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은 命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기도 전에, 나의 의사를 물어봄이 없이 생명이 내게 와진 것입니다.

 어디선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찾아와서 캄캄한 모태 속에서 내 가슴에 안기어진 것입니다. 나는 거절을 표할 권한도 겨를도 없이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이 생명을 단지 몇 억 분의 일의 확률을 가진 한 난자와 정자와의 해후의 결과라고만 보기에는 너무나 신비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국적을 선택한 사람도 없고 가문이나 성(姓)을 선택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불가학력적인 큰 힘에 의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생명은 내가 마음대로 끊을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는 내 “전용물”도 아니고, 내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내게 잠시 위탁된 보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의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이시라. 나의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의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71:5-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고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13)

 그분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아니 그분만이 줄 수 있고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분 아닌 그 누구도 마음대로 생명을 앗아가서는 안 됩니다. 태어난 자는 모두 다 “살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生)은 명(命)입니다. 즉 생명은 그분의 명령입니다.

 최근에 생명을 경시여기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 사건이 우리를 경악케 했습니다. 어른들이 자살하면서 아무 철없는 어린이를 동반하여 죽은 사건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 생명을 좀 더 존중하는 사상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가장 고귀한 희생의 대가

 19세기의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탄광촌을 방문하여 책임자에게 구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책임자는 믿기지 않는 듯 말했습니다.

"그거 구원이 너무 싸군요.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니 값이 너무 싸단 말입니다. 뭔가 값이 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디는 탄광촌 책임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신, 오늘 갱에 들어갔습니까?"

"네"

"얼마나 깊이 내려갔습니까?"

"수백 피트나 되지요."

"어떻게 내려갔습니까?"

"그건 간단하지요. 버튼만 누르면 승강기가 올라오고 내려가니까, 그걸 타고 내려갔지요."

"그것밖에 하신 일이 없습니까?"

"그럼요. 석탄 회사가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저는 그저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걸요."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이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서 대신 죽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저 그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십자가의 승강기를 놓으셨으니 주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버튼만 누르시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는 너무 싼 것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희생의 대가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가장 보람 있는 일

 노먼 빈센트 필 목사가 어느 의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의사로서 한 일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을 변화시킨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10퍼센트밖에 없는 매우 허약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술준비를 하는 사이에 나는 수술대 위에 있는 소녀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 소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잠자기 전에 기도합니다. 지금 기도해도 괜찮겠죠.' 그때 나의 마음은 매우 괴로웠습니다. 나는 평소 주를 잘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녀에게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사랑이 많으신 목자시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오늘밤 당신의 어린 양을 지켜주소서.. 그리고 예수님. 의사 선생님도 축복해 주세요.' 그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가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간호사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돌아서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소녀의 목숨을 구하게 하소서.' 결국 그 소녀는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고, 저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대가

 아놀드 본 윙클러라이드라는 스위스의 위대한 영웅이 있습니다. 다른 군대가 그의 사랑하는 나라를 침략해 들어와 도시를 하나씩 점령해 버렸습니다.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스위스 군인들은 거의 포기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아놀드는 그들 앞에 서서 “내 말을 들으시오. 여기는 나의 집과 조국과 나의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등을 돌렸습니다. 나는 이제 원수들을 격파하고 침략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면서 “자유를 달라, 자유를 달라”고 외치자, 적군이 창으로 아놀드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적진에 길이 열리고 그의 부하들이 그 뒤를 따라가 승리를 얻었습니다.

 스위스 군인들은 그의 용감한 행동의 본을 보고 힘을 얻어 침략자를 몰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2000년 전, 지옥의 권세와 싸운 분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하기 위하여 나의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하늘나라 사이에 생긴 틈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지금 주님께 나아와 여러분의 영혼과 생명을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가장 큰 죄

 나는 깊은 죄의식이나 구주의 필요성은 느껴본 적이 없는 매우 총명한 한 청년을 다루어본 일이 있다. 내가 그에게 그리스도인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즉시 자신이 어릴 때부터 쭉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서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거듭났었는지를 묻자 그는 내 말 뜻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자신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시 “아니오,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죄를 범치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가장 큰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살인이지요”하고 그가 대답했다. 나는 내 성경으로 마태복음 22:37―38을 펴서 그에게 그 구절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 다음 나는 그에게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면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하고 물었다. 그는 “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그가 항상 그 계명을 지켰었는지를, 즉 그가 항상 하나님을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사랑했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항상 첫자리에 모셨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렇지 못했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죄를 범한 것이 될까요?”하고 물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역사했고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가족구원이라는 간절한 기도에서 시작

"섬 선교에 진력하게 된 데는 가족구원이라는 간절한 기도에서 비롯됐습니다."

 경남 거제시 사동면 가조도 가조교회 개척에 나섰던 1987년부터 지금까지 만 10년째 섬 선교에만 정열을 쏟아 붇고 있는 이원옥 목사(40. 방주교회)는 10남매 형제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힘들고 외로운 섬 선교를 선택, 섬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저의 수고를 알게 된 형제 중 7명은 모두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귀중한 성도들로 성장했지만 아직 3명은 주 앞에 나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목사는 누구보다도 남북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황해도 신의주 인근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50여개 유인도 섬의 복음화를 위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이목사의 바람은 남한의 여러 섬에서 오랜 세월동안 터득한 선교전략들을 하루 빨리 북에서도 펼치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저는 지난 152기 제자 훈련에 가서 며칠 동안 지내다가, 어떤 자매를 만났습니다. 독일에서 왔는데 돈도 없고 올 형편도 안 되는데, 한국에 사는 오빠가 아직도 구원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방문했다고 했습니다. 오빠의 구원을 위해서 밥을 먹을 때도 오빠 옆에 앉아 계속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마태복음이 성경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교회에 관심이 없는 이 자매의 오빠는 아직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오빠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동생이 얼마나 오빠의 영혼을 사랑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한 지체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정도의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시간이 있습니까? 교회라는 공동체는 생명과 생명이 결합된 곳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선물인 영생을 얻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같은 운명, 같은 생명 안에 있고 또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값비싼 이유

 불란서 파리에 여행 중이던 한 미국 사람이 파리 시내의 어떤 장신구점에 들어가서 중고품 목걸이를 하나 샀다. 그런데 미국으로 귀국하는 길의 공항 세관에서는 그 목걸이에다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이상스럽게 생각한 그 사람이 목걸이를 들고 보석상에 가서 감정을 부탁하였다. 보석상 주인은 목걸이를 자기가 2만 5천 불에 싸겠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목걸이를 그냥 가지고 나와서 이번에는 더욱 권위 있는 감정사에게 갔다. 현미경으로 잘 조사해본 그 감정사는 “이 목걸이를 나에게 파신다면 3만 5천 불을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궁금증을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목걸이 주인이 도대체 그 목걸이가 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감정사는 그를 현미경 앞으로 인도하고. “자, 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고 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그 사람의 눈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보였다.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으로부터.' 나폴레옹 황제가 그 애인 조세핀에게 준 선물 목걸이였던 것이다. 그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값이 나갔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맞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엡 1:13 당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장을 맞은 값비싼 인생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결단

 무디 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자녀가 있을 뿐이지 손자는 없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내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을 나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모태교인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고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개인적인 결단이 당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들에게 전도를 받은 아버지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인도로 예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너무 기뻐서, 아버지를 끌어안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육신의 아버지를 예수 믿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들의 기도를 듣고 아버지도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나의 형님이시여..." 아들이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야, 이 녀석아.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내게는 형님이 아니냐?" 하나님 앞에서는 다 자녀만 있을 따름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한다

 유명한 정치인인 챨스 콜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71년에 챨스 콜슨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대통령의 투사다." 이 말을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살인 청부업자"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심한 곤경에 몰아넣었던 유명한 정치인인 이 사람은 현재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듭나야 한다"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에 대해서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필요하다면 할머니의 등을 밟고서라도 지나갈 수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정치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감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중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감옥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가지고 감옥 속에 있는 죄수들을 전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흔들었던 이 유명한 정치인은 지금은 감옥마다 찾아다니며, 죄수들에게 전도하는 사랑의 전도자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거듭난 영혼

 쓰레기가 되는 일은 쉬워도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렵습니다. 무얼 담아두는 병이 되기는 쉬워도 무얼 닫아두는 병마개가 되는 일은 어렵습니다. 허무로 채워져 가는 세상에 한그루 나무를 심는 건 차라리 사랑입니다. 거듭난 영혼에겐 천국의 춤이 있습니다.

 남해가 오염되고 정치가 더러워지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이어지는 때 무당 점쟁이가 내일을 예언하고 물질주의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때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건 허무의 들판에 피어나는 파릇한 풀이며 숲이며 희망이며 소리입니다.

 거듭난 영혼에겐 천국의 춤이 있습니다. 쓰레기로 남기 쉬운 세상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 오르는 희망의 나무 한그루. 그렇습니다. 이런 세상에 화려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얼마나 소중한지요.

 

     거듭남

 윌버 채프맨이 대학생이었을 때 무디 선생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날도 구원에 대해서 말씀이 증거되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후 채프맨이 무디를 찾아 왔다. "무디 선생님 저는 거듭남의 확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자, "저는 믿기는 믿는데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무디는 요한복음 5:24을 말씀을 읽어보라고 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채프맨에게 이를 믿느냐고 하니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하니 "글쎄요" 했다. 무디가 한 번 더 읽으라고 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 "당신은 이제 믿습니까?" "제가 믿는다고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글쎄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이때 무디가 소리쳤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그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러면 나에게, 나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되물었다.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하는 무디의 말에 채프맨은 자신이 여태껏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신학 공부를 하고 . D. L. 무디가 은퇴했을 때 그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 채프만은 한국에도 다녀갔는데 그는 그 깨달음 후에 전 세계에 다니며  요한복음5:24절을 주로 설교했다고 한다.

요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리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건호 형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형이 쓴 많은 노랫말 중 내가 기억하는 [모닥불]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노래 중 하나일 것입니다.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시집을 내기도 했지요. 형이 계속 시를 쓴다면 아마 좋은 작품을 많이 섰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시인되길 원했던 형이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지요. 형이 작사한 노래를 방송을 통해 들을 땐 참 신이 났답니다. 처음에는 참 고생 많았지요. 그러면서도 형은 꾸준히 그 길을 갔지요. 지금까지 형은 천곡 이상의 노랫말을 써 왔지요.

 가요에 순위를 정하는 프로에는 항상 형이 작사한 노래들이 포한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랫말도 형이 쓴 것이지요. 방송국에서 주는 상도 여럿 탓지요. 이정도면 형은 명예도 돈도 어느 정도는 얻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건강하게 자라는 두 아들이 있고, 형을 사랑하는 형수님이 계시고...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번 이모님께 세배를 갔을 때 오랜만에 형을 만났지요. 형은 나를 만날 때면 늘 교회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지요. 형이 먼저 화제를 그 쪽으로 옮기곤 했지요. 사실 그동안은 그저 형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형은 또 화제를 그 쪽으로 옮겨 갔지요. 물론 그 내용은 교회의 부정적인 내용들이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그 때 형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형의 마음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응접실을 장식하고 있는 그 많은 트로피가 채워주지 못한 빈 마음을 보았습니다. 명예와 돈과 사람들이 채워주지 못한 빈 마음이 형에게 있었습니다. 형은 그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러면서도 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반대였지요.

 나는 처음으로 형에게 사람은 죽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가는 통과역 이는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 세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는 사실도. 형의 빈 마음에 예수가 필요하다는 것도 말했지요. 형은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두라고 중간에 말을 막지 않았지요. 고마웠습니다. 물론 이모님께 세배 간 장성한 동생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그 말씀이 형의 마음에 각인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건호 형! 선택은 참 어렵지요. 지금까지 형도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 왔지요. 앞으로도 형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요.

 형, 앞을 내다보고 선택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1년을 내다보는 사람보다 10년을 내다보는 사람이, 10년을 내다보는 사람보다 30년을 내다보고 선택하는 사람이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죽음 저 넘어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선택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결국 놓치고 말았어요

 뉴욕시의 빈민 아파트촌에서 의사를 불러올 일이 생겼다. 곧 의사가 왔고 한 젊은이가 아파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침대로 다가가자 그 젊은이는 말했다. "선생님 전 선생님이 저를 속이길 원치않아요. 저의 상태는 무척 나쁘죠? 이병은 중병임에 틀림없죠?" 의사는 일단 검진을 한 후 그에게 말했다.

"나도 유감이지만 당신은 이 밤을 지나기가 어려울 것 같군요."

그러자 그 젊은이는 의사를 쳐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그렇군요. 결국 전 놓치고 말았어요."

"무엇을 놓쳤다는 말이죠?"

"영생을 놓쳤어요. 저는 언젠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나중으로 미루었던 거죠."

그 의사는 마침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그 젊은이에게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도록 하세요."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이 죽어갈 때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을 보면 무수한 비난과 경멸의 눈길을 보냈어요. 그는 비겁한 겁쟁이라고 말입니다. 만일 제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저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의사는 그날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자기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그런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죽어가게 되었을 때 의사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의사는 엎드려서 그가 겨우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놓치고 말았군요."

 여러분! 여러분은 영생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결코 우연이 아닌 사건

개구리 한 마리가 봄철이 되어 펄떡펄떡 산에서 뛰어 내려오다가 그만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에 깔리게 되었다.

개구리는 양다리를 쭉 뻗치고는 "개구리 죽는다"고 하소연할 겨를도 없이 죽을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개구리는 살 길이 없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개구리는 살 수가 없다. 그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개구쟁이 소년이 발길로 그 돌멩이를 걷어찼다.

개구리 편에서 볼 때는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볼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적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기적은 그런 우연적인 사건, 하나님이 갑자기 무엇을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구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인생들에게 계시해주시는 표적으로 나타나신 일이다.

 

      고귀한 희생의 대가

 스코틀랜드 북부에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철로가 있었는데 철로 아래 계곡으로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심한 폭풍으로 계곡의 강물이 무섭게 흘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양치는 소년이 이곳에 나왔다가 심한 급류 때문에 철교의 중앙 교각이 물에 완전히 휩쓸려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동은 곧 승객을 실은 기차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옷을 벗어서 철로 가운데 선 채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가 소년을 발견하고 속히 철도에서 나가라고 기적을 울렸지만 소년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옷을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이 물러가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차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죽음에 가까이 와 있었는가를 보고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구사일생이었어!”라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때 기관사가 소리쳤습니다. “여기에 와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준 이를 보시오.” 기차 앞에서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긴 소년을 보았습니다. 기관사는 때맞게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고 그 순간 소년은 기차에 치고 만 것입니다.

“소년이 모두를 위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지옥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내던지셨습니다.

 

      구원

 깊은 협소한 계곡을 뛰어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낭떠러지까지 힘껏 달려가서 있는 힘을 다하여 뜁니다. 그는 5M 가량 날았지만 아래 계곡으로 떨어져 박살나 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한 사람은 자극을 받아 더욱 안간힘을 쓰며 가벼운 차림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7M나 날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저쪽에 닿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한사람은 날개를 만들어 달고 뛰었으나 역시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셋이 모두 계곡 아래에 떨어져 죽었는데 과연 누가 더 잘 뛰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의 삶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조금 낫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하다 해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무결성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결코 예외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만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조건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확신의 증거

1. 진리 말씀에 굶주려 믿음의 양식인 성경과 설교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

2. 영적 가족과의 사귐으로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3. 삶의 가치관이 변화됨으로써 순종과 형제에 대한 사랑과 예배에 대한 열망이 생기게 된다.

4.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누리게 된다.

 

     구원받을 뻔한 사람들

 어린이들이 하는 농담 중에 ?죽을 뻔한 것이 좋으냐. 살 뻔한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

성급한 어린이는 생각도 없이 살 뻔한 것이 좋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살 뻔하였으나 아쉽게 죽은 사람이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설명하자 그가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다고 했다. 이는 영적으로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믿을  뻔한 것은 소용이 없다. 못 믿을 뻔했어야 한다. 말구유의 아기를 못 찾을 뻔했어야지 찾을 뻔했었다면 안 된다.

그런데 성경에 구원받을 뻔했으나 구원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를 지은 목수들이다. 길이는 300규빗, 넓이는 50규빗, 높이가 30규빗으로 3층으로 지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겠는가. 그뿐인가. 요즘처럼 기계가 발달한 때가 아니니 산에서 나무를 찍어 내려와 다듬는 데서부터 운반하는 데까지, 또는 그것을 잘라서 판자를 만들고 조립하고 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을 칠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겠는가.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가 보았을는지는 모르나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다. 다 구원받을 뻔한 사람들뿐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건축에 참여하고 교회 강대상 밑에까지 가 보았으나 구원과는 먼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수없이 여러 번 들었으나 아그립바 왕처럼 거의 구원받을 뻔 하였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통령에 당선될 뻔했다 해도 당선이 아니면 낙선이요. 될 뻔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10년, 20년 동안 교회에 나가 구원받을 뻔했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구원 손길

 몇 년 전 어떤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을 때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12량의 여객열차가 미주리주 동쪽을 달리고 있었다. 열차 안에는 한 주일학교의 소풍으로 행복한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다.

 소풍이 시작되었을 때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오래지 않아 무시무시한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몰아쳤다. 맹렬한 폭우에 불안한 기관사는 속도를 시속 35마일로 줄였다.

 열차가 커브를 돌려고 할 때, 그는 바로 앞에 있는 전철기가 왼쪽으로 젖혀져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곧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꼭 붙잡고 있어!" 그는 화부에게 소리쳤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어!" 하고 응답이 왔다. 그러고 나서 기독교도인 화부는 외쳤다. "오 하나님 도와주소서!"

그의 말은 번개가 기관차의 바로 앞에 내리치면서 그 천둥소리에 묻혀버렸다.

 바로 다음 순간, 그들은 자기네가 그 위험한 전철기를 안전하게 지나쳤음을 발견했다. 열차가 멈춘 뒤에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가 하여 급히 뒤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번개가 레일 뒤에 떨어져서 전철기를 닫았음을 발견했다.

번개로 인하여 분명히 탈선을 일으키게 했을 돌출부가 있는 선로로부터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원에 대한 강박 관념

1. 믿음이 부족한데 대한 두려움: 믿음의 대상이 예수임을 분명히 안다.

2. 헌신 부족에 대한 두려움: 구원은 믿음으로 얻고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다.

3. 회개의 부족에 대한 두려움

4. 기도의 부족에 대한 두려움

5. 하나님 앞에 보상하지 못한데 대한 두려움

6. 세(침)례 받지 못한데 대한 두려움

 

     구원 얻는 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 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발상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한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도 잘못 된 생각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 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한복음 3:6, 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정모혈로 태어난 인간은 육신의 사람일 뿐입니다. 육신의 사람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영의 세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영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 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은 후 성령님의 역사로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체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절실한 체험 없이는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구원을 받느니 죽겠다고?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될 무렵 한 영국 병사가 집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최근 우리는 매일매일 진격해 나가면서 많은 독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어느 날 그 가운데 한 나치 광신자가 아주 심하게 부상당한 채 들려왔습니다. 그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사나웠으며, 고집이 세어 보였습니다. 그는 즉시 수혈을 해야 했는데, 별안간 그는 의사에게 `그 피는 영국 사람의 피겠죠?'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좋은 영국인의 피죠'라고 의사가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이 피를 거절하면, 당신은 죽게 되오.' 그러자 그 나치당원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차라리 죽겠소.' 잠시 후 그의 몸은 시체가 되어 들려나갔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이 불쌍한 망상가에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바보 같으니!'라고 말이지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독일인보다도 더 바보스럽게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구원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버틴다.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바보스러운 짓이다.

 

     구원의 기회

 중국의 해군 제독이 <카론>에서 친구들과 함께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고는, 목사님이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며 결신 카드를 주자, 제독은 그 카드에 [나는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라고 쓰고서 서명했다.

그러자 함께 갔던 동료가 물었다.

[뭘 그렇게 서두르고 있나? 좀더 여유를 갖고 생각하지] 그래서 제독은 보류했다.

 집회가 끝나자 제독과 그의 친구들은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밖에 숨어 있던 군인 하나가 제독을 총으로 쏘아 쓰러뜨렸다 제독에게는 그 이상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구원의 길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자매님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시부모님과 남편, 심지어 친척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결국 그 핍박을 이기고 가족 모 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내는 것을 봅니다.

 혹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직장에서 핍박을 당하여 승진도 못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십자가입니다. 이런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 때 그것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끝까지 짊어지고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기도하며 나갈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 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복음 5:11-12)

 

      구원의 길

 얼마 전에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하이오 주의 한 도시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들은 675명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85% 정도의 사람들이 성경에 나타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선한 일생을 삶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런가 하면 단지 성경을 읽음으로써 천국에 갈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기 혼자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더욱이 무엇을 믿든 간에 자기가 믿는 것을 굳게 지킨다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거듭남” 곧 갈보리의 어린양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못 박아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라고 하는 분만실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또 흔히 말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신자니까”라고 하는 식으로 교회 일원이라는 분만실에서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선행이라는 분만실에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태어나는 것은 갈보리에서입니다. 죄로부터 돌이켜 믿음 가운데 서서 구주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인으로 탄생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열려 있는데

 노련한 등산객이 많이 오르는 유명한 산이 있다. 그 상의 정상을 오르면 그곳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관과 식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산은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군데군데 위험한 곳이 도사리고 있기도 한 그런 산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간 정도 오르면 거대한 바위 절벽들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는데 겨우 사람 하나도 지나가지 어려운 듯이 보이는 그런 길이었다. 그런데 그 좁은 길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푯말이 쓰여 있다. "이 길은 좁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통과했다. 그러므로 당신도 갈 수 있다."

 이 표지판에 쓰여 있는 것처럼 좁고 위험한 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통과했고 그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준비하신 구원의 길도 항상 열려 있다. 이 길은 좁지만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방법

 수 년 전에 한 전도 집회를 인도했던 때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예배당 윗자리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다. 첫날 오후 집회 때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성령께서 그를 사로잡으셨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상담실로 나아오라고 초청했기 때문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저곳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달리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이 그 상담실 안에 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서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조건을 제시하시기만을 원하는 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요. 저 방에 들어가지 않는 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지옥에 가겠습니다”고 그는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이 굳이 지옥에 가기를 선택하겠다면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고 나는 답변했다. 매일 밤 그는 예배당에 나와서 그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사역자들에게 그 사람에 관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마십시오. 간섭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대로 그를 다루실 것입니다.”

 나는 그 전도 집회 마지막 날 저녁 집회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영혼들을 초청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의자들을 밀치며 설교단 앞으로 나왔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바로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옥에 가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 나는 이 주 내내 지옥에 있었습니다.”

 

      구원의 방주되시니

 존슨(Johnson) 선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남태평양에서 군목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몇 백 마일 떨어진 적 주둔 섬에 폭탄공격을 하러 갈 태세를 갖추었다. 그 임무는 완전히 성공했으나 돌아오는 중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시동이 꺼졌다. 그러나 다행히 어떤 낯선 섬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곳은 적지로부터 사방 1/2 마일 정도만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발각되지 않은 것이다.

 하사관들이 그 군목에게 와서는 "목사님, 목사님은 저희에게 기도하고 믿으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고난을 극복케 해 주신다고 늘 그러셨잖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우린 연료도 없고 진지에서 수 백마일이나 떨어져있고 또 적에게 둘러싸이지 않았습니까?" 라며 두려워했다.

존슨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리라 믿고 밤이 되어도 그는 계속 열심히 기도했다.

 새벽 2시경 하사가 잠을 깼는데 물가 쪽으로 이끌려 가는 듯 했다. 그는 배를 발견했는데 바닷가에 드리워져 있더라는 것이다. 몇 시간 안에 그들은 그 배를 타고 자기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때 미국 유조선 선장이 어뢰의 위험을 최소로 하기 위해 그 가솔린 적하를 치워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짐배위에 얹혀 존슨과 선원들이 불시착한 지점으로부터 6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배 중 하나를 순항케 하여 그 궁지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단지 50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오게 한 것이다.

 

       구원의 역사

 인천주안감리교회 국제성서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성경 1만여 권이 전시돼 있다. 이 중에는 구관회 집사가 옮겨 쓴 성경도 있는데 그 배경이 감동적이다.

 병원에서 위암을 선고받은 구 집사는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 줄까 고뇌하다가 성경 필사본을 생각했고, 시한부 인생을 성경 옮겨 쓰는 일에 전념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성경을 옮겨 쓰던 중 하나님의 역사로 위암을 치유 받은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필사본 성경을 완성했다.

 

      구원의 요청

 옛날에 어느 임금이 사람을 많이 고용해서 융단과 옷을 짜게 했습니다. 그 중에 어린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베를 짜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임금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단실과 견본을 주고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곧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일렀습니다. 그 소년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꾸 틀려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일을 잘 해내고 또 즐겁게 하는데, 왜 우리의 일은 항상 순조롭지 않지? 우리가 짠 것은 꼬이지 않으면 견본과 달라지니 말이야.? 소년은 대답하길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못하세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라고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임금님께 도움을 했지만 일들은 헝클어지고,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은 ?제가 임금님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는지 아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그렇지만 그분은 바빠서 그렇게 자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소년은 ?저는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했으며, 그 분은 그 때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환난 날?에 그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시편50편 15절).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더러 우리의 삶이 꼬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이 그 분의 뜻에서 멀어지기 전에 도와주십니다.

 오늘 그분의 도움을 청해 내일의 큰 문제를 피하십시오.

 

     구원의 조건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알 카포네라는 사람이 미국의 암흑가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세대 동안 전 미국의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였고, 정부도 그에게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탈세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하여튼 그의 대담한 범죄는 대단히 유명하였습니다.

 저는 알 카포네가 군림하고 있던 시카고 교외의 시세로라는 곳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어떻게 해서 알 카포네가 그렇게 미국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하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지요.?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시세로에서 사는 가난한 과부가 겨울에 석탄이 부족하면 알 카포네는 그녀에게 석탄을 한 짐 가져다주었습니다. 전기가 끊어질 지경에 처한 가난한 집의 전기세를 대신 내주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아가 있으면 돌봐주었습니다. 시세로에 있는 모든 자선기관들은 알카포네의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전 주민이 그와 그의 선행에 빚을 진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면 알 카포네를 도와주었죠. 이 때문에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 교리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선 사람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의 선행은 그 후입니다. 사람이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먼저 사람 자체가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만하여야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를 받아들이십니다.

 

     구원의 초점

 나는 미국 서부의 어느 주에서 복음 전파 운동을 인도하고 있을 때, 구원받기 위해 12년 동안을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농부 한 사람을 소개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있었고, 자신은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간단히 성경을 펴서 요한일서 5장 13절 말씀을 보여주었다. 나는 함께 무릎을 꿇고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그날 밤 저녁 예배 시간에 제일 먼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고 밝게 웃으면서 “저는 이제 제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12년 동안이나 찾던 것을 단 5분 만에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구원의 초점을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리고 그분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달이 태양을 반사해 발광하듯이, 그분을 반사하는 빛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의 신앙 체험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계속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요란한데 비해,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고요한 시냇물과 같이 조용하고 잠잠하다. 그러나 체험이 어떠하든 우리를 하나님께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이다. 감정은 때로 우리를 속인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감정을 의지하게 되면 계속 의심이 생겨날 것이다.

 

     구원의 축복

 화가?잭슨 폴록?의 전기와 ?미국 최고의 의사들?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작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34세에 머릿속에 10년 이상 자리 잡고 있던 양성 뇌종양이 갑작스럽게 악성으로 변해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앞으로 3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사들로부터 들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난 후 투숙하고 있던 호텔의 커피 방에 들러 계피 롤빵을모조리 사서 먹어 치웠다. 그러고 나서 그의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며칠 후,텔레비전에서 기상통보관이 ?내일은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는 그의 수명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의사의 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의사들은 기상통보관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불변의 자연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예측을 전달할 따름이다. 그는 확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날부터 그는 무엇이든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추적하여 뿌리를 뽑게 되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아니 세계에서 종양 치료에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의사들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의 명성, 그들의 출신교, 또는 그들이 어떤 유명 인사들을 치료했는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그가 목표한 것은 그에게 나타난 증상과 같은 증상을 보인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찾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그는 ?미국 최고의 의사들?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미국 전역의 우수한 의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 분야의 최고의 전문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괜찮다 싶은 의사를 추천받으면 그때마다 그는 그들과 통화를 하거나 그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그의 뇌 사진을 그들에게 보내거나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뉴욕의 신경방사선 전문의 사덱 힐럴을 찾아냈다. 그는 혈액 속에 약물을 투입하여 종양의 크기를 줄이는 치료법을 권했다. 그 방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한지 수주 만에 종양의 크기가 50% 정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종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그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뇌종양 수술의 권위자를 찾아놓고 있었다. 그는 바로 버지니아 대학교의 빈코 돌렌스 박사였다. 돌렌스 박사의 치료 덕분에 G.W.Smith는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의사만 제대로 만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를 찾아내기는 몹시 어렵다.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경우,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 사실에 감정적으로 굴복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의 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모든 일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 할 게 없다. 그러나 사형선고를 받고도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항상?기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영혼의 병자들로서 죽음을 선고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우리의 병을 고쳐 줄 훌륭한 의사를 보내 주셨다. 그분은 멀리 계시거나 찾기 어려운 곳에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와 심판에 대하여 듣고 괴로워하면서 구원을 요청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혼의 병, 죄로부터 우리를 온전하게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참의사이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구원의 필요성

 두 사람이 해변에서부터 500마일 떨어진 대양 한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올림픽 수영선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둘 중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아무리 훌륭한 수영선수라도 500마일을 헤엄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구명 헬리콥터가 그들 위에 나타나 생명줄을 내려드렸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구조될 것인가? 생명줄을 잡는 바로 그 사람이 안전하게 구조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을 하셨다. 우리 모두는 해안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진 장소에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완벽하게 선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으며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과 놀라움

 나는 천국에서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그는 대학교 4년 동안 제일 친했던 친구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제일 처음으로 그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신앙을 권유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는 내게 거센 반발로 거절을 했습니다. 그 후 군에 입대한 친구는 1966년 1월 3일 한국 해병장교로 월남전에 참가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나중에 전사 통지서를 받은 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것을 볼 때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사실은 속으로 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네가 가진 확신이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믿는 예수님을 나도 믿고 싶었지만 작은 자존심 때문에 너를 미워했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우연히 미국 침례교 목사님을 만났고 그 분에게서 복음을 들었다. 이제는 네가 믿는 예수를 나도 믿게 되었고 요즘에는 소대원들과 함께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는 천국에서 그 형제를 만날 것입니다.

 

     구원을 파는 것이 아니다

 제가 오래 전에 읽은 이야기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떨어진 옷을 입은 한 신문팔이 소년이 주일 아침에 신문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도시 중앙부의 아름다운 집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현관에서 서 있었으며 자기도 깜짝 놀라면서 얼떨결에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실업계의 거물인 로우리씨가 문을 열면서 그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놀란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에게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니, 나의 아내와 함께 있을 뿐 아이들은 없단다.” “아, 그렇다면 저는 아저씨의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는 무척 놀라서 그의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는 부인에게 몸을 돌려 말했습니다. “여보. 작은 아이를 하나 갖고 싶소.” 그녀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작은 소년은 소망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만약 저를 아저씨의 아이로 삼아주신다면,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그는 아이에게 가정이 있는지,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소년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얘야 그러면 너는 어디에서 자니.”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길에서요.” 그러자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 아이를 맞이해요.” 그들은 그 소년을 아들로 맞아들였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소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신문과 13페니를 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그 자비한 남자는 그것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것을 가지고 있으렴. 나는 우리 둘을 위해서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어.”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것을 그에게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은 파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살 수 없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이다. 나는 우리 둘을 위해서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은혜와 값없는 입양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우리 죄인들을 환영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주님의 이름이 주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입니다.

 

     귀한 약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동네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미국에서는‘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상품화되어 큰 효과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선교사를 찾아와 전염병에 걸렸으니 좋은 약을 좀 팔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페니실린을 주면서 “이 약은 최근에 발명된 것으로 아주 좋은 항생제여서 곧 병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농부는 아주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며 값을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그냥 무료로 주는 것이니 돈을 내지 말고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농부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선교사 집을 떠났습니다.

 농부는‘그처럼 좋은 약이라면 무척 비싸야 할 것인데 무료인 것을 보면 아무 효력 없는 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가 가만히 창문으로 보니 농부가 그 집을 나가면서 그 귀한 약을 땅에 던지며 발로 문질러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온 가족이 그 무서운 전염병에서 고침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미련한 농부는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무시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린양의 피는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그가 고난을 당했기 때문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히브리서 4:15

우리 주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사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다 아신다.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광고를 써 붙였다:

"강아지 세일"

강아지를 보러 온 사람들 중에 어린 소년이 있었다.

"저, 아저씨, 강아지가 너무 비싸지 않으면 저도 한 마리 사고 싶은데요"라고 그 소년은 말했다.

"글쎄다, 이 강아지들은 10,000원씩인데."

그 소년은 울상을 지으며 "저는 겨우 1,600원밖에 없는데요. 구경만 좀 해도 될까요?"

"아 그럼. 얼마든지 보렴. 누가 아니 또 아저씨가 그 값에 줄 수 있을지."

그 아이는 다섯 마리의 복술 강아지들을 죽 훑어보더니 "제가 들으니까 이 중에 한 마리가 다리를 잘 못쓴다고 하던데요"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그 녀석은 평생 다리를 절텐데."

"아, 그게 제가 사고 싶어 하던 강아지예요. 제가 그 강아지 값을 조금씩 조금씩 갚아 나가면 안 될까요?"

"그렇지만 항상 다리를 절턴데."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싱긋 웃으며 바지 한 쪽을 걷어 올리더니 그곳에 부착되어 있는 죔쇠를 보여 주었다. "저도 잘 걷지 못해요"라고 말한 다음 그 강아지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제 생각에 저 강아지는 많은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절뚝발이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옜다. 가지고 가라. 그래 너라면 이 강아지를 잘 보살필 수 있을거다.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 주인은 그 강아지를 선뜻 내주었다.

그 소년은 자신이 절음발이였기 때문에 그 강아지를 그렇게 불쌍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구원, 영접)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가운데 화라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어렸을 때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신문배달을 하였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신문을 돌리러 갔는데 큰 철망 문이 있어서 신문을 멀리 던져 넣느라고 그 살창문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습니다. 그 때 언뜻"내가 머리는 문안에 있고 몸은 문밖에 있으니 내가 안에 있는 것인가 밖에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대문을 왈칵 열었습니다.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 하였습니다. 그가 후에 한 말이"내가 문밖에 있었는지 문안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 온전한 곳에 있지 않은 것이 가장 미련하다"라고 했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려면 온전히 영접하십시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약속

 버틀러라고 하는 유명한 영국교회 감독이 있었다. 그 감독이 병이 중해서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에 자기의 가까운 친구 목사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버틀러 감독은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그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일생토록 죄를 멀리하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갖은 애를 써왔지만 나는 원래 약한 인간이니까 지금 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각하니 내 마음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들어온다.” 그 말을 들은 친구 목사가 말했다.

“아 감독님.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속량해주신 구주가 아닙니까?”

“그렇지 예수님께서 참 구주가 되시지. 그러나 꼭 내구주가 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 감독이 의심스럽게 반문할 때 친구 목사가 다시 말했다.

“감독님. 예수님께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을 때에 감독은 얼굴에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 내가 성경을 수 천 번 보았지만 그 구절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았구나.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간다.” 성경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희생

 어떤 목사가 한 농가에서 한동안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크리스천이 아니었지만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해오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언젠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참뜻을 주인에게 이 설명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농장 주인이 목사에게 닭장으로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둥지에 암닭 한 마리가 앉아있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 새끼병아리들이 뽀죽뽀죽 밖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농장 주인이 말했습니다.「머리에 난 상처를 좀 보십시오. 간밤에 족제비가 피를 몽땅 빨아 먹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새끼들이 족제비에게 다칠까봐 꼼짝도 않고 가만있었던 거죠.」

 그때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움직일 수도 있었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움직였더라면 선생님과 나는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농장 주인은 목사의 말뜻을 깨닫고는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자기부인)

 스텐리 존스목사가 벧기에령 콩고의 미국 선교사집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하루는 그 집의 열여덟 살짜리 소녀가 그에게 와서 "여쭈어 볼 것이 있는데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애야, 그리스도께서 너를 취하셔야 해." 스텐리 존스 목사는 이것이 요점이고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충 설명이 요구되는데 그는 '당신'의 포기에로 인도하는 다섯 단계의 절차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가까이 다가가는 단계. 이것이 시험적인 탐구 단계이다. 당신은 자신을 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것은 예와 아니요 를 앞에 놓은 단계이다.

 둘째,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드리려는 내적 결단을 내리는 단계. 결단의 단계.

 셋째, 당신은 결단을 이행한다.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내적인 포기를 한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줌으로 당신도 이제 자유롭게 그 사람으로부터 취한다. 자아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속하고 그 사람은 당신에게 속한다. 당신들은 하나이다.

 다섯째, 마음과 마음, 뜻과 뜻, 존재와 존재의 끊임없는 상호교류와 적응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급류에 몸 던져 어린이 구한 살신성인

 서울 송파구 방이동 주신교회 김진호목사(59.예장합동 정통황해노회 부노회장)가 물에 빠진 교회학교 학생을 구한 뒤 급류에 휘말려 익사, 살신성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목사는 지난 20일 오후 3시쯤 경기도 청평유원지에서 교회학교 수련회를 인도하던 중 수영하고 있던 이 교회 김모군(초등학교6년)이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뛰어 들어 김군을 급류 밖으로 밀어 낸 뒤 힘에 부쳐 숨졌다.

 당시 청평유원지에는 김목사교회의 교회학교 1백여 명과 유원지를 찾은 피서인파가 있었으나 갑작스런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고 말았다. 김목사는 급류에 휘말려 물속에 가라 앉은 뒤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교인들은 잠수부를 동원, 5일 뒤인 25일 김목사의 시신을 찾아냈다.

주신교회 교인들은 "평소에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한 애정을 갖고 있던 김목사가 물에 빠진 학생을 보고는 나이도 잊은 채 뛰어 들어 변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예장합동정통 서상기총무는 "김목사의 살신성인 정신이 많은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5분 후면

 여러 사람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또 들어왔다. 오랫동안 목욕을 안했음인지 때가 많은 것을 보고 들어온 사람 하나가 상을 찡그리고 "어휴, 때좀 봐" 하면서 한쪽으로 비킨다. 그러자 그 젊은이 하는 말이 "여보 당신은 처음부터 깨끗했소? 나도 5분 후면 당신처럼 깨끗해진단 말이오."

 목욕 을 마치고 두 사람이 목욕탕을 나왔는데 늦게 온 사람은 택시 운전사, 먼저 온 사람은 연탄 배달 군이었다. 연탄 리어카를 끌고 터덜터덜 가는데 늦게 온 사람은 택시를 타고 기분 좋게 달려가 버렸다.

 

     나를 이끄소서

 우리는 몽블랑 기슭의 샤모니 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었다. 한 젊은 의사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여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그만 마을은 그를 축하하느라 밝게 빛났으며 산꼭대기에는 그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오른 후, 내려오던 중에 안내자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로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자 가기를 주장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인은 극구 만류했지만. 기어이 그는 로프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를 선언했다. 마침내 안내인은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젊은이는 발이 얼음에서 이끌어졌는데, 얼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막을 길이 없었다. 로프가 없었으므로 안내인이 그를 붙잡아서 다시 끌어당길 수도 없었다. 벼랑 밑의 얼음 위에는 그 젊은 의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종이 울리고 마을 전체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지만 불행히도 결정적인 순간에 로프가 싫어서 안내받기를 거절한 것이다. 당신도 로프에 싫증을 느끼는가?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붙잡고 막으실 때, 때로 우리는 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며, 이는 위험한 길이 끝날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인도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 말라. '당신께서 나를 이끄소서'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때때로 하늘의 종이 '너는 무사히 본향에 다다랐다'고 알려 줄 것이다.

 

     나사로처럼....

성경에 '나사로'가 나옵니다.

그를 병들고 가난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몸을 핥아주는 개 한 마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높은 윤리나 인격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소로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지금 마음이 어둡습니까?

하나님 앞에 거지가 되십시오. 나사로처럼....

 

      낮아짐과 은혜

 70년대의 한 인기 가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대마초 사건에 걸려 감옥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3개월가량 징역을 살았는데 거기서 어느 사형수로부터 전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형수의 진지한 전도에 감동을 받아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사형수가 ?당신은 곧 나가게 되겠지요. 나가면 내가 세상에서 예수님 위해 못 다한 몫까지 합해서 해주시오?라고 하더랍니다. 그 가수는 대마초 사건으로 해서 감방에 들어와 있을 때만 해도 자기가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수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악과 고통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대마초에서 해방을 받았던 것입니다.

 출감한 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왜 사형수가 판사보다 구원받기 쉬운지 압니까. 사형수는 자기에게 대해 절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감방 밖에 있을 때보다 안에 들어가서 예수 믿기가 쉬운지 압니까? 감방 안에 들어가면 자기에게 절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시는 그분의 말씀 앞에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는 진지한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을 붙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이 절망에서 건질 수 있는 구원자이십니다.

 

     내 모습 이대로

 무디 목사님이 스코틀랜드를 여행하시면서 그곳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집회에 한 소녀가 참석했습니다. 이 소녀는 영혼의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는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소녀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나는 배운 것도 없는데. 예쁘지도 않고. 명성도 없으며, 돈도 없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아서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던 이 소녀가 그 집회의 마지막 날 무디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녀는 우뚝 서서 정면을 향해 달려 나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받아 주시지요.? 달려 나오는 소녀를 끌어안으면서 무디 목사님은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께서 그대로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매를 받으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날 하나님이 자기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셨다는 해방감에서 주님 앞에 찬양과 감격의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에 그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성가대의 에리사 헤밀턴이라는 여자가 붓을 들어서 작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무디 목사님과 평생을 음악 목사로 동역했던 생키가 작곡을 시작합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하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소서.

 

     내가 떠나기 전

 노인은 전도지를 주문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군.? 노인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점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여기 오는 것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요.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전도지를 나눠주었어요. 나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더 해 주셨다고 믿어요.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열매를 보지 못했어요. 내가 떠나기 전에 그 전도지들이 한 영혼이라도 축복을 갖다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때 그 조그만 가게의 다른 쪽에는 그 노인보다 나이가 덜 먹은 남자 한 분이 서 있었다. 그는 노인의 말과 뒤이어 터져 나오는 한숨소리를 들었다. 그는 진지한 걸음으로 노인에게 다가와 노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노인께서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노인을 잘 압니다. 12년 전 6월 19일 12시 반쯤 노인께서는 뉴욕 14가의 모퉁이에서 저에게 전도지를 주셨으며, 그 전도지는 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이래로 저도 역시 전도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방금 전에 노인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저를 이곳으로 보내어 노인께서 나눠주신 전도지들 중 적어도 한 장을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알려주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눈에는 눈물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은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제가 죽기 전에 제 생애의 열매 하나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내일부터 하자

 비유 하나를 들겠습니다. 악마가 지옥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전부 실족 시키느냐 하는 회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악마가 "그것은 간단합니다. 기독교인들을 전부 죽이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늙은 악마는 "옛날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기독교인 한 사람을 죽이면 순교의 피가 씨가 되어 기독교인들이 몇 백 몇 천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젊은 악마 하나가 일어나서 "그러면 죽이지 말고 감옥에 가두면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못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늙은 악마는 그것도 쓸데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감옥에서 모두 기도를 하는 바람에 우리의 세력이 더 약해지더라고 했습니다.

또 젊은 악마 하나가 "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매를 좀 때리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늙은 악마는 그것도 안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매를 한 대 때리면 그 아픈 자리에서 예수가 몇 백 개 생겨나고, 매를 때리면 때릴수록 손해가 나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젊은 악마 하나는 "남녀의 성문제를 가지고 실족하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늙은 악마는 그것은 좋은 것이고 성공률도 있지만 결국은 손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실족을 하면 제 7계명을 범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설교를 해서 느닷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하고 준비를 하니까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늙은 악마가 꾀를 하나 냈습니다. 예수를 잘 믿게 하고, 기도를 하게하고, 성경을 읽게 하고, 전도를 하게하고, 사랑하게 하는 등 전부하도록 해놓고는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 오늘은 불편하니까 내일부터 하자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마의 이 계략에 제일 많이 걸려 있습니다. 부름 받는 것은 현재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부름 받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쁜 사람의 시간을 요구하십니다. 사람들이 현실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름을 받는 시간과 환경은 현재인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상)

 

     너무 큰상

 중세 시대 전쟁 중 한 병사가 왕을 구해주었다. 승전 후 왕은 그 병사를 불러 그에게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힌 컵을 하사했다. 그 병사는 정교한 잔을 바라보며 말하길, "이것은 제가 받기에 너무 황송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자네가 받기에는 과분하겠지만, 내가 주기에는 별 것이 아니네."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우리에게 너무 과분한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셨다.

 

    다른 길은 없다(예수)

 유명한 고대의 수학자 유클리트(Euclid)의 제자 중에 소타(PtolemySotar)가 있다. 소타는 이집트의 황태자로 뒤에 왕이 된 사람이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는데 수학은 정말 그에게 괴로운 과목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유클리드 선생에게 물었다. "나를 위하여 좀더 쉬운 방법으로 가르쳐줄 수는 없습니까" 이때 유클리트의 입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두고 울려오는 유명한 말이 쏟아졌다. "배움의 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통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시멘트와 아스팔트의 보급으로 길이 깨끗해지고 편해졌다. 이런 시대에 진흙길을 그냥 내버려두거나 포장도로를 외면하고 흙탕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우둔한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술집의 길, 도박장의 길, 방탕과 사치의 퇴폐의 길, 욕심의 길, 미움의 길 등 흙탕 속을 허우적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진흙길은 진흙으로 새로워질 수 없고 아스팔트를 덮어 새 길로 만들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을 평탄케 하는"(눅3:5) 구원자로 오셨다.

 카나다 토론토에 사는 멀피 (Antoina Murphy)씨는 최근 1년 징역형이 언도되었다. 34세의 미혼녀인 멀피는 회사 돈 1천 3백 달러를 훔친 일이 있는데 이 사건을 변호해주는 변호사 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9백 달러를 훔쳤다. 지난 죄를 덮기 위하여 새 죄를 짓게 된다.

두 가지를 덮기 위해 네 가지 죄를 짓는다. 죄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속히 확장된다. 흙탕길을 진흙으로 덮을 수는 없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한번은 왕실 요트로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의 다정스런 눈길은 지칠 대로 지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요트를 따라오는 작은 새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 새는 돛대 꼭대기 부근에서 눈부신 태양빛을 받으며 날고 있었는데. 비단같이 나부끼는 깃발의 화려함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여왕은 공주들에게 돌아서서 지칠 대로 지쳐버려 금방이라도 파도 위로 떨어질 듯 날고 있는 새를 가리켰다. 그 새는 쉴 곳을 찾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파도 위로 떠오른 새는 돛대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그 새는 자신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유인한 눈부신 깃발 위에서 쉬려고 하였다. 이러한 가엾은 새의 모습을 보다 못한 여왕은 선원들에게 그 지친 새를 구해주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여왕의 명령을 시행하기 위해 돛대에 올라가 새를 잡으려고 모든 기술과 장치를 설치하여 보았으나 뜻대로 되질 않았고. 그들의 온갖 노력은 오히려 새에게 더욱 공포심을 갖게 했다. 결국 가엾은 작은 새는 힘에 부쳐 갑판 위에 떨어져 죽었다. 여왕은 몸을 구푸려 새를 집어 부드럽게 그의 손 안에 놓았다. 여왕은 새의 생명을 구하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새를 구할 수는 없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구원 해주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당신을 구원해주려는 의지는 가졌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단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당신에게 왕이시며 또한 구세주이신 예수를 전해줄 수 있을 뿐이다.

 

    대신해서

 미국 이민 초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들은 다 미국 동부에 살고 있었다. 그 후 어떤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라는 지방에; 가서 금을 캤는데 정금을 캐었다. 이 소식은 미국 동부에 전해지자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에 금을 캐러 갔다.

 어떤 부부는 돈 벌 소망이 있다고 해서 재산을 팔고 금을 캐러 갈 것을 상의 했다. 그 후 남편이 갔고 일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갑자기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이 "급 오라!"는 전보를 받아다. 그 뜻은 금을 캤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고 아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고 배도 파나마 운하로 아직 다니지 못하고 기차도 없었기 때문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은 아주 많은 시일이 필요했다.

 갑자기 어느 날 배 위에 소리가 아주 시끄러웠다. 그녀는 해적을 만난 줄 알고 문을 잠가버리고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후에 연기냄새를 맡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불이 난 게 아닌가 하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과연 배는 큰 불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아들과 함께 갑판에 나가 보니 구명보트에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득 타고 있었다. 본래 유사시에는 부인과 어린이가 먼저 타지만 그녀는 늦게 나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옮겨 타 있었다. 그녀가 계속 간절히 구해줄 것을 호소하자 배의 선원은 한 사람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허락했다. 자, 과연 누가탈 것인가? 둘 다 탈 수도 없고 둘 다 죽을 수도 없다. 한 사람은 죽고 한사람은 살아야 한다. 결국 할 수없이 어머니는 아들을 내려 보내며 수부에게 자기 남편이 있는 지명을 적어주며 아이를 남편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내 아들아 네가 아버지를 보게 되거든 네 어머니가 너로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너를 대신해서 불속에서 물속에서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해다오"라고 말하면서 배와 함께 죽고 말았다. "

*너를 대신해서"라는 말을 기억하라 ! 이것은 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을 예표하는 작은 그림자이다.

 

     더 좋은 편

 어떤 할머니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구원받은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였다. 하루는 그가 나가는 교회 목사를 찾아가 구원받은 확신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만약 할머니의 집에 두 이웃이 있는데 한 집에서는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다른 이웃집에서는 늘 먹고 마시며 즐겁다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느 집의 소리에 더 마음이 쏠리겠습니까?" 라고 하자 그 할머니는 "그야 매일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정에 귀가 더 쏠리지요."라고 하였다. 그 때 목사가 "안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더 좋은 편은 어느 쪽인가. 우리는 주님 쪽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도자기 공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지대에 사는 한사람을 방문하였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그렇습니다.??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 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저는 쓸모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길 바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 흙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돈, 건강, 교육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당신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1. 돈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꼭 필요하고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돈입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돈이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사랑합니까?

  2. 건강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건강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돈 많은 자라도 건강을 잃으면 다 귀찮아 지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선 건강한 것이 무엇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외국까지라도 가서,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으며, 별의별 일이 다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3. 교육

 지금은 지식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얻습니다. 그런데 돈 많고 건강한 바보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습겠지요? 그래서 각종 불법과외, 부정입학, 고3병, 자살 등 교육열에 대한 부작용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교육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돈과 건강과 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지 않으며, 이미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옛사람들은 황금을 ‘흑사심’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총명과 판단을 흐리게 하며 양심을 부패케 하고 정욕에 눈이 어두워지게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돈과 인간과의 관계는 마치 배와 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이나,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물속에 침몰하고 맙니다. 우리 인간에게 물질은 꼭 필요한 것이나, 그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급기야 인간은 파선된 배와 같아져 희망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황금만능주의에 속아서 돈이면 무엇이나 다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 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나라와 민족을 망치고 교회를 부패케 합니다.

 돈에 대한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는 있으나 돈으로 잠은 살 수가 없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지성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식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건물을 살 수 있으나 돈으로 행복한 가정은 살 수가 없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건강은 살수가 없다. 돈으로 사치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문화를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다. 돈으로 황금의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 영생, 천국, 그리고 구원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의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 그분만이 제일이십니다.

 

     두 팔을 넓게 펴신 주님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돌을 캐내는 채석장에서 인부들이 다이너마이트의 폭파 준비를 다 마치고 도화선에다 불을 붙였다. 모든 인부들이 다 대피하고 폭발하여 터질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가지 큰 일이 발생했다. 이제 몇 초만 지나면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게 되어 있는데 현장 앞에서 3살짜리 꼬마 애기가 어슬렁거리면서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큰일이다. 이제 불과 몇 초 후에는 터질 것인데 정말 큰일이다. 인부들이 어찌할 줄 모르며 아이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했으나 어린 것은 그것을 더 즐거워하며 웃고 있다. 이때에 그 애기의 엄마가 달려 왔다. 애기 엄마는 본능적으로 애기에게 달려가려고 하는 순간(달려갔으면 애기와 엄마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애기를 향하여 두 팔을 크고 넓게 펴고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득히 지었다. 애기는 엄마에게 달려 왔다. 품에 안기는 애기를 잡자마자 엄마는 대피소에 뛰어 들고. 순간 동시에. 다이너마이트는 굉음과 함께 폭발했던 것이다. 애기와 엄마는 무사히 살 수 있었다.

 사랑의 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향하여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시다. 두 팔을 넓게 펴신 주님의 품을 향해 달려 나가시라. 평강과 위로와 생명이 있을 것이다.

 

     떨어진 인부를 구한 양

 노르웨이에 있는 한 교회의 탑에 어린양의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다 사람들이 교회를 처음 짓고 있던 어느 날 높이 세워진 디딤대 위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가까이 있던 인부는 떨어진 동료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현장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떨어진 사람은 가벼운 상처만 입을 뿐 살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인부는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양떼 위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들 몇 마리가 깔려 죽고대신 이 사람들은 살아난 것이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을 위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이사야 53:5).

 

     뜻밖의 질문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유명한 일화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는 오늘의 우리는 종교나 혹은 교회의 이름으로 수없이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 모임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의 대 주제

 신구약성서의 대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요5:39) 그 예수의 생애와 교훈의 최선의 기록은 4복음서다. 그 복음서의 최선의 해석자는 사도바울의 13서신중에 바울신학의 화신은 로마서라 할 수 있고, 그 로마서의 핵심이 되고 열쇠 같은 두개의 낱말이 있는데 의와 믿음이다.

 의라는 단어가 55회, 믿음이라는 단어가 58회 사용되었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노와 저주와 죽음아래 있던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고, 하나님의 의복처럼 만들 입혀 주시는 의다. 인간의 스스로 됨(Being)이나, 함(doing)에 있는 의가 아니고,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만든 하나님의 의다.

 그것을 받는 방법은 믿음이라는 손이다. 이것이 구원의 비결이며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신 신령한 지식에 속하는 것이다.

 

     링컨의 일화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의 청년시절의 일화이다. 역마차를 타고 가던 링컨은 돼지가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 모두 재미있어 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링컨은 역마차를 세우고 도랑으로 뛰어들어 돼지를 구출했다. 물론 링컨 자신의 꼴은 말이 아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역마차에 다시 탈 수는 없게 되었지만. 돼지의 생명을 건진 것으로 청년 링컨은 대만족이었다. 매를 맞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쏟으며 고통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 고통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링컨이 군에 있을 때였다. 한 늙은 인디언이 백인지역으로 들어왔다. 이 노인은 백인지역에 용무로 들어갈 수 있다는 증명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군인들은 인디언에 대한 적개심으로 증명서를 찢어 없애고 이 노인을 죽이려고 했다. 그 순간 링컨이 달려 나갔다. 인디언 노인 앞에 두 팔을 벌리고 “먼저 나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이렇게 해서 노인은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의 생명을 위하여 책임진다는 선언이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3백만 노예에 대한 해방을 선언하는 성명서가 고시되었다. 나무와 벽과 울타리 등 눈에 뜨이는 모든 장소는 이 해방선언문으로 초만원이었다. 어떤 노예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여전히 주인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런 흑인도 역시 해방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해방선언문이다. “내가 정말 죄에서 용서와 해방을 받았을까.”하고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이 가끔 있지만 안심해도 좋다. 당신이 자유의 선언인 십자가를 믿는다면 당신은 완전하게 구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유언

 어느 집회에서 귀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다. 그는 몹시도 방탕한 아들로 경건한 어머니를 괴롭혔다. 아주 힘겹게 일해서 겨우 아들을 공부시킨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이 불순종하고 불효하는 아들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나가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앞에서 음주도 서슴지 않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따지며 제멋대로 방탕하게 굴었다. 그러다가 병으로 눕게 된 어머니의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 전날까지 밤늦도록 술에 취해 있던 아들은 정신이 바짝 났다. 이제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겨우 들릴락 말락 한 힘없는 목소리로 어머니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오열을 터뜨렸다. 말할 수 없는 회한으로 그 아들은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그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었다. 어머님이 늘 곁에 두고 읽으시던 낡은 성경이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며칠을 성경을 안고 시름하던 그는 드디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깨달았다. 어머님이 붉은 줄로 몇 번씩 그어 놓은 그 한 구절은 살아서 그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성경 읽는 일만을 계속하다가 어머니의 유언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길만이 어머님께 대한 최대의 효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 기회 있는 대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내가 그 분의 메시지를 들을 때 그 목사님은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의 음성은 강한 능력으로 사람들의 심령을 흔들어 놓았다.

 

     만병통치약

 한 성도가 늘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교회를 잘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그 집에 심방을 가셔서 "내가 성도님의 병을 고치는 약을 알려 줄테니 예수님을 잘 믿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성도는 귀가 솔깃해서 "그럼요" 하였습니다. "이제 약을 두 첩을 먹는데 한 첩은 구약이요, 한 첩은 신약입니다. 이 약 두 첩만 잘 먹으면 만병통치약이요,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도 고칠 수가 있습니다."

 

     망가진 얼굴

 어느 부흥회 때 그곳에 참석했던 한 부인의 간증이다.

그 부인은 국가 고위공무원의 부인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였다. 그래서 그 잘 생긴 얼굴을 더 아름답게 하고 싶은 욕망에 성형수술을 하였다.

 그런데 이 수술이 잘못되어 얼굴이 이상하게 변해버려 거울을 보지도 못하고 매일 울며서 지냈다. 나중에는 살 의욕까지 잃었는데, 마침 어느 부흥회에 참석 권유를 받고 그곳에 참석했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 뒤 이 부인은 신앙생활에 열심이었고 개척교회들을 도와주며 전도사업을 충성스럽게 하고 있다면서 덧붙여 하는 말이 자기가 그때 얼굴에 화장이나 하면서 자신을 다듬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평안하게 지냈다면 지옥 갈뻔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간증을 했다.

 

     목사님 때문에

 저는 구원을 모르고서도 중고등학생 70명을 담당하면서 몇 년을 가르쳤습니다. 뉴욕에 갔을 때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문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한 부인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목사님. 참 반갑습니다. 목사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제 남편에게 들었습니다.” “남편이 누구신데요.” “남편이 ...인데. 옛날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이라고 하던데요”하면서 그 남편을 가리키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이 이어서 하는 말이. “목사님. 그런데 제 남편이 교회를 안 다니려고 합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오! 주여. 잘못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몰라서 그랬습니다.” 제가 구원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가르쳐주었을 텐데. 그 아이들이 구원받아 거듭난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함없이 지금까지 주님을 섬겼으면 그 부인이 저한테 와서 뭐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목사님. 목사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제 남편이 목사님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던데요. 참 감사합니다.”라고 할 텐데 정 반대 이야기를 듣게 되었으니. 그때 제가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호텔에 돌아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그 부인의 남편이 어렸을 때 제가 구원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저 부인이 고생하는 것은 제 잘못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다음에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당신에게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은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딸로 태어나 오랜 세월을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인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날 아침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고 나가보니 웬 허름한 옷을 걸친 여인이 그녀에게 찾아와 간청하였다.

"저는 루라고 합니다. 북쪽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흉년이 심하게 들자 임신한 저를 두고 남편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제발 제게 도움을 좀 주십시오."

펄벅은 새벽에 찾아온 그녀가 솔직히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생각 끝에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늙으신 아버님도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 함께 묵기는 어려우니 저희 집 뒤에 있는 노동자 숙소에 묵으실 곳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펄벅은 루부인을 그곳에 거처케 하였고, 식사를 매일 마련해서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녀는 곧 몸을 회복하였고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붉은 군대가 외국인들을 찾아 모두 죽이고 다녔다.

펄벅은 연로한 아버님과 남편, 그리고 자식과 여동생과 함께 꼼짝 못하고 집에 있었다. 기관총소리는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루부인이 들어왔다.

"어서, 어서 나를 따라오세요. 빨리."

외국인은 물론이요 외국인을 숨겨 준 사람까지 물살을 당하니 안 된다고 거듭 만류를 하였으나 루부인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그녀의 집 헛간에 펄벅의 가족들을 숨겨주었다.

펄벅의 가족들은 그녀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고, 며칠 후 사태가 진정된 후에 미국 배를 타고 피신하였다.

펄벅의 나눔이 다시 되돌아와서 그녀와 그녀 가족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무덤 앞에 심은 나무

 헨리 비쳐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남북전쟁 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있노라니까. 웬 사람이 새로 된 무덤 앞에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래서 비쳐 목사님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이 무덤은 당신 가족의 무덤입니까?" "아니요." "그럼 친척 되시나요?" "아닙니다." "그럼 친구라도..."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여기다 나무를 심으시나요?" "사실은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내 대신 죽었습니다." 약 반년 전 그는 영장을 받았으나, 자기가 군대에 안가면 집안 식구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고, 또 그렇다고 돈을 내고 사람을 사서 대신 군대에 보낼 형편도 못되어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웬 청년이 나타나 돈도 안 받고 자기 대신 군에 갔다 오겠다고 하더니 불행히도 전사를 했다는 것이다. 몇 달 만에 겨우 무덤을 찾게 되어 나무를 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패를 달았다.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

 

     문을 열 때

 “어느 날 아침, 새에게 모이를 주려고 한 일이 있었답니다. 날은 흐리고 추웠으며, 땅에는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나는 현관 밖으로 나가 빵 부스러기를 한 줌 집어 던지고는 새들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새들은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도 두려워하면서 여전히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나를 믿지 못한 것이죠. 내가 앉아서 그 새들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전에 없이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주시고 계획하시고 소망하시고 기대하고 계시지만, 내가 소심한 친구들인 새들에게 한 것처럼 지켜보시고 기다리셔야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어느 그리스도인의 간증이었습니다. 문을 연다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일입니다. 때때로 당신을 찌르는 양심의 세미하고도 조용한 음성은 그리스도 자신이 당신의 마음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시는 소리일지 모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이 문을 여는 매우 간단한 행동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에 그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지적인 행동을 말입니다. 그분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가 당신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계시며,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에 곧바로 들어가리라는 확신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지금 즉시 그 확신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당신의 삶의 문을 그에게 열어 드리십시오. 약속하신 그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신 것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당신의 삶 가운데 들어오시기를 요청한다면 당신은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물을 떠날 수 없는 물고기

 해롤드 브래드슨의 말에 의하면, 몇몇 과학자들이 물고기를 물 밖에서 살 수 있도록 개발하자는 의견을 내어놓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주 건강하게 생긴 붉은 청어 몇 마리를 가지고 새끼를 번식시켰다. 그후 잡종 교배를 하고 호르몬 주사를 놓은 뒤, 염색체를 만들게 되어 마침내 물 밖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를 개발해 냈다.

 그러나 이것을 기획했던 지도자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물고기가 비록 물 밖에서 살기는 하지만 여전히 물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다시 교육시킵시다."라고 그는 말했다. "물고기의 욕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가장 강한 반사 작용도 계속 반복을 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 물고기는 젖은 상태로 있느니 차라리 죽고자했다. 심지어 습기조차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것에 성공한 팀의 지도자는 무척 의기양양해서 물고기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불행인 지 다행인 지 하필 그 물고기가 호수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고기는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눈과 아가미는 꽉 닫혔으며, 물에 젖을까봐 움직이지도 않았다. 물론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모든 직감도 '노우(no)'라고 말했다. 하지만 숨 쉬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고기는 잠깐 아가미를 열었다. 눈도 불룩해졌다. 다시 숨도 쉬었고, 지느러미도 움직였다. 물고기는 세 번 숨을 쉬었으며, 기뻐서 몸을 흔들었다. 그 물고기는 물을 만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 안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믿고 따라야 영원

 인간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주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십니다. 인간은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그 분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이세상의 것은 다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청춘도, 건강도, 명예도, 쾌락도, 권세도 한 순간입니다. 영원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앙과 하늘나라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건강을 빼 앗기도 하시며 물질을, 사업을, 자녀를, 배경을 빼앗기도 하십니다. 사람은 이것을 빼앗길 때 [하나님이시여, 철석같이 믿었던 나의 웃시야가 죽었나이다. 저는 누굴 믿고 사나요?]하고 탄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 사람아, 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 않은가?

 영광의 주, 구속의 주, 권세의 주, 만유의 주를 보라]고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깨달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을 보아도 모래알처럼 보여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 (김장환)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어떤 회사에서 물만 부으면 되는 케이크용 가루를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 제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기대 이하로 그 제품의 인기도는 너무나 저조했습니다. 이에 고심을 하기 시작한 회사 측은 수많은 여론조사 끝에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

 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부랴부랴 제품의 내용물을 바꾸어 물과 계란을 넣으면 되는 케이크용 가루를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건 너무 쉬우므로 그것에 선행을 곁들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저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 당신은 행위와 믿음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공로와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법과 사랑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한 사건은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취급하실 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밝혀주는 실례가 될 것 같다.

 한 젊은 여자가 과속으로 운전하다가 붙잡혔다. 그 여자는 딱지를 떼이고 판사 앞에 섰다. 판사가 소환장을 읽고 말하기를 “유죄요? 무죄요?” 그 여자는 ‘유죄’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망치를 두드리고 10일이나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판사가 일어나더니 법복을 벗고 정면으로 내려가 지갑을 꺼내서는 벌금을 지불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판사는 그녀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의 딸이 법을 지키지 않았는데 그가 단순히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용서하겠다. 너는 가도 좋아.”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했다면 그는 정의로운 판사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 법을 존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딸을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법복을 벗고 정면으로 내려와서 그녀의 아버지의 자격으로 대신 벌금을 지불했던 것이다.

 

      변화된 소년

 남편 잭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는데, 그것은 목사의 아들과 한바탕 싸우고 난 뒤에 있었던 일입니다. 두 소년이 목사관 뜰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뒹굴며 주먹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잭의 귀에 엄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만 해라, 잭. 이리 들어오너라.? 그는 목사님의 서재로 들어가면서‘맙소사. 이젠 큰일 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잭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잭. 그리스도를 영접한 적이 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잭은 다섯 살 때부터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지만.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따라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사님 아들과 싸움을 하던 현장에서 붙들린 처지에 이에 대해서 무슨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잭은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시지만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잔인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다는 것을 이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그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이 땅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사실을 다 알았지만 단지 그 진리에 대한 응답으로 분명한 결단을 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아니오, 한 번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그에게 주님을 영접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예?라고 대답하자.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구주로 들어와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쓰였고.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이란?

 동양인의 복의 개념은 한자를 풀이하면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 곧 복 복(福)자를 보니 옷 의(衣)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이 합친 것이다. 이는 옷 잘 입고 등 따시고 하나 뿐인 입에 풀칠할 전답이 있으면 족하다는 뜻이다.

 서양인들의 복의 개념도 비슷하다. 하루의 행복은 이발소에 가는 것이고, 일주일의 행복은 결혼하는 것이고, 한 달 행복은 말 타는 것이고, 일 년 행복은 새집 짓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자가 행복자라고 했고, 또 남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복음으로 구원도 받았고 생명 자녀 물자도 다 주께로부터 받았다.

 요즘 양심 있는 기업가들이 사회서 번 돈을 사회로 돌린다면서 선한 사업에 희사하는 자들이 간혹 있다. 우리도 복음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행복 자가 되자.

 

     복제인간, 영혼이 있나 없나

 "복제인간도 영혼이 있을까"

 복제인간이 태어난다면 복제인간의 영혼 유무(有無)는 복제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격적 인간으로 보느냐, 아니면 동물적 사람으로 보느냐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만일 복제인간에게 영혼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국가나 사회는 그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구원 및 전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부여받는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수정이후 자궁에 착상되는 순간 혹은 태아의 골격 등이 형성되는 4주정도가 지난 후에 영혼을 부여받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수정에 의해 정자(N)와 난자 세포(N)가 결합, 완전한 세포인 체세포(2N)가 탄생한다. 영혼은 체세포의 상태에서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제인간이 비록 수정이란 과정 없이 탄생되더라도 체세포(2N)의 분열에 의해 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혼을 부여받았다고 보는 것이 신학자들의 견해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으나 만일 복제인간이 태어난다면 그 존재도 구원의 대상이라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다.

 

    빈 배에 오신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 들였을 때 그의 인생은 새로운 의미로 변모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령 속에 예수님 대신 물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 나 영화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인생의 깊은 곳으로 갈 수 없으며 따라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의미 있고 복된 인생을 살려면 회개함으로 탐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심령 속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시기를[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 [하 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 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빈 배]에 오십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심령에는 예수님께서 오실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을 체험하려면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도로 깊은 인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상급

 어떤 한 아일랜드 출신의 청년이 신대륙인 미국에 건너가서 직업을 갖기 위해 런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기는 왔지만 뱃삯이 부족하여 생각다 못해 배의 선장을 직접 찾아가서 후에 꼭 갚겠노라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선장이 보니 청년의 신념에 찬 열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태워주기로 허락했습니다. 어렵게 승선하게 된 청년은 선장의 은혜가 고마워서 첫날부터 배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쓸고 닦으며 선원들의 일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청년의 모습을 선장은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몇 달 만에 배가 뉴욕 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짐을 챙겨서 바삐 가는데 청년은 선장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이 배가 영국을 거쳐 다시 미국에 돌아오는 날 반드시 뱃삯을 갖고 찾아오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청년을 태워준 것은 어디까지나 가족들을 위해 일자리를 찾는 청년에 대한 호의였고, 그보다도 이곳까지 오는 동안 배 안에서 일한 대가라며 돈을 청년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급에 대해 비슷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을 받을만한 조건이 우리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는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않고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였을 때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우리는 그 약속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약속을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상급의 약속도 전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새끼를 위해 죽은 암탉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했다. 가보니까 그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는 막 병아리들이 삐악 삐악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 있었다. 농부가 말하기를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의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그 놈이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멸망받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입니다.

 

      새로운 소망

 인간 삶에 있어서 누구의 인정을 받고 누구의 버림을 받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느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느냐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학생활 4년 동안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수백 번씩 사랑을 고백하던 같은 과의 남자와 결혼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3년 만에 이혼이라는 아픈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남편이 직장의 다른 여직원과 눈이 맞아 아내를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고통 받다가 먼 친척의 소개로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난 남편 역시 결혼 전 교제하던 어느 여인과의 불륜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다가 결혼한 아내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번씩이나 버림받았다는 충격으로 그 여인은 음독을 했습니다. 다행히 조기 발견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만. 그 후유증으로 안면 경련과 수족 마비증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병실 복도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 소리에 그녀는 빛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라도 예수의 손에 붙잡히면 새로운 소망을 소유케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딸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 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새로운 시작

 저는 6.25 동란 때에 빈손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성경만은 가지고 나왔습니다. 바위틈에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 성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옷을 찢어 책 표지에 입히고는 나무 밑에서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방공호 속에서 영어 콘사이스 사전 하나를 주워 성경과 같이 가지고 다녔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갈망이요,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지식에 대한 갈망입니다. 마지막에 버려야 된다면 저는 영어 콘사이스 사전을 버리고 성경 하나들고서 살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궁극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성경뿐입니다. 성경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신 후 다시 만나 기독교를 이야기하고 교회를 말해 봅시다."

 

     생 명

 모든 존재는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가치가 생명을 근거로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금은보석이 아닌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셨다. 가장 흔하고 천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을 육체로만 보면 사도 바울의 말대로 아무 육체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

사람은 가장 천한 흙과 가장 귀한 하나님의 생기가 만남으로 가장 귀한 피조물이 되었다. 사람의 귀함은 생명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생명이 없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지 인생의 생명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생명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데 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시다. 열매 없는 생명은 정죄를 받는다. 교회의 진정한 성도는 교회에 올 때 마다 은혜 받고 위로 받고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교회에 와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얻어가는 것이다.

 주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는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나게 된다. 가끔 어둠이 세상을 지배 하는 것 같아도 불의가 승리하고 악인의 웃음소리가 높아 보여도 성도는 오히려 소망이 있다. 빛 되신 주님이 오실 때 어둠의 일들은 다 부끄러움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서기 전에는 자신을 결코 바로 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가 예수를 믿고 어두운 일을 하나 하나 버린다면 그는 필경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는 인생과 내일에 대한 보장이 있는 인생은 삶의 자세가 다르다. 어둠은 항상 빛을 대적하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세상은 복음을 이길 수 없다. 칠흑과 같은 어둠이 있다가도 아침 햇빛이 비취면 어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님이 오실 때 악인의 번영은 다 무너져 버리게 된다.

 밤과 같은 세대에 잠자는 사람은 어둠에 정복당한 사람이다. 밤에 작은 등불을 켜놓고 깨어있는 성도는 어둠에 정복당하지 않는 사람이요 어둠과 싸우는 사람이다.

 그림을 돈 주고 산 사람이 그림의 주인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 사람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이다.

 

     생명의 씨앗

 [길은 여기에] 등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그녀의 간증적 작품을 읽은 사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좋아하게 되거나 믿게 되는 사람이 80%나 된다고 합니다. 그녀의 책이 수백만부나 나갔다면 그녀는 놀라운 전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어준 사람은 이름 없이 죽어간 한 폐병환자였습니다. 복음의 씨앗은 참으로 놀라운 생명의 씨앗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D.L.무디에게 복음을 심어준 사람은 시골 도시 초등학교 선생님 킴볼이었습니다. 화학박사이며 일생동안 처녀로 복음전파에만 힘썼던 미어즈 여사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학생들의 영적 훈련을 위해 기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왔습니다. 세계 대학생선교회의 창시자 빌 브라이트 박사도 그곳에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빌리 그래함도 그 기도원에서 회개했습니다.

한 크리스천 처녀가 시집도 포기하고 복음의 씨앗을 뿌려놓은 결과 이제까지도 엄청난 세계 변혁을 가져왔거니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바친 사랑

 1985년 3월 15일, 한 성공적인 노조협상가인 미국의 웨인 앨더슨씨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는 2차 세계대전에서 시그프리드 전선을 가로질러 독일로 진입한 첫 번째 미국 군인으로 부상당한 앨더슨 씨의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마에 그때 받은 상처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 당시의 가장 기억될 만한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앨더슨씨는 답하기를 그날 자기를 구해 준 빨간 머리의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앨더슨씨는 독일 군인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독일 군인은 자기 발밑에 수류탄이 터져 앨더슨씨는 진흙 속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곧 근처에서 자기 쪽을 향하여 독일군의 탄약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앨더슨씨는 만약 그 수류탄이 터지지 않았다면 그 기관총에 자기가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의 친구가 수류탄을 던져 자기를 넘어뜨려 줌으로 자기의 목숨이 붙어 있게 되었고, 그 친구의 시체 위에 납작 엎드려 치명적인 발사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를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한 그 사람을 저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그분 덕분에 살아난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앨더슨 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해주신 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덕분으로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생애 최대의 사건

 9년 전 김포공항에서 KAL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습니다.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활주로 맨 끝에 있는 콘크리트에 바퀴가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바퀴가 튕겨 달아나고 거대한 비행기는 굉장한 소리를 내며 동체로 한동안 미끄러져 갔습니다. 선반의 모든 물건은 떨어지고 사람들의 아우성소리와 함께 저는 “아. 사람이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꼭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때 비행기가 멈추어 섰습니다. 뒤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기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이 비상탈출구로 사람들을 밀쳐냈습니다. 저도 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할지 모르니 빨리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 큰 사고 가운데 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저에게 생애 최대의 사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결코 이것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찾아오신 일입니다. 그래서 내게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혁명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내가 살아나고.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죄와 심판과 지옥이 떠나가고 사죄와 구원과 천국이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생애에서 최대의 사건이 무엇입니까. 대 사건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것 아닙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커스행렬만 본 소년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서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해 보지 못한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읍내마을로 서커스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그 소년에게 돈을 주어 가보 도록했습니다. 그 소년이 읍내에 도착하였을 때 마침 그 서커스행렬은 도심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소년은 그 엄청난 광경을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악대며,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의상들이며, 사나운 짐승들, 그리고 사나운 짐승을 다루는 곡예사들은 시골뜨기 소년의 마음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광대한 사람이 나와 익살을 부리며 광대놀이를 할 때 광대 한 사람이 넋을 잃고 구경하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께서 주신 돈을 가만히 광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서커스일거야"하고 생각하면서, 그 행렬이 지나간 다음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소년은 비로소 자기가 본 것이 서커스가 아니라 단지 행렬만 보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치 못하고 단지 아는 것으로 머문 신자들의 구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교회를 통하여 단지 시회사업이나 사람의 친교, 어떤 모임 정도로만 알고 예수의 구원을 믿지 못한다면 서커스의 행렬만 보고 간 소년과 같습니다.

 

    성 안토니오의 교훈

 파루아의 성 안토니오도 어린 아이였을 때 예수님을 만났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왔나 보려고 달려 나갔습니다. 문을 열자 싸늘한 겨울 날씨에 떨고 서있는 누더기를 걸친 거지를 발견했습니다. 안토니오는 거지를 불쌍하게 여겨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버님에게 가서 당신에게 따뜻한 옷을 드리라고 부탁해 볼게요.”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당신네들이 사는 세상은 참 춥군요. 그러나 나는 옷을 구걸하려오진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굉장히 배가 고프신 모양이군요. 들어오세요. 우리 어머님이 당신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 것입니다.”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배가 고프긴 하지만, 음식을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안토니오는 깜작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당신은 우리집 문을 두드리셨어요.” 거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아이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러나 제 심장을 당신에게 드리면 나는 죽을 거에요.” 그러자 거지는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를 내려서. 거기에서 몇 개의 심장을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심장이고.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것이고. 이것은 성 이그나시우스의 것입니다. 나에게 심장을 준모든 사람들은 죽기는커녕 오히려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자기 앞에 서있는 거지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깨닫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분께 우리의 심장을 드립시다.

 

     성취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고 노아의 세 자녀에 대한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성취 되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막 7:28-29)

말은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입술의 복록을 먹는다.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롬 10:10) 고 하였다. 하나님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대로 된다.

 

     세 개의 피 묻은 못

 한 성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불려가게 된 꿈을 꾸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책과 엄위하신 하나님께서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의 꿈에는 한 거대한 양팔 저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천사들이 그가 행한 선행을 올려놓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는 마귀가 그가 행한 악한 일을 쌓아놓고 있었다. 그는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사들이 계속해서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울은 순식간에 악행을 쌓아놓는 쪽으로 기울여졌다. ?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소리쳤다. 그때. 그는 선행을 올려놓은 쪽에 세 개의 피 묻은 못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 못들은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도대체 세 개의 못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나 그 못이 저울 위로 떨어지자마자 저울은 선행 쪽으로 기울어졌다. 마귀가 그 위에 무엇을 올려놓든지 상관없이 저울은 그대로 있었다. 이 못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박혔던 못이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자유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이다. 그분이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져가셨기 때문에 당신이 '당해야 하는 것'은 없다. 당신은 이제 영원토록 슬픔 속에서 지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대로. 기쁨이신 분께서 슬픔이 되신 것을 그의 슬픔을 인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기쁨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독일의 폐허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족들이 한 집에서 살아야 했으며 퀀센트에서 집단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COLOGNE라고하는 도시에는 커다란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는 새고아치는 무너지고 창문은 다 깨어지고 기둥은 기우뚱 서있었습니다. 전후독일 백성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방법을 잃은 채 절망과 어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어느 한 사람이 쓰러져가는 그 교회의 창립 700주년을 기념하는 계획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소색은 퍼져 나갔습니다. 700주년을 기념하는 그날 폐허된 교회에는 30,000명의 실망한 독일인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700주년 기념예배가 시작되자 오랜 실망과 눈물 속에 가슴과 믿음은 산산 조각이 났던 그들의 눈에서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힘차게 울려 나오기 시작한 찬양과 함께 오랫동안 막혔던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과 가슴은 감사와 찬양으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700년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 그들이 용기만 내어도 그 교회를 다시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그들은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폐허가 되었던 700년돈 교회는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얘기의 핵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복구하는 동안 절망했던 독일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은 이상스럽게도 뜨거움과 감사로 되살아났으며 그 새 마음은 새 독일 건설이라는 다음단계로 불붙어 갔습니다. 그 다음 그들은 집을 지었으며, 교육장을 짓고, 회사를 지어 갔습니다. 결국 그 도시는 위대한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 반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신앙의 길로 또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극적인 간증만을 강조하다보면. 그러한 간증거리가 없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의 신앙의 가치를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에 아이언사이드라는 유명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이 친구들에게 어떤 전도 집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집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목사님이 집회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기도를 해주었던 친구들이 그 분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날 밤 그 집회를 통해서 몇 명이나 구원받았습니까.” 이에 목사님은 “세 사람 반이 구원받았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세 사람 반이라니... 이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 세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어린이가 구원받았다는 말씀이군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죠. 그 반대죠. 세 명의 어린이와 한 명의 어른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세 사람 반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까.” “어른들이야 인생을 반쯤은 다 써먹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른은 반쪽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인생 전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구원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때. 그들의 삶은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습되지 않는 신앙

 자기 스스로를 의사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홍콩이나 싱가폴 또는 뉴우델리에 개인 병원을 설립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허가를 내주는 관계당국은 먼저 그의 면허증을 점검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면허증 같은 건 없습니다. 또 그게 필요하지도 않고요.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 증조부는 의료기관에 종사했고 우리 할아버지는 의사였고 우리 아버지는 의과 대학의 교수가 아닙니까? 우리 어머니 역시 간호사이었고 또 나는 세계 에서 제일가는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경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

 

     소경

 런던에서 어떤 소경 한 사람이 매일처럼 점자책으로 된 성경을 한 부분씩 읽으면서 구걸을 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 소경이 사도행전을 읽고 있다가 그만 읽던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자책을 아래위로 샅샅이 더듬으면서 읽던 곳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만 세 낱말, '다른 이름이 없느니라"라는 구절만 소리 내어 계속 읊었습니다. 겉에서 그의 낭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구소경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웃지 않는 청년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때까지 늘 구원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고 동시에 세상의 많은 만족을 구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오직 이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중에 젊은 청년은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그의 침대 겉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께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그리스도가 그의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처의 결심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는, 슈바이처(Schweitzer, Albert) 박사는 21세 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30세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한 그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구원하는데 공헌하게 된 것이다.

 여러 청년들의 결심은 어떠한가? 결심이 없다던가, 낮은 것이나 아닌지? 위인들의 결심한 바를 배우도록 하자.

 

     실패한 자

 어떤 철도사업가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한 철도왕국을 이룩했고 수 천만 달러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사업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지금 이 세상에서도 가장 비참한 실패자의 손을 붙잡고 있다.? 그때 아들이 대답하기를 ?무슨 말씀을 하세요. 아버지? 아버지가 실패자라뇨. 아버지는 위대한 철도왕국을 건설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했으며 수 천만 달러를 벌어들이셨잖아요. 아버지가 실패자라니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고하였습니다. 그때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을 하는 동안에 나는 그리스도를 멀리 떠났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모든 자는 다 실패자들이다.? 그의 말은 참으로 옳았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인생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너는 실패한 자로다'라고 말씀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멘! 아멘!

 1852년 10월 24일, 다니엘 웹스더가 임종하던 날 밤에 그의 주치의인 제프리즈 박사는 그의 신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찬송가를 읽어주겠다고 말했다. 웹스터씨가 그의 제안에 동의하자 제프리즈 박사는 쿠퍼의 찬송가를 읽기 시작했다. "피로 가득한 옹달샘 하나. 그리스도의 혈관에서 흘러내린 피.", 이렇게 시작하여 마지막 연까지 계속 읽어 나갔다. "그 때 고상하고 달콤한 노래로, 나는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노래하겠네. 그 때 이 불쌍하고 잘 움직이지 않고 더듬거리는 혀, 무덤에 조용히 누워있네." 바로 그 때, 비록 가장 약하고 더듬거리는 인간의 혀였지만 웹스터는 강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아멘,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했다.

 

     어느 크리스천의 고백

 토레니에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의 책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씌어 있었습니다.

스위스에 삼십 년 동안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대개 정신병자들은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과거의 괴로웠던 일이나 어렸을 때 받았던 고통이나 충격이 있는데, 그들의 의식 속에서 그런 것을 찾아내어 고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의식을 분석하고 과거를 분석해 보아도 그녀의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토레니에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여자와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여자는 자기의 잘못된 것을 토레니에 앞에 낱낱이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30년 동안 정신과 의사들이 진단하고 분석해 보았어도 밝힐 수 없었던 그 여자의 병이 갑자기 치료되면서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황홀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나를 고쳐 주셨고 나는 주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고 하는 고백이 기록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의 경우가 아니고 모든 기독교인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44-46.50)

 

      어느 부인의 고백

 어떤 젊은 부인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지난 1월까지 나는 예수를 몰랐습니다. 나는 반역자요. 도둑이요. 알콜 중독자요. 약물중독자요. 간음하는 여자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며 복잡한 젊은 부인이었습니다. 나는 냉소적인 질문으로 모든 사람을 넘어뜨릴 생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약 1년 전에 성서연구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날 밤 나는 진심으로 성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몇 달 동안 성서를 연구하고 공부한 후에 요.3:16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들려왔고 나는 나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드렸습니다. 나는 이러한 행복이 존재했던 것을 절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하시며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찾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약과 알코올과 자유스러운 사랑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모두 헛된 것이었습니다. 죄는 나를 혼란과 불행과 죄의식과 자살로 이끄는 올무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도전과 배울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입니다. 지금 나는 깨어나 그날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인생의 종말

 죄악에 빠져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하나님의 종이 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주 예수께서 어떻게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는가를 말해주고,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처음에 이 젊은이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뻤고 평안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나이 많은 하나님의 종이 다시 찾아갔을 때, 그 젊은이는 얼굴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젊은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슬픈 기색이오? 사탄에게 고지 마십시오!"그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저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걸압니다.""그렇다면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그 젊은이는 쓸쓸히 말했습니다."이 땅에서의 내가 살날이 이제 다 끝나버렸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제가 주님께 무엇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이것이 그 슬픔의 이유였습니다. 그 나이 지긋한 하나님의 종은 그 젊은이를 위로해주었습니다. "형제여, 낙심하지 말아요. 내가 형제의 말을 노래로 만들겠소. 그래서 누구든지 이 노래를 듣고 마음에 자극을 받아 외국에 나가 복음을 전해서 영혼들을 구하게 되면, 당신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나서 찰스C.루터라는 그 청년은 가사를 지었고, 그 이후로 그 노래는 유명하게 되었습니다."나는 가야 합니까/ 그것도 빈손으로?/ 그렇게 나의 구주를 뵈어야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자극을 받아 뜨겁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팻 로벗슨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다.

목사는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 퇴근시간에 한잔 하러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여보, 나 구원받았소."하고 외쳤다.

"당신 미쳤군요"하는 아내의 소리에, "난 미치지 않았소. 난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는 취침시간쯤에 아무 말도 없이 찬장 문을 열고 거기 있던 위스키 병을 내려놓고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도에 쏟아버리기 시작하였다.

콸...콸...콸.... "당신 왜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아내가 달려와 마지막 술병을 움켜쥐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빼앗아 다 쏟아 버렸다. 구원의 기쁨은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은 예수를 믿고 무엇을 버렸는가? 또 지금은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

 

     영생은 선물이다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이 되는 개념 하나가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니 공로 없이 믿음이라는 손으로 받으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값없이 받으라는 뜻이다.

 값 없이라 하면 어딘가 부도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자격증 획득하듯 노력해서 얻는다면 실감이 나고 당당할 텐데 공로나 노력 없이 선물로 받으라고 말한다. 사실 무게 있고 값있는 것은 값이 없다. 목숨은 거저 얻은 것이다. 심장도 시간도 부모도 자녀도 조국도, 공기와 햇볕, 물과 내 마음과 지정의와 그것은 살수도 벌수도, 획득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서로 선물로 받는다. 너무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생은 선물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 선의의 선물 거절처럼 상대방을 모독하는 것은 없다.

 

      영생의 기쁨을 누리자 수 1~3/눅 1:57~8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5,26.

 현대인의 비극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는 소망이라는 백신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내일보다 모레가 더 좋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망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것으로 영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만 하는 데서 그치시는지요? 아니면 그 사실을 누리면서 사시는지요?

?주님, 저희에게 영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영생을 얻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당신은 영생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소망이 있다'라고 말하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죽어도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영원한 상급

 좀 우스운 예기 같지만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보면 알몸에 팬티만 하나 걸치고 있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한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강도일 것입니다. 임종 전에 그가 입은 옷,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위해 한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죽기 직전에 예수님께 "당신이 낙원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는 한마디로 낙원에 초대를 받았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구원보다도 구원 그 이후입니다. 이미 예수를 알았고 그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제는 그가 주실 상급을 위한 수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과정에 서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만큼 일할 기회와 시간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아무 한일도 없는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가리켜 건축으로 비유하면서 거기에는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집을 짓는 자와 금은보석으로 짓는 자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모든 것들은 금은보석으로 남을 것이며, 단지 육신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재미와 만족을 위하여 투자된 것들은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단지 잿더미를 남길 뿐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시험받기 위해 불로 태움이 있겠고 거기에 남은바 되는 것이 상급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는 당신과 나의 최고의 구호는 이것입니다.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 " ............

 

      영원한 삶

 우리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그에 따른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건에 접합니다. 신문에는 언제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실려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볼 때도 늘 전쟁과 테러의 충격적인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일시적인 문제입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는 영원성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근원적인 것은 영혼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일시적인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영원한 영광의 삶을 살든지, 영원한 형벌의 삶을 살든지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주와 함께 영생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성도는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면 천국에서  영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관해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신앙의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신앙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너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 구원

 해외 선교회의 창설자 찰스 카우만은 일본의 수백만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결실하였다. ?내 생명의 마지막 핏방울까지 다 쏟을지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그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보내소서.? 사람들은 찰스 카우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영혼 구원은 군인에게 있어서 전투의 승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신부를 얻는 것, 그리고 선수에게 있어서 경주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찰스 카우만은 오직 하나의 일, 곧 영혼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위하여 살았다. 이것이 그의 열정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카우만의 열정 위에 인쳐 주셨다.?카우만에 대한 찬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동양의 복음화가 거론될 때마다 그의 영혼은 불이 붙고 그가 만년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열정 속에서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과연 그랬다. 그는 불타는 열심 때문에 일찍이 인간 대학살의 희생자들이 되었던 초기 순교자들의 반열에 속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안일만을 바라보고 산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전 세계를 가슴에 품고 복음증거에 앞장서야 한다.

 

     예수님 밖에는

 어떤 날 한 사람이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저드슨 목사님, 우리에게 버마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 주실 수 없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니요? 이미 다 했지 않았습니까?"

"아니,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하신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늘 듣고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이야기 말고 그 지옥 같은 버마에서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는가 하는 그 모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저드슨 목사는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니요? 예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 십자가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에게 없습니다. 나는 이것만 전하고 증거하기로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만 떠 올려도 감격에 찹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그 시간에 나의 보잘 것 없는 모험담으로 호기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만족의 대상을 삼을 수 없습니다. 내가 또 이야기 한다면 예수님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라 삼상 19~21/눅 15:11~32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랴?-빌 3:10~1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예수님을 단지 ?구원의 주?(Savior)로만 믿고 있는 부류와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섬기고 있는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의 주로 마음속에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의 주인이 자기 자신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기꺼이 자신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입니다. 이 두 부류는 언뜻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즉,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미성숙한 신앙인이고,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성

숙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예수님을 단지 구원의 주로만 바라보지 말게 하옵시고, 한 차원 더 성숙해져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하시옵소서.?

◉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이십니까?

종이 주인에게 속해 있는 소유물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거룩한 한 부분이다.

 

     예수를 바라보게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능력 가운데 살라, 워런 워어스비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

 지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어떤 이교도의 판사 부인이 무디 선생에게 와서 자기 남편이 예수 믿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무디 선생은 좀 주저했으나 매우 솔직하게 그 남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무디는 한 마디 덧붙이기를, "만일 귀하께서 개종하신다면 나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 판사는 냉소하면서 "오! 그러죠. 만일 내가 개종한다면 신속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소"라고 말했다. 무디 선생은 믿고 기도를 시작했고 그 판사는 개종했다. 그것도 일 년이 못 가서였다.

 그는 약속을 지켜 무디 선생에게 경위를 진술했다. "어느 날 밤 나의 아내가 기도회에 나갔을 때 나는 매우 불안하고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 밤새도록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을 수 없다고 아내에게 말하고는 나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직원들에게 휴무해도 좋다고 알리고는 나의 개인 방으로 돌아와 외부와 차단하고 들어앉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점점 더 비참해짐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나는 즉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안착했을 때 비로소 그의 기도가 즉시 상달되어 용서를 받은 것이다.

 

     오직 예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세기 이태리가 낳은 유명한 화가이고, 조각가이며, 건축가이자 과학자입니다. 그의 나이 43세 때 일입니다. 화가로서 완숙했을 때 이태리 밀란의 두도빙코공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모습을 화면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부탁을 받은 그는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완성했습니다. 열두 제자를 세 사람씩 무리지어 놓고 중앙에는 예수님이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오른손에 잔을 들고 계신 예수님의 양쪽에는 제자들이 셋씩, 그러니까 예수님 오른쪽에 제자 6명, 왼쪽에 6명 그려 놓았습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절친한 친구를 불러 그림을 보여주며 의견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림을 본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최대의 걸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예수님 손에 들려진 은컵이 어찌나 섬세한지 그 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붓을 들고 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것도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우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신앙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을 만나는 길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었던 당시, 남북 전쟁에 참여했던 어느 군인 한명이 아주 남루하고 온 몸이 찢긴 초라한 모습으로 대통령에게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꼭 대통령을 만나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그래서 이렇게 상처를 입고 부상을 당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내 삶에 대한 아무런 보장을 못 받았습니다. 나의 이런 사정을 대통령을 만나 꼭 아뢰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군인은 대통령을 만나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악관의 경비원들에게는 그 사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링컨 대통령을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의 아들인 텔 링컨이 백악관 앞에서 놀다가 이 부상병이 그날도 경비원에게 애원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아들이 그에게 가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상병은 자기의 모든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저를 따라오세요." 링컨이 이 부상병의 손을 잡고 갑니다. 경비원들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텔 링컨이 말합니다. "이 아저씨는 내 친구입니다. 저와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상병은 링컨대통령 앞에 자기의 사정을 아뢰게 되었고, 대통령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아무도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찢기 우고 상처받은 부상병 같은 우리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관심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분의 피 묻은 손을 붙잡고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궁전에 들어가,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인하여 당신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하십니까?

 

     왕자의식

 어느 아들 없는 임금이 대궐 밖을 암행하다가 다리 밑에 잠자던 거지 아이를 데리고 궁중으로 돌아와 자기의 양자삼겠다고 만조백관 앞에서 선포하였다. 이 거지는 졸지에 임금의 황송한 호의로 왕자가 된 것이다. 저녁이 되자 새 왕자님은 대궐 밖으로 달려 나가려 하였다. 신하들이 만류하니 ?나는 본래가 거지라서 내 잠자리가 다리 밑에 있다?고 설명하였다. 아침이 되자 다시 세수하려 대궐 밖 강가로 달려 나갔다. 다시 만류하는 신하들에게 ?나는 본래가 거지라서 내 세수하는 곳은 저 강가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독자는 이 새 왕자의 거지의식이 왕자의 삶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겸손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못함이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이제 왕자다. 따라서 왕자답게 살아야 하겠다?는 왕자의식이야말로 왕자의 삶을 바꾸기 위한 기본의식이다.

 새로운 신분이나 위치에 대한 분명한 의식만이 삶의 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의인의식 혹은 성도의식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주여. 오늘도 이 죄인이 왔아오니.?라는 기도가 과연 얼마나 우리의 신앙생활을 독려하고. 자극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는 루터의 고마운 충고 속에 담긴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의인의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를 강조하고 싶다.

 

     우리를 깨끗케 하신 주

 모로코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하루는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고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네 가지 색으로 된 '글 없는 책'을 그에게 주며 그 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맨 첫 페이지의 까만색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의미하고, 두 번째 페이지의 빨강색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며, 세 번째 장의 하얀 색은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어서 양털같이 깨끗하게 된 것을 나타내며, 마지막 네 번째 장의 황금색은 하나님의 자녀의 영원한 영광스러움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있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침상에 누워 아내에게 '글 없는 책'을 가져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그것을 가져와서는 하얀 색 페이지를 펼쳐서 그의 가슴에 얹어 주며 "이렇게 깨끗하게 되어서 좋은 곳에 가겠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니라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하얀 색이 아니고 빨강 색이라면서 빨강색의 페이지를 펴서 자기 가슴 위에 올려놓고 예수님의 피를 부르면서 죽어 갔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우물속의 고양이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그만 우물 속에 빠졌다. 그 우는 소리를 듣고 농부가 달려 왔다. 우물 밑을 내려다보니 새끼 고양이가 물속에서 나와 돌출된 돌 위로 올라와 있었다. 농부는 급히 양동이에 끈을 매어서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낸 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새끼 고양이를 양동이 속으로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작은 앞발을 뻗어 양동이에 오르려다가는 발을 다시 거두고 절망적으로 울어댈 뿐이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고양이는 오직 그 돌에서부터 양동이로 속히 옮겨야만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고양이는 양동이 속에 물이 차 있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잔뜩 겁이 나서 이렇듯 주춤거렸던 것이었다.. 마침내 새끼 고양이는 오랜 실랑이에 지친 나머지 하는 수 없다는 듯 양동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문제는 해결되었다. 농부는 그것을 끌어 올려 땅바닥에 고양이를 안전하게 놓아 주었음은 당연하다.

 구원의 길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며 애쓰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의 몸이 피곤해지고 아무방도가 없어졌을 때에야 몸을 맡긴다. 양동이 속에 들어온 생명을 하나님께 구원으로 이끄시는 것은 간단하며 순식간에 이루실 수 있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어떤 여인이 한번은 불이 난 자기 집에서 그녀의 그림들과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들을 바쁘게 끌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수고했으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자기 자녀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아이를 불타는 집 속에 두고 나온 것이다. 그 어머니가 황급히 다시 방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방은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다. 그때 그 여인은 비통한 나머지 양손을 비틀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통곡하였다. 어머니는 자기가 꺼낸 모든 가구들을 저주하는 것 같았으며 차라리 그것을 꺼내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하잘것없는 것들을 구하려다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호기심 있는 지식 부스러기와 묘한 금언 그리고 심오한 교리 등을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다 해도 만일 사람의 영혼을 패망시킨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양심을 고소할 뿐이다. 귀한 영혼들이 사랑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난제를 끄집어내어 수십 가지의 토론을 하면서 50주일을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런 문제는 그대로 두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무한히 낫다.

 

    윌리엄즈의 결심

 영국의 Y.M.C.A.의 창립자 윌리엄즈(Williams, Sir George 1821-1905)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날을 양복점 직공으로 보내게 되었다. 모두가 뜻 없이 나날을 보내는 때, 그는 16세의 나이였지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하나님께 온 마음과 몸을 바치고, 봉사의 생애를 보내겠다"라고.

 이렇듯 위대한 결심을 한 그를 하나님은 복을 주시어, 드디어 <그리스도교 청년회 Young Men's- Cristian Association>의 창립자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나날을 뜻 없이 보내지 않는지?

 

     유일한 길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의 유일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왜 꼭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느냐”면서 몹시 언짢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선 나 자신이 하나밖에 없고 인생도 한 번밖에 못산다. 아버지도 한 분밖에 없다. 어머니도 한 분이며, 부부도 일부일처이다. 기회도 한 번밖에 없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도 한 분밖에 없는 것이다.

 시카고에서 박람회가 열렸을 때 종교 코너가 있었다. 세계 각국의 종교가 요란스럽게 자기의 종교를 자랑하고 있을 때 기독교 코너에 있는 사람은 성경 한 권과 십자가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니 기독교 코너는 참으로 초라하게 보였다. 그 중 한 사람이 지나다가 물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나은 것이 뭐요?” 그러자 안내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맥베드는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됐잖습니까?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잠을 못 이룰 지경이 돼서 의사에게 갔는데, 의사가 '이 병은 당신이 고쳐야지 아무도 당신을 못 고칩니다'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맥베드는 '오, 아라비아의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를 말끔히 할 수 없는가. 무슨 망각제를 먹어서 죄를 없이 할 수는 없는가'라고 생각했답니다. 세익스피어는 맥베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인간의 죄를 속죄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죄 문제에서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희망

 이웃 사람이 자동차의 엔진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녹이 슨 나사에다 힘을 줄 때마다 번번이 렌치는 미끄러져 나오고, 그는 엔진의 팬에 손을 다칩니다. 그 광경을 본 당신은 “이봐요! 잠깐만 기다려요. 나한테 긴 렌치가 있는데 그거면 될 거예요. 가서 곧 갖고 오지요”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도와주는 것을 그가 좋아할 걸로 생각하며, 당신은 집으로 달려가 지하실로 내려갑니다. 당신의 연장통 맨 밑에 그가 필요한 연장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 하마터면 아이들과 개를 밟을 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당신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이웃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괜찮습니다. 나 혼자서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기가 막혀 말을 못합니다. 지금까지 취한 당신의 노력이 헛된 수고로 끝나고 맙니다.

 이처럼 자부심이 강한 이웃 사람은 주님을 통해서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제의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사람들의 초상입니다. 자신들의 노력만을 믿으면서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겪으신 끔찍한 고통을 좋긴 하지만 불필요한 행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료로 주시는 은혜를 거절하는 것은 영적인 자살 행위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력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피나, 땀이나, 눈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거절하고서는 천국 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만이 영생을 위한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의롭게 됨

 여러해 전에 브라질(Brazil)에서 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영국에 가서 큰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두 나라 대사들이 그의 생명을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브라질에서는 그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려고 했습니다. 사형 집행하는 날 아침 갑자기 영국대사가 나오더니 그 사람 몸에 영국국기를 둘둘 감아 줬습니다. 조금 있더니 미국대사가 나와서 미국 성조기를 몸에 둘러줬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 돌아서서"자 쏠 테면 쏘시오. 이 국기의 배후에는 이 세상 최대의 육군과 세상 최대의 해군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할 수 없이 브라질은 총부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으면 심판 날에 마귀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의미 있는 존재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 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살 때 비로소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랑을 잃은 채 사는 사람은 마치 수분이 없어 시들어가는 화초처럼 생기를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은 웅변이나 지식이나 업적이나 구제보다 위대합니다. 인간이 그 어떤 화려한 일을 꾸민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이 한다면 그 일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감동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이 담긴 3일만이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인간은 교육이나 수양으로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사랑받고 이웃에 사랑을 베푸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의탁

 나는 궤양이 생긴 위장의 3분의 2를 제거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병원으로 심방한 적이 있다. 그는 동부의 대도시에서 시장경호원이었다. 그는 자기를 누르고 있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놓았는데 그것은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상황과 말썽만 피우는 작은 딸, 업무의 부담 등 감당키 어려운 문제들 투성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단씨, 만약 당신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이 도시로 내가 데려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오른팔이라도 잘라주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당장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님이십니다.” 다음 순간 나는 커다란 어른이 자기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며 조용히 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부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주님 자신이 그들을 사랑스러운 품에 안아주는 것 같이 서로 포옹하였다. 단은 구세주요,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그분과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본 것은 정말로 기적이었다. 그의 수술은 계획대로 진행했다. 며칠 후 퇴원하고 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조차도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다. 모든 짐을 주님께로 돌려드리라. 당신의 염려하는 영혼의 소리를 그분이 듣도록 하여 그분이 당신의 삶 가운데서 염려를 해결해가는 일을 행하시도록 하라.

 

      이발사의 모순

 어느 목사와 이발사가 시카고의 빈민거리를 나란히 걷게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주변은 몹시 지저분하여 악취마저 풍기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어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신단 말입니까.” 라고 회의론자인 이발사가 말했다.

 그때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너덜거리는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본 목사는 “저 친구를 보십니까. 저 친구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는 어찌나 긴지 어깨를 완전히 덮어버렸군요. 어찌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젊은이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십니까.”라고 이발사에게 물었다.

 이발사는 “그야 저 친구가 이발해달라고 이발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죠. 이발해달 라고 들어오기만 한다면 이야 아주 미남자를 만들어줄 텐데 말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목사는 조용히 입을 열어 “하나님께서도 당신과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인간은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더러운 죄악 중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훌훌 털고 주께로 나오려는 용기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밭에 콩도 심지 않은 채 콩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콩부터 심어야 하나님께서 싹트게 하시고 길러주시지 않겠는가.

 

      잃어버린 편지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소설 중에 "잃어버린 편지"라는 것이 있다. 어떤 중요한 편지가 분실되어 경찰에 신고 되었다. 그리고 곧 그 편지가 있는 집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그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탐정이 가장 뻔 한 곳에서 그 편지를 찾아낸다. 그곳은 편지를 보관해 두는 벽걸이용 편지함이었다. 즉 도적은 사람들은 흔히 눈앞에 그대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오히려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은 신약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나 분명한 일이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여기저기 딴 방향에 가서 찾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자기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원은 다만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구원은 다만 신앙이란 손을 뻗침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화가인 스터언 버그가 어떤 사제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약성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마음에 썩 들지를 않아 그냥자기의 화실에 두었습니다. 어느 날 한 집시소녀가 모델로 자기 화실로 왔습니다. 그 집시 소녀는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스터언버그는 그녀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죽으셨나요?" 스터언버그는 우불쭈물하다가 마지못해 "그래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이 모든 일을 이루신 그 분을 죽도록 사랑하셔야만 되겠군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터언버그는 이 생각을 마음에서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녀는 매일처럼 와서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스터언버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옛 그림을 찢어버리고 훨씬 훌륭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어떤 병석의 집시여인이 죽어가면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 여자가 어린 손녀였을 때 그의 모델이었던 집시 소녀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집시 여인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위해 죽으신 분을 지금도 사랑하나요? " 스터언버그는 이번에는 가슴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로 " 예,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역시 당신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집시 여인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녀의 온 마음을 구주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스터언버그가 그렸던 그림은 국립전시장에 전시되었습니다. 어느 날 스터언버그는 이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울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인도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진제돌프(Nicolaus Ludwig Zinzendorf)백작으로서 훗날 모라비아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의 한복판

 브라질의 아마존 강은 세계 최대의 하구를 가졌다.

7만 평방키로나 되기 때문에 양쪽 언덕이 안보여, 처음에 가는 사람은 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아직 바다 한복판에 있는 줄 착각을 일으킨다.

대서양에서 폭풍 때문에 오래 표류한 배 한척이 식수를 구하기 위하여 겨우 이 하구에 도착했다.

해도 상으로는 분명히 아마존 하구에 도착했을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언덕이 안 보였다. 마치 다른 배 한척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소리를 질렀다.

"식수를 구하고 있는데 아마존 강은 어느 쪽이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은 이미 맑은 물 한복판에 있소. 물통을 내려 뜨기만 하시오!"

우리는 이미 은혜의 한복판에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이미 성취되어 우리는 맑은 물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함

 웰츠 남작은 그의 작위와 부동산, 소득의 총액을 포기하고 기아나에 가서 외로운 사람들을 돌보며 지냈다. 그의 작위를 포기할 때 그는 "내가 예수께로 다시 태어난 지금 가문이 좋다는 것이 나에게 무엇이냐?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자 할 때 귀족의 작위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할 때 각하라고 불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이 모든 허영을 버리고 나는 경애하는 예수님 발아래 모든 것들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저 자신을 보여 주십시오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느 날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를 많이 참석하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은 은혜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토레이 목사님은 “부인, 오늘부터 돌아가셔서 한 가지 기도만 계속 하십시오. '하나님, 저 자신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충고를 따라 이 부인의 집에 돌아가 계속 이 기도만을 했습니다. 이 기도를 계속하던 부인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추하고 불결한 모습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자기의 죄악을 보고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짐을 잔뜩 지고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일 주일 만에 토레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목사님, 이제는 죽어 버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이제부터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십시오.” 이 부인은 돌아가서 두 번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십자가의 의미가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나의 도덕적인 노력과 결단이 나를 죄에서 자유하게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자기 자신에 관한 완전한 절망을 선언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돌아가셔서 대가를 치르시고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내 죄가 용서함 받는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을 참으로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십자가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당신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붙들고 “나의 주 나의 구세주”라는 고백을 해보셨습니까?

 

     전도자

 지도자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며 또한 영생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증을 주는 것은 구원의 법적인 문서인 성경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증거와 우리의 생활로 나타나는 내적 증거이다.

 

      좀 기다려 주시오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오고 있던 여객선 센트랄 아메리카 호가 바다 한 가운데서 고장을 당해 뱃속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다른 배가 이 구조 요청의 신호를 보고 달려와서 사람들을 모두 자기들의 배에 옮겨 싣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고장 난 배에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습니다. "옆에서 좀 기다려 주시요. 지금 캄캄한 밤에 사람들을 옮겨 싣자면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장을 고쳐 보도록 하고 안 되면 밝은 아침에 옮겨 싣도록 합시다." 지나가던 배는 다시 한번 사람만은 옮겨 실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전달했으나 답변은 여전히 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조해 주려고 온 배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 한 시간이 지나자 건너편 배의 등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승객들을 그대로 태운 센트랄 아메리카 호는 바다 밑으로 침몰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게 임할 때에 잠깐 기다려 달라는 핑계를 하지 마십시오. 사정이 복잡하여 어두운 밤 같을수록 당신에게는 그리스도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을 깨달으십시오. 어리석은 선장처럼 온 가족을 다 이끌고 침몰하지 마십시오.

 

      죤 뉴우톤 목사 이야기

 마태와 유사한 예로 포악한 노예 상인이었고 탕아였던 죤 뉴우톤 목사님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죤 뉴우톤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후 40여 년 동안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고 하지만 나 같은 노예상인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하고 되 뇌였으며, 문득 문득 과거의 죄가 떠오를 때에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공포마저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벽에다가 이사야 43장4절 말씀을 써 붙여 놓고 마음이 떨릴 때마다 읽었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 이 말씀을 가지고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용서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는 82세로 숨을 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아마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세 번 놀랠 것이다. 처음엔 전혀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가면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죤 뉴우톤 노예 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죄 사함을 받은 줄 믿으라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19,20.

 어떤 젊은 부인이 자궁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까?' `내가 죄 사함 받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파렴치한 바램인가?'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영생을 선물로 얻었습니다.

 당신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떠한 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은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희의 추악한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한 후에도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은혜가 가장 더러운 자를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로만든다.

 

      주님을 향한 뜨거움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있어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고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

오!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꽉 잡으며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팔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주님을 향하는 뜨거움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 :39-41)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요 12:10,11)

 

       주님의 인도

 교도소 감방을 왔다갔다 거닐면서 레오 다르칸젤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기 앞에 이토록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보이는데 누군들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열한 살의 소년으로 그는 복잡한 전차 속에서 한 부인의 핸드백을 소매치기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필라델피아의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체포되었을 때 그는 오년 동안 도둑질을 해오고 있었다. 석방된 직후 그는 마약을 조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끊임없이 체포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1954년 11월에는 마약 복용 및 소지혐의로, 1955년 1월에는 소매치기로, 그 직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레오는 월담 행위로 체포되었다. 그는 감방을 들락거리면서 벽에 조악하게 몇 줄 긁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당신이 갈 데까지 다 가서, 이 문제가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슬피 우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같이 보일 때 예수께 돌아오시오. 당신이 찾아야 할 분이 바로 예수이기 때문이오.?

 이글을 읽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방황은 끝났다. 예수님,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나는 나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내 방황의 끝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울어보아도 나의 과거는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시면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나의 내일이 달라지게 하옵소서.? 레오는 처음으로 절망이 아닌 그 무엇을 느꼈다. 1958년 감방에서 풀려난 후 레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트 체스터 주립 대학의 대학원과 필라델피아의 개혁 장로교회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현재 교도소 선교를 활발하게 펼치며 교회와 청년 모임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의 이름을 부른 자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사도행전 2장 21절에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인가 영어에는 "Ask for mercy from the lord shall have it and saved"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자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하는 뜻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배하는 일이요, 둘째로 감사하는 일이요, 셋째로 봉사하는 일이요, 넷째로 주안에서 소망을 갖는 일이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Brand new person inside"라는 뜻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표(향기)가 있어야 한다. 생활과 일거수일투족이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해야 한다.

 밀레라는 화가는 처음에는 여자의 나체를 그려서 그것을 팔아 생활을 했다. 예수를 잘 믿는 그의 딸들이 항의하고 나섰다. 그런 덕스럽지 못한 돈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밀레는 화구를 들고 집을 나와 버렸다. 자기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다. 어느 시골 논길을 가다가 저녁 해가 지게 되었다. 논에서 일하던 부부가 멀리 지평선에서 들리는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일손을 놓고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그 장면을 그렸다. 그리고는 "만종"이라는 제목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림은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주 안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주의 이름을 가슴속에 아로새겨 살아가자.

 

     죽고 사심의 은총

 2차 대전 후 일본에 왔던 미국선교사 한분이 일본 본주에서 북해도로 가는 연락선을 탔는데 사고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전후의 정황 하에서 구명보트도 없는지라 일등선박 외에는 구명대조차 없어 삼등선객들이 물위에 떠서 익사하고 있었다.

일등선객이었던 젊은 선교사가 자기 구명대를 물위에서 익사 직전의 일본 할머니에게 입혀주면서 "할머니 내가 할머니를 위해서 할머니 대신 죽어 줄 테니 살아서 이 말을 좀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내가 할머니를 위해 죽듯이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살아서 예수를 믿고 일본 천지에 다니면서 그 선교사가 날 위해 내 대신 죽었듯이 예수님이 우리 위해 우리 대신 죽었다고 전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그 가치가 인간의 전수보다 무한하신 분이므로 무한수의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고도 남는다. 죽으심의 은총과 함께 지금 여기 날 위해 내 안에 살아 계신 은총과 능력을 더욱 믿음으로 활용하라.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는 것

 기독교의 구원은, 장차 죽음 이후에 영원히 사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실망을 소망으로 바꾸고, 죄에서 해방을 주고, 불안을 만족으로 바꾸어 실패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현세적인 구원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과거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 살아계셔서 현실적으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경험을 주시는 까닭에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분명히,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후방에 벨기에의 낙하산 부대가 침투하여 지하운동을 하다가 어떤 부대원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곧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옆방에는 벨기에 목사 한 분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사소통을 위해 궁리하다가 두꺼운 벽을 두들겨서 통신 부호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낙하산 부대원이 통신을 보내오기를, “이곳은 지옥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은 “우리가 비록 혼자 갇혀 있지만 주님과 함께 있을 때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통신을 보내었습니다. 그 후 그 목사님은 조그만 성경책을 그 낙하산 부대원에게 보내주었는데, 그는 그 성경을 읽다가 마지막에 사형 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형장으로 끌려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오늘 밤 나의 생명을 불러간다 하실지라도,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어디로 가오리까?”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중생의 낱말 뜻 / 성구

 1. 다시 중요하게 태어남.

2. 원어로는 '팔린케니시아'로서 출생하다(게네시스)와 새롭게 다시 한 번 (팔린) 에서 온 말로 영적으 로 다시남. 메사야적인 회복이란 뜻.

3.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적 새사람으로 거듭남.(벧전1:3).

4. 새로운 피조물이 됨.(고후5:17).

5. 다시 나게 함.regeneration.(딛3:5).

 

* 중생에 대한 성구 *

1. 중생의 필요성

중생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됨.(요3:35).

2. 중생의 방법

성령으로 중생됨.(겔11:19,요3:8,딛3:5).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됨.(약1:18,벧전1:23).

3. 중생의 결과

영적으로 성장하게 됨(벧전2:1,2).

의를 행하게 됨 (요일2:29).

성도를 사랑하게 됨.(요일3:10).

신령한 것을 분별하게 됨.(고전2:12-16).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됨.(고후3:18).

신령한 열매를 밍게 됨.(요15:1-8).

세상을 이기게 됨.(요일5:4).

* 새롭게 됨으로서 알 수 있는 것들 *

1. 황송함과 감사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게 함 - 히12:28-29, 출3:4-5, 사6:1-3

2. 우리의 죄의 검고 추함을 깨달아 알게 함 - 사6:5-6, 욥42:5-6

3.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음을 알게 함 - 히9:22

4.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사랑을 알게 함 - 롬5:8

`다시 태어나다' 또는 `회복되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 단지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마19:28, 딛3:5), 많은 유사한 표현들을 통하여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이 단어와 관계되는 용어들은 "거듭나다"(요3:3), "하나님께 로서 나다"(요1:13, 요일3:9), "살아나다"(엡2:1,5), "새롭게 되다"(롬12:2, 딛3;5)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 영적 변화이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유전적인 죄의 속성이 변화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생에는 마음의 조명과 의지의 변화와 성격의 갱신이 포함된다. 이것은 인간의 전인적인 성격에까지 확장되며, 자기의 성향을 지배하는 요소를 결정적으로 개혁시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데까지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다(고후5:17, 롬6;4). 중생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며(벧후1:4), 마음 가운데 심겨진 영적 생활의 원리이다. 가능케 하는 원인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바(요일3:9), 그가 긍휼로 말미암아 사랑 가운데 행하시며(엡2:4,5), 자기 말씀을 통하여 인간 안에 새 생명을 확실케 하신다(벧전1:23).

 중생의 과정에서 인간은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다. 여전히 죄의 속박가운데 거할 동안에는 수동적이며, 거기서 풀려났을 때에는 능동적인 것이다. 성령의 중생케 하는 역사는 인간이 전에 무엇에게 복종하였던 가라는 것에 제약받지 아니한다. 다만 인간이 죄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즉 중생하였을 때, 인간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께로 자기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2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샬롯 엘리옷은 아주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학교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 가족이 바자회로 분주할 때도, 샬롯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샬롯은 자신의 무력함에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샬롯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감격으로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찬송가 339장)"라는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혹, 당신도 위축감에 빠져 계시지는 않는지요? `나처럼 약하고, 죄 많고, 쓸모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지금 그 모습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저희의 모습이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저희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 주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당신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스레 받아 주실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만큼 선한 자가 없으며,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악한 자도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선한 모습을 보기 보다는 악한 면을 먼저 보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어떤 일 속에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도 선한 면과 아름다운 면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사탄은 욥과 같이 선한 사람을 보면서도 악한 모습을 찾으려고 한고 예수님은 삭게오 같이 많은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는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로 본 것이다. 가나안을 정탐한 12 정탐꾼 가운데 10정탐꾼은 똑같은 산하를 둘러보면서도 악한 면을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선한 면을 본 것이다.

 주님은 늘 선한 것을 먼저 보신다. 먼저 칭찬을 하시고 나중에 책망을 하셨다. 주님은 인간을 보실 때 항상 먼저 선한 면을 보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악한 면을 보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한 면을 먼저 보시는 데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 자기 세계에 가두고 해석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도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받지 않고 남을 저울질하고 판단하는 말씀으로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이던지 내가 먼저 지켜야 할 말씀이지 남을 판단하는 말씀으로 내게 있게 되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가장 먼저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이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남에게 적용 시켜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누구의 영향을, 혹은 무엇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다 세상의 영향을 받고 사는 환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영향을 따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살 수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만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도 바로 성도의 삶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 시대의 영향권을 뛰어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으로 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었다.

우 리가 일을 할 때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을 소중히 여겨야 사람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성실히 일할 수 있다. 주님은 일하러 오신 분이 시기에 철저히 일하시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셨다. 사람의 알아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심을 보여 주신다. 성도가 사람의 칭송에 너무 매달리면 이미 하나님의 일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도는 내가 사람을 보고 일한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의 일에 함부로 평가를 내리지 말라.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판단하는데 까지 가게 된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은 대개는 다른 사람의 일에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자신의 사역에 직접 연관이 없는 것에는 오히려 관대하게 보인다. 예를 들면 당시 정치적 문제 사회적 문제 등에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구원 역사에만 치중하셔서 일하셨다. 성령의 사역도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셔서 각각 자신의 일을 하게 하셨다.

 

      진실로 예수를 믿으면

 2년 전에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나는 믿지 않는 한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네는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 학생은 ?저는 한평생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내게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해 여름방학 때 그 학생은 나의 권유로 교회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수련과정에 참석한 후 개학이 되자 다시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 전 이제 예수를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남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그 순간 한평생 사는 목적을 과감하게 수정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 정말 기뻤다. 한평생 믿어도 이 사실을 모르고 믿는 사람이 우리들 주변에 많지 않는가. 그 학생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생각과 생활이 실제로 많이 달라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한다. 학급 일을 솔선해서 하는 등 봉사하는 일에 앞장섰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같은 생활의 변화는 참으로 예수를 잘 믿기 때문이다. 진실로 예수를 믿으면 그 순간 자기 성질은 죽고 예수 성질로 닮아가야 한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참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세상일에 몰두하게 되고 여러 가지 불평불만이 나오게 되고 무엇인가 핑계를 삼는다. 이왕 예수를 믿는다면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힘으로 사는 것이니 한 번 큰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집 없는 두 소년

 누더기를 걸친 집 없는 두 소년이 런던 거리에서 구빈원을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열병에 걸려있었고 다른 작은 소년은 마차에 치여서 한 쪽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 다친 소년이 열병에 걸린 친구에게 말합니다. “윌리, 지난주에 선교 주일 학교에 갔었는데. 그분들 말씀이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면 그분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했어.” 작은 윌리는 그 다친 소년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지나가실 때에 내가 여기서 도움을 청하는지를 어떻게 알까.” “윌리. 그가 지나가실 때 너의 손을 들면 너를 알아보고 도와주실 거야.” 저녁이 되었을 때 윌리는 그 친구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잠든 사이에 그분이 지나가면 어떻게 하지. 나를 어떻게 알아보시겠느냐 말이야.” “윌리, 손을 계속 들고 있으면 되잖아. 예수님이 밤에 지나가시다가도 손을 들고 있으면 보고 도와주실 거야.” “그런데 힘이 없어서 손을 그렇게 오래 들고 있을 수가 없어.” 그래서 친구는 자기 베개를 가지고 그의 팔 밑에 괴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그의 든 손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날 아침 간호사가 순찰을 돌다가 이 불쌍한 소년이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밤중에 이 소년은 손을 예수께로 향한 채 죽었습니다. 이 소년은 자기가 손을 들면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자기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신앙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의사인 줄 생각했나 봅니다. 그는 이렇게 순진한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과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참 행복

 인생은 어부 시간은 강물 하지만 인간들이 그곳에서 낚는 것은 오직 한줌의 연 기뿐.. 영국의 방랑시인 데이비스의 탄식입니다 인생이라는 어부는 끊임없이 강물이라는 시간 속에서 행복의 고기를 낚아보려고 했지만 낚는 것은 죽음 이였다는 절망적인 말입니다.

 사실 인생이 행복을 찾아보지만 마지막 찾아오는 것은 죽음의 사신입니다. 전도서에서도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오 내게 풀어다오 삶의 수수께끼를 내게 말해다오 인생이란 무엇이냐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저 반짝이는 금빛별에는 누가살고 있을까? 한 바보는 서서 기다리노니.

 시인 하이네는 인생이 무엇이냐를 묻는 이를 가리켜 바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무엇이며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성경은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창1,2장: 시139:13-1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고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였나이다....."

인생의 행복은 이 사실을 알 때부터 행복의 씨앗은 마음에 싹튼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물이라는 시간 속에서 행복의 고기를 낚는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무한의 행복을 소유 소유합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천문학자의 고백

 노르웨이의 어떤 천문학자는 일식을 본 후에. 주께서 어둠 속에서 겪으셨을 체험이 얼마나 통렬했을 것인가에 대하여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순간까지 바라보고 있던 훤한 광경들이 눈앞에서 어두움으로 변해 버렸다. 온 땅이 공포와 죽음과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위로는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의 홍수가 아니라 어둡고 무거운 흑암만이 나를 땅 속으로 처박기라도 할 듯이 무겁게 덮여 있었다. 일식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진 영혼은 얼마나 비참할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소리가 들려 왔다. 어떤 바닷새 한 마리가 우리가 자기의 영토에 침입했다는 사실에 격앙하여, 힘 있고 격렬한 몸짓으로 우리 주위에서 홰를 쳐대면서 그 어둠속에서 절망적인 고통의 비명을 토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불쌍한 영혼,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때요, 어둠의 권세이다. 지옥의 세력들이 그 어둠을 채우고 세상의 칙칙한 죄가 그 위를 덮어 더 어둡게 한다. 이것은 바로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셔서 자신의 몸에 나의 죄를 담당하시는 모습인 것이다. 잃어진 영혼의 자리를 떠맡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최대 임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은혜로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최대 임무이다. 이 일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상대적으로 볼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국인 기독교 지도자인 리가 미국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나서 질문을 받았다. “중국에는 이미 유교가 있는데 기독교를 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학생에게 그는 기억할 만한 답변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공자는 선생이었으나 그리스도는 구세주였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선생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구세주를 필요로 합니다. 둘째로는, 공자는 죽었으나 그리스도는 사셨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부활하신 구세주를 필요로 합니다. 셋째로, 공자는 어느 날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만나기 전에 구세주로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잘 요약한 이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광범위한 목적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 세계의 죄인을 찾으신다.

 

      최상의 것을 받기에 합당한 예수님

 O.L. 파워즈 박사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목회할 때 그는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고 의사들은 그가 죽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들은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박사는 차츰 회복되기 시작하여 집을 나설 수 있을 때 약국에 가서 “내가 지금까지 빚진 약값이 모두 얼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약사가 대답하기를 “박사님이 오랫동안 아프셨기에 꽤 많은 액수입니다”라고 하면서 약값을 말했습니다. 박사는 “지금 당장은 지불할 형편이 못되나 최대한 빨리 갚도록 하겠소”하고 말했습니다. “박사님, 그런데 이 마지막 계산서를 한번 보십시오.” 박사는 계산서 끝 페이지에서 “완불”이라는 결재인을 보았습니다. “박사님의 좋은 친구들이 벌써 다 갚았습니다.” 박사는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느끼면서 약국을 떠났으나 그의 영혼은 또 다른 기쁨에 차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또 다른 빚, 곧 죄의 빚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이미 이 빚을 갚아 주셔서 나는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빚을 다 갚으셨고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은 매일매일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들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스트로맨이라는 연구원이 교회를 드나드는 청년 7천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60% 이상이 선한 생활에 힘쓰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 이상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통계자료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공로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공로주의를 배격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는 무엇인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경건생활에 힘써도 내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기까지 헌신해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자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계시나요?

 인생에 있어서 큰 변혁 중의 하나가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성도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아이가 태어나서 자기 아이라고 품에 안아보니까 아이의 눈을 보기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다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니까 우리 주님께 외에는 달리 갈 데가 없더랍니다. 이런 전환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저희 교회에서 과거에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던 최집사님이 처음에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그 집 큰 딸이 유치원을 다니면서 어느 날 아버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유치원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습니다.

 “아빠. 하나님께서는 정말 계시나요.” 안계시다고 말하자니 벌을 받을 것 같고. 계시다고 말하자니 잘 모르겠고 해서 그냥 어물쩍 대답을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그 딸아이의 질문을 생각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저를 만났습니다. 제가 목사라고 소개하니까 “당신이 목사라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겠네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해서 그 분과 같이 앉아서 성경을 펼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같이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그 분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처럼 자녀문제로 충격을 받아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루소의 <참회록>과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3대 참회록에 속하는 것입니다. 가장 진지한 인간들의 고백입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보면 톨스토이는 죽음의 문제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야스퍼스도 모든 불안의 근원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죽음의 공포때문에 많은 밤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 정교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세례를 받았고 거기서 자라났습니다.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에 그는 신앙 교육을 줄곧 받아 왔습니다. 러시아의 기독교 귀족으로서 그는 철저한 신앙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18세때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이교도가 되었습니다. 합리주의의 물결이 밀려 올 때 특별히 정서가 다감했던 톨스토이가 그리스 정교의 신앙을 그대로 지키기에는 너무도 허탈했을 것입니다. 18세 때부터 교회도 기도도 다 졸업해 버렸습니다. 신앙을 버린 후에 그에게 한 가지 새 신앙이 생겼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노력하면 완전 상태에 이른다는 인간 완성의 신조와, 세계와 인류는 진화해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합리주의와 인문주의가 지니고 있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을 그대로 신봉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조 속에 얼마 동안 살다가 '나는 공포심과 혐오감과 마음 아픈 것으로 꽉 차 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그는 '나는 전쟁 때 많은 살인을 했고 어떤 사람에게 결투를 걸기도 했고 도박을 하기도 했고 농노들을 착취하고 농노들을 처형하고 농노들을 희롱했고 사기도 했고 간통도 했고훔치기도 했고 폭행도 했고 살인도 했다. 내가 범하지 않은 죄는 하나도 없다. 아! 나는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나를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참회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그의 형님이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파리에 갔을 때는 많은 사형수들이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는 인간의 가장 실존적인 기본 문제가 되는 죽음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인간을 죄에서 캐 보기 위해 과학을 다른 각도에서 밀고 나가 보기도 하고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고 상식에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각도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문 지식의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이 문제의 해답을 구하려고 했으나 아무 데서도 그 해답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이나 교리나 의식에서도 해답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소박한 농민과 서민층에 살아 있는 원시적인 복음 신앙 가운데서 그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는 것이로라(롬14:7,8)

 

     하나님은 여기 내가 있는 줄도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우주라는 게 너무 커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란 게 보잘것없는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땅 덩어리 위에 고물거리고 있는 수십억의 인간들 속에서 저 같은 존재야말로 바닷가의 모래 한 알 만큼도 중요하지 못합니다. "너는 나의 아이다." 그리고 제가 살게 된 이 시대 이전의 수 세기에 걸쳐 살았던 사람들.. "나는 너를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게 될 숱한 사람들.. "너는 나의 귀중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 같은 것에게 신경을 쓰실 시간이 있겠습니까? 아니 제가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을 아실 수나 있으시겠어요? 아마도 제가 이렇게 있다는 걸 모르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고 그러므로 너는 나의 아이다. 너는 지금까지 살아 온 그 누구 못지않게 나에게는 중요한 존재다."제가요? 정말입니까?

 

     하나님의 구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세 가지가 부정되고 있다.

 1.하나님 자녀는 유전이나 혈통으로 출생될 수 없다. 2.베드로의 자녀일지라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 안하면 하나님 자녀가 태어날 수 없다. 3.종교적 의지와 노력과 성실을 다하고 고행과 금욕 수도생활로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다.

돌은 아무리 닦아도 돌이고 아무리 좋은 소도 사람은 아니며 성자라도 하나님 자녀는 못된다. 그것이 종의 원리다.

 

     하나님의 구원

 롱펠로우가 보잘것없는 종이 한 장을 들어, 그 위에 시 한편을 쓰면 6천 달러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지닌 천재적인 재능 때문이다.

록펠러가 한 장의 종이 위에 그의 사인을 하면 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이것은 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화폐제조공이 금위에 독수리 모양을 찍으면 20달러의 값어치를 가지게 된다. 이유는 이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기계공이 5달러의 재료를 가지고 50달러의 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그의 기술 때문인 것이다.

미술가가 불과 50센티의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면 천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예술이기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하찮고 죄 많은 인간을 들어,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깨끗케 하시고 그의 영을 불어 넣어주시면 이것은 인류에 대한 축복이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갈 길

  엊그제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갔더니 표가 없어요. 아니 꼭 봐야 되는 사람이 왔는데 표가 없으면 어떡해요. 안 봐도 되는 사람들이 표를 사면 어떡합니까. 봐야 될 사람이 봐야 될 것 아닙니까. 들어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 사장님께서 극장 앞을 나오셨다가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벌써 다르잖아요.

 영력 있는 사람이 보면,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영화구경을 하러 왔는데 표가 없어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제가 여러 사람들과 같이 갔었는데 다 같이 따라서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기뻐요. 공짜로 넣어주었는데요. 중앙일보 사장이 넣어주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그랬어요.

 우리 또 나갑시다. 왜요? 또 넣어줄 것 아니에요? 물론 또 넣어주죠. 밤낮 거기서 우린 표 없이도 들락거린다고 합니다. 극장에 왜 들어간 것입니까? 영화를 보러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난 표 없이도 들어갔다' 이것이 자랑입니다. 그래서 들어갔다가 나가고 또 들어옵니다. 구원이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갈 길이 있고 이제부터 경험할 것이 있고 이제부터 획득할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에베소서 4장에 의하면 이 부분은 이렇게 요구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 '새사람이 되라'가 아닙니다. 새사람인데 새사람다운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확실한 안내자

 한 인디안 형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열쇠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밝은 가로등 밑으로 가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사람씩 나와서 같이 찾게 되었다. 한참을 찾다가 한 사람이 물었다. 당신이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정확히 어딘가요? 저기 집 옆인데요. 이 말을 들은 이웃 사람이 말했다. 집 옆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으면 거기서 찾아야지 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그곳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아요. 웃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처음 누렸던 기쁨과 승리하는 삶을 잃어버렸으면 그것들을 잃어버린 장소에 돌아가서 찾아야 한다. 왜 다른 잘못된 장소에서 계속 찾고 있는가? 겉으로 잘 보이고 밝아 보이는 곳을 찾아다니지만 결코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거기서 찾지 못한다. 불빛이 있다고 해서 풍성 한 삶과 승리하는 삶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지는 못한다.

 이제 우리는 무익한 노력을 그만 끝내야 한다. 그리고 바른 장소, 바른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담대하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의 택함 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준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을 인도해줄 풍성한 빛과 좋은 지도와 확실한 안내자를 준비해 놓으셨다.

 

     행함을 통한 사랑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깊은 오물 구덩이에 빠졌다. 그때 부처라는 현명한 선생이 그 사람에게 다가왔다. “나의 지혜를 배우고 나의 가르침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곳에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부처는 가버렸다. 그 사람은 부처의 충고를 따르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그 벽은 여전히 가파르고 너무나도 끈적끈적 했다.

 마침내 뉴 에이지 운동가가 찾아왔다. “제발, 나 좀 도와 주세요!”라고 그 사람이 외쳤다. “물론이지요. 당신의 내부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자신이 신으로 부터 받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다시 한 번 더 최선을 다해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의 노력은 그를 더욱 더럽게 만들었으며 그의 절망적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빠진 자가 역시도움을 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친히 웅덩이로 내려가셔서 그 사람을 조심스럽게 끌어내 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구원적 사랑이다. 그분은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발견했을 때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의 죄악 가운데로 오셔서, 우리를 그의 어깨에 메고, 우리를 구덩이로부터 끄집어 내주신다.

 

     헛수고

 한 노인이 어느 아름다운 동네 복판에 넓은 터를 차지하고는 판잣집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집이 다 허물어지고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땅에는 잡초와 쓸모없는 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부유한 동네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웃사람들이 와서 그의 집과 마당을 손을 좀 보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보건 당국에서 나와서 강제 퇴거를 시키겠다고 으름장도 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동네의 아름다운 지역에서 잡초에 파묻힌 그 조그만 판잣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네의 한 사람이 그 노인의 땅과 집을 사버리기 위해 모금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큰 액수의 돈이 모금되고 위원들이 선정되어 그 노인에게 가서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고 집과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 액수는 시가의 몇 배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노인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고 잔금을 치를 날도 정해졌습니다.

 거래를 종결하는 날이 되어 그들이 변호사와 함께 왔을 때 그들은 그 노인에게 서류의 사인을 해야 할 곳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인을 하기 전에 그 노인은 위원들을 쳐다보고는 말했습니다. “뭐 달라진 곳이 없습니까?” 그들은 “아니요, 뭐 말씀입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실망의 빛을 띄었습니다. 노인은 그 집을 정돈했던 것입니다. 먼지를 털어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구들을 바로 놓고 수리하는 등 그 낡은 판잣집을 개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섭섭해 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전의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말씀의 도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현대인의 참회

 톨스토이는 성자일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고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살며, 적당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제일 악한 사람은 자신이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모두 죄의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맥베드>를 보면, 아라비아의 향수를 모두 가져다가도 이 손에 있는 죄를 말끔히 씻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망각제도 죄를 없이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제일 깊은 본심의 체험입니다. 죽을 때는 더 예민해집니다. 자기가위기를 당했을 때, 파산했을 때, 자신의 껍데기를 벗고 하나님 앞에 본심으로 겸허하게 섰을 때 '아! 나는 죄인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리요 본심의 소리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적으로 모든 종교의 역사들은 죄의  실재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심리학자들도 죄의 문제를 제일 큰 문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나라모라는 유명한 심리학자는 인간의 심리학적인 모든 문제의 99퍼센트는 죄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존경받는 도덕적인 사람 12명에게 '도망가라.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라는 협박 전보를 쳤더니 24시간이내에 12명이 모두 국외로 도망을 갔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마서가 다루고 있는 것은 모두 죄의 문제입니다. 또 시편 51편은 죄를 용서 받기 원하는 다윗의 참회록입니다. 다윗은 시편 32편에서도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하며 견딜 수거 없어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죄가 있는 곳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가인의 후예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숨어야합니다. 불안과 공포와 허무에 싸여 귀신에게 쫓김을 당하는 것과 같이 추적을 받고 있는 가인에게는 쉴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인의 후예들입니다. 마음을 파 보십시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볼 때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너무 감사합니다. 삭개오는 죄를 용서받았을 때에 그의 재산도 모두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후회할 것이 없는 선택

 두 불구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청년은 축구, 레슬링, 권투 등 만능선수로 알려진 라이트였는데 그는 1979년 권투 시합에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의사는 몇 해 동안 훈련받고 보조기를 사용하면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1982년, 친구들에게 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여 잠깐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하더니 숨겨온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청년은 유명한 맥고원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불량배에게 심한 매를 맞고 하반신이 완전 마비되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그의 투지와 의지로 노력한 결과 포코노 호수에서 낙하산점프의 묘기를 보였고 취사, 세탁 청소를 혼자 할 수 있었으며 특수 장비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포츠에 관한 세 권의 사진첩도 출판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죽음을 택하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은 영원한 행복을 좌우합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쉽게 거절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는 행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을 선택한 것은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바라보고 선택한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후회할 것이 없는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예수, 십자가의 길, 이는 바른 선택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현실적인 것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회복

 켄터키에 살고 있었던 저명한 인물의 아내가 극도의 신경 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녀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질환 전문가들에게 보여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여자를 데리고 록키 산에 가서 요양하면 다시 회복되고 옛날의 자신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권했습니다. 그는 사업체와 집을 비워둔 채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산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사방이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는 아내를 온갖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조금도 자기를 알아보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가 아내에게서 받은 대가는 허탈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데리고 태양이 빛나는 플로리다 해변으로 갔습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아내가 회복하기를 바라며 매일 아내의 팔짱을 끼고 걸었습니다. 어떤 주일날 오후 아내는 의자에 앉은 채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내의 숨결은 길고 규칙적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곁에 앉아 아내의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볼에다 입을 맞추고 아내가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아내는 눈을 뜨고 옛날의 사랑에 찬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면서 "당신 어디에 그토록 오래 가셨댔어요?" 했습니다. 남편은 사랑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여보, 나는 당신이 내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바로 여기에 있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의 사랑에 보답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중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세상으로 되돌아가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복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지 않겠습니까?

 

     회심의 순간

 1735년 10월 대서양 한가운데에는 존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 형제가 탄 배가 미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옥스퍼드의 엘리트들로서 미국에 있는 야만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서양에는 심한 폭풍이 몰아닥쳤습니다. 급기야 그 배는 침몰 직전에 이르렀고 두 형제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본 것은, 평화 속에 찬송과 기도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는 26명의 모라비안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2년에 걸친 조지아 선교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웨슬리는 공허한 마음으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확히 말하자면 19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 전, 웨슬리는 길가의 한 집에서 들려오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는..."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가슴은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그 회심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만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웨슬리 한 사람의 경험은 암흑과도 같았던 영국의 상황을 복음과 새로운 도덕으로 변화시켜 갔으며, 그 신앙의 불길은 전 세계로 퍼져서 감리교회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

 찰스 스턴 박사가 군목으로 봉사할 때 전쟁 중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밤이 왔습니다. 군인들은 최전선에서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군의관이 군목과 함께 있었습니다. 군의관에게는 두꺼운 외투가 있었지만 군목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미 다른 병사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 밤은 참으로 추웠습니다. 그때 군의관은 자기의 외투를 군목에게 주어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했으나 군목은 거절했습니다. 한참 동안 말을 주고받다가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러나 군목이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자기 몸이 외투로 덮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턴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군의관은 감기에 걸렸고 나는 외투를 덮고 잤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이해관계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일,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거두어 가셨음을 깨닫고 우리는 놀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그분이 우리 죄의 용서를 위하여 십자가 위의 신비로운 죽음을 통하여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심오한 의미의 하나님의 행위이며 인류의 죄책을 다루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희생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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