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들의 색다른 사고방식 10가지

 

유태인들의 사고방식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경전은 무엇이고 기독교와는 어떻게 다른가.

많은 비 유태인들이 궁금해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유태인은 거의 없다.

대부분 “구약성서와 탈무드를 읽으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저명한 라바이(랍비)들이 쓴 유태종교에 관한 책자를 봐도 분명한 정의를 찾기 힘들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종파마다 생각이 적지않게 다르다.

유태인의 사고구조를 제 3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유태사회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이들이 어떤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는지 약간은 알수 있다.

수박 겉핥기 식이지만 유태인들의 사고를 형성해주는 10가지 큰 틀을 찾아보았다.


(1) 믿음(faith)보다는 행동(action)

한 종교에 대해 쉽고 분명하게 정의하기를 좋아하는 학자들은 유태교를 연구하면 쉽게 좌절한다는 얘기가 있다.

도대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수 없는 탓이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교리문답집’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많은 라바이들과 유태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을 공식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성공한 사람은 없다.


통상 유태인들의 믿음은 ‘신, 이스라엘, 토라(Torah)’ 란 세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신비주의자들은 이 셋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비슷한 것으로 한가지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도 바로 없어진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신을 믿고, 그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영원한 계약을 지키며, 토라에 나온 지혜와 생활방식대로 산다는게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 믿음이다.

여기서 유명한 라바이들이 강조하는 대목은 ‘실천적인 행동’이다.

예수탄생이전인 기원전 1세기경 활약했던 역사상 가장 명망있는 라바이중 하나인 힘멜은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이웃에게 하지 않는 것이 유태교의 핵심”이라며 “그것은 모두 토라에 들어있다”고 설파했다.

한세기 뒤에 활약한 라바이 요카난은 “좋은 마음(Good Heart)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라바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유태교의 강조점은 기독교와 달리 ‘신을 믿는 것’보다,

‘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신은 자신을 믿는 것보다 토라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까지 설명하는 라바이들도 있다.

(2) 토라를 ‘공부’하고 선행을 행하라

유태교에선 세상을 사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설명한다. 토라를 공부하고, 이를 새기는 예배에 충실하며, 토라에 나와있는대로 선행과 자선행위를 실천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토라’를 공부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부’라는 행위는 유태교의 핵심이 되고 있다. 기원전 1세기부터 유태사회는 의무 교육제도를 두고 있었다. 가난한 자와 고아에 대한 교육은 부모들은 물론 사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었다. 중세시절부터 어린이들에게 꿀 과자로 만든 알파베트로 글자를 익히게 한 것은 바로 ‘공부=달콤한 것’이라는 생각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진정한 자선은 인종이나 종교를 초월해야 하며,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도움을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선은 가능하면 익명으로 해야 좋고, 자기가 자선을 해주는 사람들이 스스로 독립적이 되어 더 이상 자선이 필요하지 않고 남을 도울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최고의 자선행위로 꼽는다. 고기를 주는 것 보다 고기낚는 법을 가르쳐주는게 최고의 자선인 셈이다.

(3) 유일신의 ‘창조’와 ‘구원’은 계속된다.

첫째, 신은 우주를 창조했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 유태인들은 우주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우주의 생성 뒤에 신의 손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또 진화론은 제 2의 창조론으로 설명한다. 창조가 한번으로 끝난게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이고 있고 바로 이것이 현대과학 용어인 ‘진화’라는 주장이다.

둘째, 신이 토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신이 시나이 동산에서 10계명을 주는등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을 주었고, 그들을 이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토라에서 지혜를 얻고 통찰력을 구한다.

셋째, 신은 구원을 해줄 것이다. 신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주었던 것처럼 실제 인간사에 개입하고 있고, 결국 지상의 끝에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구원해줄 것이다.

(4) ‘
원죄’는 없다.

유태교에서도 죄는 있고 이에 따라 속죄와 용서를 중요시 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원죄’ 의식은 믿지않는다. 인간이 타고나면서부터 원래 죄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태교에선 원죄의식 대신 인간 안에는 ‘좋은 성향’과 ‘나쁜 성향’이 함께 있는데 이 둘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죄를 지었을 경우 기독교에서는 신에게 용서를 구할수 있으나 유태교에서는 먼저 자기가 잘못한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용서를 구해야 한다.용서의 방법도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인간들 사이의 ‘행위’가 우선되는 셈이다.

(5) ‘사후’ 보다는 ‘현세’가 더 중요

유태교에서도 사후에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태교를 설명한 책자 어디에서도 단테의 신곡 같은 두려운 지옥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지 않다. 거의 천당의 모습만 그려놓고 있다. 종교관 자체가 신의 구원을 확실히 믿는 낙관론이 주조를 이루는 탓이다. 실제 유태인들의 욕에도 다른 종교에서 많이 쓰이는 ‘저주(Damned)’나 ‘지옥(hell)’이란 단어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라바이들은 천당이나 지옥 개념대신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대부분의 유태학자들이 죽어서 가는 내세보다는 현실 세계에 더욱 관심을 둔다. 현실세계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려는데 훨씬 더 많은 종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유태 회당들이 헌금이나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면 기도를 위한 성전신축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가난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우선 돈을 쓰는 이유이다.

(6) ‘사람 우선’이 도덕적 판단의 기준

유태인들에겐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몇 개의 가치가 있다. 그중 최상의 가치 기준은 ‘사람의 삶과 생명’이 가장 중시된다는 것. 유태인들은 건배할 때 포도주잔을 부딪치며 ‘이카임(I’chayim)’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To life”라는 뜻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인간들의 삶은 너무 소중 해서 ‘인간의 생명이 위협 받을때는 단 3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종교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예를들어 남자들의 의무사항인 할례도 아이가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아프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3개의 예외는 우상숭배, 살인, 근친상간이나 강간등 성적문제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을 포기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강간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가치판단의 두번째 중요한 기준은 ‘자유’의 강조이다. 유태 신학자들은 이집트 탈출인 엑소더스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이 메시지는 유태교회의 예배에서 아주 많이 얘기되는 것중 하나이다. 특히 유태인들이 일주일에 하루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안식일도 돈이나 일에서 해방된 ‘완전한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세번째는 구원으로 가는 방법으로 ‘인간의 행동’을 강조한다는 것. 모세의 이집트 탈출시 모세가 이집트 군사들에 쫓기는 위기때 기도하고 있을 때 신은 “기도를 중단하고 뭔가를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그래서 어려서부터 ‘좋은 행동’을 하도록 교육 받는다. 계속 되는 신의 창조(진화)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강조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7) ‘성생활’은 필요할뿐 아니라 바람직하다

유태종교가 기독교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 로마 사상과 끝내 타협을 못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간 육체에 대한 입장이다. 그리스 로마사상에선 ‘인간의 영혼은 선하지만 육체는 악’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육체를 혹사시키는 금욕주의 독신주의가 중시되었다.

유태교는 ‘육체는 악’이라는 사고를 거부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남녀 서로간에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필요를 갖도록 했기 때문에 그 의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은 신의 뜻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육체의 즐거움’을 경시하지 않았고, 성생활을 죄의식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라바이들은 부부간의 성생활을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했다.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않으면 중대한 이혼사유가 되기도 했다. 직장일로 오랜 기간 집에서 떨어져 사는 남편들도 가능하면 자주 집에 들러 부부생활을 하도록 권고된다. 기독교에선 성스러운 주일에 성생활을 자제하는게 미덕이나, 유태교에서는 안식일에 성생활을 하는게 관습처럼 되어있다.

물론 간음하지 말하는 말이 10계명에 나와있고 근친상간 강간등은 율법을 깰수없은 3가지 예외에 들어있을 정도로 부부간의 순결한 성생활만을 강조하고 있다.

(8) 삶의 교과서는 토라,바이블,탈무드

토라 라는 단어는 유태인 전통에서 두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상 생활방식이나 모든 전통을 망라하는 유태인 정신의 핵심이다. 따라서 토라란 단어는 지식 지혜 신의 사랑이라는 의미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는 영어로 ‘The Torah’가 아니라 그냥 ‘ Torah’라고 쓴다.

좁은 의미를 쓰이면 ‘토라(The Torah)’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권인 이른바 모세 5경을 의미한다. 물론 최근들어 유태인들은 시대에 뒤쳐졌다는 의미를 주는 구약(Old Testament)이란 말 대신 히르뷰경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탈무드는 5-7세기에 라바이들이 토론을 통해 법적 윤리적 정신적 신학적 예식적 역사적인 통찰을 기록한 63권의 책을 말한다. 이는 그후 수세기 동안 유태인 학교의 주요 교과서였고 오늘날에도 정통 보수 라바이 훈련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되고 있다. 저술 당시 탈무드는 모음이 없는 고대 아라마익 어로 쓰여져 일반인들은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탈무드에 대한 해석판이 많은 것은 그만큼 일반인이 읽기 힘들었기때문이다.

(9)
교회보다 가정이 더 ‘거룩한 성소’

유태인들이 사는 집에 가면 출입문 오른쪽 지상에서 약 1.5m 지점에 약 10Cm 길이의 윷모양의 장식이 붙어있다. 나무나 금속 유리등으로 만들어진 이 장식의 이름은 메주자(mezuzah). 유태인이 사는 집이란 표식이다. 2천년이상된 풍습인 이 메주자를 어떤 유태인들은 집안에도 방마다 붙여놓고 있다.

유태인들은 집을 출입할 때 마다 메주자를 만지거나 입맞추면서 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신의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메주자가 상징하듯 유태인들은 집을 성소로 여긴다. 많은 유태인들이 회당에는 특별한 때만 나가면서도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하는 것도 집에서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때문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보기엔 이상한 대목이나 많은 유태인들이 회당보다 집에서 더 많은 종교생활을 한다.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종교생활을 가르친다는 장점이 있다. 식탁에서 함께 기도하면 선조들이 이집트 노예시절에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고, 하누카명절때 선물을 서로 주고 받으며 신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때문에 유태사회에서는 모든 회당이 없어지면 유태종교가 순수하게 지속적으로 살아남지만 종교생활을 가정에서 하지않고 오로지 회당에서만 한다면 유태 종교는 그 세대에서 명맥이 끊길 것이란 농담아닌 농담이 있기도 하다.  

(10) 예루살렘(이스라엘)은 언제나 정신적인 고향

고향을 잃고 세상을 떠다닌 유태인들에게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은 3천년동안 꿈이었다. 회당에서의 예배나 결혼 예식등을 마치며 하는 기도의 마지막 말은 언제나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시오니즘이 정치적인 운동으로 부각된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나라찾기 운동이 벌어졌다.

정치적 시오니즘의 직접적인 원인 러시아 짜르 정부가 제공했다. 외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유태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자국내 유태인의 3분의 1을 개종시키고, 3분의 1을 살해하며, 나머지 3분의1을 추방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하고 무차별 살육을 벌였다. 당시 유럽 전역에 반 유태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따라서 유태인들은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들의 안전을 확보해줄수 있다고 생각했다. 2차대전중 히틀러가 6백만명에 달하는 유태인을 학살한 것은 유태인들의 생존을 뿌리채 없애버릴수 있다는 공포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여곡절끝에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 독립하면서 시오니즘에 대한 입장이 여러가지로 변하고 있다. 극단론자들은 전세계의 모든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유태인들은 이같은 극단론을 거부한다.


미국 유태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시오니즘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시오니즘은 모든 유태인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살고있는 나라의 일원으로 발을 붙여 살며, 이스라엘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몸은 미국인으로 살되 이스라엘을 정신적인 수도(spiritual capital) 로 간주한다는 생각이다.


 

<육동인의 유태인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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