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


 1. 예배에서의 성찬


  처음 교회의 예배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성경은 말했는데, 처음부터 예배에서 성찬이 규칙적으로 베풀어 진  것을 뜻합니다.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고(행20:7), 고린도 교인들은 "먹기 위해"(고전11:33) 매주 첫날 모였던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처음부터 성찬이 주일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기록상으로는 2세기 초에 순교자 져스틴이 로마 황제에게 보낸 변증서에 매 주일마다 성찬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16세기 종교개혁이 있기까지는 예배에서 성찬이 핵심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예배의 역사를  보면 처음 교회에서부터 약  5백년까지는 설교와 성찬이 함께 있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카톨릭이 되면서 점차  설교가 없어지고 성찬(미사)만 있는 예배를 드렸으며, 다시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 설교를 회복하여 설교와  성찬이 균형 잡힌 예배를 드리려  했는데, 개신교는 점차로 설교만 있고  성찬이 없는 예배로 변했습니다.


  다시  19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설교와 성찬이  균형 잡힌 예배를 드리는 드리는 운동을 시작했고 최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와 개신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순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리마 예식서" 입니다.


  2. 성찬은 복음 전체를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예배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의 요약으로써 표현됩니다. 그 사건을 집약해  오는 역사적 과정에서 성찬(미사) 중심의 예배도 생겼고(동방정교회,천주교,루터교회,성공회 등), 복음선포(설교) 중심의 예배도 생겼습니다.(장로교를 중심한 개신교들)


그 전통을 신학화 하고 절대화 하는 과정에서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배의 절정은 그리스도의 사건 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인데,

예배는 이것을 설교로서 선포하고 성찬으로 행동화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정도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찬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한 식탁에 모여서 주님이 수난을 당하시고  대속적인 죽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구속을 받았음을 생각하고 그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성찬에서 주님이 무덤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확인합니다. 성찬에서 주님의  살과 피가 우리 속에 들어감으로 그분과 우리가 하나를  이루며, 그분의 지체가 되어 살아가며, 함께 지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공동체가 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현장은 주님이 나타나시는 현장이 됩니다.  그리고 성찬은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영광 중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복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선포하게 됨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 복음의  도전에 분명하게 대답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에  우리가 살아났는데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요? 우리는 지금 주님의 지체로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주님 다시 오실 것인데 당신은 항상 때어 있습니까?


  3. 성찬에서 중요한 것


  성찬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빵을 떼고 잔을 붓은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가지사  축북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마26:26-27) 라는 말씀에  따라 4가지 행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봉헌]과 [감사의 성별기도]와 [빵을 떼는 일]과 [나누어 주는일] 입니다.


 첫째, 봉헌인데 빵과  포도주를 식탁에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각자가 빵과 포도주를  드리면 그 일부를 성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물질 대신 헌금을 드림으로 봉헌의 의미가 희미해 졌고 또 개신교에서는 떡과 초도주를 성찬상에 미리 개인용으로 만들어 놓음으로 그 의미가 약화되었던 성입니다.


  둘째, 감사와 성별기도인데 주님께서 빵을  가지사 축북하시고 잔을 가지고 축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감사의 기도가 예식에 나타난  것은 2세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3-4세기경에 와서는 어떤 일정한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인사][Sursum][목사의   기도][Sanctus][Anamnesis][구원에 대한감사][Epiclesis][봉헌][중재와 기도][송영][주기도]등으로 복잡해졌는데 칼빈은  "성찬 제정어" 와 "성별기도"만을 원했고  후에 개혁 교회는 [성령의  도움을 위한

기도](Epicleis)를 찾아 보탰던 것입니다. 성찬이 없을 때에는 이 기도를 설교 전에 했습니다. 


  셋째, 손으로 하는 행위  곧 빵을 떼는 일입니다.

빵을 뗀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파괴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집, 이기심, 자기자랑, 등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의 빵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떼야 하며 한 잔으로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것을 목사는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리 빵을 나누어 놓고, 잔들을 나누어  놓는 것은 선교사들이 미국의 자유교회의  관습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넷째, 빵과 잔을 나누는  일입니다.

이것은 다락방 예식의 완성인데 구약의 희생 제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희생  제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예식이며, 하나님께 나가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빵과 잔을 받지 않으면 그 속에  생명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6:53)  성찬을 받을 때에는 우리처럼  하는 방법도 있고, 성찬상으로 나와서  조용히

무릅을 꿇고 받는 것도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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