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고대 문헌 속에 나타난 출애굽 자료와 연대기설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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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후 480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근거 출애굽 년대 산출해” 

 

세계 지도상에 나타나는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추적하여 보면 나일강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의 사이가 비교적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인더스강과 황허강은 멀리 떨어져 있다.

 

비옥한 초승달지역(Fertile, Crescent)이라는 말은 나일강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일찍부터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한 지정학적 연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에서부터 시작한 초승달 문명권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을 거쳐 나일강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강들을 따라 비옥한 농토가 펼쳐져 있다. 도시국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원하였지만 중앙집권적 국가로서의 발전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는 이집트에서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이집트는 서쪽과 남쪽 지역이 불모의 사막지대이다. 북으로는 지중해가 있고 남으로는 호수와 습지대가 있어서 천혜의 요세와 같은 지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지중해성 바람은 남쪽으로 불기에 반대로 흐르는 나일강 상류지역으로 배를 띄우면 돛을 사용하여 쉽게 남으로 갈 수 있었고 북으로 이동할 때에는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해로를 이용할 줄 알았다.

 

이집트가 농경문화를 이루는 국가가 된 배경에는 나일강에 의해 상부에서 흐르는 지류에 따라 우기철이 되면 천연 비료와 같은 비옥한 토양들이 하류에 가라앉아서 기름진 토양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공급하여 주었다. 나일강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처럼 우기철에는 심하게 범람하지는 않았다.

 

나일강에 의해 이집트 문명의 뿌리가 된 농경문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언급하신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그 배경이 되는 지역의 기반은 델타지역인 나일 삼각주 지역이었다(창 12:1-2: 16:13-14; 46:34).

 

분단된 이집트가 기원전 3100년경 즈음 바로 메네스(Menes, 3150-3050 BC)에 의해 상하이집트로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로서 본격적인 왕정국가의 틀과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고대 이집트의 300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와 깊은 관계를 언급하려면 출애굽 역사를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출애굽 역사를 어느 시대로 보는가는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많이 있다. 진보적 13세기 설을 주장하는 견해로는 람세스 2세(RamsesⅡ, 1279-1212 BC) 통치시기로 본다. 반면 15세기 설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적 견해에 의해 추정하기로는 아멘호텝 2세(Amenhotep Ⅱ, 1453-1419 BC) 통치시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20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가? 13세기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세토스 1세(Sethos Ⅰ, 일명 SetiⅠ, 1291-1278 BC)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Ramses Ⅱ, 1279-1212 BC) 시기로 본다.

 

람세스 2세가 동쪽 라암셋에서 시작한 왕실 거주지 공사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로 부역한 출애굽기 1장 8-11을 근거로 하여 출애굽 당시의 바로로 해석하는 학설이다. 또한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인 메르넵타(Merneptah, 1212-1202 BC)가 그의 전통기념비에서 이스라엘을 거론하므로 이스라엘이 그 당시에 확고하게 정착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경 기록의 연대기 해석보다(왕상 6:1) 고고학적 견해를 우선으로 두고 있다.

 

이러한 13세기 설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부르스(F.F. Bruce), 헨리 프랭크(H.T. Frank), 헤리슨(R.K. Harrison), 야딘(Yadin), 멘덴홀(G.E. Mendenhall), 고든(C. Gordon), 엔더슨(B.W. Anderson), 알트(A. Alt), 피트리(E. Petrie), 라솔(Lasor), 존 브라이트(J. Bright), 글루엑(N. Glueck) 등이다.

 

그러나 비교적 15세기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Text)로 그 기원 연대를 설정한다. 열왕기상 6장 1절은 출애굽 역사를 솔로몬 즉위에 대한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는 기록에 의존한다. 솔로몬이 즉위한 지 4년 후에 성전이 건축되었고, 이것은 출애굽한지 480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출애굽 년대를 산출하는 것이다. 솔로몬 즉위 연대는 기원전 966/960/957년 경으로 대부분 동의한다. 이를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출애굽 사건은 기원전 1446/1440/1437년이 된다.

 

또한 사사기 11장 26절은 이스라엘 민족에 의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사사 입다보다 300년 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기원전 1100-1050년 시대에 활동한 인물이므로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전쟁은 기원전 1400-1350년 경으로 년대를 산출할 수 있다. 이렇게 연대를 계산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출애굽 당시의 바로는 아멘호텝 2세(Amenbotep Ⅱ)가 된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훈련을 받았을 당시의 바로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으로 후대사가들에 의해 평가받은 투트모세 3세(Thutmose Ⅲ, 1504-1450 BC) 시대가 된다. 이들이 통치하던 시대는 많은 성경기록이 언급하고 있는 출애굽 배경 시대를 조명하는 입체적 재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15세기 설을 지지하는 학자로는 메릴(E.H. Merrill), 촬스 알렝(C.F. Aling), 시크프리드 H. 혼(S.H. Horn), 레온 우드(Leon Wood), 존 빔슨(J.J. Bimson), 에드워드 J. 영(E. D Young), 라이트(A. Right), 월터 카이져(W.C. Kaiser.Jr), 알프레드 J. 허트(A.J. Hoerth), 괴딕(Goedicke) 등이다.

 

그 무엇보다도 고대 역사가들의 자료속에 15세기 설을 주장하는 기록을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신관 마네토(Menetho)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힉소족처럼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James Orr de.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olopaedia<Grand Rapides : Wm B.Eerdmans Publishing Co. 1955. 1053>). 그의 기록에 의하면 년대가 기원전 1550년경이다.

 

또한 마네토의 잃어버린 기록을 재인용한 인물로는 요세푸스가 있으며 그 또한 15세기 설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Contra Apionen. J.ⅩⅣ 75-82). 그밖에도 헤로도투스(Herodotus, Polymnia, trans C. 89), 그리이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Geofraphy, trans xvi:c2), 디오돌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 Library of History. trans, lib. l. 2p. phot) 등이 출애굽 기록을 객관적으로 남겼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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