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교회에서 떠나는 청년들

 

 

1. 교회를 떠나는 청년/대학생들

위의 자료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 교회의 36% 정도에서 청년/대학생 출석 인원이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90년대부터 심각하게 인식돼 왔다. 이에 대한 원론적인 대안모색만이 있을 뿐 구체적인 대안모색과 모델제시가 부재한 가운데 한국교회는 21세기를 맞았다.

어릴 때 손에 이끌려 고등부까지는 교회에 나올 수 있다.하지만 이들이 청년이 될 때까지 교회에 오는 분명한 이유를 모르고, 율법적이며 교리적인 신앙으로 머물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구원의 확신과 십자가의 은혜가 회복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많은 청년, 대학생들이 교회에서 교사, 성가대 등 많은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 대학생들이 교사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청년, 대학생 사역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저들은 오히려 복음이 무엇인지,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얻는 것인지, 제자로서 어떻게 성장하는 것인지 등 제자도의 기초를 알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멋진 미디어를 교회에 구비해 놓고 있더라도, 청년들이 기독교의 핵심을 알지 못할 때 교회는 힘이 없어진다. 결국 청년들이 교회를 나오는 이유는 사랑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교회는 그 갈증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한다.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2. 헌금 못하는 청년/대학생 '교회의 관심밖'

2002년 12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가 발표한 '교회교육 백서'에 따르면, 청년 대학부의 1년 예산 규모가 평균 200만원 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교육부서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액수이다. 또한 교회 전체예산에서 5%미만을 교육예산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응답교회의 42% 이상이나 되었다.

교회의 전체예산 중에서 교육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교회가 교육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사실 재정이 있어야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교육 및 활동공간도 마련할 수 있고, 잘 준비된 전임사역자도 세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청년대학생들이 강하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교회의 지도력이 다른 교육부서만큼이라도 평균적 관심과 배려를 청년대학부에 기울이고 있는 지의 여부이다. 청년대학생들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말씀 속에 잘 훈련되기만 하면 물질도 아낌없이 희생적으로 하나님 나라를위해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교회지도자의 그들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그들을 주님 품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3. "세대차이가 난다구요"

교회가 너무나 기성세대 중심으로 가고 있다. 요즘 청년대학생들은 기성세대와는 코드가 다른 세대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인터넷과 특별히 멀티미디어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과의 간격을 만들어 줄 뿐이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르다'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지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순종만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쌍방적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고, 수평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더 이상 권위적인 방식이 통하지 않음에도, 교회가 이를 유지하고자 할 때 청년들은 흔들린다. 교회 지도자들은 더 이상 그들을 교회의 소모품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교회 지도자들은 청년 시절, 그들이 겪는 고민과 방황을 감싸안고, 그들과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지금은 21세기, 뉴미디어 사회입니다"

21세기 사회를 정보화 사회, 또는 뉴미디어 사회로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한국 교회 교회교육의 시설, 기자재의 수준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교회 교육백서'에 따르면 교회가 교육 기자재에 있어서 아직 OHP(전체 응답자 교회의 72%)를 활용하는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자재의 구비와 관계없이 이를 활용하는 활용도는 더욱 낮은 상태이다. 이러한 교육시설 및 기자재의 낙후성은 군소교회나 농어산촌 교회일수록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전반적인 교회가 문화로서의 청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정보화시대는 자기 교회만 아는 청년들에게 다른 교회의 모습을 전하여 준다. 또한 이는 청년들의 수평이동 현상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일명, 교회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청년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눈높이를 맞춰주자. 성육신의 사건이 무엇인가? 하늘 위에 계신 분이 인간과 눈높이를 맞춘 사건이다. 또한 교회지도자들은 타문화선교적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봐 보자. 선교사가 선교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교회지도자들은 2030세대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자.

<참고자료 전국 청년목회 컨벤션 2002 자료집,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교회교육백서'>

 

한 청년의 목소리

저는 몇 달전 교회에서 나온 청년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잘해주니 그냥 교회 가는 게 좋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친해지게 되니, 제 안에 그들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에는 경건한지 모르나, 그들의 삶을 보면 '정말 크리스천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회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기보다는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놀러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청년부 모임을 보면 '만나서 시작기도한 뒤, 어디 가서 어떻게 놀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임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닌 지체들 간의 화합이었고, 그렇게 어울려 놀다가 헤어질 때 마침기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그런 것이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간에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번, 두 번 반복되면서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전도사님도 청년부에서 몇 기수 높은 선배이어서, 호칭도 그냥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도사님은 우리들 앞에서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워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보면서 '전도사님이 뭐 저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라는 생각과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점점가면서 처음에 그들을 크게 보았던 제 기준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는 깊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수 모임으로 놀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엄청 실망했습니다. 교회에서 기수끼리 모여서 온 모임인데, 술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기타들고 와서 찬양을 불렀는데, 그것이 무슨 찬양이라 할 수 있을지... 그들을 향한 저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한편, 저는 유년부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년부 내 집사님들께서는 무슨 때만 생기면 청년선생님들이 하라고 떠맡기시고, 못 하면 뒤에서 흉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하는 청년부 선생님들은 집사님들을 싫어하는 분위기로 갔습니다. 총무인 저는 중간에서 괴로웠습니다. 전도사님도 집사들께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힘들었습니다. 교회에 마치 일하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저것 할 일만 자꾸 많아지니깐, 정신적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쳤습니다. 내가 교회에 왜 다니는지 잘 모르겠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점점 멀리하다가, 지금은 발길을 뚝 끊었습니다.

 

청년 목회의 현장에서

우리나라 20, 30대의 인구는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약 40%에 육박할 만큼 젊은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청년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 청년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가는가? 우선 우리의 교회와 청년들의 신앙과 삶이 건강치 못하기 때문이다.

입시중심의 교육으로 신앙과의 단절 가운데 자라온 청년들은 삶을 나누는 방법을 잘 모른다. 과거의 청년 문화가 ‘모여서-함께’였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따로-나 혼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온라인(on-line)에서 자유롭고 오프라인(off-line)에서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지금의 청년들은 체질적(?)으로 모이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청년들에게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개인의 편익을 중시하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나타난다. 지금의 청년들은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그냥 지루해서...’ ‘모임에서 인간관계가 부담스러워서’ ‘자기 계발(학원수강,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이 바빠서’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이들은 신앙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교회를 떠난다. 신앙적으로 전혀 ‘고민 없는 세대’ 청년들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신앙적으로 열심인 청년들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다. 교회생활에 너무 충실하다는 것은 사회에서 낙오하는 것 같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사회가 더욱 경쟁적으로 되어가고, 취직에 대한 교회외부에서 비관적인 패배주의적인 소리가 들리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은 다른 청년들이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각종 취직 준비, 자격증 준비 등에 몰두하는 한편,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은, 헌신과 진로 사이에서 청년들은 늘 고민하며 불안감을 느낀다.

게다가 교회마다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점점 줄면서, 열심인 청년에게는 일이 집중되고 있다. 1인 다역을 감당하다가, 끝내는 탈진하여 아예 교회를 떠나 버리는 일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완전히 세속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악한 구조와 싸우는 능력 있는 강한 그리스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 요구하면 쉽게 교회와 신앙을 포기하게 만드는 부모의 뒤바뀐 우선순위와 세속적 가치관은 청년들을 영적 무기력이나 교회 이탈로 이끌고 있다. 이 외에도 청년들에 대한 교회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해부족, 교회답지 못한 모습에 대한 실망, 문화적 수용성 부족으로 인해,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은 청년이 사라져 버린 병든 모습으로 허덕이고 있다. 청년목회는 ‘교회 속의 교회’를 목회하는 것과 같아서 ‘작은 담임목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거기에다 청년목회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시간과 물질 등,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성장과 부흥도 잘 안되는, 그래서 몹시도 어려운, 목회 가운데 3D 업종으로 불릴 만큼 힘든 사역이다. 청년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전담 사역자들을 세우는 깨어있는(?) 교회조차도 1년이 지나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한다.

그래서 청년을 담당하는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교회적으로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든지, 무관심하든지 동일하게 양적 성장에 대한 큰 중압감이다. 즉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목회에 대한 업적과 열매가 나타나야 되기 때문에, 바탕부터 체계적으로 기초를 세워가기 보다는 각 교회의 특수성과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프로그램과 구조를 무리하게 도입하다가 실패하는 사례와 그 악순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우선적으로 개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청년들이 더 이상 방치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정이 살아나고 꽃 피울 수 있도록‘교회안의 작은 교회'를 수용할 수 있도록 목회 패러다임이 바뀌어야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21세기에는 교회의 문화적 수용성과 청년목회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교회의 미래와 건강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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