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개념과 원리  

 

1. 공동체(Community)의 개념

 

    성경에는 공동체란 말은 없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을 '회중 '(카할) 이라고 표현했고 신약에서는 크리스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 했고 한글성경은 그냥 교회라고 불렀지 어느 곳에서도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교회란 단어가 원래의 성경적인 의미대로만 사용된다면 굳이 공동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교회에는 공동체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이노니아 (Koinonia) '란 헬라어가 바로 그것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에서 '교통' 이란 원어는 코이노니아 라고 하는데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말이다. 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써 지금은 원래의 뜻을 변질시켜 감화,감동등으로 사용하여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수 백년동안  '코이노니아'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 대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속사도 시대까지 교회 안에서 코이노니아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았지만 지금은 교회 안에 참된 코이노니아가 없어졌기 때문에  코이노니아에 대한 가르침이 없어졌다.

 

성경에 나오는 코이노니아란 단어를 가지각색으로 번역하여 이 낱말들이 동일한 단어에서 나온 말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을 정도이다.  '참여' , '연보' , '상통' , '사귐' , '교제' , '나누어줌' , '동업' , '통용' , '속된'등 약 17가지로 번역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 2:42에 처음 나온다. '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기에서 코이노니아란 사도들의 코이노니아가 아닌 성도간의 코이노니아를 말한다. 코이노니아란 말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가 동일한 비중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가르침만 중히 여기고 교제를 중요시하지 않거나 아주 가볍게 취급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현대교회는 기도하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떡을 떼는 것은 별로 중히 여기지 않는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신자들이 모일 때마다 함께 떡을 떼었는데 예식의 성격보다는 주의 성찬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한다는 공동체 정신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나누어 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추상적이거나 가벼운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교제였던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는 어떤 사귐이 있는지 살펴보자. 진정 한 지체의 고통과 슬픔이 나의 것으로 와 닿고 있는가? 예배 후 차를 마시며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고 헤어지는 표면적인 교제뿐 인가?


교회 안에 궁핍한 지체의 필요에 얼마나 민감하게, 구체적인 도움을 뻗치고 있는가? 거처할 곳이 없고 일자리가 없는 내 이웃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인가? 진정한 코이노니아. 이것이 바로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공동체란 용어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바로 원래의 성경 적인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2. 공동체의 원리

 

예수님은 그의 피로 새 언약의 공동체를 세우셨다. 이 새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오순절날 성령으로 세례 받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에 있었던 코이노니아는 재물을 통용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공동체의 원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개인주의적으로 해석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제자공동체를 향한 요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요구는 일반사회와 뚜렷히 구별된 종말론적인 공동체였다.


  1) 가족과의 결별 (눅14:26)
  2) 소유의 포기 (눅14:33)
  3) 지배의 단념 (마23:11)
  4) 폭력의 단념 (마5:39)
  5) 고난의 각오 (마10:38)

 

이 다섯 가지 원리는 제자도 이면서 공동체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교회를 사회와 구별된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원리이다. 세속사회에는 가족과 소유와 지배와 폭력이 있다. 그러나 제자 공동체에는 소유와 지배, 폭력은 없다. 제자들은 이 공동체를 위하여 가족과 결별하고,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가족을 공동체 안에서 얻으며 성령의 역사 하심 을 맛보며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를 맡는다.

 

이 원리는 신약의 교회에 실현되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소유를 포기했다. 오순절 공동체는 성령세례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므로 이런 공동체는 성령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이런 모습의 교회공동체를 원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교회공동체가 사회와 구별된 대조사회가 되어야 함을 가르쳤다. 교회 안에서는 사회와 달리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별,노예와 자유인의 차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교회의 실제적인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교회가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교회의 특성이 나타난다. 공동체교회의 신앙고백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 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이 말은 교회가 해야 할 일, 즉 사명보다도 교회의 본질적인 성격에, 그리고 이념적인 정의보다는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동체 교회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이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연합된 삶이다. 이를테면 예배당 건물이나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와 같은 외형적인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배당이 없고 사람들의 수가 적더라도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 말씀을 따라 살고 예배의 감격이 있으며 초신자는 믿음을 갖게 되고 이미 믿는 사람도 그 믿음이 성숙하게 되는 변화들이 얼마나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둘째는 사람들을 중요시하는 삶이다. 자칫하면 세상에서처럼 사람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사람을 소홀히 하기 쉽다. 그러나 공동체 교회는 나와 한 몸인 지체들, 다른 사람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의 관계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삶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고백은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나 횡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누리는 연합된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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