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 이해


1. 기독교 영성 이해


 기독교 영성이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한 인격으로 계시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나님 자신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심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를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으며, 우리들 역시 이 세상의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우리의 인성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다시 우리 몸으로 육화시키는 것에서 완성된다.


 기독교 영성 이해는 "기독교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영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것이지 인간의 어떤 부분적 구성요소에 관한 것이 아니며, 전인적 인간의 삶의 근본적 방향성에 관한 것이지 인간의 활동영역의 한 부분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영성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촉구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의 동태적인 현상으로서 자기토월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제반관계들 속에서 창출해내는 인간성의 생동하는 삶의 체험현상과 그 창조적 힘"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 체험과 같은 특수 체험에 국한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성, 스타일, 지향성에 관계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가 지으신 세계, 한 가운데서 실존적인 삶 그 지체, 즉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분, 그분의 아들, 그분의 영을 통하여 변형되어 가는 인간의 정신일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전인적 인간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 속에 동참하면서 그분의 삶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재현해 나가는 '제자의 길', '그리스도의 닮음'과 '따름'이며, 예수를 내 생명 속에서 '연출해 내는 삶' 즉 오늘 이땅 위의 삶 속에서 구현해 나가는 예수의 제자로서 기독자의 삶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영성의 신학적 정의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신비주의와 달리 세 가지 종류의 영적 존재를 믿어 왔다.


 첫째, 신의 영으로서의 영과, 둘째 천사로서의 영과 셋째, 인간으로서의 영이다. 여기서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누어져 있어 각기 자기의 역할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 신학적인 면에서 성령을 연구해 보자.


 1) 비피조자로서의 성령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모두가 피조자이며 천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성령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게셨다.

   서방 교회는 성부와 성자로 부터라고 보며, 동방 교회는 성부러부터 나온 분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성령은 피조자가 아니라 성자와 성부와 동일한 위치에 있다.


 2) 비물질적 존재로서의 성령

   물체라면 용량과 성질에 따라 변한다.

즉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종교는 그들의 신앙의 대상인 신을 물체적 존재로 표현한다. 이것은 자가 당착이다.

   그러나 성령은 양적이나 질적으로 증식과 감축이 없다. 즉, 성령은 거룩한 영이며 순수한 영이다. 그러므로 어떤 생물이나 물체의 모양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3) 비시간적 존재로서의 성령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즉 생물이나 무기물질은 생성 소멸의 단계를 거친다. 다른 종교에서 윤회나 카르마는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성령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몰때 다른 존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이 세상 창조와 연관해서 신의 입김이 사람 몸속에 주어졌을 때부터 성령이 생성된 것은 더욱 아니다.(창9:7, 요20:22)


   아리우스은 세라피온은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이 나왔기 때문에 성령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성서의 가르침과 전통적인 성령론과 교회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볼 때 성령은 성부와 함께 영원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한 성령께서 계속해서 역사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며 성령은 당연히 초 시간적인 존재이신 분이다.


 4) 초공간적인 존재로서의 성령

   이세상의 모든 존재는 일정한 장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같은 시간에 다른 두 곳 이상의 장소에서 현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말은 합당치 않은데 만약 존재한다고 할 때는 절대적이고 영원하시고 완전 불면하시는 분이 실지로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틸리히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칸트가 말하는 것 같이 한 몸이 같은 시간에 두 곳에 있을 수 없다면 성령은 상대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은 그런 분이 아니다. 전세계 모든 성도에게 언제든지 신의 섭리를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신의 임재, 또는 편재라도 부른다.


 5) 체험의 대상으로서의 성령

   성령의 사역을 위주로 한 구체적인 면을 성경은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주요한 성령의 체험의 현장은 다음과 같다.


   a.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야웨신이 그에게 보였다. 이 표현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 사견의 전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사야가 예언자로 출발하기 전에 야웨신과 성령의 물리적 사역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즉 성령은 단지 신학자들의 머리속에서만 묘사되는 순수 존재거나 자족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체험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b. 요한복음20장2절에 보면 십자가 사건 3일 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말하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받은 성령의 체험이 절망의 무저갱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구출하는 새 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


   c. 사도행전2장의 오순절 사건을 살펴보자.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을 위시한 120문도들은 성령의 내림을 보고(불의 혀), 듣고(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 느꼈다 (방언체험등). 그리고 이 성령의 체험은 교회 출발을 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6) 역동적인 존재로서의 성령

   영의 뜻은 '공기, 움직이는 공기, 바람, 입김'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영은 동적이라는 것이다. 성령이란 이름은 인간의 입김을 성화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 아니라 신의 영이란 것을 밝히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동할 때는 자연 질서의 변동이 일어날 때도 많다. 그러나 파괴가 아니 질서 안에서 사역은 일어난다. 인간의 영혼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그 같은 사역이 사람을 사로잡을 때는 분명한 삶(Unambigious Life)을 창조한다.


   사람은 자아초월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영적 현존에 의해서 사로잡히지 않고는 그것을 포착할 수 없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또한 신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연을 파괴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신이 본질적으로 선하기 때문이라고 탈리히는 말한다.


3. 영성 공동체


 교회의 영성 교육에 있어서 꼭 필요한 교육 중의 하나는 공동체 교육이다. 우리 국민은 개인적으로 일을 맡겨 놓으면 잘하는데 단체적으로 봉사하고 기여하는 정신이 약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의 활동에도 예외일수 없다. 이런 점을 개선하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함께 일하는 분위기와 협동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이 공동체 교육이다. 이러므로 공동체 교육을 친교적인 행사 위주로만 활용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여 성도간에 서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인 서로간의 유대관계와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 내용으로서는 자기를 알림으로 해서 공동체의 일원인 것을 인식하도록 하며 자기의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장점과 단점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게 한다. 자기가 신앙인에 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며 자아를 발견하여 스스로를 살펴보는데 관심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공동체로서 서로를 도우며 살뿐만 아니라 이웃을 돌아보는 의식을 심어주게 한다. 이것이 발전되면 교우들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업 등의 봉사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이므로 우선적으로 교우들의 사정과 형편을 서로 돌아보며 기도하는 훈련을 하게 하며, 진실된 기도를 드리도록 교육하는 계기를 삼는다.

 교회는 봉사의 공동체이므로 직접 분담하여 봉사실습을 하므로 봉사의 의식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교회는 선교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선교단원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의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특히 흔히 말하는 배가운동 등의 인위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고 성경적인 목표를 세워서 한 사람이 평생동안 30, 60, 100배의 결실을 얻는 결단을 하게 한다.


 교회는 헌신을 공동체이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헌신의 모범자로서 살아가도록 지도한다. 그럼으로 해서 그 곳에서 지도자로서 자세를 가지고 임하도록 하며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위치에서 서도록 다짐하게 한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로서 예수님의 발씻어 주는 세족식을 통하여 스스로 주님의 제자된 의식을 심어준다,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케 하고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의 자제임을 다짐하게 한다.

 이러한 공동체 교육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신앙의 생활화를 위해 기여하도록 인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교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갖는 일에 못지 않게 기장 공동체에 관한 관심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부부의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회의 개인주의, 가정의 핵가족의 영향으로 부부간의 문제가 심화되는 오늘의 사회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인의 가정도 한번 돌아보고 가정의 의미를 음미함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새롭게 살려는 의지를 심어주게 한다.

 

그 내용으로서는 부부는 가정을 이룬 장본인임을 인식하게 한다. 자기가 정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을 함으로써 성숙한 가정의 방향을 잡게 한다. 사랑의 재창조를 위해 서로를 기도하게 한다. 화평한 신앙 가정을 이루기 위해 이제까지 말못했던 것을 편지로 써서 이해를 구하며 자기를 정리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내가 먼저 주는 마음을 가지고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이제부터 잘하도록 다짐하게 한다. 결혼 갱신화를 함으로 처음 결혼식 할 때의 감격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이러한 교육 경험을 가지고 교회를 중심한 유대감을 가지고 사회를 향한 봉사활동을 전개 해 나가도록 지도함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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