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정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글 / 안 유 섭 목사


정경(正經)이라 함은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인정하여 사용하는 성경(聖經)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경(Cannon)은 척도, 규칙, 법도라는 뜻의 헬라어 (카논)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본래는 갈대(Reed)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경이란 용어를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AD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그 이후 라틴 교부들에 의해 정경은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야 하는 하나님의 권위로써 인정된 지금의 성경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유대교의 히브리 정경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구약 39권과 내용은 같지만, 배열 순서가 다르며 권수는 24권으로 되어있다. 그 차이는 기독교의 구약의 배열과 권수는 70 인역(Septuagint)을 따르고 있으나, 히브리 정경 24권은 유대교의 랍비의 전통을 따라서 정해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의 정경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부터였다. BC 440년경 당시 포로 귀환을 영도한 종교 지도자 에스라는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한 이유를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지 않고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절감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여야한다고 주창하였다.

에스라의 노력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구약의 정경화 작업은 계속적으로 시도되었으며, 마침내 AD 90년경에 얌니아에서 열린 유대 학자들의 종교회의에서 역사적으로 히브리어 정경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경을 확립해야할 필요성은 현재 정경으로 인정된 책들 외에 외경(外經)과 위경(僞經)으로 불리는 많은 책들이 그전부터 정경과 함께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경에서 제외되어야 할 책들을 명확하게 해둠으로써 더 이상의 혼란을 막음과 동시에 정경으로 정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히브리 정경은 (타나크)라고 하는데 율법서인 (토라)와 예언서인 (네비임) 그리고 성문서인 (케투빔)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머리 글자를 모아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히브리 정경은 지금의 성경책들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정경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고, 역사를 두고 조금씩 편입되어 결국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에스라 시대에 최초로 정경이 된 것은 율법서이고, 그 다음 예언서가 편입되었으며, 성문서는 맨 나중에 정경이 되었다. 토라(율법서)는 소위 모세 오경(五經)으로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다섯 권을 가리킨다. 토라는 구약 성경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어야하는 책이었으므로 매우 중요시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제일 먼저 정경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선지서(先知書) 또는 예언서라고 하는 네비임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과 열왕기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한 묶음의 소선지서를 포함하여 8권으로 되어있다. 보통은 역사서로 불리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과 열왕기가 네비임으로 분류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율법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율법 시대 이후 가나안에서 정착하여 후에 왕국을 이루고 멸망하기까지의 모든 시대를 예언의 시대로 보기 때문이다. 곧 예언자들이 나타나 율법을 해석하여 삶에 적용시켜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사무엘과 열왕기는 상·하로 구분하지 않고 각각 한 권씩으로 하며, 소선지서 12권을 묶어서 한 권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전체 권수(卷數)가 24권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다음, 성문서(成文書)라고 하는 케투빔은 시편, 잠언, 욥기, 아가서,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포함), 역대기의 11권으로 되어있다. 역시 역대기는 상·하의 구분 없이 한 권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히브리 정경은 율법서 5권, 예언서 8권, 성문서 11권으로 모두 24권인 것이다. 성문서는 주로 문학적, 교훈적 가치가 높은 시가를 비롯하여 지혜서와 역사서로 이루어져 있다. 성문서는 정경에 포함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시가서는 예수님 당시까지도 정경으로 인정되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후 랍비들의 계속된 수집 노력으로 AD 1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정경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책들 중에서 히브리 정경으로 확정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제각각 설명하고 있다. 랍비들의 전통에 의해서라는 견해도 있고, 오래된 문서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히브리어로 씌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율법서에 일치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모두 편파적인 견해로서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근거는 성경 자체의 내증(內證)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어떤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으며, 그것이 조작되지 않고 역사적으로 진실된 기록이라면 정경이 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의 표준으로서 정경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토라와 이스라엘의 세 가지 법체계

토라( )는 원래는 율법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히브리 구약 성경은 앞에서 설명하였지만 율법서인 (토라)와 예언서인 (네비임) 그리고 성문서인 (케투빔)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율법서인 토라이다. 토라는 곧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다섯 권의 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라라는 용어는 더 광의적으로 쓰이거나 더 협의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토라가 광의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성경 말씀 전체로서 곧 구약 성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약으로만 이루어진 성경을 (타나크)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토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토라라는 용어가 아주 협 의적으로 사용될 때는 그냥 율법을 의미할 때도 있다. 이는 헬라어의 노모스( ) 와 같은 말로서 영어로는 Law인 셈이다. 따라서 어떤 때는 단수로서의 개별 율법을 가리키기도 하나, 보통은 총체적인 율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협의적 개념의 율법으로서 토라는 계명과 율례와 법도라는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계명은 (미츠와)인데, 명령하다라는 뜻의 동사 (차와)에서 온 말로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율례는 (호크) 또는 (후카)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원 뜻은 자르다라는 (하카)에서 온 말로서 절기와 관습 등의 종교적인 규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법도는 (미쉬파트)인데, 재판하다 또는 다스리다라는 뜻의 (솨파트) 동사에서 온 말로서 원래는 판결, 재판, 심판의 뜻이었으나 개념이 확대되어 '법(Law)'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게 되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명과 율례와 법도라고 하는 용어들은 서로 간에 명확한 구분이 있어서,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의미들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계명(誡命), 명령(命令), 금령(禁令), 율례(律例), 규례(規例), 규정(規定), 정규(定規), 법도(法度), 법(法), 법령(法令), 공도(公度) 등의 단어들에 대하여 구별을 못하는 것이다. 이는 번역이 잘못되고, 또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 개역성경은 의미의 명확한 구분없이 혼역(混譯)을 하고 있으며, 또 보통은 그 정확한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채 적당히 해석하고 넘어가기가 일쑤이다. 개역 성경에서 이와 같이 세 종류의 히브리어 단어를 혼역하고 있는 것은 원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와 함께 이스라엘 법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법체계는 도덕법과 종교법 그리고 사회법이라는 세 종류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명' 즉 미츠와는 도덕법(Moral Law)의 핵심이 되고 있는데, 도덕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및 인간들 서로간의 관계를 규명한 것으로서 사실상 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Commandments)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타나는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십계명은 율법을 집약한 토라의 대표적인 내용으로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인간 스스로 판별할 수 있게 하는 기준으로 계시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를 따름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생명을 얻을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 내부의 부패성은 도리어 계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사망으로 가게하고 말았다고 했다고 로마서는 가르치고 있다.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 와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십계명은 내용상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들간의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주님께서는 마 22:35-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큰 계명으로 집약하여 주셨다. 십계명은 또한 '하라'라고 하는 적극적 명령과 '하지 말라'라고 하는 소극적 명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라'라는 명령은 우리의 속 사람 곧 영이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을 말하며 '하지 말라'라고 하는 명령은 육신의 정욕이 좇고자 하므로 금지해야 하는 '죄의 법'을 뜻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포함해서 성경에 나타나는 계명은 모두 613 개이다. 이 중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은 일 년의 날수와 같은 365개이며 '하라'라고 하는 계명은 사람의 지체의 숫자와 같은 248개이다. 이에 대해 랍비들은 우리가 일년 내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지체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율례'를 뜻하는 호크 또는 후카는 이스라엘의 종교법(Religious Law) 즉 성막, 제사, 절기 등을 규정한 것이다. 십계명 중에서 처음 네 가지는 선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것인가에 관한 명령인데, 율례는 이에 대해 다시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지키도록 명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벌써 출애굽기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다.

절기는 히브리어로는 (하그)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헤오르테)라고 하는데 둘 다 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뒤에 십계명을 주신 후에는 (미쉬칸)이라고 부르는 성막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제사는 히브리어로는 (자바흐)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뒤시아)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켜야 할 종교 법규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도'라는 뜻의 미쉬파트는 사회법(Social Law)을 이름인데 십계명 중에서 특히 인간들 상호간의 도덕적 규범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세부적인 법의 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 미츠와와 호크 또는 후카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성격을 가졌다면, 미쉬파트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의 국가들이 국가 존립을 위해 스스로 형성한 함무라비 법전 등과 같은 일반적 법체계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토라의 미쉬파트는 고대의 다른 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고대 법이 대개 귀족을 보호하기 위한 차별법의 성격을 띄고있는 반면, 미쉬파트는 법의 적용에 있어 차별이 없는 만민 평등의 정신과 생명 사랑의 원리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면, 토라의 세 가지 내용인 계명과 율례와 법도는 원어로써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법체계 상으로도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탈무드란 무엇인가?

오늘날 유대인이라고 하면 지파(支派)에 관계없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 탈무드( )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탈무드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의 보고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탈무드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탈무드는 오직 하시딤( )이라고 하는 소수의 종교인들만이 배우고 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체 유대인 중에서 약 6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시딤은 자녀들에게 세속교육은 아예 시키지 않고 탈무드 교육만을 시킨다. 그들은 세속의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인구가 먹여 살리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골치 아프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경건성은 나머지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줌으로써 오히려 존경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무드는 무엇인가? 탈무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것처럼 단순히 처세에 관한 책은 아니다. 탈무드를 알려면 먼저 탈무드의 근거가 된 미쉬나 ( )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미쉬나는 구전 율법을 모은 것이다. 율법 곧 토라( )는 좁은 뜻으로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을 가리키지만 넓은 뜻으로는 구약성경 전체와 구전 율법까지 포함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토라를 성문(成文) 토라와 구전(口傳) 토라로 나눠왔으며, 구전 토라를 구약성경인 성문 토라와 똑같은 권위로 인정하였다. 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들을 구전 토라로 이해하였고, 따라서 이것들은 잘 전수하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자, 더욱더 구전 토라에 중점을 두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방대한 규모의 토라를 약 AD 200 년경 랍비 예후다 하나시가 집대성함으로써 '반복'이라는 뜻의 미쉬나( )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쉬나는 농경법, 절기법, 여자에 관한 법, 손해에 관한 법, 성물(聖物)에 관한 법, 정결 의식법의 여섯 가지 내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는 다시 각각 10여 가지의 소주제로 나뉘어 유대인 삶의 모든 영역을 규범화하였다.

미쉬나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첫째는 씨앗(Zeraim)이라는 주제인데 주로 농경법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축복, 추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농산물, 교배 및 교합, 안식년, 거제물, 십일조, 두번째 십일조, 가루떡 제사, 금지된 과일, 첫 열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둘째로는 절기(Moed)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안식일, 안식일의 금지사항, 유월절, 세겔(성전세), 속죄일, 축제일, 초막절, 신년, 금식일, 두리마리(부림절), 절기제물, 소절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셋째는 여성(Nashim)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시형제 결혼, 결혼계약서, 서약, 나실인 서약, 간통, 이혼증서, 약혼 등을 규정한다. 넷째는 손해(Nezikin)에 관한 법이다. 즉, 첫째 문, 중간 문, 마지막 문(재산문제), 손해, 산헤드린, 맹세, 증거, 우상숭배, 아버지, 결정권 등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규정한 것이다.

다음, 다섯째로 聖物(Kodashim)에 대해서는 번제, 소제, 비제사 도살, 맏물, 가격결정, 대체예물, 악의 근절, 신성모독, 일일제사, 성전의 척도, 새제물 등에 관한 규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마지막 여섯째로 정결(Tohaarot)에 관한 규정은 용기(그릇), 천막, 문둥병, 암송아지, 정결, 제의적 목욕, 생리, 감염, 유출, 오염, 손, 줄기 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유대교 랍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쉬나( )를 해석하고 설명을 더하기 시작했다. AD 3-5세기에 활약했던 유대인 학자들을 특히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아모라임( )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미쉬나를 더욱 자세히 설명한 일종의 주해서로서 '완성'이라는 뜻의 게마라( )를 만들고, 이를 미쉬나에 덧붙여 탈무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탈무드( )는 원래 '배우다'란 뜻의 라마드( ) 동사에서 유래된 말로 '학자'라는 뜻이다. 탈무드란 다름 아닌 미쉬나를 본문으로 하고 이를 해석하는 주석으로서의 게마라가 덧붙여진 형태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게마라는 정확하게 말하면 다시 미쉬나의 해석인 할라카( )와 문집(文集)이라고 할 수 있는 하가다( )로 구분된다. 할라카는 걷다라는 뜻의 할라크( )에서 나온 말이다. 할라카는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복잡한 삶의 정황 가운데 발생하는 것들을 권위적으로 규제할 필요성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실 조상의 유전으로 믿고 있던 이러한 할라카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일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라고 하셨을 때 율법의 제정 정신을 알지 못하고 세부적인 조항에 얽매어 축조적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가다는 '두드러지다'란 뜻의 나가드( )에서 유래된 말인데, 나가드가 사역형(Hiphil)이 되면 '알리다'라는 뜻의 히기드( )가 되며 하가드는 그것의 명사형이다. 하가드는 잠언이나 교훈, 비유 등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통은 성경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고 더러는 공상적이거나 풍유적인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탈무드는 '미쉬나'와 그에 대한 해석으로서 '할라카'와 또한 '하가다'라는 문집(文集)이 포함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탈무드는 크게 미쉬나의 해석과 문집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보면 된다.

미쉬나와 탈무드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미쉬나의 절기(Moed) 편은 다시 12 장의 소주제로 되었는데, 그 중에서 안식일(Shabbath)은 첫 장에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탈무드는 안식일에 관한 그 미쉬나 본문에다 엄청나게 많은 해석을 가하여 그 본문과 해석을 모두 포함한 내용을 일컫는 것이다. 미쉬나에서 한 장으로 규정했던 안식일(Shabbath)에 대해서 탈무드에서는 독립된 한 권의 책이 될 정도이다. 그러므로 탈무드는 책의 권수만으로도 6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된 것이다.

탈무드는 다시 예루살렘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는데, 예루살렘 탈무드는 AD 5세기경에 갈릴리 지역에서 편찬된 탈무드로서 바벨론에서 편찬된 탈무드와 비교하여 팔레스타인 탈무드라고도 불린다. 단순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예루살렘 탈무드가 만들어진 후 한 세기가 지나서 바벨론 지역의 유대교 랍비들은 더 광범위한 바벨론 탈무드를 완성시켰다. 바벨론은 남유다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온 후부터 성전이 파괴된 이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중심지가 되었었다. 바벨론 탈무드의 특징은 섬세하기는 하나 지루하게 편집되었다.

한편 탈무드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시기에 토라와 미쉬나에 대한 해석과 많은 설교 내용이 담긴 (미드라쉬, 탐구)도 만들어져서 함께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는 곧 율법 해석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 외경이란 무엇인가?

외경(外經)이란 용어는 정경(正經)에 포함되지 않지만, 한때는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읽혀졌던 14권 내지 15권 책들(Non-Canonical)을 일컫는다. 외경을 영어로는 Apocrypha라고 하는데 헬라어 (아포크뤼파)에서 온 말이다. 이는 복수 명사로서 숨기다라는 (아포크륍토)에서 파생되었으므로 원 뜻은 숨긴 것 또는 감추인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외경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정경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약간은 이교적(異敎的)인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경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틴 '벌게이트'역(譯)으로 유명한 '히에로니무스'라고도 하는 제롬 교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롬은 당시에 존재하던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70인역(LXX)을 참고하여 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70인역에는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책들을 정경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외경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70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 그 책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읽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70인역에 포함된 외경은 원래는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므로 히브리어 외경 또는 구약 외경이라고 한다. 이는 모두 유대인들의 작품으로서 대부분 BC 3-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외경의 목록도 역사적으로 변천을 하게 마련이어서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보통 외경이라고 일컫는 책은 15권 정도이다. 그 내용은 토빗, 유딧, 에스더, 솔로몬의 지혜, 시락의 집회서,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수산나, 벨과 용, 아자리아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마카비 전후서, 에스드라 전후서, 므낫세의 기도이다.

외경에 포함된 책들을 살펴보면 역사와 설화, 설교, 묵시 문학 등 여러 장르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도 교훈적, 비유적, 신앙 고백적, 예언적이거나 아니면 역사적 기록 또는 이야기체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에스드라 전서와 마카비 전후서는 실제 역사를 다룬 것이고, 토빗과 유딧, 그리고 수산나, 벨과 용 등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적인 소설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 솔로몬의 지혜서와 시락의 집회서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설교와 같다고 할 수 있고, 므낫세의 기도는 한 편의 신앙고백적인 시이다. 마지막으로 에스드라 후서는 계시와 예언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성격상 묵시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외경을 전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의 저자들인 사도들조차 외경을 읽거나 성경을 기록할 때 외경의 일부 내용을 참고하기까지 하였다는 증거가 있으며, 또 외경이 교회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과 외경을 대조하여 보면 서로 평행구를 이루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는 신약의 저자들이 외경을 어느 정도 참조하였다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교회 역사에서 외경의 영향력을 살펴보면, 기독교 초기에 외경은 정경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서 덕을 세울 수 있다고 하면서 읽기를 권장했던 것 같다. 동방 교회 교부들은 외경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으나, 라틴 교회의 서방 교부들은 외경을 전혀 이단시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어거스틴 같은 자는 외경의 내용을 아무 거리낌없이 자주 인용하기도 하였다. 서방 교부 중에는 유일하게 제롬이 외경을 정경과 엄격하게 구분해야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였지만, 자신의 라틴 벌게이트역에다 일부 외경을 포함하여 번역하였는데, 그 결과 제롬의 벌게이트역은 오히려 후대 기독교 역사에 외경의 권위를 높여준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 결과 카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외경의 내용을 전혀 거부감 없이 사용함으로써 정경에 없는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잠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1546년경 이태리의 트렌트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외경을 제2 정경으로 선언함으로써 외경은 성경적인 권위를 가지고 통용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의 이러한 입장에 반하여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은 외경에 대해 정경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1647년의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에 의하면 외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더 이상 정경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후 개신교에서 성경이 번역되고 출판되는 경우에는 외경은 제외되고 오직 정경만이 수록되었다.

한편, 구약 외경 말고도 신약에 대한 외경도 AD 2세기 이후에 다량으로 만들어져서 약 70여개 이상의 복음서와 행전과 서신서 묵시록 등이 존재하여 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거의가 이교적이고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져 왔다.

그런데 이들 외경 외에도 위경(僞經)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책들이 더 있었다. 위경은 가짜 성경이라는 뜻으로 헬라어 (퓨슈데피그라파)를 번역한 말이다. 대표적인 위경으로는 에녹서, 모세 승천기, 이사야 승천기, 솔로몬의 시편, 십이족장의 유언 등이 있는데, 이들 역시 외경의 저작 시기인 BC 3-2세기경부터 만들어졌으며, 성경의 일부 내용에다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가공(架空)으로 꾸민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다만 그 당시 유대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길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현대 히브리어 탄생의 배경

히브리어는 불과 100 여 년 전만 하더라도 문자로만 존재했지 일상 언어로 사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국 이스라엘 땅을 잃어버리고 세계에 흩어져 유리표박하며 지내는 2000 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 대신 각지의 방언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는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닌 죽은 언어였다. 적어도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 예후다가 현대 히브리어를 살려내기 전까지 히브리어로 의사소통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죽었던 히브리어를 오늘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살려낸 사람은 1858년부터 1922년까지 살았던 벤 예후다( )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는데, 원래 랍비가 되는 교육을 받으면서 성경 히브리어를 습득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단순히 랍비가 되기보다는 유대 민족의 독립과 조상의 땅을 회복하고 조국어인 히브리어를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벤 예후다는 조국에 가서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일하려면 의사가 되어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세 무렵에 의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폐결핵 때문에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3년 뒤에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터키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조국의 땅이 남의 나라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통탄하였으며, 특히 유대인들이 그들의 원래 언어였던 히브리어를 더 이상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벤 예후다는 히브리어의 부활을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배워야만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첫 단계로 유대인들과 히브리어로 말하기를 시도했다. 특히 무엇보다 자신의 가정에서는 히브리어로만 말하기로 결심했다. 벤 예후다는 그의 부인에게도 히브리어 이외에는 말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아들이 태어나자 그에게도 히브리어로만 말을 가르쳤다. 아들에게는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는 듣지도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아들은 히브리어 이외의 언어는 배우지도 못한 유일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고, 또한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완전하게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도록 했다.

히브리어의 보급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 젊은이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벤 예후다는 예루살렘의 한 학교에서 교사직을 제안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대인의 2세들이 학교에서 공통의 언어도 없이 배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때 벤 예후다는 그 학생들에게 공용의 언어로 히브리어를 가르친 것이다. 그의 히브리어 교습은 성공적이었고 이것은 다른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한편으로는 반대에도 부딪혀서 종교적인 신성한 언어를 가지고 세속적인 언어를 만들고 있다는 악평까지 감수해야 했다.

벤 예후다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특히 신문을 발행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그가 만든 히브리어 신문은 히브리어가 종교적인 언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점차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큰 어려움 없이 그의 히브리어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또 그는 신문에서 새로운 히브리어 단어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는 나중에 히브리어 사전 편찬에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대한 이 사전은 그가 죽은 후까지 계속되어 그의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벤 예후다가 가지고 있던 히브리어 부활의 꿈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사회 분위기와 부합했기에 실현이 가능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에 이주해 올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수의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새로운 유대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국의 땅에서 그들의 모국어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벤 예후다의 히브리어 보급 운동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이들로 인해 가정과 학교에서 히브리어 사용은 금방 확산되었다. 벤 예후다를 비롯한 히브리어 부활을 꿈꾸던 이들의 노력으로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의 일상 언어가 되었고, 마침내 당시 팔레스타인의 위임 통치권을 갖고 있던 영국은 1922년에 히브리어를 팔레스타인의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그렇다면 성경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현대 히브리어는 모음 기호 없이 사용되며 또 필기체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이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언어였으나,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가 되지 않자 발음의 혼란 때문에 AD 7-8 세기경 맛소라 학자들이 정확한 모음의 보존을 위하여 모음 기호를 고안했다. 따라서 성경 히브리어란 보통 맛소라 모음으로 표기되는 맛소라 사본을 말하는데,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이런 모음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도 모음 기호를 전혀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처음 히브리어 단어를 배울 때는 모음을 붙여서 정확하게 읽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의 차이는 그밖에 동사의 시제에서 발견된다. 시제에서 차이가 난다. 성경 히브리어는 시제를 완료와 미완료의 두 가지로만 구별하지만,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시제를 과거, 미래, 현재형의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다르다. 성경 히브리어의 완료형은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과거형으로 사용되며, 미완료형은 미래형으로, 그리고 분사는 현재형으로 사용된다. 아무튼 현대 히브리어는 전혀 근거 없이 만들어진 언어는 아니며 성경 히브리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대 히브리어와 성경 히브리어의 단어의 뜻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유래

히브리어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자 모양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히브리어 알파벳을 가만히 보면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오히려 단순하게 생겼음을 알게 된다(문법편에서 히브리어 알파벳의 특징을 미리 익혀두기 바람). 즉, 히브리어의 모든 글자 모양이 한결같이 네모난 틀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히브리어 글자를 장방형 문자(Square Letter)라고 부른다. 이는 BC 3-2 세기 경 아람어의 각(角) 문자 형태를 빌려와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알파벳은 글자 모양이 서로 같다. 그러나 그 이전의 고대 히브리어 서체는 현재보다 훨씬 각이 예리하며 특이한 형태의 모양을 가졌었다.

히브리어는 북방계 셈어(Semitic)의 일종으로서 두말할 것 없이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런데 고대에 사용한 히브리어와 오늘날의 히브리어는 전혀 다른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역사적 변천을 겪었음을 알아야 한다. 히브리인( )이라는 명칭은 강을 건너온 사람이란 뜻인데, 성경(창 14:13)에 보면 BC 2100년 경인 아브라함 때부터 사용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한 지역인 갈대아에서 가나안으로 오는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이 갈대아 지역에서 사용한 셈어는 당시 고대 근동의 표준어인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인들이 살았던 고대 근동에는 수메르어와 악카드어가 있었다. 수메르어(Sumerian)는 BC 4000-3500년 경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사이에서 발현하여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들의 언어이다. 수메르어는 처음에는 상형문자(Hieroglyph)를 사용하였으나, 추상적 개념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곧이어 쐐기형 설형문자(Cuneiform)가 고안됨으로써 BC 3000년경부터 고대 근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수메르인들보다 먼저 정착한 셈족(Semitic)과 함족(Hamitic)이 있었으나 그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가진 수메르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문화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입었다. 수메르는 BC 2300년 경 수메르 북방에서 일어난 셈족의 일부인 악카드의 사르곤 왕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수메르어는 그 이후에도 악카드어가 확산되기 전까지 고대 근동의 대표적 언어로서 셈어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사용되어 졌다.

악카드어(Akkadian)는 셈어의 일종으로서 악카드인들이 수메르 문화를 계승하여 발전시킨 언어로서 역시 쐐기형 설형문자로 되어있으며 수메르어보다 더 복잡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수메르어와 악카드어는 고대 근동에서 한때 혼용되었으나, BC 1800년경 고대 바벨론의 하무라비 왕에 의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통일된 이후에는 앗수르, 바벨론에 의해서 사용된 악카드어가 고대 근동의 표준어로 지배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람어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악카드어 역시 다른 셈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갔다.

그런데 수메르어나 악카드어는 모두 독특하게 고안된 쐐기형태의 기호인 설형문자를 사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읽고 쓰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없었으며 사제(司祭)와 일부 학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계급의 언어였으므로 일반 대중적 언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중적 전달 수단으로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글자를 더욱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알파벳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알파벳은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페니키아인들이 근동과 지중해 지역으로 널리 유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한된 숫자의 글자를 가지고 마음대로 조립하여 무한한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후대 모든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아무튼 아브라함의 자손인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 사용한 셈어는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와 관련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그들이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거한 후 약 430 동안은 애굽의 문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또 실제 생활에서는 애굽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모세가 성경을 최초로 기록한 BC 1500년 경의 옛날 히브리어의 서체(Old Hebrew Script)가 애굽의 상형문자에서 일부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애굽어는 함어인데, 애굽은 오리엔트와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의 발상지로서 일찍부터 상형문자로 된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징은 알파벳적인 요소가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거주할 때 애굽 상형 문자에서 알파벳을 고안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모세가 성경을 기록한 시기엔 나중에 페니키아에 의해서 보급되는 그 알파벳이 벌써 고안된 후였다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최초 히브리어 성경은 원래 가나안 셈어에 바탕을 두면서도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이라는 양대 문명의 영향을 모두 받은 고대 히브리 서체로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히브리어는 히브리인들이 근동과 아프리카의 문명을 교류하는 가운데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하게 형성한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고대 히브리 서체로 된 사본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히브리어 성경은 거의 모두 장방형 문자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BC 3-2 세기 경 당시 팔레스타인의 보편 언어였던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훨씬 후대의 산물인 셈인데, BC 1 세기 경에 쓰여진 사해의 쿰란 사본과 AD 7 세기 경의 맛소라 사본 모두 장방형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채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는 낭송에 적합한 언어이다

구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산문체(散文體)보다 시문체(詩文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히브리어 산문은 무미 건조한 느낌을 주는 반면, 시문은 산문보다 훨씬 간결하고 또 운율을 타기 때문에 매우 감동적인 특색이 있다. 히브리어가 많은 시문으로 되어있는 이유는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어려운 환경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던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눈물을 표현하기에는 단순하고 간결한 시문이 적합했으며, 선지자들의 예언이나 간청, 회한(悔恨), 절규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깨달음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산문보다 시문이 적합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가 고안되기 전에 기록을 남길 수 없던 시대에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신앙과 정신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는 구전(口傳)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구두로 전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기억력이 필요했는데, 쉽게 기억하는 데는 산문보다 시문이 훨씬 유리했다. 그런데 시문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러운 결과로 낭송 또한 즐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낭송에 적합한 언어로 발전하면서 표현이 더욱 단순, 간결해지고 시문에 적합하도록 줄일 수 있는데 까지 줄어드는 경향을 거듭해온 것이다. 히브리어가 낭송에 적합한 언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문장 내에 단어 수를 줄이고, 또 단어 내의 글자 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려는 현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단어 수와 글자 수가 적어지는 대표적인 현상은 단어끼리의 교착성(膠着性)이다. 히브리어의 교착성은 대단하다. 예를 들면 관사는 반드시 다른 단어와 분리하지 않고 붙여서 한 단어로 만들며, 전치사와 접속사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항상 다른 단어와 붙여서 사용해야 한다. 또한 접두사와 접미사를 붙여서 품사를 다양하게 전성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인칭 대명사를 그 자체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동사는 그 자체에 주어를 가지므로 이를 내적 주어(Internal Subject)라고 하며, 형태로서 태(Voice)와 조동사의 개념까지 표현하므로 이러한 것들은 단어 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둘째로는 낭송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부호들이 계속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낭송을 위해 고안된 히브리어의 문장부호는 그 종류가 매우 많기 때문에 다 알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중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만 분리 부호와 연결 부호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분리 부호(Disjunctives)는 긴 문장을 끊어 읽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부호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히브리어에서 마침표는 솝파숙(Sophpasuk)이라고 부른다. 솝파숙은 문장과 절이 끝난후에 바로 좌측에 연이어서 붙이는 (:)모양의 부호로서 우리말의 마침표와 같은 구실을 한다.

다음, 씰룩(Silluk)이라는 부호는 문장이나 절의 끝나는 마지막 단어 밑에 메텍(휴지부호)과 같은 모양의 세로선()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솝파숙 바로 앞의 단어에는 항상 씰룩이 붙는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아트나(Athnah)는 긴 문장을 이등분하게 하는 쉼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약 이등분되는 지점의 단어 밑에 () 부호를 붙여서 나타내며, 씰룩처럼 그것이 붙은 음절의 모음을 장모음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설명한 씰룩과 아트나는 그것들이 붙은 음절의 모음을 장모음화시킨다. 즉, 단모음을 장모음으로 바꾸고, 유성쉐와를 완전 모음으로 변화시킨다.

한 문장을 삼등분하게 될 때는 세골타(Segholta)라는 부호가 사용되는데, 이는 첫 등분하는 끝 단어 위에 () 부호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 때 2/3의 위치에는 밑에 아트나를 붙인다.

자켑카톤(Zakephkaton)은 이등분된 절을 다시 나누어 사등분 할 때나, 삼등분된 절의 어느 부분을 다시 나눌 때 사용하는 부호로서 해당 단어 위에다 ()처럼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밖에 성경을 읽다보면 기타 (), (), (), () 등의 분리 부호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부호들은 문장의 휴지를 나타낸다고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다음에 연결부호(Conjunctives)는 단어 사이의 의미의 연결이나 낭독상의 연속성을 주기 위해 고안된 부호로서 (), ( ), () 등이 많이 사용되는 데, 황제급, 왕급, 공작급 등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이름들이 있지만,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끝으로, 히브리어 성경은 원래는 오늘날과 같은 장(章)과 절(節)의 표시가 아닌 독특한 구별하는 방식이 있었다. 큰 구절을 시작할 때는 대문자로 를 표시해서 알려주며, 적은 구절은 소문자 로 시작을 표시한다. 또 군데군데 나타나는 과 은 에서 시작해서 로 끝나는 각각의 단락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곧, 은 일종의 큰 휴지부호가 되는 셈이며, 그곳에서 일단 끊어서 읽는 것이 옳은 것이다.

 

케티브와 케레는 무엇인가?

히브리어 성경 본문은 모세 이후 수많은 서기관들의 손에 의해 필사본으로 베껴져서 전해져 내려왔다. 사본들이 처음에는 원본과 일치했을 것이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본 수가 점점 많아지고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본들이 생기게 되자 원본을 회복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원본 회복에 대한 유대인들의 노력은 대단하였지만, 이미 수많은 세월을 거쳐 많은 곳에서 여러 형태로 변질된 사본을 하나의 통일된 원본으로 완전하게 회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각 유파별(流波別)로 최선을 다해 원본 회복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유파 나름대로는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AD 2 세기경부터 시작되어 7-8 세기경에 완성된 마소라 학파의 사본을 최고로 치게 되었는데, 마소라 학파의 서기관들은 히브리 성경의 무오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표준 필사법을 제정하고 글자 수를 하나씩 세어가는 등 피나는 노력으로 필사작업을 해왔으므로 마소라 사본 완성 후에는 거의 오류 없이 성경 본문을 전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 어떤 단어에서는 자음이 틀린 경우가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히브리인들은 서기관들의 노력을 존중하여 틀린 자음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서 전승하였다. 그 대신 난외(欄外)에 정확한 자음을 별도로 표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특히 맛소라 모음(Massoratic Vowel) 표기가 발명된 이후에는 원문의 오류를 고치지 않고 해당 단어에다 모음만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정확한 자음은 난외에 표시하는 방식을 고수하였다.

이 때 난외에 정확한 자음이 있다는 것을 표시해 주는 어떤 부호를 케티브( ) 라고 하는데 '기록되어진 대로(written)'라는 뜻이다. 케티브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단어의 틀린 자음 위에 작은 동그라미 표시()를 해준다.

한편 정정해서 읽을 자음을 난외에 표시한 내용을 케레( )라고 하는데 '이렇게 읽혀져야 한다(must be read)'라는 뜻이다. 즉, 성경을 읽다가 케티브와 케레가 나오면 케티브가 표시된 글자의 자음은 틀린 것이므로 그 글자의 모음만을 떼어서 난외에 표시한 케레의 자음에다 붙여 읽으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맛소라 사본의 창세기 8:17에는 이끌어 내다라는 뜻의 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것을 그대로 읽으면 '하웨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두 번째 글자 에는 케티브 표시가 되어있다. 따라서 이 글자의 자음 (와우)는 틀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글자를 정정한 케레가 난외에 있을 텐데, 찾아보니까 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케티브 표기가 되어있는 의 모음을 떼어서 케레(이렇게 읽어라)의 자음인 에다 붙여 읽으면 (하예체)가 되는 것이다.

또 창세기 24:18에 나오는 단어인 (한나아라)는 끝의 글자에 케티브 표시가 되었는데, 그것은 여성 어미 (하)가 빠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외에서 케레를 찾아보면 자음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케티브 모음을 케레 자음에 붙여서 읽으면 (한나아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24:33에는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베풀다라는 뜻의 (야삼)의 홉알형(사역형 수동태)인 (요우삼)과 접속사 (와)가 합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원래는 (와요우삼)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글자 위에 케티브 표시가 되어있고, 이것을 난외에서 찾으면 가 나타난다. 따라서 케레 자음인 에다 케티브인 의 모음을 붙여서 읽으면 (와요우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나오는 단어에는 케레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이다. 히브리인들은 제 삼 계명을 오해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그 대신 의 네 개의 자음을 신성 사문자(神聖四文字)로 여겨서 거기에다 나의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서 (예호와)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고있는 (예호와)는 원래 '스스로 있는 분'이라는 뜻으로 추측해볼 때 (하야)동사의 미완료형이 다시 명사형태로 된 (야웨)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름은 사물에게만 중요한 것이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직 우리들은 하나님의 실존을 알고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므로 그런 것 때문에 쓸데없이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히브리인들은 (예호와)라는 단어를 만들고 나서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해야할 때는 그런 모양으로 쓰고 나서 읽을 때는 반드시 (아도나이)로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호와)는 하도 많이 나오므로 일일이 케티브와 케레를 표시하지 않고서도 자동으로 그렇게 읽고 있는 것이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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