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란 말을 많이 하지만,
회개가 자기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회개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입니다.
 
회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회개(改悔)’와 ‘자복(自服)’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복하다’는 헬라어로 (ξομολογέω 엑소몰로게오)라고 하는데

이 뜻은 ‘고백하다’입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범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고백입니다.
자복하다는 말은 ‘동의하다’입니다.

‘저를 향해 지적하신 제 잘못들을 인정합니다’라고 하면 이것은 동의입니다.
자복한다는 것은 ‘약속하다’입니다.

‘앞으로 잘못을 범치 않고 바르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면 이것은 약속입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고백이든 동의든 약속이든 모두 입으로,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다’는 헬라어(μετανοεω 메타노에오)라는

말은 아예 돌아서거나 길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동쪽으로 가던 사람이 자신의 방향이 틀렸음을 아는 즉시 180도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또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군대 용어로 "뒤로 돌아 앞으로 가" 가던 길에서 반대로 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복은 입으로 하는 것이고 회개는 말이 아니라, 철저하게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자복이 회개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회개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다시는 그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은 자복입니다.

그리고 이 자복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전도를 하다가 보면,

“교회에는 가고 싶은데 죄가 많아서 못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몸에 때가 많아서 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죄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자복은 하면서도 회개할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도둑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켰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훔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약속했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믿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좀도둑이 다음에 같은 가게에서 또 도둑질을 했다면,

그는 그 전에 주인 앞에서 자복만 하였을 뿐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회개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대부분 경우 자복으로만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회개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삶을 약속하는 것은 대단히 잘하는데,

것이 자기 삶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복은 하는데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보가 없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가 의외로 많습니다.
 
자복은 점(點)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 즉시 하나님께 입으로(마음으로) 자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점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선(線)입니다.

회개는 지속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이 선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점 자체가 선일 수는 없는 것처럼,

자복이 회개의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자복 그 자체가 회개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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