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답하다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모두 따른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하지만 일부 학자들 이외에 그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당파도 다른 노론계의 연천(淵泉) 홍석주·대산(臺山) 김매순·추사(秋史) 김정희 등 당대의 큰 학자들은 다산의 깊고 넓은 학문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썩어서 망해가던 나라의 일반 사람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란 묻힐 수 없고, 큰 학문은 언젠가 진가를 알아주는 세상이 오기 마련이다. 철종 말엽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삼정 문란의 폐해로 백성들이 신음하자 재야 학자들이 나라를 건질 방책을 임금에게 올리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독창적인 성리학자로 온 나라에 큰 이름을 날리던 호남의 대학자 노사(蘆莎) 기정진은 나라를 건질 방책이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책에 들어있노라고 임금에게 알렸다.

 그러나 임금이나 당론자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민심서』는 소문을 타고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각 고을 수령들은 다산의 『목민심서』『흠흠심서(欽欽新書)』에 주목했다. 고을을 다스리는 실현성이 높은 책으로 여겼다. 책을 서로 필사하며 중요한 참고서로 삼았다. 매천(梅泉) 황현의 『매천야록』에 기록된 얘기다.

 

다산 정약용

 

 2010년 미국에서 『목민심서』가 영역됐고, 탄생 2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유네스코에서 다산을 역사적으로 기념할 인물로 선정했다. 교육·문화·과학을 통해 각국의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룩하자는 유네스코의 정신에 다산의 사상과 정신이 부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목민심서』가 오늘에도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현대사회가 가장 갈구하는 일은 올바른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도 훌륭하고 자격이 충분한 지도자가 있을 때만 그 장래가 밝다. 『목민심서』의 첫 페이지는 ‘다른 벼슬이야 구해도 좋으나 통치자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라고 정확하게 못박고 있다.

 목민관(牧民官)이야말로 한 지역의 3권을 손에 쥔 통치자로서 작은 나라의 제후(諸侯)와 같다는 의미에서 ‘통치자’로 번역했다. 뭇사람의 추대나 정당한 공거(公擧)제도에 의해서 추대되거나 선정되는 것이 목민관의 지위이지, 자신이 권력의 탐욕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벼슬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검증이나 다양한 평가를 통해 지도자로서 덕목이나 능력이 있다고 인정될 때만 목민관의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맞고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고르는 일과도 직접 연결된 것임을 여기에서 알게 된다. 겸양의 미덕을 갖추지 못하고 자기만이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잘났으며 가장 훌륭하다고 떠드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나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목민심서』가 요구하는 목민관의 덕목은 인격과 솔선수범이다. 그래서 다산은 『논어』의 ‘자기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질 것이요, 자기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라주는 사람이 없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지도자 자격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가장 바르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인격을 지녀 모든 사람 먼저 자신이 가장 옳게 행동하는 지도자라야만 진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진정한 리더의 자질은 바로 그런 데서 나온다는 뜻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목민심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무한한 지식과 능력을 몸 속에 쌓아두고 남들이 추대해주고 밀어주는 지도자의 인격을 지녀야 하고, 자신이 옳고 바를 때에만 진정한 리더십이 나오는 것이지, 하고 싶어서 하는 벼슬,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남들만 깨끗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지도자는 리더도 아니고 진정한 권력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목민심서』는 진정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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