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무부가 한국 기업 노리고 있다"

 

 

안석현 기자

 

입력 : 2014.04.23 15:27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저촉돼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FCPA에 의거해 국내 업체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FCPA 전문가의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조선비즈는 김앤장, 광장, 태평양, 화우 등 4개 법무법인 소속 FCPA 전문 변호사 6인의 자문을 얻어 국내 대기업 중 FCPA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FCPA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국 법무부가 한국 대기업 상대로 FCPA 관련 조사에 나섰다는 소문이 미국 로펌(법무법인)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조사 대상으로 특정 업체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지멘스는 2008년 12월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벌금 8억달러(약 8306억원)를 낸 바 있다. 국내 기업 중 제 2의 지멘스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 대형 법무법인 소속 최모 변호사

“FCPA에 의하면 자회사 임직원이 공무원에 뇌물을 주다 적발되면 모회사도 책임져야 한다. 국내 재벌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로 엮여 있어 FCPA에 특히 취약하다. SK텔레콤은 2010년 8월 국내 우정사업본부 기반망 사업자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평가위원에게 뇌물을 줬다가 적발당한 적있다. 미국 법무부는 SK그룹 주요 계열사에게 그 책임을 물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 외국 법무법인 소속 서모 변호사

최근 로펌 업계에는 미국 법무부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FCPA 조사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진은 에릭 홀더 미 법무부 장관.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최근 로펌 업계에는 미국 법무부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FCPA 조사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진은 에릭 홀더 미 법무부 장관.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FCPA 쓰나미’가 한국 해안까지 들이닥칠 기세다. 뇌물 수수 사건으로 일본 업체가 처벌된데 이어 중국 업체까지 과징금을 물어야 했다. 동북아시아에선 한국에서만 아직 FCPA 처벌 기업이 나오지 않았다. FCPA 전문 변호사 상당수는 조만간 한국에서도 FCPA에 저촉돼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낼 기업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FCPA 법률에 의거해 특정 기업 임직원이 공무원에 뇌물을 주다 적발되면 범죄 이익의 두 배까지 과징금으로 환수할 수 있다. FCPA는 미국 국내법이지만 외국 기업도 처벌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국 업체 중 미국 증권시장 상장사(미국주식예탁증서 발행 기업), 미국 업체와 합작 내지 컨소시엄 참여 업체, 미국 은행계좌로 뇌물을 수수한 업체 등이 FCPA 처벌 대상이다.

외국 업체가 FCPA 과징금을 내지 않으면 해당 업체 임직원은 미국에 입국할 수 없고 다른 나라 공항에 입국하더라도 국제사법 공조로 인터폴에 적발될 수 있다. 또 세계은행(IBR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관리하는 제재 명단에 등재돼 사업 수주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지금까지 FCPA에 저촉돼 고액의 과징금을 낸 상위 10개 기업 중 9개가 비(非) 미국계 기업이다. 그러다보니 미국 정부가 FCPA를 빙자해 세계 시장에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FCPA, 미국 기업 아니라도 ‘철퇴’

외국 기업의 임직원이 미국 밖에서 뇌물을 주고받아도 미국 법무부는 해당 기업을 FCPA에 의거해 처벌할 수 있다. 대표 사례가 독일 전기전자업체 지멘스다. 지멘스는 중국, 러시아, 이라크, 베네수엘라, 멕시코, 이스라엘 등 외국 공무원에게 총 14억 달러 뇌물을 준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 법무부에 4억5000만달러, 미국 SEC에 3억5000만달러 총 8억달러를 내야 했다. 프랑스 석유·가스·화학 업체인 토탈도 지난해 5월 3억9800만달러를 내야 했다. 토탈은 석유와 가스 사업권을 따기 위해 이란 관리에게 뇌물 6000만달러 가량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가 독일과 프랑스 업체의 뇌물 수수를 처벌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미국 법무부가 FCPA에 의거해 외국 기업을 처벌하려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미국 증권시장 상장 업체는 FCPA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장외시장 등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한국 업체는 총 15개사다. SK텔레콤, KT, 포스코, LG디스플레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이다. 이들 15개 기업이 미국 밖에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다 적발되면 FCPA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미국 법무부는 국내법과 달리 뇌물을 건넨 임직원이 아닌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한다. 회사가 뇌물수수를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개인적 일탈’로 보고 당사자만 형사 처벌하는 국내법과 다르다.

2002년~2012년 사이 FCPA를 적용해 미국 정부가 거둬들인 벌금. /김앤장 법률사무소 제공
2002년~2012년 사이 FCPA를 적용해 미국 정부가 거둬들인 벌금. /김앤장 법률사무소 제공


◆ “우리 회사는 미국과 상관 없다” 방심하다가 큰 코 다쳐

FCPA 전문 변호사 다수는 “FCPA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안심한 국내 기업들이 FCPA 탓에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회사나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을 경우에도 FCPA 법률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플랜트엔지니어링 업체 JGC는 지난해 4월 2억2000만달러 과징금을 납부해야 했다. JGC는 미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외국 업체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과정에 참여했다. 해당 컨소시엄이 나이지리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적발되자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은 각각 수억 달러씩 과징금을 물어야 했다.

국내 대기업 상당수는 해외 자원개발, 발전소, 플랜트 개발 등 대규모 엔지니어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기업이 컨소시엄 구성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명석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다국적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에서 FCPA 이슈가 생기면 ADR 발행 기업이 아니어도 거액의 과징금을 물 수 있다”며 “기대수익보다 많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만큼 합작선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는 등 FCPA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 뇌물 줄 때 미국 계좌·이메일 사용해도 처벌

합작선에 미국 회사나 ADR 발행기업이 없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뇌물수수 과정에서 미국 은행계좌를 이용하면 FCPA에 의거해 처벌될 수 있다. 뇌물수수 당사자가 미국 이메일을 이용해 부정한 내용을 주고 받아도 FCPA를 피해갈 수 없다.

일본가스공사는 2011년 뉴욕 환거래 은행 계좌로 불법자금을 송금했다가 벌금 2억1800만달러를 물어야 했다. 일본가스공사는 ADR을 발행하지 않았고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지도 않았다.

오택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미국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해외부패방지법)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뇌물을 지급하는 행위를 하면서 미국의 통신망, 은행전산망 등을 조금이라도 이용하기만 하면 FCPA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니 참으로 놀라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chosunBiz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