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年 미뤄온 '쌀 開放' 올해 끝… 빗장풀기 운(韻) 떼는 정부

손진석 기자

 

정부 "우린 필리핀 GDP의 9배개방 미루면 WTO 동의안할것"
의무수입쌀 계속 늘리기보다 관세붙여 개방이 낫다 의견도
全農 등 농민단체는 강력 반발

 


	20년간 6배로 늘어난 쌀 의무수입물량 그래프

우리나라가 10년 만에 다시 쌀 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2005년부터 10년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의무적으로 매년 2만t씩 추가로 수입하기로 한 WTO(세계무역기구)와의 약속이 올해로 끝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겉으로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개방하는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 가는 분위기다. 의무수입물량을 지금보다 늘리지 않은 채 개방을 다시 미루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9일 필리핀이 쌀 개방을 유예하려는 협상에 5번째로 실패하면서 쌀 시장 개방론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됐다. 필리핀은 개방을 2017년까지 더 미루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2.3배 늘리는 출혈을 감수하겠다며 2년째 WTO 회원국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계속 거절당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인당 GDP가 필리핀의 9배에 달하는 우리나라가 또다시 개방을 미루겠다고 할 때 다른 나라들이 동의해주겠느냐"고 반문하며 "이제는 전향적으로 개방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의무 수입 쌀 20년 새 8배로 늘어

쌀 시장 개방 논란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되면서 시작됐다.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관세를 매겨 수입해서 시장을 개방한다는 뜻)해서 수입하기로 WTO 회원국들이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아 10년간 개방을 피할 수 있었다. 10년 후인 2004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쌀 개방을 추진했지만 정치권과 농민단체들이 '농촌 붕괴론'을 주장하며 반대하자 물러섰다.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을 매년 2만t씩 늘리는 조건으로 10년간 다시 유예했다. 이 협정이 올 연말에 끝나기 때문에 정부는 개방 여부를 6월까지 결정하고 9월까지는 WTO에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쌀 시장 개방 유예 역사표

1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문호를 열 가능성이 작지 않은 상태다. 1995년 5만1000t, 2005년 22만5000t이었던 의무수입물량은 올해는 40만8000t에 달한다. 20년 사이 8배가 된 것이다. 올해는 의무수입물량이 국내 쌀 생산량의 9%에 달한다.

이 때문에 빗장을 계속 잠근 채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관세를 붙여 수입을 개방하는 게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작년 1282개 쌀 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77.7%가 관세화에 동의했다.

농민단체 "식량 주권 빼앗긴다"

하지만 쌀 시장을 개방하려면 적잖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들은 여전히 강하게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농은 "쌀 시장을 개방하면 식량 주권을 빼앗기게 되고 정부가 쌀을 포기했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농가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정한 수준의 관세를 매겨 국내산 쌀보다 가격을 높여놓으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쌀과 관련된 보조금을 고급 쌀을 생산하는 데 중점 투입해서 장기적으로는 쌀을 수출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쌀 시장을 막아놓았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수출도 거의 못하고 있다.

 

관세화(tariffication)

수입 물품에 국내외 가격 차이만큼 관세(關稅)를 붙여 물량 제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시장 개방’을 뜻한다. 쌀을 관세화한다는 것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쌀 관세화’라는 용어를 쓰고 농민 단체들은 ‘쌀 개방’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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