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뱅이 곁으로 떠난 배뱅이굿 大家

 

名唱 이은관… 중요무형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

"왔구나, 왔소이다. 불쌍히 죽어 황천 갔던 배뱅이 혼이 피양(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입을 빌고…."

배뱅이굿에서 건달 박수무당이 배뱅이 넋이 찾아왔다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 배뱅이 부모가 죽은 딸 배뱅이의 혼을 부르는 이 굿판을 이은관(李殷官·97) 명창 없이 떠올릴 수 있을까. 간드러지는 맑고 카랑한 음색 하며 높은음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공력, 두 눈 살포시 내리뜨는 연기력까지…. 문외한에게도 이은관이란 이름은 배뱅이굿과 동의어였다.


	이은관 명창은 종로4가 제일극장 데뷔 공연을 잊을 수 없는 무대로 꼽았다. “여류 가객 김계춘이 관객을 울려 놓으면 내가 나서서 실컷 웃겨놓았다”고 했다. 폭, 맑게 치고 올라가는 높은 소리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이은관 명창은 종로4가 제일극장 데뷔 공연을 잊을 수 없는 무대로 꼽았다. “여류 가객 김계춘이 관객을 울려 놓으면 내가 나서서 실컷 웃겨놓았다”고 했다. 폭, 맑게 치고 올라가는 높은 소리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백수(白壽) 가까운 고령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명창이 배뱅이 곁으로 돌아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이은관 보유자가 12일 오전 서울 황학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배뱅이굿은 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놀이.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얘기를 민요와 무가(舞歌), 재담(才談)을 섞어 해학적으로 엮은 1인 창극이다. 양반 딸 배뱅이가 세상을 떠나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려는데 건달 무당이 엉터리 넋풀이를 해주고 돈을 얻어갔다는 내용이다.

1917년 강원도 이천에서 태어난 그는 좋은 목을 타고났다. 철원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신인 가수 발굴 콩쿠르에서 민요 '양산도'를 불러 1등을 했다. 그 길로 황해도 황주로 이인수 선생을 찾아가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배우면서 소리 인생을 시작했다. 최경식 문하에서 경기민요와 시조를 익히고, 1940년대 '신불출 일행'에 입단했다.

생소했던 배뱅이굿을 세상에 알린 것도 그의 공이다. "왔구나! 배뱅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1957년엔 양주남 감독이 만든 영화 '배뱅이굿'에서 배우 조미령이 배뱅이 역으로, 그가 박수무당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발매된 사운드트랙(OST)은 6만장 판매고를 세우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 스스로 작사·작곡한 신민요 21곡을 CD로 보급하기도 했다. 1999년 평생 부른 노래 전곡을 사설과 악보로 정리, '가창총보'라는 책을 펴내 소리의 맥잇기에도 힘썼다.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지냈고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로 지정됐다. 보관문화훈장,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 방일영 국악상을 받았다. 2002년 방일영 국악상 수상 소감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소리를 하겠다" 했던 명창은 불과 몇 달 전까지 후배들과 무대에 섰다.

선생은 "배뱅이 곁으로 갈 때까지 늘 배뱅이 넋을 불러서 같이 지내고 싶다"고 했다. 지금쯤 배뱅이 곁에서 맑은 노래 한가락 뽑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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