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우 미 양 가의 유래(기사 펌)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적표를 받아들 때의 그 조마조마하던 마음은 평생 다시 없을 것이다. 학생의 성적을 1, 2, 3 등도 아니고 A, B, C도 아닌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로 구분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수(秀)자야 ‘빼어날 수’이고 우(優)는 ‘우량’이라고 친다지만 아름다울 미(美)는 도대체 무슨 말일까? 말 그대로라면 ‘성적이 아름답다’는 말인데 그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양(良)도 그렇다.

이 한자의 뜻은 ㉠어질다 ㉡좋다 ㉢훌륭하다 ㉣곧다 ㉤착하다 ㉥아름답다 ㉦길하다 등 여러 뜻이 있는데 어째서 성적표에서는 낮은 성적을 의미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가(可)도 그렇다. ㉠옳다 ㉡허락하다(許諾--) ㉢듣다, 들어주다 ㉣쯤, 정도 ㉤가히 등의 뜻이 있을 뿐 최하위 성적을 나타낼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 가(可)는 꼴찌를 뜻하는 말로 되어 있다.

 

수우미양가 연원 교육부도 몰라

 

우리가 습관처럼 사용하는 “수우미양가”는 대관절 어디서 생긴 것일까? 먼저 이 말의 유래를 알고자 하는 누리꾼(네티즌)이 2008년 8월15일 국립국어원의 “어원문의” 난에 질문한 내용과 그에 대한 답을 들어보자. 

 

*질문자 : 안녕하세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학교 성적표에 ‘수우미양가’가 표기되었지요? 이 표현에 관한 어원이나, 제정의 기록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에 쓰이기 시작했다든가 대한민국 건국 후에 쓰이기 시작했다 또는 언제, 누가 쓰기 시작했다와 같은 것을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국립국어원 :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수 우 미 양 가’를 “성적이나 등급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이라고만 풀이하고 있고, 그 밖의 정보는 싣고 있지 않습니다. 어원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수 우 미 양 가’의 어원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교육 평가와 관련된 기관에 문의하시면 이에 관한 정보를 얻으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누리꾼의 질문은 펄펄 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국어기관인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걸음마 수준이다. 수우미양가에 대한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자료는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김문길>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이라는 이름도 그가 전쟁에서 적을 많이 죽이고 귀, 코를 많이 베어냈다 하여 오다노부나가가 내려준 이름이다. 당시 오다는 신하들이 잘라 온 적의 머리수로 등급을 매겨서 “수우양가”로 판정했는데 도요토미는 수(秀)에 속하니 히데요시(秀吉)라 했으며, 가장 뛰어난 가신이라 하여 도요토미(豊臣)이라는 성을 주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매기는 학교가 많다, 이런 성적 평가는 일본 전국(戰全)시대에 생긴 평가 용어라고 한다”는 것.

 

풍신수길이 사용하던 용어

 

풍신수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에 큰 상처를 준 인물로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하급 무사의 아들로 교육을 전혀 받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입증하듯 풍신수길의 성과 이름은 제대로 전하는 게 없는데 모시던 대장 오다노부가 갑자기 비명횡사하자 운 좋게 천하를 거머쥔 뒤부터 글께나 하는 똑똑한 가신을 옆에 두고 출생부터 “교양있고 유식한 집안의 풍신수길”로 호적을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풍신수길 이름의 변천을 보면 말단 하급 출신답게 처음엔 성이 기노시타(木下)였고 그 다음에는 하시바(羽紫) 다음이 도요토미(豊臣) 성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름은 앞서 말한 적군의 목을 많이 베어오는 빼어난 장수라는 뜻에서 수(秀, 히데) 자와 좋다라는 뜻의 길(吉, 요시) 자를 붙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정리하면 “豊(とよ-도요-풍요롭다) / 臣(とみ-토미-신하0 / 秀(ひで-히데-뛰어나다) / 吉(よし-요시-좋다)” 이런 구조이다.

 

“수우미양가”의 정체를 찾아 헤매던 중 의외의 자료를 얻게 되어 확인 차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에게 문의한 결과 김 교수는 회신에서 “히데요시의 秀. 優, 良. 可 라는 용어는 센코쿠(戰國) 시대 무사들 용어로서 무사가(武士家) 문서에 자주 나온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가 찾던 수우미양가는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던 사무라이들의 “목베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누가 목을 많이 베어오는가에 따라 수우양가(일본의 국민학교 평가는 수우양가만 존재함)를 매긴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사실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문을 얻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성적 처리는 ‘수우미양가’인가요? ▲‘수우미양가’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싶다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지난 2009년 9월16일 답변을 통해 ▲현재 중학교에서는 ‘수우미양가’를 과목별 성취도 결과로 활용하고 있으며, ▲‘수우미양가’를 어떤 취지로 특정 용어를 연결하여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과거 사용하던 한자어의 뜻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정확한 사용 취지는 현재 파악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수우미양가의 사용 유래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을 맡은 기관에서학력평가에 대한 용어에 대해 아는바 없다는 사실이 그저 놀랄 뿐이다. 누가 ‘수우미양가’를 알 것인가! 없다. 아무도. 그저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까 쓸 뿐이다’라고 하는 현실을 나무랄 수는 없다.

 

중학교에서는 아직도 사용

 

하지만 이 말이 우리가 그렇게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임진왜란의 원흉 풍신수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줄기차게 쓰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한국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에서조차 이 말의 유래를 모르고 쓰는 사실을 어떻게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 일본에서는 어떻게 학력을 평가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 2009년 11월20일자 일본 문부과학성 교육과정담당 타이라치에(平千伎)는 누리편지(이메일)와 전화 답변에서 소화 20년(1940)까지는 국민학교(당시 일본의 교육제도)에서 사용했으나 그 이후는 사용치 않으며 중학교도 소화 25년(1945)까지 썼으나 이후 폐지되어 현재는 쓰고 있지 않다고 확인해줬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우미양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들여와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상하게 중간에 ‘미’를 덧붙여서 말이다. 또 일본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이 ‘수우양가’를 쓰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우미양가’에 집착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누리집에는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1996년에 초등학교(교육법 개정, 현 초ㆍ중등교육법)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라고 초등학교명칭 변경을 밝혀두고 있다.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는 게 명칭변경의 주요 목적이었다면 이제 “수우미양가”도 당연히 폐기해야 한다. 100점 따위의 점수로 하거나 대학처럼 ABC학점제로 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더 좋은 우리식의 평가로 우리의 꿈나무들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해방 65년째가 되어도 아직 청산되지 못한 것은 “수우미양가”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속에 흐르는 “일본에 대한 안이한 민족의식 피”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독도는 일본 땅’ 같은 도전과 수모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지 못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향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아직도 중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우미양가’를 바꿔야 할 것이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에 기대를 걸어본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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