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드리다’ 뜻 중복 ‘예배하다’ 맞아 

○…‘바로’는 이집트의 왕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원래 헬라어로는 ‘파라오’라고 합니다.

‘바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직책 이름입니다. ‘대왕’이나 ‘임금’이란 뜻이지요.

그러니 ‘바로왕’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바로’라고 해야 합니다.

○…‘예배하다’인가,‘예배 드리다’인가?

‘예배하다’보다는 ‘예배 드리다’가 겸손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예배 드리다’는 뜻이 중복되므로 어법상으로는 ‘예배하다’가 좋은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축하 드리다’‘찬송 드리다’‘기도 드리다’도 ‘축하하다’‘찬송하다’‘기도하다’로 고쳐 쓰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들이 무심코 ‘내가 세운 장로’‘내가 세운 권사’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자신이 목회하는 동안에 세운 직분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이 임직시켰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운 장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장로’입니다.

○…주일 예배는 ‘예배에의 부름’이라는 순서로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에 초대하심을 뜻합니다.

‘Call to worship’입니다. 그런데 ’예배로의 부름‘이나 ’예배에의 부름‘은 일본식 표현으로 우리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부름‘보다는 ’부르심‘이 더 정중한 표현입니다. ’예배로 부르심‘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우리 제단을 축복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제단‘은 ’교회‘라고 바꾸는 게 좋습니다.

또 ’우리‘는 ’저희‘로,’축복‘은 ’복을 내려주소서‘로 바꾸는 게 적합합니다.

“하나님,저희 교회에 복을 내려주소서.”

<이의용 교회문화연구소장> 

 



예배드리다(X) 예배하다(O)



오늘날 교인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예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프로스퀴네오(예배)를 사전적으로 보면 키스하다 에서 유래 ..에게 절하다 경위를 표하다 엎드려 절하다 예배하다 경배하다 찬미하다 등입니다.

예배를 드린다와 예배를 하다에 대하여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배하다로 가르치지 예배를 드린다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니 우리는 드린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예배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우리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엄위 그 자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진실로 인정하는 행위적인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예배' 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인정하는 행위 자체를 예배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린다 라고 할수 없는 것은 드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는 그 무엇을 드린다 라는 표현입니다.

이에 예배시 드리는 것은 우리의 그 모든 정성입니다.
따라서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하는 것이지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말해 예배를 통하여 그 안에 우리의 정성은 드려지나 정성을 드린다고 해서 예배까지 드린다 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곧 예배시 정성은 드릴수 있으나 예배는 드릴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배 받을만한 것은 하나님께만 계시니 그 받으실만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최고의 예의와 존중과 정성을 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배 라고 하므로 예배 하다 라고만 해야 맞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 할 때에 우리의 정성이 예배 함을 통하여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스스로 예배 받을만한 그 무엇이 상대적으로 나에게 있습니까? 전혀 없죠.
없으니 예배 드릴 것도 없는 것이며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됩니다. 
 
이상 이런 사실을 알고난 후에 우리 라면 차후 어디서든지 우리는 마땅히 예배 하다 라고 해야만 합니다.
이 의미를 알고 예배 하러 간다.

예배하다. 라는 표현을 한다면 그 표현 자체만해도 그 안에 얼마나 신성한 기운이 있는 말인지를 알게 되어 진정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표현을 할 때에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운 신성함이 가득히 묻어 있는 말인지를 알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 하다 또는 예배 하러 간다는 말만해도 이미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존귀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 하다와 예배 드리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오늘날 예배 하러 예배당에 가는 것이지 예배 드리려 성전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사기를 치는 것은 구약적 표현으로서 신약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건물을 신성시 하여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우상에 불과 하며 이를 강요 내지 강조 하는 자들은 예배당 우상숭배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런 우상숭배의 앞잡이들이 가득한데 그 앞잡이들은 거의 다 목사들입니다. 
이 앞잡이들은 신약성경대로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고 했다가 또 자기들 필요에 따라 예배당 건물도 성전이라고 구라를 치는데 이는 대개 다 예배당 건축을 할때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이 이러는 목적은 뻔한 것입니다.
예배당 건물을 지으면서 이 건물을 성전이라고 아주 신성시 해야지 건축 헌금 모으는데 유리한 고지에 이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교인들은 무조건 목사가 그렇게 하니 그런가 하여 제대로 따져 알지도 않고 무작정 따라서 성전이라고 신성시해가면서 우상숭배와 다름이 없는 짓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 현대 개신교인들입니다. 

이런 일반 상식적 기초도 없는 짓을 보란듯 버젓이 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그리할뿐 아니라 도리어 이같은 성경 왜곡적인 입장을 맞다고 대들고 있으니 오늘날 모든 사회로 부터 개dog교 라는 버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다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

 

♥ 들어가며

한국 교회에 예배 행위에 대한 표현으로 "예배본다","예배드린다","예배한다"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배본다"는 말은 '예배를 구경한다'는 의미가 강하여 점차 배제되어 가고, 요즈음에 "예배드린다"는 말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이유로 "예배드리다"는 교회용어로는 잘못된 용어이므로 사용하지 않기를 제안합니다.

 

1. 성경 용어가 아닙니다

한글 성경에 '예배하다'로 쓰고 있습니다. 1890년대에 번역자회에서 낱권으로 낸 것을 1900년에 이들을 함께 묶어 발행한 신약젼셔에서 일률적으로 '예배하다'로 씌어 있으며, 1938년 개역된 개역성경에서도 '예배하다'로 씌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교단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성경> <개역개정성경>의 신약성경에 똑같이 '예배' 용어가 14번 씌어 있습니다(4:20-24, 12:20; 8:27, 24:11; 9:4, 12:1). 14개의 용어 중 동사로 표현된 것이 12개인데 모두 '예배하다'로 씌어 있습니다. '예배드리다'로 씌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또한 공포된 신경과 신조 중 "예배드리다라고 씌어진 곳이 없으며, 모든 기독교 교리서가 '예배하다'로 통일되게 씌어 있습니다.

 

2. 예배의 구성요소와 다른 표현입니다.

'예배'는 양면적 성격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향하는 요소들(성경봉독, 설교, 성찬, 강복 등)과 신자들이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요소들(찬송, 기도, 봉헌 등)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란 신자들의 모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며 말씀하시고 강복하시는 시간이며 동시에 신자들이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교제의 시간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자의 응답입니다. 따라서 '예배' '부름과 응답'이지 '드림'이 아닙니다.

 

3. 구약의 제사제도의 잔재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적(豫表的)인 희생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다'라는 행위가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10:10),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10:12),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10:18)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배를 위해 '드리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완성되었고 다시는 피흘림이나 희생이 전혀 요구되지 않으므로 드린다라는 말은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요구되었던 말의 잔재(殘滓)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기복사상의 의미가 강합니다.

드리다는 종교의식과 제의적 관점에서 '드림'으로 받을 수 있다는 무속종교의 기복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 감응(感應)을 위해 공적을 쌓으려고 무엇을 바치는 행위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 행위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임재에 대한 인간의 만남이며 하나님의 요구적 명령에 따른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드리다"라는 말은 기독교 '예배' 행위에 합치되지 않습니다. '예배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드릴 예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헌신이란 용어로 마치 예배 시에 자신을 하나님께 통채로 '드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예배 후에 그대로 가지고 돌아갑니다.

 

5.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드리다' '주다'의 높임말이 될 뿐만 아니라 '공손한 행위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라는 풀이가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예배드리다'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서로 예배하다 보다는 예배드리다가 겸손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공양드리다/불공드리다/말씀드리다' 를 보기로 들고 있으나 '예배드리다'는 없습니다. '예배(명사)+드리다(접미사)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배'(예를 갖추어 절함)라는 용어에 '드리다'가 내포되어 있어서 '예배+드리다' '드리다'+'드리다' '드리다'의 중복 표현이 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상호적인 관점에서 예배주다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다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6. 표준어가 아닙니다.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로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사 '예배'의 동사로 '예배하다'는 표준어로 올라와 있으나 '예배드리다'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다'는 공용어의 자격이 없습니다.

 

7.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절하다,경배하다, 예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퀴네오' '존경을 나타내다. 가치를 대상에게 돌리다'는 뜻으로 '경건과 의식을 포함하는 존경하는 삶 전체를 포괄합니다(4:20;8:27;11:21;4:10).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종(servant)을 의미하는 '라트리스'에서 왔으며, 종의 섬김과 봉사 행위를 가리킵니다(12:1, 9:4; 9:1,6; 16:2). 영어에서 예배를 'worship'과 아울러 'service'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한국어 예배(禮拜)가 뜻하는 것은 예의(禮儀)나 예절(禮節)을 갖추어 절하는 것()으로 신자들의 어떤 행동 자체를 지시합니다. 따라서 예배에서 신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예배 행위자 즉 예배자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8. ''예배하다'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문화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모되며 그에 따라 언어도 생성, 소멸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교회 용어는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언어와 그 가치가 엄연히 다릅니다.


따라서 '예배'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 교제, 체험, 찬양, 송축, 영광, 헌신, 경배 등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 하나님을 향한 신앙행위이며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에 대한 영성적 작용이므로, '예배'를 사물화(事物化) 하거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떤 매체적(媒體的)인 의미를 담고 있는 "예배드리다라는 말보다 "예배하다"라는 성경적 근거를 가진 말로 통일해야 합니다.

 

♥ 나가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 논리가 언어 영역에도 해당되어 우리 사회에는 '나쁜 언어가 좋은 언어를 쫓아낸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쁜 언어가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국민 대중을 들먹이는 정치 논리처럼 언중을 빙자하여 뿌리 없는 언어가, 표준어로 자리잡고자 합니다. 격식과 꾸밈을 보태어 품격을 높여(?) 자신의 인격과 학문을 드러내려고 하는 외식 풍토가 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바른 교회 용어가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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