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전도사` 박재갑

암·당뇨·심혈관질환…모두 예방하는 방법, 운동화 신고 출근하세요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정년 퇴임은 절대 끝이 아닙니다. 그동안 교육공무원 신분에 얽매여 매일 아침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계약직이니까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금연 교육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펼쳐야죠." `금연 전도사` 박재갑 서울의대 교수(65)가 3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다음달 30일 정년 퇴임한다. 그는 40여 일 남은 퇴임에 대한 소회를 묻자 "떠난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며 "국립암센터에 화~목요일, 서울대병원에 월ㆍ금요일 출근하며 연구 및 진료, 외부 강연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0년 국립암센터 개원, 국민 1700만명이 5대 암 검진 혜택을 받고 있는 암 정복 10개년 계획, 서울시 금연공원 내 흡연구역 설치계획 철회 등이 모두 박 교수가 이끌어낸 성과들이다.

"저는 가장 축복 받고,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장관, 어느 총리보다 행복합니다."

박 교수는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을 비롯해 국내 의료기관 중 직급이 가장 높은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을 역임해 그를 아는 사람들은 `원장`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더 친근하다.

그는 의료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금연운동`과 `운출생운(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운동)` 두 가지로 요약했다. 박 교수는 금연과 운동을 빼놓곤 의사로서 건강을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담배의 해악과 금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담배는 독극물이자 마약입니다. 1년에 한국인 5만명이 흡연으로 죽습니다. 이는 피우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잘못된 제도가 낳은 희생자입니다. 국민을 가장 많이 아프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죽이는 것이 바로 담배입니다. 담배는 국민의 주적입니다."

그는 "제가 판단컨데 국가가 의지가 없어요. 담배사업법을 허가해 흡연을 조장하면서 `보건`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죠"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담배의 해악을 알게 된 것은 2000년 국립암센터 원장을 맡으면서다. 그 이전까지 담배는 조금만 피우면 괜찮은 줄 알았다.

"5000만명의 국민이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암이 생기는 원인은 뭔지 조사를 해보니 가장 큰 원인이 감염과 흡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암 발병 원인의 20%, 사망 원인의 30%가 담배에 있습니다."

담배에서 62종의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특히 15종은 A급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60여 종의 발암물질과 40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담배를 마리화나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독극물로 분류하고 있다.

박 교수는 "폐를 비롯해 구강, 혀, 식도 등 담배 연기가 지나가는 모든 부위에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한다"며 "발암물질 덩어리인 니코틴은 피에 녹아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암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돼 담배와의 전쟁에 나섰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암센터의 신뢰(credit)는 절대적입니다. 이 때문에 국립암센터 소장의 말은 성경의 바이블처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립암센터 원장이 국회, 청와대, 정부를 찾아다니며 10년 넘게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별 반응이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박 교수는 2001년 국립암센터 원장 신분으로 청와대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담배를 피우면 폐가 썩어간다"며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고 소개했다. 또 이명박정부에서도 "건강보험재정을 건전화해야 한다면서 국민을 질병으로 몰아넣는 담배 문제를 왜 논의하지 않느냐"고 지적하며 `담배는 독극물, 마약이니 빨리 끊어주십시오`라는 담화문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담배를 만들어 파는 것은 `국가 범죄`이자 `국가적 사기 행각`이라고 비판했다.

국회도 말로는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담배회사를 대변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17대 국회 때인 2006년 사회 각계각층 158명의 이름으로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청원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져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 들어 2008년 11월 다시 입법청원을 했지만 또다시 무위로 끝났다.

박 교수가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은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그는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월 11일 `담배사업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담배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600만명이 죽습니다. 한국 헌법재판관들이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위대한 판결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헌법소원은 원래 이달 안에 심의하도록 돼 있지만 아직 하지 않고 있어 결론이 나는 데 2~3년쯤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9월 인도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서도 `The end game scenario of Tabacco(담배의 최후 시나리오)`라는 주제로 특별 세션이 마련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소개했다. 국내 담배사업법, 즉 담배전매법은 미국에서 담배 해악이 밝혀진 1964년보다 6년 먼저 만들어진 것이어서 이제는 폐기돼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운출생운`은 2010년 4월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국립중앙의료원의 초대 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국립중앙의료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암, 뇌ㆍ심장혈관 질환, 자살, 당뇨 등 5대 질병을 예방하는 것인데 그 해법은 운동이었다"며 "일상 생활 속에서 30분 이상, 약간 숨이 차거나 땀이 조금 날 정도로 손쉽게 운동하는 방법을 찾은 게 바로 `운동화 신고 출퇴근`이었다"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를 얻는 데는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교수(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위원장)의 도움이 컸다. "국민 누구나, 어디서나,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신체활동이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례를 하거나 청와대에 갈 때도 운동화를 신고 갑니다."

그는 운출생운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약 19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 블로그는 대장암 치료 분야 명의 중의 명의인 박 교수가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학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2009년 교회 목사, 성공회 주교, 스님, 이슬람 사제, 통일교 관계자들이 참여해 다른 종교들 간 이해를 높이는 `한국종교발전포럼`을, 이어 사회 지도층이 국제적 편향을 갖지 않고 균형감각을 갖도록 `글로벌문화경제포럼`을 출범시켰다. 2011년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폭넓게 연구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한길모임`을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하면 다들 대단히 유식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인문학 서적을 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대화할 때 부끄러웠죠."

박 교수는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 꽃만 보면 찰칵찰칵…
행복ㆍ희망을 주는 꽃사진 블로그 올리고 전시회도


지난 17일 만난 박재갑 교수는 오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80일간 열리는 사진전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정년을 앞둔 사람이라면 약간의 여유(?)를 누리고 있을 텐데 박 교수는 전시될 꽃사진들을 먼저 보여주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도록 의자부터 권했다. 그는 48장에 달하는 꽃 사진과 어려운 꽃 이름에 담긴 스토리를 하나하나 정감 있게 풀어냈다.

상생(相生)이라는 주제로 서울대암연구소 삼성암연구동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박 교수가 출퇴근하거나 외부 강연장을 오가면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작품이다. 집 쓰레기통 주변에 핀 꽃, 도봉산 바위 틈에 핀 야생화, 서울대암병원의 행복정원에 핀 탐스러운 꽃….

박 교수는 꽃을 보면 행복과 희망을 느낀다고 말한다. "길가의 야생화나 그 위에 앉아 있는 곤충, 병원의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스마트폰에 담아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블로그에 올리면 회원 1788명이 행복을 느껴요."

꽃 사랑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집 근처 서울 서초동의 우면산을 자주 올랐습니다. 저는 산 덕분에 건강을 지키는데, 산에게 베풀어줄 뭔가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라일락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박 교수의 예술 사랑은 남다르다. 아내의 권유로 홍익대 미술디자인교육원에 등록해 매주 목요일 저녁 유화반을 다녔다. 또 지난해 여름에는 마산에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이강용 화백에게서 혼합재료 활용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 박재갑 교수는…

△1948년 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1973년) △서울대의대 석ㆍ박사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1985~1987년)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1991년~현재) △서울대 암연구소 및 암연구센터 소장(1995~2000년) △국립암센터 초대ㆍ2대 원장(2000~2006년) △아시아대장항문학회 회장(2002~2006년) △대한암학회 이사장(2004~2006년) △일본 암학회 명예회원(2005년~현재) △글로벌문화경제포럼 공동회장(2009년~현재) △한국종교발전포럼 회장(2009년~현재)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2010~2011년)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2010~2012년) △충청북도 명예도지사(2011년~현재) △한길모임 회장(2011년~현재)

 

매일경제 & mk.co.kr,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