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의 정의(개념)

사람들은 영(spirit)에 대해서 말할 때, 구체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념적인 개념으로 받아드린다. 예를 들어 영적 존재라고 말할 때 이는 기독교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영은 관점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적인 개념인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인간은 자신의 존재적 정체성을 생각할 때, 육으로 비롯된 혼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가고, 혼은 사라지며, 영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적 정체성은 영인 것이다.

영은 빛을 비추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 빛은 세상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빛이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빛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불멸의 큰 광명체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그 빛을 받아서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작은 광명체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서 창조하신 물질 세계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영광
영광(榮光)이라는 말은 한자어로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이며, 존재 자체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의 영광은 신비로운 빛으로 임하신다. 이사야 6장 1-3절에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요한복음 1장 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표현했다. 세상의빛은 물질세계를 창조하실 때,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듯이, 물질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요한1서 1장 5절에서도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2)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의 영광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피조물들도 그 영이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빛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피조물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영은 어둠에 갇혀있게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도『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3) 하나님을 떠난 모든 피조물들의 어두움의 빛
로마서 2장 19절에서『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And art confident that thou thyself art a guide of the blind, a light of them which are in darkness,(kjv) 어둠에는 빛이 없다. 그런데, 어둠 안에 있는 빛으로 표현되었다.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란, 빛을 비출 수 없는 어둠가운데 있는 영, 바로 하나님을 떠난 영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2. 영의 특성

(1) 마음 또는 생각(heart)을 불러일으킴
『신명기 6장 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ine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ght.(kjv) 여기에서 마음은 heart, 뜻(성품)은 soul, 힘은 might로 번역되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Jesus said unto him,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kjv)여기에서도 마음을 heart, 목숨을 soul, 뜻을 mind로 번역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죽어있던 영이 살아나서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목숨, 뜻(성품)으로 번역된 soul은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를 죽여야만 영을 살릴 수 있다. 또한 힘과 뜻(mind)은 인간의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을 살리는데 방해요소가 된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이들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육으로 비롯된 자기의 의지, 성품(성격)을 온 힘을 다하여 모두 죽이고, 영을 살려서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라는 의미이다.

(2) 거룩한 영
레위기 11장 44-45절에서『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전제는 너희들은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룩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으므로, 영이 더러워져서 거룩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 땅의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어떤 잘못으로 영이 더러워지는 일은 없는 것이다. 영이 더러워지는 것은 먼저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에서 영이 범죄하였고, 더러워진 영이 육(이 세상)에 들어왔으므로, 인간이 되어, 세상에서 죄악을 저지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영을 스스로 노력하여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다.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으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 영을 거룩하게 해 주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3) 몸 또는 옷을 입고 있음
영은 옷(몸)을 입어야 한다. 영은 작은 광명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발산하고 있으나, 그 빛이 온전히 발산되기 위해서는 옷(몸)을 입어야 한다. 마치 영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하게 하는 칩과 같은 것이다. 컴퓨터의 본체와 연결되지 않은 프로그램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 저장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옷(몸)을 입지 않은 영은 어두운 곳에 있을 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피조물인 영은 천사의 옷을 입는다. 옷을 벗으면 벌거벗은 상태가 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벌거벗은 상태를 발견한 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쫒겨올 때 벌거벗게 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0-11절에서『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영의 몸을 벗고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다. 창세기 3장 7절에서『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하나님 나라에서 눈이 밝아져(자기의 의에 눈을 뜨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므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왜 자기의 의에 눈을 뜨게 되었는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4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처소와 장막은 옷을 의미하며, 집이나 몸의 형체로도 의미한다. 헬라어로 소마라고 하는데, 요한이 예수님의 몸을 성전으로 표현하면서 몸의 형체라는 말을 사용했다. 몸의 형체는 영을 담고 있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래서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도『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옷이 그리스도의 옷이며, 거듭난 자의 영의 몸이다.

(4) 영생하는 존재
영은 죽지 않는 영생하는 존재로 지으심을 입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든, 그 영은 영원히 존재한다. 육체 속에 있는 영은 언젠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육체가 살아있던지, 죽든지 영은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육체를 벗는 날에 음부에 들어가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첫째 부활(의인의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둘째 부활(악인의 부활)의 몸을 입고 심판대에 서게 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둘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사도행전 24장 15절에서『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의인의 부활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것이다. 이를 거듭남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셨다. 따라서 의인의 부활도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신령한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악인의 부활은 음부로 들어가는 영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음부로 들어가는 영의 몸은 마치 불의 옷과 같은 것이다. 잠언 25장 21-22절에서『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로마서 12장 20절에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결국 회개하지 않는 자는 심판받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5) 영과 영간의 공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4절) 예배하는 자는 영으로 예배하고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영은 영의 마음으로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한다. 육의 마음이 아니라 영의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육적 자아를 부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의 영과 하나님이 영으로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해야만 한다. 에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켜주셔서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자주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이 하나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인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는 구원을 적용하여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삼위로 계시면서 완벽한 하나이신 것처럼,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함께 예배하면서, 동일한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며, 성도들간의 영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성도가 같은 구원을 받았고 은혜 안에서 하나가 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것이다.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결국 서로 다른 개체인 것이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은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얼마나 다른 부류의 사람인지 인정하고 말한다. 인종적으로, 신앙적으로, 언약에 관하여, 모두 다르다. 하지만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의 한 공동체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됨을 역설한 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성도를 끝까지 지키시고, 결국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에베소서 2장 18절에서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과 함께 있고, 이는 성도가 한 성령 안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하나되게 하셨다. 에베소서 4장 4-5절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깨닫고, 함께 사탄과 싸워 이겨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6) 물질세계에서 육체와 결합되어 생명체가 되게 함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런데, 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간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에게, 하나님은 천사의 옷을 벗겨, 그 영을 흙에 넣어 인간이 되게 하셨다. 즉 물질세계에 영을 가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영적으로 감옥과 같은 곳이다. 세상은 영적으로 어두운 곳이며, 흑암인 것이다. 창세기 1장 1-2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인간은 육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과 영이 결합되므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영은 인간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결합체의 한 부분이 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그런데, niv성경에는 soul(혼) 대신에 being이라는 표현을 했다. 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의미다. 육과 영의 결합이 살아있는 생명체(혼)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생명현상(혼)은 사라진다. 혼은 생명현상에 불과하다. 생명현상은 감정, 기억 등으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영, 또는 영혼으로 번역된 것은 영(spirit)로 통일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전도서 12장 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육은 흙으로부터 왔으므로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영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사두개인들과 대화에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이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부활하면 천사와 동등이라고 했다. 즉 육체와 결합된 영은 육이 죽으므로 다시 부활하여 천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7) 하나님 나라에 존재
하나님 나라에 존재하는 영은 하나님과 천사들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천사들도 영이지만, 영의 몸(천사의 옷)을 입고 있다. “하나님도 영의 몸을 입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모습을 보여주실 때, 영의 몸으로 보여주신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신 모습, 어린양의 모습으로,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등불로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는 영의 몸을 입고, 육체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것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천사들도 영의 몸(천사의 옷)을 입고 있다. 네 생물(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모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천사들 역시 물질세계에서는 영의 몸을 입고, 육체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영의 몸은 시공을 초월하는 그런 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갑자기 벽을 뚫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모습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늘로 표현되기도 한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를 NIV영어성경에는 heavens 라고 번역했으며, KJV에서는 heaven으로 번역했다.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엄밀히 말해서 하나이다. 그러나 개념상 복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이지만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물질 세계를 분리해 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세계에 범죄한 영들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 물질 세계를 성령이 감싸고 있다고 표현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물질세계에서 흙 속에 갇힌 영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은 영의 몸을 입고 다시 자유를 찾은 것이다. 살아난 영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이를 개념상 첫째 하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능력의 성령이 둘째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좌의 하나님이 셋째 하늘인 것이다. 모든 하늘이 보좌의 하나님 영역에 있지만, 물질세계는 하나님의 빛이 차단되어 흑암에 갇혀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빛이 비치기 시작하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4절에서 셋째 하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바울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으면서 제3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14년 전의 사도바울의 경험이지만, 이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도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환상과 계시로 밝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경험은 환상으로, 그리고, 거듭난 자에게는 계시로 이렇게 될 곳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서 영의 몸을 입고, 셋째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은 하나님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말씀이다. 이 영이 육체 안에 있을지, 육체 밖에 있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현재적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영은 성령을 통해서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8) 물질세계에서 육체와 결합되지 않고 존재
물질 세계에서, 흙의 몸을 입지 않은 영적 존재가 있다. 그 어두운 영적 존재는 사탄이다. 사탄은 하나님 나라에서 계명성이라는 이름의 천사장이었다. 구약성경(이사야서14:12-14)에서 이사야 선지자는『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계명성(헬라어:루시퍼, 히브리어:헬렐, 천사장의 이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계명성은 다른 천사들도 유혹했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에덴동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은 천사장 헬렐이 하나님나라에서 범죄함으로 물질세계를 만들어 쫒아버렸다. 이것이 1차 심판이시다. 사탄은 공중 권세를 잡아 사람들을 미혹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서『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은 공중 권세에서 이 땅으로 쫒겨 내려왔다.

사탄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한다. 그는 하나님처럼 삼위일체를 흉내낸다. 그가 악령을 퍼뜨려, 모든 인간들에게 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마귀들은 악령을 통해서 사탄과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성부, 성자, 성령이듯이, 사탄의 삼위일체도 사탄과 마귀들, 악령이다. 모든 마귀와 귀신들로 이름된 것들 은 사탄이다. 사탄이 생산하여 마귀와 귀신의 이름으로 인간 속에서 악을 저지르게 하고 죄의 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탄에 붙잡힌 바리새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단이 왜 이 세상의 임금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 보면『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이 창조주이신데,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고 하신걸까? 결국 사단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이 세상은 사탄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요한1서 2장 15-17절에 보면『이 세상은 아버지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목,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씀이다. 즉 육신이 좋으면, 하나님이 기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을 사랑하는 내가 기쁜 것이다.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단 한가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은 감옥과 같이 흑암에 싸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백성 만이 사단의 권세로 부터 나올 수 있다.

3. 육체 속의 영의 유래 (학설 포함)

성경학자 루이스 뻘콥(번역:신복윤)이 지은 『기독교 신학개론』의 인간론(제1장 제1절) 중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각 개인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는 세가지 이론이 있는데, 선재설과 유전설과 창조설이 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학설이다. 이 학설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육체가 생길 때, 하나님이 영을 창조하여 육체에 불어넣어줌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으며, 그리고 그 시간을 명확히 결정지을 수 없는 직접적인 창조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영혼은 처음에는 순결하게 창조되지만 전인간성이 지니고 있는 죄의 구조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출생 이전에도 죄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님을 적어도 죄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영혼을 죄의 구조 속에 넣어서 마침내는 그 영혼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육체에 가둠
어떤 사변학자들은 사람의 영혼이 전세에 존재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이전에 발생한 이 영혼들이 현재의 영혼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날 이 견해는, 사람이 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학설은 거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3) 부모로부터 육체를 받고, 지식과 지혜가 자라면서 형성됨
사람의 영혼은 출생될 때 육체와 함께 번식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에 의하여 자녀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와 영혼을 다같이 죄있는 마리아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이 때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무죄성을 변호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4. 영이 결합되어 있는 육체의 역할

(1) 영이 갇혀있는 곳
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영이 흙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흙은 죄로 갇혀 있음을 상징한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고 있다. 어두운 구덩이는 흙을 의미하며,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악한 영이 흙 속에 갇히었다는 의미다.

(2) 가죽옷으로 영의 벌거벗음을 면하게 해줌
영이 흙에 갇혔다는 것은 영이 훍이라는 옷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이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을 나가게 하고 가죽옷을 입힌 것을 알 수 있다. 가죽옷은 동물의 가죽이 아니라, 흙을 소재로 하는 가죽(skin)옷을 입힌 것이다. 창세기 2장 25절에서『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하나님의 장막을 떠난 자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벌거벗었지만, 임시로 하나님이 흙으로 입혀주신 것이다.

영은 영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왕의 혼인잔치에서도 비유의 말씀으로 예복을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영의 옷이 바로 영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옷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마다 영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도『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옷이 그리스도의 옷이며, 거듭난 자의 영의 몸이다.

(3) 씨의 껍질과 같은 역할
고린도전서 15장 39-40절에서『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모든 생명은 한 알의 씨가 죽으므로, 다음 세대로 재생산되어 간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씨의 껍질은 육의 몸(옛사람)이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잘 설명한 것이 로마서 6장 3-5절이다.『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4) 육은 영을 죽음의 고통으로 빠져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서 8장 13-14절『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육신대로 살면 육체 속의 영이 죽고, 육의 몸(옛사람)이 죽으면 영이 살아난다. 육과 영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듯하다. 육과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었는데, 서로 원수지간처럼 느껴진다. 이 때 육은 옛사람, 육으로부터 나오는 탐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숨어있는 탐욕의 마음 때문에, 영이 죽는 것이다.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이 죽으면 영이 살아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로 육의 옛사람이 죽었음을 날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7-18절에서『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육체의 소욕에 사로 잡혀있는 자들은 바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가 된다. 육의 소욕은 내가 스스로 죽일 수 없다. 오직 성령께서 육체의 소욕(탐욕)을 통제하고 죽인다. 성령이 내 안에 없으면, 율법 가운데 있는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자인 것이다.

5. 영이 갇혀있음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계시

(1) 하나님이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라』죄 아래 갇혀있다고 믿는 자만 약속을 받을 수 있다.
죄 아래 갇혀있는 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 죄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갇혀있는 자는 무조건 감옥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감옥의 규칙이 이 세상에서의 율법과 같은 의미다. 그 고된 규칙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바깥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어서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면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자유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말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이사야서 42장 7절은『인간들이 다 옥에 갇힌 자』라고 표현하는데,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영이 갇혀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님이 갇힌 영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3)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17-19절에서 바로 이사야서 42장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은『흑암에 갇힌 자를 구하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표현했다. 성경(이사야서 42장 7절)은『인간들이 다 옥에 갇힌 자』라고 표현하는데, 사람들은『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범죄한 천사들의 영은 인간의 몸 속에 갇혔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흑암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에서 혼돈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흑암과 유다서 1장에서 말하는 흑암은 동의어로서 헬라어로 스코토스(σκότος)라는 말이다.

(4) 예수님의 제자들이 작성한 서신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유다서 1장 6절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범죄한 천사들을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다서 1장 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처소가 고린도후서 5장 1절의 하나님이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 집을 천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집을 올바르게 입고 있는 영이 바로 천사이다. 그런데 유다서에서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하고 있다.

범죄한 천사가 입고 있던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것이다. 그 집은 하나님이 회수하는 것이며 떠난 천사는 하나님의 처소를 벗어나 벌거벗은 상태가 된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범죄한 천사와 흙으로 된 인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인간 속의 영은 흙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흙은 가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죽어있다는 것이다. 시편142편 7절에서는『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6. 영이 돌아가야 할 곳

(1)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나그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히브리서 11장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2) 나그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주체는 육인가 영인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흙으로 된 육체를 벗고,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피조물인 천사들은 모두 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흙에 갇혀있으므로 영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돌아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그림자다. 하나님 나라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3) 영이 돌아갈 곳은 에덴동산인가, 하나님 나라인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따라서 영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으며, 죽은 후에는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성경(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을 등장시킨 이유는 에덴동산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사건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을 의미한다.

이사야서14장 12-14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계명성(헬라어:루시퍼, 히브리어:헬렐, 천사장의 이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계명성은 다른 천사들도 유혹했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에덴동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창세기 1-3장의 이야기는 이 에덴동산의 사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유를 통해서 창세 전의 일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성경은(창세기3:4-6)에서『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뱀은 사탄을 상징하고, 하와는 사탄을 따라간 천사를 상징한다.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자기의 의』를 상징한다.

(4) 영이 돌아갈 고향이 왜 하나님 나라인가?
영의 기원 학설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태어날 때, 호흡으로 영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원래 하늘 나라에 있던 영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이 태어날 때 영을 불어넣어주므로 영의 고향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이 생겨 나왔지만, 영이 돌아갈 고향이 어디인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는 영의 창조설과 연결이 안되는 부분이다.

영이 하나님 나라에서 왔으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서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5)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육이 죽어야 한다.
인간은 반드시 죽게되어 있다. 만일 육체가 죽어서 영이 부활할 때 천사의 옷을 입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불(말씀과 성령의 불)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라고 했다.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육체를 바라보는 것이요,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마음이 바로 옛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이 심어놓은 마음이며, 이 마음을 부인해야 진짜의 영의 마음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바로 『옛사람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을 때, 육의 몸(옛사람)이 죽어야, 영의 몸으로 태어날 수 있다.

옛사람은 도대체 무엇인가? 요한1서 2장 15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것이라』 세상은 사단이 주인 노릇하고 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라고 했다. 예수님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하고 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세례요한의 때 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했는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내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이 돌아갈 본향이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는 다시 천사의 옷을 입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6) 육의 몸이 죽어야 영이 살 수 있다.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을 가둔 육의 몸(옛사람:자아)이 죽어야만 한다. 영이 죽은 상태를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흑암에 있는 자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이런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씀하셨으면, 이 말씀에 대해서 집중해야 하는데, 무관심하고, 육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 영이 육체 속에 있으므로 죽은 상태이다. 예수님이 영을 살리러 오셨다는 말씀이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신의 장막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자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7) 육의 몸이 죽고, 영이 영의 몸(옷)을 입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영을 살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9절에서『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영을 살리고 싶어한다. 그 전제조건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은『인간들의 영은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영생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의도 즉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영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라는 것은『영은 다 죽어있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하기를『의원은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라고 하셨다. 죄인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영생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든가 또는 영을 살리러 왔다든가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너희는 죄인이라든가, 너희는 죽은 영이라』던가 하는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7. 창세 전의 비밀

고린도후서 12장 1-4절에서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영어 성경과 표현이 차이가 있다. 영어성경(kjv)에서는 12장 4절에서 『How that he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즉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장 30-32절에서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구원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도 표현했다. 남녀가 혼인하는 것 자체가 구원이 아니라, 혼인관계를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 말은 창세기 2장 22-24절의 말과 의미가 같은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교회는 성도를 말한다.『너희가 교회라』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영을 말한다. 성도들 속에 있는 영이 원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데, 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창세 전의 비밀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사탄과 그들을 따르는 영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가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들을 흙 속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이제 영들이 다시 살아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육이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이 살아있을 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을 때, 하나님이 다시 영의 몸으로 태어나게 해 주시고, 영이 살아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결혼을 비유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시는 것이다.

구원은 죄의 문제가 본질이 아닌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창세기 2장 20-22절의 말씀을 에베소서 5장 30-32절의 말씀으로 풀어 설명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비밀이라고 말한다. 구원은 영생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영생하는 자였다. 그러나 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영생을 잃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안다(히브리어:야다)는 말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동침한다는 것이 『안다』는 말이다. 결국『안다』는 말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4장 1절에서『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나가 되는 것은『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이것이 영생이고, 부활이며, 거듭남이다. 부활이 거듭남이다. 예수님이 첫 부활의 열매이시고, 거듭나는 성도들이 그 다음의 열매인 것이다. 구원은 육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거듭난 자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구원이다. 여기서 육의 몸은 육으로부터 나타난 옛사람(혼)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탕자는 자기의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을 후회하고 죽은 자같이 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났던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께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다. 구원은 떠나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때, 죽은 자같이 되어 돌아갔다. 성도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돌아가야만 한다. 육의 몸(옛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이 영의 몸을 입혀주실 것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입고 영이 부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주체가 바로 영이라는 것이다. 영이 영의 몸을 입고 돌아가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영의 몸을 하늘의 처소라고 설명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마태복음 13장 3-9절『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비유는 천국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이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가? 『자기』가 바로 영을 죽이는 육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이탈되어, 이 세상에 갇힌 것이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성도의 영을 말한다. 영이 이 세상의 물질인 흙에 갇히므로서 죽어버리고, 인간이 된 생명체는 혼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천국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씨뿌리는 자가 누구이며, 씨가 누구인지, 밭(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씨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시며, 씨는 하나님 말씀이다. 밭은 사람들의 마음을 말한다. 씨는 약속의 씨로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땅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땅은 흙이다. 사람의 근본은 흙이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땅을 간다는 것(경작)은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사람의 마음을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것으로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씨뿌리는 비유는 영생하는 과일을 얻기 위한 것이다. 영생하는 과일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영생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씨뿌리는 밭의 비유에서 네가지 유형의 밭이 소개된다. 즉 네가지 유형의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 오직 한 종류의 사람 만 좋은 밭이다. 말씀의 씨가 마음에 떨어져서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 좋은 밭이라는 것이다. 좋은 밭은 땅을 갈아서 씨뿌리기 좋은 상태의 밭이다. 『마음을 간다』는 것은 수없이 성경의 말씀을 상고해서 하나님나라에서 범죄한 사실과, 이 땅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마음의 밭을 경작한 자가 되는 것이다.

좋은 밭으로 경작하는 일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경작하는 것이다. 죽는 것은 탐욕의 마음이 죽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그리고 희생제사를 통해서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땅을 경작하는 의미다.

네가지 마음 밭에서, 좋은 밭을 제외한 나머지 밭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밭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밭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과 흑암에 갇힌 자라는 것과 생명과일이 필요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좋은 밭이다. 그래서 좋은 밭에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탐욕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같이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8.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심

에베소서 3장 9-12절에서『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감추었던 비밀이 확실히 드러나고, 지혜있는 자가 이 비밀을 알게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된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경륜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은 어둠의 권세인 사탄의 종들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물질세계에 갇혀 있으므로 곧 영적 소경이 되고, 사탄의 지배 속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이방인이든 유대인들이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장 3-4절)

하늘에 속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을 말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땅의 것(그림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으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므로, 땅의 것을 통해서 하늘의 복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 12절에서 말씀하시기를『땅의 일도 믿지 않는데, 어떻게 하늘의 일을 믿겠는가』라고 하셨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이 땅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므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의 의만 높이는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의도이셨는데,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스스로 노력하여 의를 이루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대신해서 의를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인데,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오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인 가나안 땅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상고하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이 세상에 왔으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보지 못하는 자가 바로 영적인 소경이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므로 그들이 소경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 39-41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히브리서 4장 8-9절에서『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가나안이 참 안식이 아니라, 가나안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것이 참 안식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교회 교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당신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속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신다. 이 세상은 사탄이 주관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창조하셨으나, 사탄이 일정기간 주관하도록 이미 허락하셨다.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해서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의미다. 누가복음 4장 6절에서 사탄이 예수님께 말하는 것이다.『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이 땅의 주관자가 사탄이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받으라고, 사람들을 보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은 선지자를 비롯해서,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하늘에 속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그 신령한 복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죄인들이 깨닫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정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이 세상에 흙속으로 들어와 인간이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시 영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창세전의 정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다 구원시키겠다는 것이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그 탐욕(옛사람)이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의 일은 아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신령한 하늘의 복이다.

창세 전에 거룩하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인간이 된 자들을 말한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다. 유다서 1장 6절에서『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흑암 속이 바로 흙속이라는 의미다. 자기 지위라는 것이 바로 천사의 옷(집)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므로 벌거벗은 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벌거벗은 영, 흙속에 갇힌 영을 하나님 아들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이다. 즉 첫사람(그리스도의 표상)을 통해서 인간의 육신을 물려받아 영이 들어가고, 마지막 아담(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의 몸을 받아,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예정)이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다.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믿는 이에게 더 큰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바로 그 큰일이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세상으로 내려가고, 마지막 아담으로 인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꾼 내용과 일치한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에서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다나엘이 순식간에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고백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더 큰 일이 무엇인가?『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늘이 열린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를 나타낸다. 야곱이 이 같은 꿈을 꾸었다.『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인자는 야곱의 꿈을 대비시켜보면 사다리에 해당한다. 야곱이 꿈에 본 사다리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하늘의 문을 열고 천사들이 내려오고, 올라간다는 의미다. 그 사다리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내려오는 천사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었다. 내려올 때는 아담(그리스도의 표상)의 몸 안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올라갈 때는 구원받은 영들이 된다. 그러나 올라갈 때는 인자(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올라가는 것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죄인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예정하신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마지막 아담은 영을 살리는 영의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흙 속으로 들어가 육체가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영의 몸을 입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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