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창조

  

시간의 창조 上

현존하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과학적 설명은 창조 행위 이후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창조가 이뤄진 이후 인류가 터득한 모든 지식 정보는 우주에 함축된 전체 지식의 정보량에 비하면 먼지 한 점에 불과하다. 유한한 지식 정보로 무한한 지식정보를 설명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신학과 과학의 만남'의 기획은 신학의 배타성과 과학의 오만,이 양쪽을 모두 경계하면서 유한한 지식 정보의 폭과 창조 섭리에 대한 지평을 넓히기 위해 시도됐다. 특히 '성서는 진리를 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성서의 무오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역사에 개입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드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편집자

성서의 무오성 수용에 큰 걸림돌들은 ‘6일창조설’(창 1:3∼31 )과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들 수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창조가 6일 동안에 이뤄졌다는 창조기사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히 허구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 의해 성서의 무오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받게 됐다.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매우 강한 별이나 최근 은하계의 중심부에서 발견되고 있는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시간이 매우 천천히 흘러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컨대 사랑하는 연인이 각각 다른 우주선을 타고 남자는 어느 블랙홀의 ‘사상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넘어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여자는 사상의 지평선 밖에 정지해 있다고 가정하면 이 연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의 상대성 효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사상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엄청난 중력 때문에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중력의 경계선을 말한다.

이때 블랙홀에 갖혀 있는 남자가 사상의 지평선 밖에 있는 여자의 시계를 보면 초침이나 분침은 아예 보이지 않고 시침이 헬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여자의 시계 뿐만 아니라 지평선 밖의 은하와 행성들도 매우 빨리 회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블랙홀에서 남자의 1시간은 지평선 밖에 머물고 있는 여자에게는 수천 혹은 수억시간에 해당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다. 이와 같이 우주에서는 절대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상대시간만 존재한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관찰자의 상황에 따라 측정되는 시간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구에서 100년이 다른 우주에서는 100억년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바울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2000여년 전 이렇게 갈파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처음으로 창조됐던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당시의 시간은 사상의 지평선 안에 갖혀 있었을 것이란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이후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이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6일창조설을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과학계로부터 신앙과 과학을 동일시하는 ‘비과학적 과학자’로 평가절하됐다. 아인슈타인은 6일창조설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 이론에 의해 6일창조설이 뒷받침되는 토양이 마련됐다는 데서 그의 천재성은 크리스천들에게서 칭송 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이 이론에 근거해 씨앗우주론(2004년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이 태동돼 6일창조설은 구체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졌으며 특히 ‘무에서 유로의 창조행위’에 대한 설명 또한 명쾌해졌다. 이 이론은 우주 창조를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씨앗에서 꽃망울이 맺어지고 그것이 꽃봉오리가 되고 다시 활짝 피어나 만발하는 것처럼 우주 역시 5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에서 창조된 우주가 시공 4차원으로 펼쳐졌을 것으로 가정한다. 씨앗우주는 우주가 창조될 때 말 그대로 우주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씨앗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씨앗우주론대로 5차원이 존재한다면 5차원의 에너지가 4차원으로 유입될 때 5차원에서는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지만 4차원에서는 ‘무’에서 에너지가 탄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씨앗우주론은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창조론을 떠받치는 버팀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8년 G 가모프가 주장한 빅뱅(대폭발)이론 이후 그 가설이 지금까지 우주 생성이론에서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폭발이론은 우주는 최초의 초고온 초고밀도의 불덩어리 에너지의 폭발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법칙으로는 최초 빅뱅 당시 우주의 엄청난 에너지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씨앗우주론은 최초의 초고온 초고밀도의 불덩어리 에너지의 유입 근거를 설명하고 있어 빅뱅이론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6일창조설’ 그리고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짐에 따라 성서의 무오성을 역설했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외침이 난크리스천 천체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시간의 창조 (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역사 문헌 가운데 이 문장만큼 간단 명료하면서 카리스마가 강하게 배어 있는 구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문장은 천재적인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신학자 장 칼뱅(1509∼1564),카를 바르트(1886∼1968) 등 과학과 신학의 거장들에게 숱한 번민의 밤을 지새우게 한 구절이다. 이들에게 과학적 신학적 번민을 더한 것은 이 메시지가 최초로 시간의 도입을 알리는,그래서 우주 역사의 시작이라는 데 있었다.

따라서 시간의 실체에 대한 이해 없이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사실상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학자는 물론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첫번째 구절인 ‘태초’에 대한 명쾌한 이해는 곧바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성서의 무오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실체는 무엇일까? 20세기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시간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시작된다. 시간도 공간과 동일한 물리적 차원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된 차원이라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상대성 이론의 등장 이전 즉,뉴턴의 운동법칙이 지배했던 17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는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물리량이었다. 이 개념은 지금도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다수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시간의 실체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며 적어도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과학적 접근 역시 어렵다는 것이 양쪽 학자들의 주장이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버금 가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정지한 사람보다 시간이 훨씬 천천히 흘러간다. 그 예로 ‘쌍둥이 패러독스’(twin paradox)를 들 수 있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형제 중 형을 빛의 속도를 내는 우주선에 태워 지구로부터 1000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여행하고 돌아오도록 하면 지구에 남겨진 동생은 나이가 2000살이 되지만(죽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우주선의 형은 아주 어린 나이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구의 시간과 관측된 그 별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에서는 절대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 시간만 존재할 뿐이다.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나이를 150억∼200억년,지구의 나이를 45억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론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불과 1만년 미만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10억광년 떨어진 별빛이 지금도 관측되고 있는 천문학계의 보고는 창조론의 주장을 뒤엎기에 충분한 자료라고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창조과학자들의 견해다.

그 단서를 제공한 과학자는 다름 아닌 천문학자다. 호주 시드니 머쿼리 대학의 이론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 교수는 과학잡지 ‘네이처’(2002.8.8)에 과거 별빛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관측결과를 발표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대폭발시 빛의 속도는 무한대였다가 서서히 느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창조 당시 데이비스 교수의 주장대로 빛의 속도가 무한대였다면 그때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정지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시간이 과거에도 똑같은 속도로 흘렀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과학적 오류하는 지적이다.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창조론이 오히려 천문학자에 의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간과 함께 시간의 출발을 알리는 태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3400여년전,그것도 성서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태초는 우주역사 즉,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시작이기 때문에 인간적 시간(chronos)을 의미한다. 이와함께 무한한 하나님이 스스로 계셨을 때의 태초(요 1:1)는 신적 시간(chairos)으로 굳이 과학의 설명을 빌리자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그래서 공간도 물질도 없는 ‘무의 영원한 때’를 일컫는다. 성서 기자는 성서의 무오성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마 5:18)

 

 

시간의 창조 (下)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사 40:22)

마치 둘둘 말려진 카펫이나 포장을 펴듯이 하나님께서 하늘을 쭉 펼쳤다는 의미다. 여기서 하늘(the heavens?NIV)이란 ‘하늘들’ 혹은 ‘천체들’로 번역될 수 있는 복수의 개념으로 우주에 펼쳐져 있는 천체들과 공간을 의미한다. 적어도 이 구절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이전의 과학자와 신학자들에게는 ‘성서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공간 창조의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말씀이 그 이후에 또 다시 전개되고 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사 42:5)

여기서 하늘을 창조하여 폈다는 것은 ‘확장시켰다’는 의미로 공간 창조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이후에야 과학적으로 수용이 가능해졌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공간이나 시간이 휘어지거나 말리거나 차일처럼 펼쳐질 수 있다고 증명한 데 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본질을 물질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휨으로 해석했다. 평면에서 직진하는 공도 휘어진 평면에서는 휘어져 돌아가듯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 역시 단순히 태양의 중력에 의해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휘어진 우주 공간에서 지구가 원을 그리며 휘어져 돈다는 설명이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 역시 공간과 묶여 있어 휘어지거나 말리거나 펴지기 때문에 길이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일반상대성 이론이다(본보 5?12일자 26면 참조). 그 한 예로 과학자들은 종이가 둘둘 말려진 상태에서 쭉 펴는 과정을 꼽는다. 처음 말려진 상태에서는 종이의 양 끝부분이 매우 가깝게 붙어있으나 펴지면 멀어지게 된다.

이때 종이 위에 메뚜기(사 40:22)가 있다고 가정하면 처음 말려진 상태에서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가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겠지만 펴지면 펴진 만큼의 공간에 따라 가는데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 물론 이 시간은 메뚜기의 입장에서 측정한 결과다. 만약 메뚜기의 입장이 아닌 양쪽 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측정하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이처럼 차일 같이 쭉 폈다는 공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의 문제가 동반되고 시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의 문제가 수반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서로 묶여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서의 이런 구절은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선지자 이사야는 초기 우주상태에서 하나님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인간들이 메뚜기 같이 작게 보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사 40:22)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이전까지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고정돼 있고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구상에 박혀 있는 천체들이 하루에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이사야 시대에는 이런 천체물리학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2700여년전 이 이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메뚜기가 보는 시간은 종이 즉,우주가 얼마 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초기 우주 상태인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극히 짧게 관찰됐지만 엄청난 속도로 계속 펼쳐진 지금의 우주는 그야말로 장구한 시간으로 계산될 수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창조 여섯째날까지는 얼마 펴지지 않은 우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창조기사에 등장하는 첫째날부터 여섯째날(창 1:5∼31)까지 ‘날’의 개념은 학자마다 차이가 없지 않지만 24시간일 것으로 보는 과학자가 많다.

성서의 무오성에 대해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케네스 캔저 박사는 “성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바로 이 무오성은 과학의 발달에 의해,특히 신학과 과학의 만남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성서는 전적으로 인간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다. 전자는 인간의 글이 갖는 모든 본질적 특징을 가진 반면 후자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성서 기자들의 언어가 갖는 오역과 오해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언어라는 불완전한 매개체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에게 자신의 뜻을 성서를 통해 전달하고 계신다. 그 뜻은 성서의 무오성에 의해서만 전달이 가능하며 그 무오성은 신학과 과학의 만남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남병곤기자 nambgon@kmib.co.kr
◇도움말 주신 분:한국창조과학회 권진혁(영남대 물리학) 이철훈(한양대 물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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