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공인과정

 

 

 


구약

주후

90년

Jamnia

공의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주 후

100년

신약성경의 각각 다른 부분들이 이 시기까지 다 기록되었음. 그러나 아직 모두 하나로 수집되어 “성경”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음. 초기의 기독교 저술가들(폴리갑, 이그나티우스 등)은 다른 작품과 구전 자료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바울 서신들로부터 인용하였음.

바울의 서신들은 1세기 말엽에 모아졌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은 주후150년까지 함께 모아졌다.

주 후

200년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사용된 신약성경(Muratorian

Canon/무라토리단편)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요한1서,2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베드로, 묵시록, 솔로몬의 지혜서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나

공적으로나 예배 시에 사용하지 않은 책. 헤르마스 목자서(The Shepherd of Hermas)

주 후

250년

Origenes이 사

용한 신약성경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계시록

논의의 대상이었던 책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3서, 유다서, 헤르마스 목자서, 바나바서신, 12사도의 가르침, 히브리인 복음서

주 후

300년

Eusebius가 사용한 신약성경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계시록(저자가 논란의 대상이 됨)

논의의 대상이었으나 잘

알려진 책들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3서, 유다서

제외된 책들

헤르마스 목자서, 바나바

서신, 히브리인 복음서,

베드로 묵시록, 베드로행

전, 다다케(Didache)

주후

397년

Cartago공의회에서 확정된 신약성경

사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 성경의 연혁-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정

 

1. 원본 성경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맡기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의 영을 감동시키시고 그에게 영감을 부어 주시되 신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기록하게 하여 후세에게 유전하셨다(딤후3:16, 벧후1:21).

 

성경의 원본(原本)은 대부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중의 일부분인 창31:47, 단2:4-7:28, 스4:8-16, 18,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구약성경 43권은(기독교계는 시편의 5권을 한 책으로 간주하여 39권으로 분류함) 약 30명의 기자들을 통해서 주전 1500년경부터 주전 400년경까지 1100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사건들을 주로 기록하였으며 기자들이 노래한 시가서들과 선지자들로 예언하신 말씀들이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은 8-9명의 기자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그 영이 회개한 죄인들의 심령과 마음속에 임하여 현재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진리와 생명의 성령으로 사시며 오는 부활 때에는 주와 연합된 그 영으로 나타나실 것과 왕국의 나타남 이후 영세에까지 이르는 하나님과 사람을 포함하는 모든 창조물들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27권의 책으로 편집되었다.

 

첫 번째 성경책인 모세의 율법이 기록된 이후 계시록의 말씀이 기록되기까지는 약 1600년이라는 긴 간격이 있으며 이와 같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원본들은 다 소실되고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성경들은 그 원본 성경을 기초로 랍비들과 성경학자들에 의하여 복사된 필사본들이다.

 

2. 사본 성경들.

 

현재 인류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들은 다 사본들인데 유대인 랍비들을 통해서 원본을 베껴서 필사한 성경의 여러 조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여러 곳에서 발견된 필사본들을 대조하여 편집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읽는 성경이다.

 

하나님은 원본을 유전할 수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대교 제사장들인 레위인들과(신17:18) 학자들을 동원하여 성경을 필사하게 하셨으며 필사한 성경조각들을 여러 곳들에 보존하시므로 후세에 유전하시되 필사본들을 모아 대조하여 정확하게 성경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바르게 깨닫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3. 히브리어로 된 초기의 사본들

 

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에 있었던 사본들

 

예수님께서 읽고 가르치신 사본들로서 당시 유대인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의 서기관의 방과(렘36:1-32) 각지의 회당들에 보관되었던 두루마리로 된 책들이다.

 

현재 인류가 소유한 히브리어 성경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은 AD 1947년에 사해 근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인데 주전 3-2세기의 것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해 사본은 구약성경 전체가 아니라 구약성경 중 일부이다.

 

1) 제 1동굴: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a)는 주전 150-100년경 것으로 추정.

하박국 주석(1Qphb)은 주전 100-50년경 것으로 추정.

레위기 단편들(IQ) 주전 약400년경 것으로 추정.

히브리대학의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주전 약50년경 것으로 추정.

 

2) 제 4동굴: 4Q 신명기B, 4Q 사무엘서A=주전 100년경 것으로 추정.

4Q 사무엘서B=주전225년경 것으로 추정.

4Q 예레미야A, 4Q 소선지서A=주전 300년경 것으로 추정.

4Q 출애굽기, 4Q 민수기, 4Q 신명기A 주전 300년경 것으로 추정.

 

3) 제11동굴: 11Q 시편=주전 300년경 것으로 추정.

 

4) 나쉬 파피루스(주전100-50년경)- 나쉬가 애굽의 고물상인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맛소라 전통에 가까운데 십계명(출20:1-17)과 쉐마(가르침-신6:49) 본문만을 포함하고 있으며 맛소라 학파가 필사하고 전수한 히브리어 성경을 원문 직역성경으로 인정하므로 다른 경전들이 발견되면 언제나 맛소라 성경과 대조하고 다른 것들은 다만 참고자료로 활용할 뿐이다.


4. 주 후에 발견된 사본들.

 

모세 오경으로 시작되는 성경의 원문은 본래 자음으로만 쓰여 있었으나 7-10세기에 맛소라와 그의 지지자들인 맛소라학파에 속한 유대인 학자들에 의하여 모음 부호가 만들어져서 첨가되었다. 이렇게 모음 부호를 첨가하여 만들어진 구약 본문을 MT(맛소라 본문)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맛소라 성경은 AD 1099년에 기록된 Ben Asher의 필사본이다. 그리고 원래의 성경은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으나 오늘날과 같이 장과 절이 구분된 것도 맛소라 학파의 학자인 그의 공로이다.

 

맛소라 원문은 AD 1447년에 시편이 AD 1488년에는 완전한 구약성경 전권으로 히브리어 성경이 인쇄되었다. 이 성경은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경의 기초가 되었으며 AD 1611년에 발간된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기초가 되어 전 세계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읽혀지고 전수되었다.

 

AD 1516-17년에 다니엘 봄베르그 판이 나왔으며 AD 1524-25에는 다니엘 봄베르그 성경의 재판이 출간되었고 같은 계열의 학자인 아브라함 벤 샤임에 의하여 복사되었는데 이 성경을 현재까지 맛소라 원문의 정통 계열에 속한 성경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AD 1906년과 AD 1912년에 비블리카 헤브라이카 성경이 루돌프 벤 샤임의 맛소라 원문에 근거하여 복사되었으며 출간되어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맛소라 원문의 계보로 이어진다.

 

◎ 그 외에 많은 사본들은 다음과 같다.

 

가. 대영 박물관 오리엔탈-모세 오경 사본(주후 850년).

 

나. 케이어렌시스 사본-대소 선지서 포함(주후 895년).

 

다. 레닌그라드 사본-소 선지서(주후 916년).

 

라. 레닌그라드 사본B- AD 980년에 쓴 MS(맛소라 원문)를 AD 1010년에 벤 샤임의 원문이 아닌 벤 아셀의 원문에 따라 로마교의 교리에 맞추어 수정하여 복사한 것으로 구약 전권이 담겨있다.

 

이 레닌그라드 사본은 오늘날 로마교가 공인하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준 텍스트가 된 킷텔의 Biblica Hebraica 제 3판의 기초가 되었으며 맛소라 원문의 필사본인 킹 제임스 성경과는 전혀 다른 노선에 있는 오역(誤譯)성경들의 기초이다.

 

마. 사마리아 오경-AD 1616년 사마리아에서 발견. AD 1645년 프랑스에서 출판. 맛소라 사본과 6,000가지 정도의 다른 점이 있다. 그 중에 1,600개 정도는 70인역 성경과 일치한다.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께서 시온 산 대신 그리심 산을 예루살렘 대신 세겜을 선택하셨음을 보여줄 목적으로 쓴 것이다.

 

구약전체가 기록된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주후 11세기의 것으로 레닌그라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레닌그라드 사본이다(주후 10세기의 알렙 사본은 상당부분이 소실되었다).

 

로마교와 로마교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개신교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성경 번역은 이 레닌그라드 사본의 본문 비평자료인 Biblia Hebraica Kittel

(BHK:1937)과 Biblia Hebraica Stuttgarteraia(BHS:1977년)을 초본으로 한 번역이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있으며 빠뜨린 성경 구절들이 있다.

 

한국의 공동 번역 성경은 BHS를 초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며 대한 성서 공회에서 번역한 개신교의 성경번역은 BHS를 초본으로 하고 있어서 맛소라 원문과는 다른 계열의 킷텔 성경에 기초한 것이므로 맛소라 원문을 전수하고 충실하게 번역한 킹 제임스 성경과는 많은 차이점들이 발견되며 맛소라 원문에는 분명히 기록된 어떤 절들이 많이 빠진 것이 그 특징이다.

 

5. 각 나라의 번역 성경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계속 보존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 나라들의 방언으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생겼는데 여러 나라들에 포로가 되어 흩어진 유대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나라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후세들은 본국 언어인 히브리어보다 그들이 살고 있던 나라의 언어에 더 익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예언을 따라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었는데 그 증거는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흠정역과 흠정역을 영어로 번역한 킹 제임스 성경을 기초로 각 나라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모든 민족들과 방언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興旺)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히브리인들에게만 주셨던 신의 말씀이 헬라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도 전파되었으며 이어서 영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주셨던 주의 말씀을 모든 민족들과 방언들에게 주시므로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었으며 예언하신 대로 세상 끝 추수 때가 된 것이다.

 

◎ 구약성경의 초기 번역본들.

 

가. 헬라어 역본들.

 

1. 70인 역 성경.

 

이것은 주전 3세기경에(BC 250-BC 150)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헬라어 번역 성경이다. 이 성경은 72인의 유대교 랍비들인 성경학자들이 번역을 하였기 때문에 70인 역이라고 부른다. 헬라어는 당시의 세계 공용어(公用語)였기 때문에 구약성경 전체가 헬라어로 번역된 것은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헬라어로 번역된 이 성경을 헬라어 벌게이트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사본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셨는데 당시 헬라어(그릭어)는 보통 사람들이 보편적(普遍的)으로 사용하는 공용어였기 때문인데 70인 역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므로 이방 세계의 보통 사람들도 히브리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읽고 들을 수가 있게 되었으며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획기적인 번역본이다.

 

당시에 헬라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방 세계인 여러 나라들에 복음이 전파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70인역 성경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적인 안배로 번역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영문 킹 제임스 성경은 헬라어 벌게이트 즉 70인 역이라고 부르는 흠정역에서 복사된 많은 필사본들과 일치하며 맛소라 히브리어 원문-헬라어 벌게이트-영어 킹 제임스로 이어지는 성경 사본들과 다른 계열의 많은 사본들로 나누어진다.

 

2. 70인 역의 사본들.

 

다른 계열의 사본들은 다수의 단편들과 시내산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있는데 특히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로마교를 통해서 변개 된 사본이며 많은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채로 전 세계에 퍼졌고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경도 여기에 속하므로 바른 성경과 대조하여 상고할 필요가 있다.

 

3. 후대의 헬라어 역본.

 

아퀼라역-AD 130년에 랍비 아키바의 제자인 아퀼라가 번역한 것으로 70인 역 성경을 따라 엄격한 직역을 하였으며 표준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시마커스 역-AD 170년경에 에비온 사람인 시마커스에 의해서 번역됨.

데오도션의 역본-AD 180-190년경에 초기 헬라어 번역을 개정하여 만듦.

 

4. 아람어 탈굼 역

 

바벨론 포로 중에 히브리인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고 그 당시의 공용어로 사용되던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아람어는 바사와 바사에 의하여 정복된 나라들 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국제어로 사용되고 특히 정치와 상업에 있어서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이 모국어를 점차 잊어가자 회당 예배시간에 읽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통역해줄 필요가 생겼으며 특히 유대인들이 AD 138년에 팔레스틴 땅에서 추방되자 아람어 의역을 글로 쓸 필요가 생겨서 탈굼이라는 아람어 번역본을 만들게 되었다.

 

5. 수리아 역본들

 

아람어 탈굼이 형성되던 즈음에 수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동부 아람어 방언으로 표준 번역 성경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시리아어 성경을 페쉬타, 라고 부르며 히브리어 성경인 맛소라 원문에서 번역하였다.

 

6. 라틴어 역본들.

 

가. 구 라틴어 혹은 이탈라 역본- 70인 역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함. 라틴어(이탈리아 언어) 성경은 불가타 성경 혹은 벌게이트 성경이라고 불리며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한다.

 

나. 제롬의 개정 벌게이트- AD 282년 교황 다마스커스가 70인 역을 참고하여 이탈라 역인 벌게이트 성경을 개정하라는 명을 내려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던 오리겐이 변개시킨 성경을 기초로 로마교의 교리학자인 제롬이 AD 390-404년에 완성하였는데 로마교가 온 땅에 퍼뜨린 성경으로서 오늘날까지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채로 사용되고 있다.


AD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국교가 되면서 로마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개정 번역된 제롬의 개정 벌게이트 성경은 제롬이 교황의 명령을 따라 임의로 개역한 제롬 불가타역(383-405)으로서 약 1000년 동안 로마교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경전이 되었으며 한국교회가 대부분 사용하는 성경전서와 개역 한글 성경도 이 부류에 속하는 오류가 많은 성경이다.

 

신약성경은 주로 사도들의 서신으로 기록되어 시리아의 안티옥을 기점으로 해서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지방으로 확산되어 갔고 그 후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독일과 영국 등지로 전해졌다.

 

이렇게 전달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개(變改) 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는데 이것은 전통원문, 비잔틴사본, 혹은 다수의 필사본 등으로 불렸고, 1510년 에라스무스, 1550년 스테파누스, 1604년 베자, 1633년 엘지버 형제 등에 의해서 헬라어 <표준원문, Textus Receptus>으로 편수(編修)되었다.

 

이 원문에서 1384년 <위클리프 성경>, 1525년 <틴데일 성경>, 1539년 <그레이트 성경>, 1560년 <제네바 성경>, 1602년 <비숍 성경>, 1611년 <킹 제임스 성경> 등의 영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또 이 원문에서 영어<킹 제임스 성경>을 위시하여 불란서 <올리베탄 성경>, 독일 <루터 성경>, 이태리 <디오다티 성경>등 세계 주요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또 하나의 성경이 로마교를 통해서 전수되었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소위 알렉산드리아 이단인 오리겐(Origen, A.D.184-254)의 성경인데 오리겐, 제롬, 유세비우스는 로마교의 신학자들이다.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시하지 않는 에비온 학파의 일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권위에 대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 또는 변개(變改)시켜 버렸다(눅2:33, 요1:18, 행8:37, 20:28, 롬14:10, 골2:9,10, 딤전3:16 등).

 

이렇듯이 이미 변개 시킨 성경에서 유세비우스(Eeusebius, A.C.260-340)가 50권의 성경을 복사함으로써 변개된 성경은 확산되었고 로마교의 전통을 따르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전 세계의 개신교도들에게도 확산되었던 것이다.

 

◎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 번역.

 

로마교에 의한 라틴어 성경 독주시대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종결되었는데 개혁자들은 전통보다는 성경에 권위의 근거를 두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개혁자들 자신의 자국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성경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飜譯)하기 시작하였다.

 

동시대에 도이치의 쿠덴베르크가 인쇄술을 발전 시켜서 독일어와 영어 번역 성경들이 인쇄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새 시대가 열리면서 각 나라에 흩어진 선교사들을 통해서 성경은 각 나라 말로 번역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갖고 읽게 되었는데 이것은 복음의 흥왕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윌리암 틴데일은 위대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로서 AD 1516년 맛소라 원문을 기초로 헬라어로 성경을 충실하게 번역한 헬라어 학자인 데시 데리우스 에라스무스의 제자인데 그의 같은 제자인 스테판을 이어 맛소라 원문을 기초로 하는 헬라어 성경을 충실하게 영어로 필사한 사람이다.

 

그들이 번역한 충실한 성경 사본들은 로마교가 개정한 필사본들과 많은 차이점들이 있는데 특히 로마교가 변개 시킨 제롬의 불가타역 성경에는 빠진 구절들이 70인역 성경에 따라 충실하게 다 기록되었으며 AD 1611년에 영국 국왕 킹 제임스의 명령에 따라 영어로 번역된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된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웨스터민스터, 옥스퍼드, 켐브리지 등 세 곳에 나누어져 맛소라 원문의 사본을 기초로 된 헬라어 성경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으며 오늘날의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히브리어 원문,-맛소라 사본,-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흠정역 혹은 벌게이트),-영어 번역본인 킹 제임스 성경의 정통 노선에 대하여 분명한 조명을 받고 각 나라 말로 번역 된 성경들의 오류(誤謬)를 바로 잡아주는 맛소라 원문(히브리어)- 70인역(헬라어)- 킹 제임스(영어) 성경을 대조하며 한글로 번역된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주후 2001년) 전 세계적으로 번역된 여러 언어(방언들)의 수는 2,261개 언어라고 한다.

 

이중에 성경 전권(신. 구약 성경)을 번역한 언어는 383개 언어이며 신약전서 987개 언어 쪽 복음만 번역된 언어는 891개 언어이다. 이 숫자는 작년 대비 28개 언어가 늘어난 것이다.(2001. 02. 17일 현재.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 발표-국민일보 당일 게재(揭載)

 

◎ 한국의 개역 성경.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사 피터스(A, A. Pieters)에 의하여 시편이 번역되었으며 AD 1882년에는 존 로쓰에 의하여 누가복음이 번역되었다. 한편 선교사들로 구성된 성경 번역 위원회는 AD 1900년에 신약 성경을, AD 1910년에 구약 성경을 완전히 로마교 성경 계열인 킷텔의 사본을 기초로 번역하였고 AD 1911년에는 신구약 합본의 성경을 출판하였다.

다시 AD 1938년에 개정되어 오늘 날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한글성경의 모체가 되었다. 다시 AD 1956년에 한글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 부분적으로 다시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 성경은 로마교 전통을 따르는 영어로 된 성경과 중국어로 번역된 한문 성경을 바탕으로 선교사들에 의하여 번역된 성경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AD 1968년 대한 성서공회는 히브리어 원문(BHK-오류가 많은 킷텔의 벌게이트 성경)을 초본으로 하여 천주교와 함께 공동번역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AD 1971년에는 신약성경을 AD 1977년에는 구약성경과 외경을 완역하여 공동번역 성경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외경에 대한 거부감으로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게 되자 대한 성서공회는 개신교 단독으로 좀더 원문에 근거한 충실한 번역의 필요를 따라 작업에 착수하여 AD 1993년에 표준 새 번역 성경을 다시 출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 번역 성경 역시 기성 교단의 목사들에 의하여 반대에 부딪혀서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엡 4:11-의 목자(목회자)라는 번역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 본문의 단어인 (헬라어 Poimeen-포이멘)은 목(회)자로 번역해야 하는데 모든 성경구절들은 동일한 단어를 일관되게 목자라고 번역하였다(요10:2, 11-12, 14, 16, 유1:12, 등등). 정통을 자랑하는 킹 제임스 성경도 헬라어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구절을 paster라고 번역하여 오류를 범했다.

 

목사라는 단어는 성경 어느 곳에도 없는 단어로서 기성교계의 율법적인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로마교의 신부라는 단어에 대항하되 로마교 교권을 본받아 니골라당의 행위를 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다.

 

오늘날 성경에 대하여 많은 이견을 가진 자들이 킹 제임스 성경 이외의 모든 성경들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비방하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기초로 한글로 번역하되 성경의 영감을 무시하고 많은 오역을 하므로 더 많은 문제들을 야기 시키면서 오직 자기들이 출간한 성경만이 유일의 권위가 있는 성경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을 받은 택하신 종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동일한 영감을 받은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니라면 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서 참고자료로 활용하여야 하겠지만 독선적인 주장을 하는 모순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다.

 

마땅히 기록된 성경 구절들 중에 빠진 구절이나 변개된 구절들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되 어떤 특별한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성경 번역본들을 부정하고 오직 자기가 번역한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억지에 말려들어 문자나 문장에만 붙잡혀서 의문과 육체에 상관 된 율법에 돌아가므로 영혼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오류 없는 번역본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감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며 의문(儀文=문자대로 성경을 이해하고 영감을 무시하는 해석과 가르침)은 영혼을 죽이는 것이며 살리는 것은 영이요 영의 직분을 행하는 자들만이 영혼을 살리는 자들이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고 따라서 생활 방식이나 정신 세계의 흐름이 달라지므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오래 전에 기록된 성경을 현대 언어감각에 맞추어 바르게 번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앞에서 어떤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후세를 사는 선지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재해석했는지를 자세히 살펴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므로 오류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단어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이미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든지 새로 만들어진 단어로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문맥의 흐름과 성경 자체가 증거하는 뒷받침을 고려하여 영의 흐름이 막히거나 다르게 해석될 위험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하여* 자료부분발췌)




성경의 형성사 및 번역사




초기의 히브리성경
구약성경은 BC 1450년에서 BC 400년까지 무려 1000년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기록되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에 의하면, 모세는 최초로 영감을 받은 성경 기록자로서 대략 BC 1450-1400년경에 모세오경을 기록했다고 한다. 구약의 마지막 기록자인 말라기는 BC 400년경에 성경을 기록했다.

구약의 본문(本文, Text)
구약성경의 첫 부분은 갈퀴모양의 문자인 고대 히브리어로 가죽이나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이 고대 문자는 점차로 발전되어 BC 400년 이후에는 둥근 종 모양의 문자로 되었다. 이 종 모양의 문자는 사해 사본과 마소라 사본과 1477년 이후 인쇄된 히브리성경에서 발견되었다.

구약의 정경화(正經化)
성경의 정경이라 함은 권위있고 성스러운 문서의 목록으로 지정되었다는 말이다. 헬라어에 이러한 표현으로 `카논`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말은 원래 갈대나 자(尺)를 뜻한다. 실제로 이것은 "측정하는 것", 즉 표준.규범.규칙을 나타내며, 특히 표준이나 규범으로서 "측정 되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영감과 권위의 표준이나 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정되었던 책들은 "정경"으로 편집되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영감된 성경이 공식적인 수집이나 단순한 인준에 의하지 않고 성령을 통한 영감의 중요성 때문에 정경으로서의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성경비평학적 견지에서 볼 때, 정경화의 과정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논법에 따르면 BC 444년에 율법서가 제일 먼저 정경이 되었고 예언서는 BC 400-200년이 되어서야 정경화되었으며, 성문서가 대략 BC 165-100년경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경비평학에서는 히브리정경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것은 본래 연대적인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예언서는 BC 300년이 지나서야 대중화되어 그 결과 그 다음 세기에 수집되어 정경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소위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대체로 40∼66장)는 그 기록자들을 전혀 찾아낼 수 없으므로, 이사야서의 뒤에 부착시켰다고 한다. 다니엘서는 BC 167년이 지나서야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에스더와 역사상.하 그리고 에스라.느헤미야도 너무 늦게 작성되어 역사서 부분에 포함시킬 수 없어 성문서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주의 신학에서는 히브리 정경의 삼분화를 기록자의 신분이나 예배의식의 편의상의 배열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완전성이 유지되는 초기 연대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유대 정경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항상 신교의 입장이 되어왔다.

마소라 학자들의 활동
AD 500년 이전의 히브리 사본에는 장모음을 표시하는 일부 자음을 제외하고는 모음체계가 없었다. AD 600-950년에 이르러 마소라(Masoretes)라고 일컬어지는 유대인 학자들이 본문을 보다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 완전한 모음체계와 악센트를 보안해냈다. 그들은 또한 케리(Keri)라고 명명되는 난외(marginal readings)와 케티브(kethiv)라고 명명되는 본문과 상이한 것(textual variants)을 수록하여 본문을 표준화시키기도 하였다. 마소라 학자들의 히브리 성경 연구는 5세기 후에 성경을 인쇄하는데 있어서 기틀을 마련했다.

히브리성경의 인쇄
인쇄된 히브리성경의 제일 첫 부분은 시편이었다. 이것은 1477년의 일이었으며, 1488년에는 모음부호와 악센트가 첨가된 히브리 구약성경 전체가 첫 출판을 보게 되었다.

최초의 기독교 성경
우리 주님이 승천하신 후 거의 20년 동안은 주로 헬라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유일한 성경이었다. 최초의 신약성경은 일찍이 AD 45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야고보서가 분명하다.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으로 9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뒤늦은 책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구약만을 성경으로 사용하였다. 베드로는 스데반(행 7:2-53), 빌립(행 8:32-35), 바울이 그러하였듯이 구약(행 2:14-16)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신약의 모든 기록자들은 구약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영감적 기록은 구약에서 영감을 받는 계시에 근거하였다.

신약의 기원
복음(고전 15:3, 4)은 초기에 구전을 통하여 전파되고 구약 역사와 예언에 비추어 해석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구전은 글로 기록되어 마침내 AD 70년경에 영감적인 공관복음을 형성하게 되었다. 율법주의나 비도덕주의와 같은 오류에 반하여 기독교를 정의할 필요가 강조되어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교리적인 설명을 요하게 되었다. 바울서신과 그 외 일부 서신들이 이를 위해 기록되었다. 교회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개괄적 설명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다. 요한계시록은 시간과 영원에 대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

신약의 정경화
정경화 이전의 초기 신약서들

제1클레멘스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BC 96년)로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이것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정경의 권위가 있다고 인정되었으며, 170년경 고린도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낭독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와 같은 이집트의 기록자들은 이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포함되어 있다.

제2클레멘스 역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포함되었던 서신이다. 이것은 로마의 클레멘스의 것으로 잘못 간주되었으며 널리 읽혀지지 않았다. 이것과 제1클레멘스는 여전히 서방에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2사도의 교훈집(Didach, 12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와 같은 일부 이집트 학자들에 의해서 성경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널리 회람되었다.

바나바의 편지(130년경) 시내 사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집트에서는 권위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히에로니무스(400년경)는 이것을 외경으로 여겼으며, 이것은 점차로 성경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해갔다.

헤르마스의 목자서(140년경) 로마의 주교이자 피우스의 형제인 헤르마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것 역시 시내 사본에 수록되어 있고 무라토리 정경(Muratorain Canon)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성경으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베드로의 묵시록(145년경) 앞에서 열거한 책들보다는 다소 중요성이 떨어지나 동방에서는 매우 귀중하게 여겼고 서방에까지 알려졌던 것이다. 이것은 유세비우스에 의하여 허위문서로 인정되었다.

바울행전(170년경) 널리 회람되었고 일부 사람들에 의해 정경으로 여겨졌으나, 학자들의 연구 결과 외경적인 성격이 드러나 점차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 사도들의 이름으로 이후에도 많은 복음서, 행전, 서신과 묵시록 등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명백한 허위문서로, 교회는 이것들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약 정경화의 원인
정경 또는 반정경으로서의 제1클레멘스서, 12사도의 교훈집, 바나바의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서 등을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동방에서는 3세기 말 명확하게 제정된 정경의 필요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마르키온 이단(140년경)의 불완전한 정경 역시 당시 널리 읽혀지고 있었다. 마르키온은 영지주의자로서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가운데 10편만을, 그것도 많은 삭제를 한 후 그들의 교리적인 근거로 삼았다. 정경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다른 외경적인 위문서들의 출현으로 정경을 명확히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또한 후일 모든 성문서를 불사르라는 로마의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도 정경의 제정을 독촉했다.

신약 정경성의 표준
그 첫째 표준은 "사도성"이었다. 기록자가 진실로 사도인가? 아니면 마가복음의 기록자나 누가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히브리서신의 기록자의 경우와 같이 그가 사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둘째 표준은 "내용"이었다. 그 주제나 그 주제의 취급과 영적인 특징이 성경으로서 합당한가? 이러한 기준에 의해 위문서들은 제거되었다. 셋째 표준은 "보편성"이었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문서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는가? 넷째 표준은 "영감성"이었다. 그 문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라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성령께서 이것은 진실하다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는가? 이것이 마지막 기준이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더라면 신약 정경은 올바르게 제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정경으로 승인된 초기 문서
이처럼 인정된 책들을 오리게네스(245년)는 「호모로구메나」("인정된" 또는 "승인된")이라고 불렀다. 이것들은 영감적인 성경으로서 널리 인정된 신약 문서였다. 오리게네스는 사복음서와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포함시켰다. 그는 히브리서를 「호모로구메나」중에 넣지는 않았지만 바울의 서신이나 정경적인 서신으로서 인용했다. 실제로 그가 성경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던 책들은 유다서와 요한 2서.요한 3서 뿐이었다. 교회사가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300-325년경)는 「호모로구메나」가운데 사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요한 1서, 베드로전서와 요한계시록을 넣었다. 그는 부주의로 히브리서를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문제시된 신약 문서
오리게네스는 이 문제시되었던 책들을 「안티레고메나」("항변되는" 또는 "논쟁되는")라고 불렀다. 이러한 책들 가운데 그는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 2. 요한 3서, 야고보서, 유다서, 바나바의 외경적인 서신, 헤르마스의 목자서, 12사도의 교훈집 그리고 히브리복음서 등을 포함시켰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안티레고메나」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①단순히 논쟁되거나 의문시되는 문서로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 1.2서, ②확실히 위조되었거나 영감되지 않은 문서로 바울행전, 헤르마스의 목자서, 베드로묵시록, 바나바서신 그리고 12사도의 교훈집.

일부 신약 문서를 의심하는 이유
초기에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일곱 권의 책들은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히브리서, 요한 2.3서,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이었다. 몇몇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책들의 인정을 주저한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내적인 증거를 근거로 가지고 있었다. ①야고보서와 유다서의 문체는 자신들을 사도로서가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요한 2.3서의 기록자는 자신을 사도가 아닌 "장로"로서 표현하고 있다. ②히브리서는 기록자 불명이고 바울서신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어휘나 문체가 다르다. 베드로의 두 번째 서신은 기록자 불명은 아니지만 베드로전서와는 어휘나 문체에 있어서 다르다. ③또한 야고보서는 초기의 유대인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지 이방인 교회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④유다서는 에녹(1:9; 5:4; 유 1:14, 15)의 외경적인 책에서 인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었다.

서방의 정경 초기 형성
로마의 클레멘스의 증언(AD 96년경) 그가 로마 주교로 있을 당시 고린도교회에 보낸 매우 정평있는 편지에서(제1클레멘스로 알려짐), 그는 마태복음, 로마서, 고린도전서에 대한 지식을 보여 주며 히브리서에 대하여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다.

마르키온의 증언(140년경) 영지주의 이단자로서 그는 다만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중 10편만을 인정했다. 다소 잘못된 점은 있으나 그의 증거는 계몽적이며 교회가 현재의 신약성경을 수집하고 인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형성케 하고 있다.

헤르마스의 증언(150년경) 그는 매우 정평있는 헤르마스 목자서의 기록자로서 마태복음, 에베소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특히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확증하였다.

이레나이우스의 증언(40-203년경) 그는 청년 시절에 서머나의 폴리카르푸스와 교분이 있었으며, 후일 고올지방 리용의 주교로서 사복음서, 사도행전, 베드로전서, 요한1서, 빌레몬서를 제외한 바울의 모든 편지와 요한계시록을 입증하였다.

무라토리 정경의 증언(172년경) 이 단편문서는 1740년 밀란의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서 이탈리아인 무라토리가 발견했다. 삭제된 처음 부분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었다. 이것은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히브리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 문서에 대해 입증하고 있다.

170년 이전의 고대 라틴어역 증언 이것은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그리고 테르톨리아누스시대 이전에 첨가된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문서들에 대하여 입증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증언(150-222년경) 이 카르타고의 다작의 라틴 작가는 사복음서, 13편의 바울서신, 사도행전, 베드로전서, 요한1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바나바라고 하면서 이를 넣지 않았다.

키프리아누스의 증언(200-258년경) 카르타고 주교로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테르툴리아누스의 견해를 따랐다. 그러나 빌레몬서, 야고보서, 요한 2.3서, 유다서는 인용하지 않았다.

서방의 정경 후기 형성
히에로니무스의 증언(340-420년경) 그는 라틴어 불가타역의 뛰어난 번역자이며 명성있는 학자로서, 우리가 소유한 신약 정경 모두를 증언했다. 그는 바울에 의해 히브리서가 기록되었음을 인정하였고, 야고보서와 베드로후서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의 견해는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증언(354-430년) 히에로니무스와는 달리 그의 견해는 모호했다. 그는 문제시되었던 일곱 권의 책을 모두 수락하기는 했으나 성경의 권위에 정도의 차이를 두고 대체로 외경을 포함하여 폭넓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약 경전 확립에 기여하였다.

교회협의회의 활동 신약 정경의 한계를 정하는 문제는 어떠한 협의회에서도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개개의 문서가 지닌 영감적인 가치나 내적인 권위가 그 결정요소였다. 이러한 사실은 정경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문서의 순수함이나 확실성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4세기 말 이전 어떠한 협의회도 이런 주제에 관해서 아무런 공언도 하지 못하였다.

카르타고 제3차 교회회의(397년) 여기에서 정경에 대한 최초의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규정된 사항 중의 하나는 교회내에서는 오로지 "정경으로 인정된" 책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목록이 되었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것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히포 교회회의(419년)는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의 목록을 거듭 확인하였다. 이처럼 정경의 선정은 개개의 책들이 자체의 가치를 입증한 후 교회회의에서 확인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겪었다.

동방의 정경 형성
안디옥 주교 이그나티우스(116년경), 서머나 주교 폴리카르푸스(69-155년경), 히에라폴리스 주교 파피아스(80-155년경)는 마태복음, 요한복음,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 사도행전에 대해서 증언했다. 12사도의 교훈집(120년경)은 마태복음을 특히 많이 언급하고 대부분 신약성경과 마찬가지로 누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사르디스 주교 멜리투수(170년경)는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3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약성경을 인용했다. 안디옥의 데오필루스(115-118년경)는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입증하였고 이것들은 구약 정경과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루키아누스(312년에 순교)는 자신의 "안디옥 정경"에서 요한계시록, 베드로후서, 요한 2.3서를 제외시켰고, 그가 개역한 구약과 신약성경에서는 유다서를 제외시켰다. 가파도키아의 대 바실리우스(329-379년경)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30-390년경)는 요한을 계시록의 기록자라고는 했으나, 이를 제외한 현재의 정경에 있는 모든 문서를 인정했다. 몹스에스티아의 데오도루스(350-428년)는 가톨릭 서신들과 요한계시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회의 이러한 견해는 콘스탄티노플 정경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루키아누스의 "안디옥 정경"에서 발전된 것으로, 요한2.3서, 베드로후서, 유다서와 요한계시록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페쉬타(411-435년)도 콘스탄티노플 정경과 유사하였다. 필로크세누스(508년경)가 이 부인된 책들을 첨가하여 시리아 페쉬타성경을 개정하고부터 콘스탄티노플 정경의 그릇된 영향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정경의 초기 형성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년경)는 요한계시록에 관하여 중대한 증언을 하면서 이것을 사도 요한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히브리서를 잘 알고 있었고, "베드로의 회고록"이라는 표제가 붙은 마가복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5-215년경)는 현재 신약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문서에 정통하였으며, 유다서, 히브리서, 공동서신과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모든 문서를 인정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185-253년경)는 많은 논쟁이 되었던 책들(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 2.3서, 야고보서, 유다서)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인정된 책들(「호모로구메나」) 가운데 요한계시록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정경의 후기 형성
프레드릭 케년 경에 의해 1933-37년에 출판된 3세기 체스터 비티(The Chester Beatty) 파피루스 사본은 사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히브리서(로마서 다음에 있음), 요한계시록(9:10∼17:2 부분만이 보존되고 있다)을 인증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200-265년경)는 야고보서, 요한 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영감된 성경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히브리서가 바울서신임을 증언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298-373년)는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27권의 신약성경에 대하여 "정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약 정경 형성사의 요약
신약 정경은 교회협의회의 활동을 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개개의 책들이 지닌 영감성과 내적인 권위가 그것들을 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경화하는 결정적인 요소를 이루었다. AD 200년에 이르러서야 신약은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서들을 포함하였다. 그 후 이것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오늘날과 같은 권위와 확실성을 지니게 되었다. 3세기에는 「안티레고메나」로 논쟁이 벌어졌다. 동방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인정치 아니하였으며, 서방에서는 히브리서를 부정하였다. 실제적으로 3세기 말에 가서야 모든 외경서들이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그리고 이집트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이 설정한 명확한 구분으로 실제로 어떠한 문서가 정경의 지위를 갖는가에 대한 논쟁은 그치게 되었다.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397년)는 이 결정을 확증하였으며, 이때부터는 어느 신약 문서에 대한 논쟁도 그치게 되었다. 동방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방과 알렉산드리아 아타나시우스의 경우,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영향은 모든 반론을 일축시켜 버렸다. 페쉬타(시리아 성경)에 요한 2.3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을 첨가함으로써 정경에 대한 문제는 동방 역시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신약 정경은 모든 실제적인 목적에 맞추어 서방에서는 400년에, 동방에서는 500년에 이르러 그 결정을 보았다.

현재까지의 정경사
몇 가지 근소한 차이점을 제외하고서는 4세기 초 신약정경에 대한 결정은 현재까지 내려오는 교회의 결정으로 남아 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은 소위 교회의 절대성이라는 권위에 항변하여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구약 정경에 대하여 로마교회는 1546년 「사크로산크타 교령」(Decree Sacrosancta)으로 트렌트공의회 중 14권의 외경서 중 11권을 정경으로 공포했다. 이것은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상.하,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이었는데 그 후 로마가톨릭교회는 에스델서를 추가했다.

신약의 본문
고대로부터 신약만큼 서방세계에 영향을 많이 주었던 문서는 없었다. 어떠한 고문서의 본문도 이렇게 잘 입증되지는 못했다. 거의 5천편의 헬라어 사본(필사본)이 있으며, 초기 번역문서의 사본만도 1만여편이 존재하며 이외에도 수천에 달하는 교부들의 인용문이 있다. 본문연구의 문제는 비교연구에 의하여 순수한 본문을 결정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본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약성경 자료 : 본문연구
파피루스 사본 1세기에 걸친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로 현재 P 문자로 명명되어 P1, P2의 색인표가 붙은 신약본문의 파피루스 단편문서가 75편 이상 존재하고 있다. 이들의 연대는 2∼8세기에 걸쳐 있으며, 신약본문의 약 40%로 총괄 부수가 25권의 책을 이루고 있다. P52는 요한복음 18:31-34, 37, 38의 부분이며 연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대략 135년의 것이다. P46, P46, P47은 체스터비티 파피루스 Ⅰ, Ⅱ, Ⅲ(200년경)에 들어 있다. P66은 200년경으로 추정되며 요한복음이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보드머 파피루스이다. P75는 새로 발견된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된 보드며 파피루스인데 200년경의 것이다.

언셜자체 사본 이것은 둥근 종 모양의 대문자로 양피지위에 기록되었으며 800년경까지 신약 필사본에 사용되었다. 현재 300여개의 언셜자체 사본이 남아 있다.

초서체 사본 소문자 필사본은 초서체로서 기록되었는데, 9∼18세기로 추정된다. 모두 합쳐 2,647편의 소문자 사본이 발견되었다.

역본 100년 전의 헬라어 본문에서 번역된 것들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이 가운데서 고대 라틴어역(2세기),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역(382-84년), 시리아역(4∼5세기), 콥트역(2∼4세기), 아르메니아역(5세기 초), 고대게오르기아역(5세기), 에디오피아역과 고트역(4세기 중기)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성구집 이것은 연중행사에 통독된 성경 교훈을 담고 있는 교회 예배서이다. 언셜자체와 초서체로 된 2천여 성구집이 남아 있다. 이들의 연대는 280-1600년경으로 추정된다.

패각과 부적 현재 신약 본문이 부분적으로 새겨져 있는 25개의 패각과 9개의 부적이 알려져 있다. 연대는 4∼13세기경이다.

교부들의 인용문 이 중에 8만 6천여편 이상이 알려져 있다.

가장 오래된 구약 사본
가장 오래된 마소라 히브리어 필사본 그 연대를 9세기 말 이전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예언서가 기록된 카이로 사본(895년), 구약 전문이 기록된 알렙포(Aleppo) 사본(925년경), 레닌그라드 사본(1108년에 완성됨)으로서 후자는 키텔의 《Bilblia Hebraica》의 본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947년에 발견된 2개의 이사야 필사본 사해 두루마리는 우리에게 BC 2∼1세기로 추정되는 구약문서들 중의 하나를 제외한 모든 단편문서와 함께 1천년이나 더 앞선 히브리어 본문을 보여 준다.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
시내 사본(a) 4세기, 신약이 148장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1844년과 1859년에 시내산에 있는 성 캐더린수도원에서 티쉔도르프가 발견한 것이다. 역시 여기에는 헬라어로 기록된 구약 단편문서도 들어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A) 5세기, 이것은 대부분의 구약과 신약 사본을 담고 있다. 1627년 영국 찰스 1세에게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기증한 것으로, 1757년에 대영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바티칸 사본(B) 4세기, 이것은 1481년 이래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본은 히브리서 9:14∼13:25, 목회서신, 빌레몬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는 구약과 신약 전부를 수록하고 있다.
에브라임 사본(C) 5세기, 신약 238장 가운데 145장이 보존되어 있다.
베자 사본(D) 5세기, 신약에 관한 것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제1체스터 비티 파피루스(P45) 3세기 초, 이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기록된 파피루스 본문 중 30장을 포함하고 있다.
제2체스터 비티 파피루스(P46) 3세기 초, 바울서신이 기록된 파피루스 사본 104장 가운데 86장이 보존되어 있다.
제3체스터 비티 파피루스(P47) 3세기 말, 32장의 파피루스 요한계시록 사본 가운데 10장이 남아 있다.
제2보드머 파피루스(P66) 3세기 초, 요한복음이 기록된 파피루스 사본 150장이 남아 있다.
제14, 15보드머 파피루스(P75) 3세기 초, 요한복음과 누가복음 본문 144장 전부가 발견되었다.

성경 영어역본
초기 앵글로-색슨어역 비드(Bede)에 따르면 680년경 캐드몬은 일상어로 기록된 성경의 내용을 시로 표현했다. 비드(735년에 죽음)는 요한복음 번역자로 정평이 있었다. 앨프릿 왕(848-901년)은 성경의 여러 부분을 자국어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위클리프(14세기)와 틴들(16세기)시대까지는 성경이 부분적으로 영역되었다.

위클리프역(1382년) 이것은 최초로 완역된 영역본으로 1400년경에 수정되었으나 1415년에 몰수되어 불타없어졌다. 그러나 적어도 170여편의 필사본이 남아 있다. 단점은 헬라어 원본 대신에 라틴어 불가타역을 기초로 했다는 점이다.

틴들역(1525-35년) 틴들역의 중요성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본에서 번역된 일련의 번역본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서, 그 문체가 매우 독창적이고 또한 인상적이어서 1611년에 번역된 공인 홈정역(KJV)의 근간을 형성했다.

커버데일(Coverdale)역(1535년) 마일즈 커버데일은 틴들의 학자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는 미완성되어 있던 부분을 독일어와 라틴어 번역을 통해 자력으로 보충하였다. 그는 최초로 인쇄된 완역 영어 성경을 출판하였다.

토마스 매튜 성경(1537년) 틴들의 친구 존 로저스에 의한 틴들의 개정판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토마스 매튜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태버너 성경(1539년) 토마스 매튜 성경에서 대부분의 주와 논쟁자료를 삭제한 리처드 태버너의 개정판이다.

대성경(1539년) 크기 때문에 "대(大)"라고 명명되는 것으로 최초의 권위있는 성경이었다. 또한 제2판(1504년)에 실린 대주교 크랜머의 서문으로 인하여 "크랜머성경"이라고 호칭되기도 한다.

제네바 성경(1560년) 대성경의 개정판이다.

주교 성경(1568) 제2의 공인 영어 성경이며 제네바 성경, 일반대중을 위한 성경, 대성경과 교회의 풀핏 성경 등을 능가할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번역작업은 주로 학구적인 주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에이 성경(1609-10년) 최초로 영역된 로마가톨릭 성경이다.

흠정역(KJV, 1611년) 전술한 초기 번역본과 개정판 가운데 극치를 이루었다. 영국 제임스 1세의 후원으로 제3의 "공인" 영어 성경이 되었다. 또한 이것은 13세기 켄터베리의 대주교 스티븐 랭튼(Stephen Langton)의 장구분법과 로버트 에스티엔느(Robert Estienne, 1551년)의 절 구분법을 사용하였다. 이 번역은 1611-1881년까지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개정역(RV, 1881-85) 65명의 영국 학자들이 히브리.헬라어 원문을 직역한 흠정역의 개정판이다.

미국 표준역(ASV, 1901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그린(William H. Green)의 지도 아래 미국 학자들이 독서의 용이함과 체제의 변형을 시도하여 출판한 1885년 개정역 미국판이다.

영어 개역 표준판(RSV, 1952년) ; 신약(1946년)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 in the U. S. A)에서 인정된 것으로 이 교단에 가입된 회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비가입 회원들 사이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 번역은 우수한 점도 많으나 구약의 중요한 메시야 어구를 번역함에 있어 의미가 미흡하고 애매한 데가 있다.

새 영어 성경 ; 신약(1961년) 케임브리지의 도드(C. H. Dodd)의 지도 아래 영국 학자들이 출간한 완전히 새로운 번역본. 이것은 고어법이나 체계없는 현대어법을 탈피하여 헬라어 원문의 관용적인 영어 표현을 시도하였다. 미국에서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으나 많은 복음주의자들로 인한 문제가 없지 않다.

현대어 번역
증보판(Amplified) 신약성경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존더반 출판사에서 1958년에 발행했다. 간단하고 유용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증보판 구약성경 제1부는 창세기-에스더, 제2부는 욥기-말라기로 되어 있으며, 존더반 출판사가 발행했다. 간단하고 기본적인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20세기 신약성경 처음으로 인기를 얻은 현대어 번역으로 1898년에 출판되었다. 20명의 영국 학자가 만들었으며 매우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는다.

웨이마우드(Weymouth)의 신약성경 영국의 침례교 평신도가 번역했으며, 그가 죽은 후인 1903년에 출판되었다. 1924년, 1933년에 다른 사람이 개정했다.

펜톤(Fenton)의 현대 영어 성경 부유한 영국인 페라 펜톤이 몇 년 동안 원어(原語)성경을 읽고, 다른 번역을 참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1903년에 출판되었다.

모패트(Moffat)의 번역 스코틀랜드 사람이며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의 교수인 모패트가 번역한 것으로 신약성경은 1913년에, 구약성경은 1924년에, 신.구약 합본은 1926년에 출판되었다.

강변(Riverside) 신약성경 조합교회의 목사이며, 오벌린 신학대학의 학장이었던 발렌타인이 1923년에 출판했다.

스미드와 굿스피드의 성경전서 시카고대학의 굿스피드는 1923년에 그의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시카고대학의 J. M. 포이스 스미드는 맥길대학의 고든, 터론토대학의 미크, 미시간대학의 워터맨과 공동으로 구약성경을 번역하여 1923년에 출판했다.

몽고메리의 100년 기념 신약성경 1924년에 출판되었다. 뉴욕주 로체스터에 살던 몽고메리 부인은 1921년에 북부침례교 총회의 회장이었다. 그의 신약성경은 미국 침례교출판협회의 100년 기념 출판으로 북부침례교 총회의 회장인 몽고메리 부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성경이며 1924년에 출판되었다.

기본영어 신약성경 1941년에 출판되었다. 런던 대학이 S. H. 후크(Hooke)가 8명의 저명한 학자의 협조를 번역했다. 영어의 가장 쉬운 단어 1천개를 사용했으며, 기독교 출판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버클리(Berkeley)의 성경 1959년에 존더반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인쇄가 잘되었고 읽기가 쉽다. 원문을 현대영어로 잘 옮겨 놓았다고 학자들이 평한다. 성경 읽기에 흥미를 주는 간단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놀리(Norlie)의 신약성경 존더반 출판사가 발행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된 책이다.

새 영어 성경, 신약성경 1961년에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증보판 성경 존더반 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처음에 구약과 신약을 별도로 출판한 것을 하나로 합본한 증보판이다.

예루살렘 성경 불어판 예루살렘 성경을 기초로 번역했고, 히브리어 본문과 헬라어 본문을 대조했다. 새롭고 읽기 쉬운 성경이다.

새 미국 성경(NAB, 1970) 가톨릭과 개신교의 학자들이 공동번역한 것이다. 30년 동안 작업하여 문체와 해석의 통일성이 결여되었다.

오늘의 영어 성경(TEV, 1976) 일반 언어학의 반종교적 번역 이론을 기초로 한 최초의 영어 성경. Good News of Modern Man(현대인을 위한 기쁜소식)이라는 표제하에 보급판으로 판매되었다.

새 국제 성경(NIV, 1978) 보수파 개신교의 입장에서 번역하여 원어에 충실하고 의역을 피했다. 영국과 미국의 교인들이 공중예배와 개인연구에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리빙 바이블(LB) ASV를 기초로 하여 현대 영어로 의역한 성경. 읽기 쉬운 구어체로 번역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자세한 것은 《기독교대백과사전》8권 1449-1486면을 참조 바람)

한글성경의 번역사
1. 해방 이전
한국에 성경을 소개한 사람은 1832년에 화란 선교사 구츨라프 목사였다. 그는 홍주 고대도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한국 사람 이응찬, 백홍준은 1883년에 누가복음 3천부를 발행했다. 1887년에 로스목사는 같은 계통에서 파송된 매킨타이어(John Mclntire)와 함께 신약성경 전부를 번역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 관비유학생 이수정이 1884년에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1885년에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그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1887년에 아펜젤러 역 마가복음, 1890년에 언더우드역 누가복음과 스크랜톤 역 로마서, 1892년에 3인 공역인 마태복음, 1894년에 펜윅(Fenwick) 역 요한복음, 1895년에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1897년에 골로새서와 베드로전.후서, 1900년 5월에 신약성경 전부가 완역되었다.

1904년에 신약전서가 개역되었고, 1906년에 이것을 재수정하여 결정본으로 공인역으로 출판되었고, 1937년에 다시 개역하여 일제 말기를 지나 8.15해방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공인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2. 해방 이후
1961년 1월 25일에 한국 학자들만의 노력으로 마태복음이 번역되었다. 1967년 12월 15일에 새 번역 신약성경이 출판되었다. 한글 고문으로 한갑수, 문장 위원으로 전영택.안신영.임한영.박영준.석용원.김재준 제씨, 원문 대조위원으로 지원용.윤성범.곽안전 제씨, 서기는 정용섭 목사가 수고하였다. 1968년 2월 15일에 신.구교 성경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 김정준 박사, 서기 정용섭 목사, 위원에 배제민.문익환.선종완(신부).최의원(사정상 사퇴) 제씨다. 1971년 부활절에 신약성경 공동번역이 출판되었다. 위원에는 구교측에 백민관 신부, 최창덕 신부, 김창렬 신부(사정상 사퇴), 평신도측에 김진만 교수(성공회), 이근섭 교수(감리교), 신교측에 정용섭 목사(성서공회 직원), 박창환 목사다. 1977년 4월 부활주일에 공동번역 성서(신.구약합본)가 출판되었다. 한편 생명의 말씀사에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영어판 리빙 바이블을 기초로 하여 1977년에 《현대인의 신약성경》을, 1985년에는《현대인의 성경》을 발행했다. 또한 대한성서공회에서는 1967년에 나온 새번역 신약성경을 수정하고 구약성경을 다시 번역하여 1993년《표준 새번역 성경》을 발행하였으나, 이 성경이 진보적 신학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지나친 의역이라는 이유로 보수 신학계와 교회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성경의 정경과 외경


시기

특색

연대

중요한 출처

수용대상이 된 책

논의대상이 된 책

사도 교부들

공식적인 논의와 심각한 토론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음
100-140년경
사도교부들의 기록 인용
  • 네 개의 복음서
  • 바울서신(구분없이 하나로)
  • 없음

영지주의자들의 활동

초대교회가 영지주의자 (특히, 발시온)에 의해 제외된 정경화작업을 반박하고 나옴
140-220년경
교부들의 문헌 인용
무라토리안 단편(180년경)
진리의 복음서(영지주의적)
  • 네 개의 복음서
  • 사도행전
  • 바울서신 13권
  • 베드로전서
  • 요한 1서
  • 유다서
  • 요한계시록
  • 히브리서
  • 야고보서
  • 베드로후서
  • 요한 2,3서
  • 헤르마스의 목자서
  • 디다케(12사도들의 교훈집)
  • 베드로의 묵시록

정경화
완료작업

4세기 말경 일반적인 합의점을 도출함
220-400년경
오리겐의 구분
  • 네 개의 복음서
  • 사도행전
  • 바울서신 13권
  • 베드로전서
  • 요한 1서
  • 요한계시록
  • 히브리서
  • 야고보서
  • 베드로후서
  • 요한 2,3서
  • 유다서
  • 헤르마스의 목자서
  • 디다케
유세비우스의 구분
  • 네 개의 복음서
  • 사도행전
  • 바울서신 14권
  • 베드로전서
  • 요한 1서
  • 히브리서
  • 야고보서
  • 베드로후서
  • 요한 2,3서
  • 유다서
  • 헤르마스의 목자서
  • 디다케
아다나시우스의 부활적 회람편지(367년)-동방교회 최종 승인
  • 현재의 신약성서(정경)

 

로마회의(382년)-서방교회 최종 승인
  • 현재의 신약성서(정경)

 

카르타고회의(397년)-전체 교회에게 보급됨
  • 현재의 신약성서(정경)

 


 

 

지금 카톨릭이 사용하는 외경이 정경에 포함된 적은 교회사의 역사가 증거하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AD170 년경의 무라토리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 후서,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 3서, 요한 계시록등의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책들은 그 각 책의 사도적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다.

신약 27권 중에서 베드로후서, 요한2 3서, 유다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정경이 5세기 초에 시리아(수리아) 말로 번역, 발표되어 표준성경의 구실을 하였는데 그것을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동방의 시리아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 22권짜리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가지고 있다.


4세경의 유세비우스(270~340)는 정경을 호모레고메나(Homolegomena: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책),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책), 노타(Nota:가짜책)의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정경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2 3서를 안티레고메나에 분류했고, 요한 계시록은 호모레고메나에 분류했지만 노타에 넣어야 된다고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4세기 경의 예루살렘의 키릴(AD 315~386)은 신약성경의 강의목록에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책을 소개했다. 요한계시록은 11장에서 언급했듯이 로마제국을 비판것이라는 입장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경전 이었다.


AD 367년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경와 똑같은 목록을 제시했다.


이 신약성경 27권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397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정식 채택하였고 어거스틴도 이 정경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된것이다.

제롬은 불가타 라틴어역에서 외경을 포함시켰으나 그것이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기록하여 놓았다.

 


 

                      성경의 정경과 외경

 

 

성경의 정경과 외경이 정해진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유대교와 교회의 논의와 검토를 통해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외에 인류에게 역사하실 때 직접적으로 역사하기 보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벧후 1/20~21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하였음이라.


 

성경도 하나님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을 통해 기록하셨습니다.

시편 12/6~7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저는 하나님이 성경이 쓰여질 때 뿐만 아니라 성경이 보존되고 필사되고 번역되고 정해지는 과정에까지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정경과 외경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경의 형성과정

 


Ⅰ. 정경의 정의

성경은 어느 한 저자가 장문의 단일한 책을 쓰는 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문학장르를 달리하는 66권의 책으로 된 일종의 전집물이다.
더욱이 각기 개성, 교육정도, 시대,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약 40명의 저자들이 성경이라는 전집물을 만들려는 의사가 전혀 없이 각각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고 기실은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성경 모든 내용의 주체가 되시고 성경기록 과정에서도 영감으로 간섭하셨다.
따라서 성경 66권의 직접적인 저자는 모두 다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형식적으로는 66권이지만 내용적으로는 1권의 책인 셈이다.
그러면 자연히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왜 그 많고 많은 문서 중에서 굳이 66권만 성경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보다 세부적으로 물으면, 66권 각 권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성경임이 증명될 수 있는가?
그 기준 자체는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가능하다. 이상의 문제와 관련된 연구가 정경론이다.
정경(Canon)에 해당하는 원어는 카논(χανων)이다.
카논은 원래 갈대, 긴 나무가지라는 뜻이다. 정확한 자(尺), 즉 길이를 재는 도구가 없었던 고대에는 이런 것들을 자의 대용품으로 삼았었다.
그리하여 카논은 결국 어떤 것을 재는 기준, 척도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성경이 성도의 인식과 행위의 척도가 된다는 측면에서 그 영감성과 계시성이 인정된 성경을 정경 곧 카논이라고 부른다.
또 66권만을 정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정경의 기준을 연구하고 정경의 기록및 수립—즉 정경의 형성과 전승 과정을 밝혀 정경으로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연구를 정경론이라 부르는 것이다.

Ⅱ. 정경의 기준

유독 66권의 성경만이 정경으로 인정되는 근거 또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답을 하는 방식은 객관적으로 확실성을 줄 수 있는 속성들이 성경 66권에 내재하여 있음을 확인하는 길이 최선일 것이다.
또 실제로 성경 66권은 모두 다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하여 그 정경성이 인정된 책들이다.
그러면 성경에만 고유한 것으로서 정경 인정의 기준으로 사용된 기본 속성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영감성 : 본문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일점 일획도 틀림없이 영감으로 기록된 사실, 즉 그 내용의 신적 기원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② 목적성 : 말씀의 내용 자체와 그 기록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어야 한다.
③ 신뢰성 :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쓴 인간 저자의 신실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진실성과 성경의 기록자로서 하나님께서 흔연히 인정하셨는가의 의문에 관한 문제이다. 구약의 경우 하나님의 소명과 기름 부음, 신약의 경우 사도성이 바로 이에 속한다.
④ 보편성 : 본문의 내적 속성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어느 한 책이 정경성을 갖고 있다는 교회의 보편적 확증이 요구된다.
⑤ 보존성 : 성경 원본의 권위에 근거하여 그 본문이 신적 간섭에 의하여 훼손됨 없이 전달되어졌는가 하는 보존과정의 완전성이 요구된다.
한편 우리는 성경 66권 자체는 교회가 그것을 확증 공포하기 이전에도 정경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인증이란 결국 성경의 내적 속성에 대한 외적 인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 66권이 완전히 수집 공인되기까지에는 일부 책들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인간 교회가 임의로 정경이냐 아니냐를 정하는 과정이 아니었고, 오히려 분명한 내적 속성을 공고히 확증하기 위한 작업 과정에 불과하였다. 즉 성경은 교회가 이를 정경으로 인정해서 정경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인간이 발견, 순복하도록 섭리하셔서 정경으로 있게 되었던 것이다.

Ⅲ. 정경의 형성, 기록과 수집의 전과정

물론 정경 곧 성경 66권은 첫 책이 기록됨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책이 기록됨으로써 종결되었다. 그러나 정경의 형성이란 기록의 종결 이상을 뜻하는 것이다.
① 성령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인간 저자의 집필.
② 그 기록에 대한 정경 확립 이전 시대 성도들의 평가.
③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공식적 인정과 선포.
이상의 전과정, 즉 기록과 수집 및 공인의 전과정을 정경의 형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성경 각 권이 기록 완료된 시기와 정경으로 공인된 시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격차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교회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정경이 수집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숱한 외경과 위경의 등장, 심지어는 기독교 사상과 이단 사설을 교묘히 접합시킨 이단 서적의 등장으로 인하여 변증적 차원에서 참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구분할 필요성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 구약 정경의 형성
일단 공식적으로 현재의 구약 39권만 정경으로 밝힌 최초의 경우는 A.D. 90년경의 얌니아 랍비 회의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 구약 전체를 지칭하면서 ‘아벨에서부터 사가랴까지’라는 말씀(눅11:51)을 주신 것은 A.D.90년 이전에도 이미 구약 정경의 범위에 대한 확증이 있었다는 결정적 암시가 된다.
왜냐하면 아벨의 기사는 창세기에 있고, 사가랴의 기사는 역대하에 있는데 히브리 구양 분류 방식상 창세기는 그 첫권이고 역대하는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눅11:51의 표현은 결국 구약 전체의 범위가 이미 확증되어 있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기록과 이스라엘 역사의 정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구약 정경의 형성 시기를 포로 이후 시대인 B.C.44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포로 귀환시대로서 느헤미야의 행정, 외교적 영도와 에스라의 종교적 지도 아래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지위가 회복되던 시기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하에서 학사 에스라와 당시의 장로 회의에 의하여 구약 정경의 범위가 확정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실 에스라 이후 시대, 즉 소위 중간사 시대에는 상당히 풍부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특성상 민족적 대사건이 분명한 정경 확립에 대한 기사가 전혀 없고, 이미 정경의 범위가 확정된 상태임을 암시하는 기사만이 있는 사실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한편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삼 단계 구약 분류 방식, 즉 율법(토라), 예언서(네빔), 성문서(케투빔) 이상 세 분류 방식의 순서가 정경 형성의 순서를 반영한다고 고등비평 학자들은 주장한다.
율법은 B.C.400년, 예언서는 B.C.300 ~200년, 성문서는 B.C.165 ~ 100년경 각각 수집과 편집이 끝나 정경으로 인정되었다는 소위 단계별 형성 이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만약 고등비평학자들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히브리인의 구약 분류 방식은 구약 정경에 관한 한 거의 철칙처럼 여겨져야 마땅하나 구약의 가장 중요한 역본인 70인역 조차 정경의 범위에서는 일치하지만 분류 방식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2. 신약 정경의 형성
구약이 B.C.1400년경 모세 오경의 기록을 시작으로 B.C.400년 경의 소선지서,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의 시대차가 있는 반면, 신약은 27권 모두가 A.D. 50 ~ 100년 사이 즉 50년 상간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신약 27권을 공식적 정경으로 인정한 것은 대략 300년이 지난 A.D.397년 칼타고 공회였다.
신약 27권은 기록 이후 교회의 중요한 이론과 실천의 기준으로서 존중되었다.
초대 교부들의 각종 기록과 교회와 관련된 각종 역사 문헌을 보면 신약 성경 27권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처음부터 다른 일반 문헌들 보다 높게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역과 개인에 따라 어떤 책은 보다 더 존중되고 또 어떤 책은 그 정경성을 의심 받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정확한 정경의 지침이 있기 전까지는 오리겐 또는 유세비우스 등 영향력 있는 교부들의 분류방식이 매우 널리 유포되었었다.
이들 두 교부는 교회에 널리 전해오는 문서를 ‘호모루구메나’(Homolo-goumena : 고역된 또는 인정된 책들)와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 :이의가 있는, 논쟁중인 책들)로 크게 나누었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호모로구메나’에는 사복음서,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등이 포함되었고, ‘안티레고메나’에는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야고보서, 요한이.삼서 그리고 신약 외경 등이 포함 되었다.
한편 일부 교부들은 이 ‘안티레고메나’를 다시 구분하여 다만 그 정경성에 논란이 있다는 점에서 그냥 ‘안티레고메나’와 전혀 그 정경성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노다’(Noda : 널리 알려졌으나 인정될 수 없는)로 보다 세분하였다.
그리하여 전자에는 히브리, 야고보, 베드로 후서 등이 분류되었는데, 이 책들은 지금은 신약 정경이지만 당시에는 논쟁의 대상 되곤 했던 책이다.
반면 ‘노다’에는 각종 신약 외경 문서들이 분류되었다.
이것은 일부 논쟁 대상이 된 책 들중 일부가 그 정경성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외경이나 그밖의 문서들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었음을 초대 교회가 처음부터 인정.인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략적 구분만으로는 말시온(A.D.140년경) 등의 노스틱주의자들을 대표로 하는 이단주의자들과의 대외적 논쟁에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전교회의 통일성에 완전을 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A.D.4세기 중엽부터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동서 교회는 A.D.363년 라오디게아 종교 회의, A.D.393년의 히포 종교 회의 등 주요한 종교 회의를 거쳐 마침내 A.D. 397년 칼타고 종교 회의에서 현재와 같은 신약 27권의 정경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랜드 종합주석 )

 

 

위경의 형성 과정




구약성서는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3세기부터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역 구약, 일명 칠십인역(LXX)이다.
초기 기독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보다는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없는 소위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편집되어 있어서 가톨릭의 성서가 된다.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第二經典,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합친 성경을, 가톨릭에서는 ‘제1경전’ 혹은 ‘원경전(原經典,protocanonical)’이라고 한다.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 편집 형태에 따라,책의 권 수도 일정하지 않다.
1977년에 나온 우리나라의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이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다.
제2경전에 속하는 이러한 책들은 본래 유대교가 번역한 그리스어역 구약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던 것들을 초기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대로 가톨릭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2경전에 속한 책들이 제1경전과 합본된 것은 기독교의 작업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사와 관련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익숙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을 읽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고대 라틴어역 성서(Old Latin Version)는 바로 ‘칠십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
개신교의 성경은 39권의 낱권으로 형성된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신교의 성서가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것은 구약외에 신약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구약의 경우도 내용은 같지만 책의 분책과 배열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사무엘 상' 과 '사무엘 하'로 나누지만 유대교 경전에서는 '사무엘, 한 권으로 구성하고 있다.
책의 배열에 있어서도 개신교는 욥기, 시편, 잠언등으로 되어있는데 유대교 경전에서는 시편, 욥기, 잠언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가톨릭과 다른 것은 가톨릭이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 외경(外經)을 경건문학으로는 받아들여도 경전으로는 고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에서는,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어 오다가 ‘제2경전’으로 정착되었지만, 개신교쪽에서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다가 끝내 경전 안에는 들어 올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신교 목사들이 편집한 츄리히 성서(Zurich Bibel or Swiss-German Bible)(1527-1530)는 외경을 신약 다음에 부록으로 편집해 넣었다.
1534년에 끝난 루터의 독일어역은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엮어 넣고, 그 서문에 “외경은 경전과는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책”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프랑스 개신교가 처음으로 번역하여 발간한 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넣고, 머리말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에는 없지만 불가타역본에 들어있는 외경”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이 번역한 영어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편집하였다. 즉 구약의 일부로 다루지 않고, 별도로 묶어 경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책임을 밝혔다.
1560년에 나온 제네바성서는 본문을 절로 나누어 출판한 최초의 성서일뿐만 아니라, 외경에 대해서도, 그 서문에서 개신교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서문에서, 외경을 두고서, 이 책들이 교회가 공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공인된 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경전이 확증하는 것과 같은 내용에 동의하는 한에서만 도움이 되는 책임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므낫세의 기도’만은 역대지하 끝에 편집해 넣은 예외를 보인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역본(King James Version)도 외경을 경전과 구 별하는 점에서는 개신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지만 신약성서 관주(전후참조)에서 외경과의 관련구절을 여러번 언급하여 외경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가톨릭교회가 외경을 ‘제2경전’으로 결정하면서부터 개신교쪽에서도 외경에 대한 태도를 좀 더 분명하게 하기에 이른다.
1562년에 영국교회가 발표한 39개조 종교조항 제6조는 “(외경은) 교회가 신도에게 생활의 모범이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할 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외경을 근거로 하여 교리를 제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1647년 웨스터민스터 신학자 총회에서 결정한 신앙고백 제1장 3절은 “외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므로 경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외경은 성경과는 달리, 교회 안에서 어떠한 권위도 가지지 못하고,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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