만한 것을 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리듬 형태를 보면 19세기 세속음악의 특징이었던 점 4분 음표의 반복된 리듬꼴 또는 점 8분 음표의 반복된 리듬꼴을 많이 취하고 있다. pop style 의 복음 찬송가가 극도로 번성한 것은 부흥사 Dwight L. Moody(1837-1899)목사와 그의 음악 목회자였던 Ira D. Sankey(1840-1908)의 부흥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Moody가 대규모 부흥 집회를 인도할때 Sankey는 자신이 연주하는 풍금 반주에 맞추어 복음 찬송가를 독창하여 대중에게 소개하였다.


복음 찬송가는 복음의 매세지를 전달하는 가장 적절한 매체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Moody는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Sankey는 노래로 복음을 전한다” 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들의 집회를 선전하였다. 복음 찬송가가 이처럼 부흥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기 때문에 곧 “선교 찬송가”(mission hymn)라고도 불려졌다. 복음 찬송가로 인하여 이 시대 사람들은 “지옥에 갈 영혼의 수가 백만 이상이나 줄어들었다”고 말하면서 복음 찬송가가 선교에 기여한 공헌을 크게 찬양했다.

이와같이 엄청난 선교의 힘이 되어 온 복음 찬송가는 1885년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복음과 함께 한국 땅에 상륙하였다. 한국 기독교 100년의 역사에서 복음 찬송가의 위력과 업적은 바로 우리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의 업적과 같은 것이라고도 평가되어 진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잘못된 신앙의 형태에 대한 모든 책임도 이 복음 찬송가가 져야한다고 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복음 찬송가는 교육적이고, 이웃에게 구원받기를 권고하는 것, 자기 개인의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감상적으로 노래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흥 집회에서 부르는 것은 상관이 없겠으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닌 이와 같은 노래가 매주 예배에서 불려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감상적인 것이 되고, 주관적이고, 보편성이 결여되며 놀라운 은혜를 받는 것 만을 강조하고, 내세적이며 현실을 포기하는 편협하고 외골수의 신앙으로 발전했다고 보여진다. 복음 찬송가는 훌륭한 선교 찬송으로써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쉽게 감동을 줄 수 있어 은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배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 유의하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복음 찬송가에 대한 시비가 오랫동안 많이 있었다. 교인들과 목사들은 복음 찬송가를 너무 좋아하고 교회음악 전문인들은 이를 비판해 오다가 이젠 도에 지나치리만치 죄악시 하기까지 이르렀다. 복음 찬송가에 대한 시비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고 쉽게 결론지을 수도 없는 문제이다. 복음 찬송가의 본성 내지 본질에 대한 개념 설정이 달라서 내가 생각하는 복음 찬송가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복음 찬송가가 다르고, 또한 예배에 대한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아 예배와 집회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음 찬송가의 시비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기회에 보다 상세히 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찬송시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에게는 질이 낮은 복음 찬송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복음 찬송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찬송가의 편집을 찬송가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우리의 찬송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찬송가의 본 임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이 가사를 쓴다는 속성 때문에 복음선교, 교리선전, 이단과의 싸움에서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Martin Luther가 “찬송가는 남의 교리를 공격하는 데 아주 좋은 무기일 뿐만 아니라 나의 주장을 방어하는 데도 더없이 좋은 방패가 된다”라고 말한것은 찬송가가 갖는 영향력을 매우 잘 표현한 말이라고 본다. 특히 복음 찬송가는 복음선교에 대단히 큰 공헌을 하였다. Luther의 말대로 아주 훌륭한 선교의 무기였다. 한국 기독교의 복음선교와 관련지어 볼 때 복음 찬송가가 차지하는 공헌은 지대하다. 부흥사들이 원하는 찬송은 바로 이러한 복음 찬송가이다.


그러나 주일 낮예배만은 부흥회가 될 수 없다. 이 예배는 선교가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부흥회는 인간들의 회개와 선교를 목표로한 모임이지만, 예배는 은혜받은 이들이 복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 되어야 하는 모임이다. 따라서 이 두 경우에 사용하는 음악이 같을 수 없다. 이것을 명확하게 해 준 사람이 Calvin 이었다.


인간이 쓴 가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완전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잘못 사악한 것이 될 수가 있고, 사악한 가사가 선율에 붙여 노래 불려질 때 말 그대로 있을 때 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사람을 사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예배에서 찬양하지말라고 엄격히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Calvin은 교회음악을 시편가와 종교적인 노래로 나누고 교회에서는 시편가를 부르게 하고 집에서는 비성서적인 찬송으로 된 종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도 용납했다.


Calvin의 이와 같은 신학은 우리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위한 찬송가와 선교를 위한 복음 찬송가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100주년을 맞는 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성장해야 할 여지가 많다고 보아진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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