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떠날 때


목회자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목사님, 다음 주일 부터 교회 못 나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일일 것이다.  그들이 떠나는 일에 있어서 내가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 또는 그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계속 묻게 된다.  어떻게 그들이 내게 이럴 수가 있는가.  비록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런 일로 인해서 목회자는 상처와 자신에 대한 회의로 더욱 아프게 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목회자와 떠나는 신자 둘 다가 축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구 목사가 찾아와서 “오늘 중직자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났어” 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지역을 떠나 멀리 이사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 교회를 떠났다는 말이었다.  목회자들은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한 가족이 교회를 떠날 때 실패감을 느낀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신자 모두를 다 손 안에 넣을 수 없어.  그러나 나 홀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내 마음은 나간 사람들 생각으로 방황하게 되니 어찌 마음 아픈 일이 아닌가?  그들이 떠난 배후에 어떤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지.  나는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신자들이 떠날 때 그것은 그때마다 내게 상처를 주었다는 거야”  다른 분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대해 “목사님, 목사님께는 잘못이 없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인간적으로 계속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라고.


목회자는 교회의 모든 일에 전체적인 책임을 가진다.  사람들은 그 교회에 꼭 소속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파나 교리가 맞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 교회에서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설교에서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목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교회를 떠납니다 말을 할 때 목사는 나는 당신을 거절합니다 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런 일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목회자를 아프게 한다. 


첫째, 인간적인 면에서 거절감, 거부감에 대한 느낌이 있다.  더 깊은 인간 관계를 가진 사람일수록 그 상처의 깊이는 더 한다. 

 

둘째, 그런 일은 목회자를 놀라게 한다.  그들의 불평과 반대가 내부적으로 알려지고 있기에 목회자는 심리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한 가족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던가 다른 교회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일은 목회자를 놀라게 한다. 

 

셋째, 투자의 면에서 아픔을 느낀다.  목회자는 기도로, 설교로, 성경 공부로 힘과 정열을 다하여 성도들에게 투자한다.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을 위하여 기도와 관심을 가진다.  새벽마다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말씀으로 기도로 격려해 준다.  그러나 가족들이 떠날 때 테이블에서 많은 칩스를 준비해 놓았지만 먹지 않고 그냥 남아있음으로 텅 빈 마음을 느끼게 한다.  투자한 만큼 아프기 마련이다. 

 

넷째, 통계적인 면에서 문제가 된다.  신자가 떠나면 통계에 손실을 가져온다.  우리가 좋아하던 않던, 우리는 통계 숫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성공적인 목회자란 우선 교회가 성장하는 그런 교회의 목회자이다.  교회를 잘 세우는 목회자는 줄어드는 목회자 보다 더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작은 교회일수록 신자의 떠남은 치명적이 됩니다.  숫자뿐만 아니라 예산 면에서도 타격을 받는다.  십일조 헌금하던 신자가 떠나면 손실은 예산 면에서 즉각 나타난다.  작은 교회에서 고정적인 십일조 헌금은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통계적으로 줄어들 때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패배감을 느낀다. 

 

다섯째, 명예적인 면에서 또 손상을 가져온다.  어느 부부는 10년 이상을 한 교회의 집사요 예배 때의 사회자요 그 목사님을 청빙한 청빙 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했다.  목사님이 부임한지 16개월만에 그는 교회를 떠났다.  목사는 그들을 존경했고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로 생각했다.  그 목회자는 모든 사람의 가려움을 다 긁어주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을 체험했다.  그와 같은 분들까지도 효과적으로 긁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들의 떠남은 목회자에게 명예적인 면에 영향을 준다. 

 

여섯째, 여파적인 면에서 문제가 된다.  교회 부흥의 중요한 요소는 성도들의 태도와 평가에 있다.  어떤 신자가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길 때 그것은 목회자 또는 교회로 하여금 자체 평가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한 가정 이상이 떠날 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지금 이 교회에 벌어지고 있는가   What's going on around here? 라고 묻게 되고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건가.  What‘s wrong with us? 라고 묻게 된다.  목회자는 떠나는 신자와 남아있는 신자들의 동요로 이중의 상처를 느끼게 된다.  신자의 떠남은 교회의 파장과 동요를 일으킨다. 


어떤 양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도 있다.  목회자들은 어떻게 이런 상처와 아픔과 실패의 느낌에 잘 대처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신자들이 교회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목회자들은 불만족을 통한 신자들의 떠남을 예상해야 한다.  어느 목회자는 “전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을 뿐” 이라고 생각함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신자는 떠나지만 그것이 목회의 종말은 아닌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목회자들이 다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전체 목회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둘째, 다양화를 위해 하나님께 찬양하도록 하자.  인간은 다 각각 개성과 취미와 은사가 다르다.  그것이 맥도날드가 있고 타코벨이 있고 켄터키프라이 치킨이 있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어떤 신자들은 여러분의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의 예배와 프로그램과 봉사를 좋아할 것이다.  신자의 떠남을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목회의 은사와 스타일이 다 다르기에 현재 앉아있는 개개인도 어떤 다른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  주님은 그의 세계적인 교회를 세우고 계시다.  어떤 신자는 떠나는 일이 실제 축복이 될 수 도 있다.  다른 교회에서 더 큰 일, 더 큰 봉사를 하고, 더 큰 은혜를 받으며 만족하게 신앙 생활 할 수 있고 또 여러분의 마음도 훨씬 그전 보다 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목회자는 현명하게 관찰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주님이 옮겨 놓고 싶은 사람도 있다라고.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더 큰 문제로부터 보호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은 신자 떠나는 것이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일이 되고 더 좋은 유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 비판을 받아들이자.  신자가 떠난 후에 죄의식을 느끼는 일이 많다.  나는 모든 것에 노력했는가?  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했는가?  나는 충분히 자신을 오픈 했는가?  신자의 결석이나 떠남은 계속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정직하게 자신을 평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떠나는 신자들을 붙들어 놓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런 일로 인해서 자신의 부족을 알고 고침으로 장차 더 많은 사람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다른 목회자들과 이런 일을 서로 나누자.  이런 일을 경험한 목회자들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배,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말할 때 그들은 사랑으로 경청하게 될 것이고 비록 신자 떠나는 아픔을 안고 있다해도 그 상처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도 그런 경험을 벌써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현재의 성도님들을 더욱 사랑하라.  더 기도 많이 해 주시고 더 많이 축복해 주라.  여러분의 스트레스는 그들로 인하여 치료가 될 것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보상이 된다.  사랑은 모든 아픔의 치료약이다. 

 

여섯째, 그들이 돌아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라는 것이다.  신자가 떠날 때 내 버려 두는 일이 있다.  출구 면담(Exit Interview)을 하라.  그것에 얻은 정보는 교회에 유익이 된다.  교회 중직자들은 신자들에 대해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들이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심방해서 축복하며 보내라.  전화로라도 사귐을 계속하라.  경우에 따라서 정중하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를 떠남이 불가피한 일들임으로 인정해 주면서 가장 좋은 신앙 생활이 있기를 기원해 주라.  그들이 어쩌면 목회자와 같은 상처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목회자는 어떤 벽이 있었는지 그것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잘못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실수와 잘못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고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도록 문을 열어 두자.  그들이 다른 장소의 자리가 더 푸근하지 않다고 느낄 때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Pastor, I‘m leaving"  목회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상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아픔을 통해서 성숙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난 주일에 ”목사님,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못 나오겠습니다“ 라고 들은 분이 계실지 모른다.  우리 목자장 되신 주님은 제자들이 떠날 때 더 아픈 경험을 하셨다.  이런 아픔이 성숙되어 영광스런 목회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주일 새로이 오실 분들을 위해 감사하자.  신자가 떠날 때 손실이 아니라 생산이요 창조의 기회로 만들자.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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