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는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의 번역이다.

그러나 '막대기'가 '목발'을 의미하지 않는것처럼 헬라어 스타우로스는 크룩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는 주로 곧은 말뚝 혹은 기둥을 의미 하며, 가로 질러놓은 두토막의 재목을 의미하지않는다.

예를들면, '울타리의 막대'(호메로스의 Odyssey 14:11),

'성채의 버팀대'(크세노폰 Xenophon, Anababsis V. 2.21),

'토대(土臺)의 버팀대'(헤로도토스Herodotus, Hist. V. 6)등을 들수 있다. 
이와같이 스타우로스는 고전 헬라어 전체에서 말뚝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에서도 예수가 매달린 형벌의 도구를 '스타우로스'로 표기하고 있다.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말뚝이나 나무에 매다는 처형은 페르시아, 앗수르, 페니키아, 이집트인 등의 관습이었고,

후에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달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사형수들에게는 말뚝에 묶어놓고 손과 발에 못을 박거나, 아니면 말뚝에 묶어놓고 창으로 찔러서 사형을 집행했다


'이중유산: 성경과 대영박물관'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헬라어로 신약의 십자가에 해당하는 단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는것은 충격적인 일일지 모른다.

'십자가'로 번역된 단어는 언제나 '기둥' 혹은 '곧은 말뚝'을 뜻하는 헬라 단어 '스타우로스'다.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집트와 콘스탄티누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Norman S Prescott / Dual Heritage:The Bible and the British Museum / Odhams Books]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카타콤(지하묘지)의 벽에는 공작, 비둘기, 물고기가 그려졌을 뿐이었고 그 외의 유적에서도 十자모양의 십자가 유적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초대교회신자들은 십자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형벌의 도구로 쓰인 말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십자가를 널리 퍼트린 장본인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는 점이다.

그는 꿈에서 본 십자가를 군대의 방패에 표시한뒤 승리했다.

그런데 이미 로마의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미트라교에서도 군인들의 이마에 X를 표시하면 전투에서 죽지않는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다시 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갑자기 태양신의 기호(symbol)를 들고 나타나서 십자가 경배를 조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십자가가 카톨릭 예술 전면에 등장했으며 공경화 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뒤에는 태양신과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십자가에 대해서 '두산세계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쓰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인(人)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의 상징으로서 등변십자가(그리스식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은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린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또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폴론신(神)이 십자형의 홀(笏)을 가지고 있고, 게르만신화에서는 토르신(神)이 십자 모양의 해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만자(卍字:범어로 Zrivatsa:갈고리형 십자가)'가 사용되었고,

힌두교에서는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가 가네사(ganesa)라 불리는 남성적 원리를 상징하였으며,

그 변형인 왼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인 사우바스티카(sauvastika)는 칼리(kali)라 불리는 여성적 원리를 상징하였다. 
그밖에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인, 페니키아인, 에트루리아인, 로마인, 갈리아 지방이나 브리타니아의 켈트족,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페루 등지의 주민 사이에 널리 종교적 의의를 가지고 사용 되어 왔다.

그 때문에 일부 학자는 십자가를 남근(男根)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십자가 cross항목]
십자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의 표시로서 
그것이 앗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래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Horus)의 사제들이 입는 사제복에는 장미 모양의 말타 십자가(Maltese cross)들이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사제복도 동일하다.

 

 장미(the Rose)는 오로라(Aurora :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와 태양신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 빛의 부활과 생명의 갱신을 가져다 주는 동녘(Dawn)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장미가 십자가와 결합한 말타 십자가는 영원한 새벽의 동녘(the Dawn of Eternal Life)을 의미 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소망하는 구원자를 상징하고 있다.

이 말타 십자가는 오늘날 로마 카톨릭의 주교단(Bishop's committee)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인쇄물에 찍히는 출판허가(Imprimatur)의 상징이기도 하다.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모든 성경들에는 이 출판 허가표시가 붙게 되어 있는데, 개신교 용으로 나올 때는 변형된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빌론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네 끝에 세 개의 잎사귀 모양을 첨가한 십자가도 있었는데 그것을 세 잎(trefoil)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로마 카톨릭의 십자가는 네 끝에 세 개의 원을 첨가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태양신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Albert Pike/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또, 이집트의 토쓰(Thoth) 신의 손에 들고 있는 앵크(Ankh) 혹은 안사타 십자가(Crux Ansata)는 생명(life)과 성(sex)을 상징하며,

십자가 위의 둥근 원은 태양신을 상징한다.

[Funk & Wagnall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286, P.1168]


특히 신좌(Master's Seat)위의 안사타 십자가 위에 새겨진 'INRI'라는 글자는 
고대 현인들이 자연의 위대한 비밀과 연관지어 "모든 자연이 불에 의해 새롭게 된다" (Igne Natura Renovatur Integra)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 P.291]

여기서 불은 태양신 숭배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조로아스터교에도 불은 태양과 관련이 있음), 스토아 철학자들은 '불'을 우주의 근본 원리라 하여 '로고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중세시대의 성화속의 십자가 상 위에서도 'INRI'라고 표시된 그림이 많다.

 카톨릭측에서는 "나자렛 예수는 유대인들의 왕이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혹을 불러일으킬뿐이다.

(참고삼아 또 다른 주장을 설명하자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이 INRI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경건치 않은 이교도 통치자들을 멸절시켜라." Iustum Necare Reges Impios. 
T(타우)와 P(로우)를 결합한 모노그램은 이집트의 태양신 오시리스(Osiris)의 상징이며 
오시리스의 지팡이(the Staff of Osiris)라고도 부른다.

 

 

고대 갈대아어와 이집트어의 T는 십자가와 병행 되었는데, 이집트인들은 그들의신 카노부스(Canobus)의 상징으로

T자 모양의 십자가와 十자 모양의 십자가를 구분없이 사용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파라오의 사진을 보면 모두가 도리깨와 꼬부라진 지팡이를 X자로 가슴에 얹고 있다.

이는 하늘의 위대한 힘을 나타내는 파라오의 상징이며, 오시리스신의 은덕의 표시이다. 
인도의 바쉬나바스(Vashnavas)는 T자 모양의 십자가를 신성시 할 뿐 아니라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겹쳐진 모양과 갈고리 십자가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Albert Pike /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바알종교의 비밀입교식 때에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였고 
[Tertullian/ De praescript. Haeret. cap. 40, vol. ii. / P.54], 심지어는 어린이를 제물로 바칠 때에도 가슴을 십자 모양으로 도려내어 심장을 드러냈다고 한다.

 십자가는 이같은 인신제물의 상징으로도 사용 되었다. 
또한 바빌론의 십자가는 '생명과 지식의 나무'(the tree of life and knowledge)로도 불려졌다.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와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며, 십자가를 나무와 잎사귀에 연관시킴으로써 십자가를 치유와 주술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저의도 있었다.  [Alexander Hislop / 두 개의 바빌론 / P.200~201]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교에서는 오크 나무를 잘라 십자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신성시했고 
자신들의 사원도 십자 모양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인도의 크리슈나(Chrishna)가 화살에 맞아 죽은 곳도 십자형의 나무 위에서였다.

[Albert Pike /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P.290]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창조적 지혜 혹은 로고스(Logos)를 상징하는데, 
플라톤은 최고의 신 다음가는 힘(the next Power to the Supreme God)을  우주 안에서 X로 상징한다고 말했다.

 [Albert Pike /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 P.291~292]


카톨릭와 개신교의 상징으로 쓰이는 XP 모노그램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부터 유래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막센티우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꿈속에서  "이 표시에 의하여 너는 정복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십자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병사들의 투구와 방패에 그 상징을 새겨 넣도록 명령한 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로마의 군인들에게 밀의종교로써 널리 퍼져있던 미트라(Mithras)교에서는 
신자에 해당되는 군인들의 이마 위에 X자 모양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십자가는 BC 100~44년에 살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주화에 처음 나오고, 시저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가 BC 20년에 만든 주화에도 나온다.

콘스탄티누스가 발행한 주화에도 동전 앞면에는 태양신,  동전 뒤에는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십자가의 가장 흔한 모양은 
두 나뭇조각이 종목(縱木)의 한 중간에서 교차한 것이다. 
횡목(橫木)과 종목이 같은 길이인 경우를 그리스식 십자가(Greek Cross)라고 부르고, 횡목이 짧고 종목의 아래쪽이 긴 것을 라틴식 십자가(Latin Cross)라고 부른다. 
또 변형된 모습으로는 종목이 횡목 위로 돌출하지 않은 안토니우스 십자가(crux commissa)나, 두 나무가 비스듬히 교차하고 있는

안드레아 십자가(crux decussata), 죄표(罪標)와 발판을 나타내는 이중십자가(crux gemina) 등이 있다.
'부활절과 그 관습'이라는 책에서는 부활절을 언급하면서 십자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자가는 첫 성금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영원한 
의미를 얻기 오래 전부터 이교도들의 상징물이었으며,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서도 빵과 과자에 때때로 십자 무늬를 새겼다."  [Christina Hole / Easter and Its Customs / M. Barrows and Co.]
카톨릭이 X와 P를 결합한 모양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교황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 등은 이교도의 영향 아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AD 4세기를 전후로 해서, 초대교회는 이방종교의 풍습을 하나둘씩 흡수해 나기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에 끼친 영향력으로 볼때 바울이 기독교의 제1 창건자라면,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제2 창건자라고 평가 할수 있다.

그의 영향력 아래 크리스마스, 십자가, 일요일, 삼위일체등의 온갖 교리와 풍습들이 기독교와 뒤섞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 경배를 조장할 그 무렵, 황제의 모후(母后) 헬레나는 
주교(主敎) 마카리우스와 함께 나선 성지순례에서

예수가 태어난 동굴과 예수의 무덤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매달린 진품(眞品) 십자가도 발견했다고 한다.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닌 이교도의 상징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비교적 여러 지역, 여러 종교에서 숭배의 대상물로 삼고 있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태양신으로 섬겼던 담무스(Tammuz)의 첫 글자 T자를 십자가로 형상화하여 경배하였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T자 모양의 타우 십자가와 앵크 십자가를 종교 의식에 사용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부산물입니다.

기독교가 이교화되어가자 세속화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교도들을 더 많이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이교도들의 사상과 상징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방 여신을 섬기고 숭배하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적응할 수 있도록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대신 섬기도록 해 주었고, 십자가 형상 앞에서 이교의 신들에게 경배하던 개종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상을 교회 내에 유입하여 그들로 숭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십자가를 교회 내부에 부착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기록은 주후 431년경이며,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주후 586년경부터라고 합니다.
이교도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위해 도입했던 이교도의 사상이나 상징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든 신자들이 그 상징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나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우상이 십자가, 마리아 상, 성인 상들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십자가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남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십자가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여전히 이교도의 상징물이지 우리 기독교의 상징물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한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저주 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다리(교각) 역할은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

십자가는 그저  이교도의 상징물일 뿐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