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의 애환이 깃든 수산성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지학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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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과 에스더의 숨결 지금도 느낄 수 있어”

수산궁을 안고 있는 수사(Shush)는 이란 남서쪽에 있는 아와즈에서 북서쪽으로 117km쯤 떨어져 있는 곳이다. 수사는 선사시대에서부터 페르시야 제국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야 문명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페르시야 문명 중심지 ‘수사’

수사는 특히 사르디스(사데), 엑바타나(악메다), 페르세폴리스로 가는길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도시였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수사에는 왕들의 국가가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느헤미야 1장 1절과 에스더 1장 2절은 수산궁(susa the capital)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다리우스 2세는 그가 기록한 비문에서 궁정 건물을 건축한 자재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목제는 레바논과 간다라 카르마니아에서 가져왔으며, 금은 사르디스와 박트리아에서, 유리제품은 소그디아에서, 터어키옥은 코리스미아에서, 은과 흑단은 이집트에서, 벽의 장식품은 이오디아에서, 그리고 상아는 이디오피아에서, 돌기둥은 엘람에서 들여왔다.”

궁전을 건축하는 장인(匠人)들로서는 이오니아의 사르디아 석수장이들을 비롯해 메대와 이집트에서 온 금 세공사들, 이집트와 사르디아의 목수들, 바빌론에서 온 벽돌굽는 인부들이었으며 이들을 동원하여 웅장한 궁정을 건축하였던 장소가 수산궁이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 1세(아르닥크세르크세스 1세, Artaxerxex, 465-424 BC)의 통치기간 동안 화제가 일어나 전소되었으며 그후 아닥사스다 2세(ArtaxerxesⅡ, 404-325 BC)가 제건하였다.

수산궁은 여러 강에서 물을 공급받았는데 서부로 흐르는 강이 케르케강 (Kerkhen)이다. 앗시리아인들은 이강을 우크누(Uqnu: 유리빛, 하늘빛)강이라고 불렀다. 그리이스인들은 이 강을 코아스페스(Choaspes)라고 불렀으며 키루스대왕은 오직 이 강의 물만 마셨다고 알려져있다(Herodous Ⅰ. 188).

수사의 동부로는 아베디즈(Ab-e-diz)강이 흐르는데 이 강은 때때로 수로에 의해 케르케강으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엘람인과 앗시라인들은 이 강을 이디데(Idide)강이라고 불렀다. 수사궁 자체의 위치는 샤우르(Shaur) 동쪽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수로를 성경은 올래(Ulai)강이라고 불렀다(단 8:2).

수사에는 4개의 중요한 작은 언덕들이 있는데 아크로폴리스와 아파타나(Apadana), 빌레로얄(Ville Roylae), 빌레데스 아르티산스(Ville des Artisans)라고 불렀다. 아크로폴리스와 아파타나 동쪽지역에는 상인들과 예술인들 그리고 법정관리인들이 거주하였던 언덕의 거주터 폐허가 남아있다.

1165년 스페인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투델라 벤쟈민이 이곳을 방문하여 7000여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였던 지역의 폐허와 14개의 회당터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이 수사였다는 사실을 발굴 결과 증명한 사람은 영국인 헤리 처칠(Harry Churchill)과 윌리엄 토프루스(Willaim K. Loftus, 1850년)였다. 1853에서 그 다음해까지 이들은 아케메네즈왕조의 계단식 극장을 발굴하였다. 프랑스 고고학자 마르셀(Marcel)과 진네듈라포이(Jeanne Dieulafoy)는 1884년에 발굴을 시작하여 2년후 마칠 때까지 접견실 궁전자리의 위치를 발굴하였다.

수사의 황금시기는 아케메네즈왕조(Achaeminian Empire)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기원전 324년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이곳 수사에서 약 80명의 그리이스인들과 1만명의 군인들이 페르시야의 처녀들과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현재 수사에는 소위 예언자 다니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 있는데 다니엘은 시아파 무슬림들이 공경하는 예언자로 지금도 숭배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고대 엘람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엘람인들의 시조는 엘람으로 창세기 10장 22절에는 셈의 아들로 언급되어 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동방의 왕들로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그돌라오멜(Chedoralaomer)이 엘람의 왕이었다 (창 14:1). 다니엘은 올레 강변에서 환상을 보았으며 또한 올레강변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단 8:16).

이 수사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役事)을 만들어 내신 사건이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다. 페르시야의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Ⅰ,486-456 BC)는 왕비 와스디가 자기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크게 노하여 왕비의 직을 박탈하여 버린다.

그 자리를 대신할 왕비를 간택하게 되는데 베냐민 지파의 유대소녀 에스더가 간택된다. 그녀의 사촌오빠 모르드게는 그녀의 부모가 세상을 떠날때 그녀를 양녀로 삼았다(에 2:5-7). 그녀가 오빠 모르드게의 명대로 유대인임을 숨기며 왕비가 되었다.

그후 그녀의 오빠이자 보호자였던 모르드게가 아각의 후손 하만의 적의를 사게 된다. 하만은 왕을 선동하여 제국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섬멸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하만은 유대인들의 율법이 다른 모든 민족들과 달라서 그들이 왕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서 왕을 설득시켰던 것이다(에 3:8).

모르드게가 이 음모를 알게 되고 에스더에게 알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촉구하자 에스더는 왕의 부름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왕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자 모르드게는 경고와 격려로 에스더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자 에스더는 왕의 부름없이 왕에게 나아가 왕의 칙령이 유대백성은 물론이요 에스더 자신도 죽이려고 계획한 하만의 음모임을 폭로한다. 그 결과 하만은 모르드게를 교수하기 위하여 마련해 놓았던 교수대에 자신이 매달려 처형되었고, 유대인 모르드게는 신임총리가 되었으며, 에스더 왕비는 같은 민족 유대인들의 집단처형 위기에서 그들을 구원시킨 여인이 된다.

이스라엘의 ‘부림절’ 시원지

이때부터 원수의 손에서 민족을 구원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절(Purim)이라고 부르는 민족절기를 지키게 되었다(에 9:17-32).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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