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도 시대의 예배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난 번에 사도들의 예배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사도들은 복음이 장으로서의 성전과 회당예배에 참여하였고, 결과적으로 초기 기독교의 예배는 유대주의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도들의 시대가 지나간 후에 속사도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고유의 예배는 점차로 정착되어 갔으며 발전되어 갔다. 속사도 시대는 보통 주후 60년에서 100년 넘어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물론 연대를 이렇게 정확하게 나누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대체로 속사도시대란 사도들의 활동이 끝난 후부터 약 50여년 간의 기간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초대교회가 매우 활발하게 형성되던 시기였다. 이 때쯤에는 교회의 선교활동이 로마제국의 거의 전역과 그 너머까지 확장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과 더불어 이교도 집단의 형성에 의한 도전도 시작되었다. 그 결과 교회는 자신을 보다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외부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신앙적인 문헌들의 수집(복음서와 서신들)과 보다 정돈되고 보다 구체적인 교회조직(딤전 3:1-13), 신앙고백적인 진술들의 형성(딤전 3:16; 고전 15:3-5 등), 그리고 훨씬 발전된 예배의식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독교 예배의 정착과 발전이 이루어져 갔던 시기를 공부하고자 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부분으로서 속사도시대의 예배를 공부하고자 한다. 



2. 몸 말

1) 속사도 시대의 예배를 알려주는 문헌들 

사도들의 활동이 끝난 이후 약 50년간에 걸친 속사도 시대의 예전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찾을 길은 사실은 없다. 이 시대의 정황은 네로 황제가 주후 63년 7월의 로마 대 화제 사건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대대적인 살해와 박해를 가하던 잔인무도한 시기였다. 교인들이 어느 곳에 머물러 차분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겨를도 찾기 힘든 험악한 시기가 바로 이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인 형편이 이해되어질 때, 이 시대가 왜 예배에 대한 기록을 충분히 남기지 못했을까 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된다. 
   

일찍이 웨스털리(W.O.E. Oesterly)는 그의 유명한 [기독교 예배의 유대적 배경](The Jewish Background of the Christian Worship. Gloucester: Peter Smith, 1965)이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자료를 찾기 위한 우리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찾기는 아주 막막할 뿐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시대의 예배에 관한 연구는 누구나 확실성을 가지고 서술하는데 매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오직 유대인들의 예배와 사도들의 예배에 관한 기록과 2세기의 문헌 가운데 조금씩 나타난 기록과 연관지어서 이 시대의 예배를 탐구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시대의 예배를 조금씩이나마 언급한 너무나 소중한 문헌들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기에, 예배의 역사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이 시기의 예배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초대교회의 문헌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소개한 바 있는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의 서신], 로마의 트라얀(Trajan) 황제 때에 비시니아(Bithynia)의 총독을 지내었던 [플리니(Pliny)의 서신], 그리고 흔히 열두 사도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초대교회의 예배와 목회분야에 매우 소중한 문헌인 [디다케(Didache)] 등이다.

2) 예배의 내용들   

이상의 삼대 초기 문헌들은 속사도 시대의 교회가 예배하는 공동체로 어떻게 살았으며, 그 신앙상태가 어떠하였는지는 밝히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박해로 얼룩진 시대상을 말하듯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에 의하여 남겨진 공식적인 예배 지침서들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위의 문헌 가운데 나타난 다음의 자료들은 기독교 예배의 맥을 찾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위의 세 가지 문헌들이 속사도 시대의 초대 교회 예배를 가르쳐 주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한다. 
   

제일 먼저,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바 있는 서신(Letter to the Corinthinas)이다. 이 서신은 본래 예배에 관한 것이 아니고,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헌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나 있는 기도에서 우리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기도의 내용과 수준을 알 수 있게 된다.(59장-61장). 이 기도는 로마교회의 예배 기도로 여겨진다. 여기서 그들은 비록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로 이름 없이 살아갔지만,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존재들로서 보호가 있을 것을 확신하는 신앙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기도 속에서 그들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온 만물의 창조자시여! 이 세상에서 선택되어 인침 받은 이들을 보호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부르셨나이다. ....우리의 심령의 눈을 여시사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인간들의 모사를 흩으시며,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강한 자를 꺾으시는
    주여,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소서.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구하시고, 낮은 자들
    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시고, 곤궁한 자들에게 함께 하시며,
    죄인들을 치유하시고, 주의 길을 벗어난 자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굶주린 자들을 먹여 주시고, 옥에 갇힌 자들을 구하여 주시고, 병든 자를 치료
    하시며, 낙심한 자를 위로 하시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
    이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양떼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의 잘못과 불의함과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진리로 우리를 정하게 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소서....
    주여, 이 땅의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지도자들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따라 세우셨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소서...그들을 권고하사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행사하게 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영혼의 보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세세
     무궁토록 영광과 권세가 있어지이다. 아멘”

둘째는, 디다케에서 보여준 성찬 성례전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음을 다음의 기록에서 보게 된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성찬 예식에 참여하여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은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라고”(디다케 9-10장)

셋째는, 디다케에서는 성찬 성례전에서 받게 될 성물을 앞에 놓고 드려야 할 감사기도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잔에 대하여)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다윗의 거룩한 포도에 대하여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이
     영원하소서”
    “(떡에 대하여)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하여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이 영원하소서
     산들에 흩어져 있던 낱알들이 모여 한 덩이 떡을 만들 듯이 하나님의 교회도 
     땅끝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함께 모이도록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가 영원하소서”

넷째는 디다케는 잔과 떡을 다 받아 든 다음에 드려야 할 감사의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종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신 지식과
     믿음과 영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이 영원하소서.....
     오! 주여, 하나님의 교회를 기억하시사, 모든 악으로부터 건지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케 하소서. 또한 성결케 된 하나님의 교회를 불러모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에 이르게 하소서. 세세토록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이들은 주님의 살과 보혈을 받은 다음에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주역들로 스스로를 다짐하는 종말론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지금의 낡은 세상은 사라져 버리고 새 세상의 은총만이 올 것을 부르짖고 있다.

    “은총이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나님 호산나!
     어느 누구도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여섯째는, 세례 성례전은 매우 신중한 준비를 갖춘 후에 주도록 하였음을 디다케에서는 밝히고 있다. 

     “세례 전에 집례자와 수세자는 미리 단식하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으면 미리 단식하시오.
      집례자는 수세자에게 하루나 이틀 전에 단식하라고 명하시오.”

일곱째로, 비두니아(Bithynia)의 총독이었던 플리니의 서신은 초대교회 예배에서의 찬양의 모습(교송)을 보여준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이 발견한 사항을 기술하였는데, 특별히 그는 기독교인들이 찬양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한다

    “...그들은 어느 일정한 날 날이 밝기 전에 모여서 그리스도라는 신에게 응답형식 또는 교송으로 찬양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덟째로, 플리니의 서신은 기독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일종의 서약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절도나 강도, 간음 등을 삼가겠다고 서약함으로써 굳게 결속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약속을 어기거나 기부금을 요청받을 때 거절하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보고 하였다. 이 서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예배학자들은 그것이 “죄의 고백”에 해당되는 순서였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예배학자 융만(Joseph Jungmann)은 그것이 “주일의 죄의 고백에 해당하는 양식”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아마도 십계명의 낭송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플리니는 초대교회가 모일 때마다 가지고 있던 공동식사, 즉 Agape meal에 대해서 보고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헤어졌다가 식사를 위하여 다시 모이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통상적인 일이어서 해롭지는 않습니다...”라고 한다. 플리니가 “통상적”이고 “해롭지 않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그가 그 식사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식사가 곧 온 교회가 함께 하던 공동식사, 즉 아가페 식사였다.
   

이 아가페 식사는 가장 초기의 예배경험에 그 기원을 둔 기독교인들의 공동식사였다. 이에 대해서는 디다케 문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누가는 이 식사를 행전 2:46에서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묘사하였다. 이런 기록들로 미루어 보아 초대교회에서 원래 주의 만찬은 아가페 식사의 맥락에서 경축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의 만찬과 공동식사는 점차 분리되었다. 그리고 플리니의 서신은 이 둘이 이미 분리되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 남겨준 교훈들   

속 사도시대라고 일컬었던 이 시대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다. 네로의 박해와 함께 사도들이 순교의 제물로 사라져 가고, 예배는 성전이나 회당에서 공공연하게 드릴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자기 신분의 노출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에 속하였다.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박해의 시련은 예배를 통하여 새롭게 위로를 받았다. 부활하신 주님이 성체를 받는 감격은 한 주간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고, 또 한 주간을 주님께 소망을 두면서 나갈 수 있었다. 이 때의 예배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거대한 충전을 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하기에 이 시대가 넘겨준 교훈들은 실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먼저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일요일은 주님의 날, 즉 작은 부활일(little Easter)로 정하고, 그 정한 날에 철저한 예배생활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실천은 지금까지 유대교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부활하신 주님만을 섬기는 기독교 예배의 뿌리를 활착시켰다.
   

둘째로, 그들은 사도들이 남긴 예배의 유산을 최대한 계승해 나갔었다. 비록 시대적인 여건이 박해의 연속이었고, 지하교회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주일 새벽과 저녁을 이용하여 예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였다. 이 예배에서 성만찬 성례전을 거룩하게 준수하였고, 이러한 예배에서 그들의 신앙은 더욱 공고히 되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받게 된 세례 성례전은 매우 철저히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책임과 의무를 다짐하였다. 이러한 결단의 사건을 위하여 집례자나 수세 후보자가 모두 금식을 하고 준비한 모습은 현대교회가 시급히 따라가야 할 교훈임에 틀림이 없다.
   

넷째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생활이 철저하게 이어져 나갔었다. 비록 주님의 기도를 비롯하여 기록되어진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를 계속했더라도 그 정신과 실천은 현대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것이었다. 
   다섯째로, 이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진실된 사역자들을 발견하면 “그들을 마치 주님처럼 받아들이라”(디다케 11장)는 명령을 준수하였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계 역시 늦추지 아니함으로 진리의 수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신성한 예배의 행위는 주일에 국한하여 단 1회적인 행사로 끝나지 아니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일로 정하고(디다케 8장)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실천적 신앙을 키우면서 기도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켜 나갔다.       



3. 나가는 말
   

진실로 속사도시대의 교인들의 신앙생활과 예배는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박해로 얼룩진 그 시대에 교인들은 더욱 열심히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를 노력하였고, 기도생활과 성찬을 통하여 항상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그런 예배하는 공동체였다. 그리고 이 시기의 교회는 성찬을 통하여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그런 복된 교회였다. 아마도 오늘 현대교회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예배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참고 문헌]
남호, 초대 기독교 예배 (서울: 감리회 홍보출판국, 2001)
정양모 역주,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 (서울:분도출판사, 1993)
Clement of Rome, “Clment's First Letter” in Early Christian Fathers, Cyril C. Richardson, ed.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 Inc., 1978), pp. 33-42.
Pliny the Younger, “Christians in Bithynia” in Documents of the Christian Church, Henry Bettenson, ed.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47), pp. 5-7.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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