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레시아 (교회)

 

 

 또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
교회(敎會)란 예수님께서 불러내어 따로 모인 무리라는 뜻의 헬라어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와, 사라, 리브가, 레아, 라헬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분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후에 골고다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예수님의 새로운 기업인 교회(신4:20), 그분의 몸이 된 교회(엡1:22-23), 하나님의 성전 된 교회(딤전3:15-16), 그리고 이 땅의 왕족이며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마13:1-4), 주 예수님의 신부 된 교회를 세우시고 오늘까지 영혼 구원의 사역을 진행하여 오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시내를 보면 마치 시내 전체가 교회당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빌딩 하나에 교회 간판과 종탑이 둘 셋씩 있어서 마치 구멍가게처럼 난립해 있다.

이루 셀 수 없는 교파들이 서로 자기네들의 교회만이 ‘참 교회’, ‘살아있는 교회’, ‘구원이 있는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성경에서 어긋난 온갖 인간의 꾀를 총동원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야외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드럼이나 전자 기타를 동원하여 귀청이 찢어질 듯이 록음악 스타일의 복음 성가를 불러대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어떤 곳은 아예 교회당을 짓고 사람들을 끌어 모은 다음 프리미엄을 붙여 넘기고 또 개척하는 ‘교회당 확장 사업’을 하고 있다. 어떤 단체는 본점, 지점 형식으로 서울에 본부를 두고 ○○지점, ○○성전, ○○지부까지 설치하여 문어발식 다국적 기업 같은 단체들도 있다.

사회사업 단체인지? 정부조직 기관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모임처인지? 분간 못할 정도로 교회 건물들이 난립해 있다.

또 한 밤중이나 새벽에 기도회를 갖는다고 하면서 온갖 야단법석을 피워 이웃 주민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 교회를 비방하거나 약점을 캐내어 폭로함으로 자기네 교회로 교인들을 끌어들이는 수법 등 온갖 비인간적이고 배도적인 사례들이 오늘날 예수님의 거룩한 교회(불러낸 무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부흥회를 전문직업으로 삼는 부흥사들인지 심령 흥분사들인지 하는 사람들은 간판만 걸어놓고 전국을 돌며 쇼맨쉽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단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돈벌이하는 이단 연구 사업가들도 있는가 하면 진리든 비진리든 돈 많은 세력은 정통이고 돈 없는 단체는 매정하게 파멸시켜버리는 종교재판관들이 활개치는 곳이 한국교회의 현실이요, 오늘날 말세에 잠들어 있는 교회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에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 생명이 흐르는 교회, 주님의 몸 된 교회, 하나님의 성전 된 교회 그리고 교회의 형태, 조직, 지체들의 활동, 열매 등을 성경으로 조명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참 교회를 찾아보고자 한다.


1. 교회(敎會-church)의 정의

“교회”(έκκλησία)란 ‘불러내어 따로 있는 무리’(고후6:14-18)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 세상과 진리로 분리되어 있는 모임을 뜻한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너희는 거기서 나가서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너희는 그녀의 가운데서 나가서 주님의 기구들을 메는 정결(淨潔)한 자가 되라.”(사52:11)

위의 말씀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우리를 향한 핵심적인 말씀일 수도 있다. “불러낸다”는 뜻은 말씀으로 분리되고 구분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2:17)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불러내심을 뜻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오라”(마9:9)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불러내셔서 제자를 삼으셨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종교에서 부르시고, 죄악된 세상에서 영혼을 불러내시어 “교회”라는 공동체에 거하게 하시다가 끝날에 “나사로야 나오라”(요11:43)고 하신 것처럼 저 하늘에서도 부르실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11:28)는 말씀은 죄사함의 복음으로 개인 개인을 불러 내셔서 “교회”라는 “무리”속에 속하게 하심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그 자리에서 “나와” 모임에 속하게 되는 것이 주님의 교회이다. 그러나 사탄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배도자 “제롬”(Jerome), “클레멘트”(Clement), “유세비우스”(Eusebius), “오리겐”, “어거스틴”(Augustine) 등을 통하여 플라톤 철학과 헬라 철학, 스토아 철학을 기독교에 접목시켜 성경을 변절시켜 주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성경만이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주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 마음 깊이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온 무리들이 주님의 양떼로서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살아있는 주님의 음성이 아니라 “칼빈주의 교리”, “알미니안주의 교리”, “교파의 소리”, “인본주의 종교인의 소리”를 들었다면 성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지식적인 교리로 만들어진 “교인들”, 철학과 유전(마15:1-8)으로 “제조된 교인”들이다.

교회당 건물(소위 성전)에 들어가 등록카드 내고 목사가 인정해 주면 6개월 후에 학습 받고 세례 받는 교인은 주님의 말씀으로 불러냄 받은 “교회”의 회원은 아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말씀으로 거듭난 자, 말씀으로 부름 받은 자들만이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어질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 난 것이니 곧 살아계시고 영원히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난 것이니라”(벧전 1:23)
“그분께서 자신의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는 우리로 그분의 피조물들 중에 첫 열매가 되게 하려하심이라”(약1:18)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한 사람이 물로 그리고 성령님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오느니라”(롬10:17)

위에 기록된 말씀은 거룩한 성경의 복음이다. 바로 이러한 말씀으로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교회”인 것이다.
특정 장소나 건물은 교회가 아니다. 또한 성경으로 거듭난 사실 없이 교리를 통하여 모인 조직은 세상 어느 종교집단과 같은 것이며 옷만 기독교 옷으로 치장한 세상 단체와 똑같은 것이다.

참으로 죄로부터 복음으로 부름받아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이 불러낸 무리이며, 곧 주님이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인 것이다. 베드로는 “페트로스”라는 헬라의 조약돌을 의미한다. 오늘날 참 진리가 없고 복음이 없는 곳에는 베드로의 인본주의 “자갈” 또는 “시몬”(모래라는 뜻임) 위에 세워진 모임이며 하나님의 심판 때 허물어질 유사 교회이다.

시날 땅 사막 모래 위에 산돌 대신 흙벽돌로, 역청(성령을 뜻함- KJV) 대신 진흙으로 쌓아 올린 허물어질 바벨탑 조직일 뿐이다. 그러한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로 가장한 이세벨 같은 음녀교회요 각종 더럽고 가증한 귀신들의 처소일 뿐이다.(계3:1)


2. 불러내시는 하나님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밖으로 인도하여 내느니라. 그가 양들을 인도하여 낸 후에, 양들을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앎으로 그를 따라오나, 낯선 자의 음성은 알지 못함으로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낯선 자들에게서 도망치느니라.”(요10:3-5)
“또 만일 내가 땅으로부터 들어 올려지면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에서 불러내시는 역사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을 향한 “네가 어디 있느냐?”(창3:9)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늘날 모든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이요, 부르심이다. 또한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목자의 음성(눅15:1-7)이며, 탕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음성인 것이다.

 

(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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