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지루하고 거짓말 같고 나와는 상관 없다?

기독교는 지루하지도,거짓말도,나와 상관 없지도 않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것이 옳다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이 관계가 없으면 우리는 허기짐과 공허함,그리고 무엇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찰스황태자,버나드 레빈,톨스토이 등은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삶에 대해 가지는 이런 느낌을 고백한 바 있으며 결국 사랑이 있는 지속적인 관계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한가지가 필요함을 깨달았다.물론 완전하며 지속적이지 못하는 인간관계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끌어 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텔레비젼의 안테나 처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견하게 되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우리는 왜 창조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예수님은 '나는 진리다' 라고 말씀하셨다.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신실하기만 하면 무엇을 믿어도 된다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아돌프 히틀러처럼 옳지않는 일에 신실할 수도 있는 것이다.만약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기독교가 진리라는 증거
는 물론 대단히 많다.이 진리는 단순히 지적인 진리를 이상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죄와 죽음아래에 있었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하나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우리들이 죄로
인하여 망가지고 없어지기도 했다.모든 인간에는 선과 악,강함과 약함이 동시에 존재한다.즉,우리 모두는 용서가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신 오직 예수안에서 찾을 수 있다.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풍성한 삶을 즐길수 있을 뿐만 아니라 끝없이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는 지루하지도 않으며 거짓말이 아닌 유일한 진리이며 또한 나와 무관하지도 않은 것이다.기독교는 우리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철학자 폴 틸리히
가 말한 인간이 가지는 세가지 공포, 즉 의미없는 삶에 대한 공포,죽음에 대한 공포,죄에 대한 공포에 정면으로 대응하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우리의 삶은 풍성하게 된다.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이것인 것이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

기독교의 믿음은 확실한 역사적 증거에 바탕을 둔 단계가 있는 믿음이다.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들은 대단히 많다.예수님이 그저 멋진 역사적인 인물 이나 위대한 도덕선생 이상(즉 하나님이라는)이었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증거한 말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싶다면 나에게 와라(요14:6),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요6:35),나는 세상의 빛이다.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
명의 빛을 받을 것이다(요8:1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11:25-26).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나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마10:40)


- 간접적인 증거들
중풍병자에게 하신 '얘야 네 죄는 용서받았다'(막2:5).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다시 돌아와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마25:31)


- 직접적인 주장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마14:61-64).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말했을때 이를 부인하
지 않고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라고 나무라심.


※당신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믿던가 아니면 미친 사람 혹은 그보다 더 끔찍한 사람이라고 믿든지 둘 중에 하나 이다. 

그러나 그가 인류의 위대한 선생이었다고 선심쓰는 듯한 터무니 없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자. 그는 그 부분에 대해 모호함을 남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c. s. 루리스)


- 뒷바침할 증거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예를들면 산상수훈)의 위대함을 인정한다.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보다 더 좋은 것을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감동을 주는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특히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푼 여러가지 기적들과 무엇보다 십자가 희생은 결정적인
것이다. 또한 겸손과 희생과,친절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인품과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각각 다른 사람에 의핸 선포된 300개가 넘는 구약의 예언을
완성하셨고 죽은자 가운데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사건은 기독교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미친 사람이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위와같은 그의 가르침,인품,구약예언의 완성,죽음의 정복 등의 중요성을 살펴볼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가졌으며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인식할 수 있다. 

○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나?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잘못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범한 일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
에 이르지 못하였더니(롬3:23). 누가복음15장에 나오은 탕자의 비유처럼 죄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이며 그분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모든 악한 것들은 마음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막7:20-23).율법의 하나라도 어기면 전부를 어기는 죄를 짓는다고 말한다(야2:10)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 된다(요8:34) 나쁜 짓은 중독성이 있다.이러한 죄의 댓가는 사망이다(롬6:23).육체적인 사망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주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우리 죄로 인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이사야59:1-2)

하나님은 우리를 죄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바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오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고
통을 대신 당하신 것이다. 그 결과 죽음과 마귀의 힘은 십자가 위에서 무장해제 당했다(골2:15).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기 희생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베전2:21)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며(롬5:1) 대속의 값을 치루셨고(막10:45)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물이 되셨으며(요한1서1:7)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다(고후5:19)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며 우리와 친해지시길 원한다.예수님은 단순히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갈2:20).십자가를 개인적으로 바라보면 삶은 변화하게 될 것이다.

○ 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크리스천이 되는 경험은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방 그 변화를 느끼고 어떤사람은 천천히 느낀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갖는다(요1:12).부모들이 자녀들과 관계에 확신을 갖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에 확신을 가지시길 바란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 세가지가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약속들,예수님의 희생,성령의 증거).변화가 많은 기분에 의존하면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변치 않으며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우리가 문을 열어 영접하기만하면 예수님은 나에게 들어아 함께 먹고 마신다고 약속하셨고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라고 약속하신다.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약속하셨다(요10;28).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얻게되는 삶의 질이며 이것은 영원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며(요일3:2) 부활한 육신을 얻을 것이다(고전15)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십자가의 업적(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영원한 삶을 선물로 얻게 되었다(요10;28).일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다. 어떻한 죄도 없으며 완벽하게 사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옮겨진 것이다.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으며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롬8:1).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크리스천이 되면 성령이 그 안에 들어와 사신다.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며 8가지의 열매를 맺게 하며(갈5;22-23) 또한 하나님에 대한 은밀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도록 하신다(롬8:15-16).

이와 같이 이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 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의 죽음이 이루신 일과 우리 삶속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 왜 그리고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성경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성경은 매년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선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며
(마4:4) 지금도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그분과 대화를 나눌수 있다.

성경은 삶의 지침서이다
기독교는 계시를 통한 신앙이다.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하나님은 사물이나 성령을 통해서뿐만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말씀(계시)하신다.1500면가 40명의 저자를 통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은 완벽하므로 모든 신조와 행위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 성경 밖에서보다는 오히려 성경안에서 사람들은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발견하고 실천할 수록 우리는 더욱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다.
성경은 삶의 지침서일 뿐만아니라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 사랑의 편지이다.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성경공부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실때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게 한다.성경을 통해 그분의 메세지를
들을 수 있으며 그분과 시간을 보낼수록 그분을 닮아갈 수 있게 된다.또한 성경은 영적인 공격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에 대응한 것도 성경말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이 외딴곳으로 가셨듯이(막1:35)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구절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나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를 파악한 후 하나님께 들은 바를 실행에 옮겨
야 한다.이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하는 일마다 잘되는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왜 그리고 어떻게 기도할까?

-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수직적인 대화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키워나가는 통로다.기계적인 말의 소나기가 아니며 의식이 아니라 관계인 것이다.
크리스천의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마6:9)께 드리는 친밀감 있는 대화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요15:16) 있고 또한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의 약함을 도와준다(롬8:26:27)


- 왜 기도하는가?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키워나가는 길이다.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지만 대화가 없다면 그것은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간구해야 한다.
감사,찬양,고백,경외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방법이 있을지라도 간구는 중요한 부분이다.예수님도 끊임없이 기도하셨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또 다른 기도의 동기는 보이지 않는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마6:6)과 기도는 우리 자신과 상황을 바꿀수 있다는 것이다.기도에 대한 응답이 우연이라고 주장
될 수 있을지라도 기도응답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신앙응 깊어진다.


-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고백하지 않은 우리의 죄는 우리와 하나님사이에 벽을 만든다.주의 손이 짧아서도 아니고 주의 귀가 어두워서도 아니라 우리의 죄때문에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는 것이다(사59:1-2).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도 들어주실 수 있지만 응답을 기대할 권리는 없다.기도응답의 전제조건은 죄로 인한 벽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
욕심 등으로 인한 기도의 동기도 응답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또한 응답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경우에도 응답하시지 않는다.하나님은 오직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7:11). 기도에 대한 응답은 '좋다,안된다,혹은 기다려라' 중에 하나이다.우리는 이에 대해 참으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신다(요일5:14)


-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정해진 방식이 없다.자유롭게 그분께 말할 수 있다.의미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우리 마음속의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신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패턴을 따를 수 있다.


- 언제 기도해야 하는가?
신약성서는 항상 기도할 것을 권유한다(살전5:17,엡6:18).골방에 들어가 혼자 기도할 수도 있으며(마6:6) 다은 사람들과 같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18:19)
사탄은 우리 말을 비웃는다.우리의 수로를 조롱한다. 그러나 기도에는 벌벌 떤다.

○ 성령은 누구인가?

성령의 의미는 '함께 나란히 불려오는자','보혜사''위로해 주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성령은 유령이 아닌 인격이다.생각하시고(행15:28),말씀하시며
(행1:16),
인도하시고(롬8:14) 슬퍼하신다(엡4:30).성령은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수단이다.

 

-성령은 창조에 참여했다.(창1:1-2)(창2:7)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일을 위해 찾아오셨다.브살렐에게 주신 기술(출31:3-5),이스라엘을 이끈 기드온(삿6:15),주의 영이 내렸던
삼손(삿15:14), 예언자 이사야에 임한 영(사61:1-3)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다.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지키지 않았고 구약의 약속은
끊임없이 깨졌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그의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구약의 약속과는 달리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이었다.(겔36:26)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그의 율례를 따르고 지키도록 격려하실 것이다.요엘은 그 약속이 더이상 특별한 과업을 위해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요엘2:28-29).그런데 이약속들은 약 300년간 완성되지 않고 있다가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세례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성령충만했으며(눅1:15),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눅1:35) 그녀의 사촌 엘리사벳도 성령충만(눅1:41)했다.

 

-세례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을 연결지었다.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했다(눅3:16)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를 예언하셨다.예수님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7:38).생수의 강은 또한 크리스천으로
부터 흘러나올 것이다.또한 승천하시기 성령이 오면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으며(행1:8) 드디어 성령강림절날 성령의 강림이 있었다(행2:2-4).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그것은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크리스천들을 위한 것이다.

○ 성령은 무슨일을 하시는가?

-성령은 지나간 일들을 없던 것으로 하실 뿐만아니라 우리를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요1:12)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친밀감을 소유하게 하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으며 오직 예수님만이 '아바'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으며 우리가 예수님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과 그의 친밀한 관계를 나누어 누리도록 허락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깊은 경험을 우리에게 주신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신다(롬8:16)


-성령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우리를 만들어 주신다(롬8:17).

우리가 상속받는 것에 비하면 세상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며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이끄신다(엡2;18).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장벽이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도우신다.

기도는 어디서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성령의 도움없이는 생명이 없이 단조로운 기도가 되기 쉽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게 하신다(엡7:17-18)


-성령은 가족처럼 하나되게 하신다(엡4;3)


-성령은 모든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이다.공동의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각각 다른 모습으로 주신다.

우리는 그 성령의 은사를 반드시 실생활속에서 사용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럴 능력을 주신다.(행1;8)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영으로 가득 채우시길 원한다.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애타게 기다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는지 뚜렷한 확신이 없다.
그것은 정말로 목이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목마름을 달라고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떤가?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물을 선물로 거져 주실 것이다. 

○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 성령충만의 모습
성령충만의 경험은 명확히 알 수 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강한 열대폭풍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강풍이 부는듯한 물리적인 현상 등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성령의 힘을 경험했다.인간이 알수 있는 가장 심오한 체험이 성령체험이다.그를 아는 지식과 이해를 넘어 그의 사랑을 체험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을 경험할 수 있다.


성령충만함을 받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찬양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어 감격한 사람들의 언어이며 그것에는
인격 전체가 관여된다.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감정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격전체(감정,우정,소통,이해,봉사 등)가 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방언을 선물로 받았다.방언은 기도의 형식중 하나이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인다
(고전14:2). 방언은 영혼으로 진정 느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으며 무거운 마음때문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때
도움을 준다. 사도바울도 방언을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전14:19).방언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것이며 성령과 협력을 통해서 얻게되는 성령의
선물가운데 하나이다.


- 성령충만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의심이다.구하라 그리하면 주시겠다는 말씀에 대한 의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신다(눅11:11-12)
또한 가끔 자신이 가치가 없다거나 은사를 받기에 부적합하다고 느낄때이다.하나님은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눅11:13)


- 성령충만은 한 번으로 끊나는 경험이 아니다.베들는 세번의 충만함을 받았다(행2:4,4:8,31)

○ 어떻게 악에 대항하는가?

선한 것 뒤에는 하나님이 있고 악한 것 뒤에는 악마가 있다.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악마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으며 악령들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는 인격적인 존재다.

- 왜 악마의 존재를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성경적이기 때문이다.예수님은 분명히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셨으며 시험을 당하셨다.
둘째 크리스천들은 수세기에 걸쳐 악마의 존재를 믿어왔기 때문이다.초기 신학자들이나 위대한 복음전도자들은 영적인 악한 세력의 존재를 인식했다
세째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악마의 존재는 분명하다,각종 범죄,테러행위 성적학대,밀교행위들 등의 뒤에는 과연 누가 있단 말인가?

- 악마의 술책은 무엇인가?
사탄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인간들을 멸망시키는 것이다(요10:10).사탄의 공격의 최전선에는 의심이 있다.하와를 공격한 사탄도 의심을 이용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도 '만약 네가 아들이거든..'처럼 의심을 일으킨 다음 시험을 시작한다.
사탄은 허락하신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금지하신 딱 한가지에만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보다는 사소하고 하나님께서 허락
하자 않으셨던 일에 집착하게 한다. 그리고 사탄은 형벌을 부인한다(창3:4).하나님을 거역해도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담과 하와가 깨달았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우리에 주시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불순종의 결과는 부끄러움과 곤혹스러움을
주고 또한 우정과 관계가 깨진다.
사탄은 속이는 자이며 멸망시키는 자이며 시험하는 자이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이다.사타은 우리에게 비난과 고소를 끊임없이 하면서 우리를 점점
죄책감과 절망에 빠지게 하고 우리 삶을 조정하고자 한다

-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여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1:13).사탄이 우리를 유혹할때 우리의 대답은 '나는 더이상
당신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정복되고 패배한 적이다(눅10:17-20).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로 인해 우리의 위치가 가지는 힘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 어떻게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가?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사탄도 아직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방어 수단이 질서정연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있다
바울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하라고 했다(엡6:11). 진리의 허리띠,정의의 가슴막,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발,
믿음의 방패,구원의 투구,성령의 칼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 우리는 어떻게 공격하는가?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무기이다(고후10:4).예수님에게 기도는 최우선이었으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사탄은 가장 연약한
크리스천의 기도에 떤다.기도는 영적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사탄은 패배한 적이다.예수님이 오실때에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계12:12)

○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여러가지 결정과정에는 바른결정을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하나님은 그와 함께 걷는 사람에게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한다(시32:8)(요10:3-4).하나님은 우리 삶에 대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엡2:10).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에 가장 좋은 것을 바라신다.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다면 여쭤 보아야 한다.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우리가 옳다고 고집부릴 때 보다는 그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신다.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시25:9)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의논하신다(25:14).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 성경을 통한 명령--읽고
성경에는 모든 환경과 모든 장소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이 뜻이 이미 들어 있다.성경을 보면 어떤 일이 옳은지 않은지를 알 수 있으므로 일단 성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볼 수 있다.다만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 성경에 나타나 있긴 하지만 개별적이고 특별한 뜻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면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누구와 결혼하라는 뜻은 없음).그리고 아무곳에서나 되는 대로 펼쳐 읽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정성을 드려 성경공부를 하는 습관을 들이다면 매일매일 우리가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 얼마나 꼭 들어 맞는지를 알수 있을 것이다.


- 성령의 통제--듣고
인도는 매우 개별적인 것이다.크리스찬이 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살게 되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성령은 종종 우리가 기도할 때 말씀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을 주심으로써 말씀하신다.당신의 의지가 하나님께 드려졌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하고 싶은 강한 소망을 주실 것이다.그리고 성령은 때로 특이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사무엘처럼 육체의 귀로 들을 수 있거나 아브라함처럼 천사를 통하거나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인도하신다.


- 상식을 통한 인도--생각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상식을 버려서는 안된다.시편기자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처럼 되지 말라고 했다(시32:9) 예를 들면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신발을 신을 지를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 성도들의 조언을 통한 인도--대화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라는 명령이 많이 나온다(잠12:15) 조언자가 많으면 그 계획은 이루어진다(잠15:22).그런데 조언을 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선택은 우리의 책임이다.선택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다.자신의 결정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내가 존경하고 영적인 권위가 있는 성숙한 크리스천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상황적인 증거들을 통한 인도--보고
모는 사건의 궁극적인 통제권은 하나님에게 있다.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어떤 문들을 닫으셨는지 이 땅에 사는동안 알 수 없을 수도 있다.때로는 여시고 때로는 닫기도 하신다.(고전16:9).하나님이 인도하심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적인 증거의 예를 많이 찾아볼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구하는 즉시 올 수도 있지만 몇 년 이상 오래 걸릴 수도 있다.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인내를 가져야 한다.그는 오래 참음 끝에 약속을 받았다(히6:15) 위와 같은 인도를 기다리며 우리 삶에 그분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 곁에 앉으시며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사람에게 전하는가?

기독교 신앙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다른 사람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직접명령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라'라고 말씀하신다(신약에 233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복음을 들어야할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에게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오하시스를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마지막으로는 복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누어 주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소망을 느끼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떻게 전할까?
망아지처럼 둔감함으로 돌격한다면 언제가 상처를 입는다.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여기 다섯가지의 방법이 있다.


-동참(presence):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세상속에 있어야 한다.

종교라는 우아한 방으로 숨어들면 안된다.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착한 행실과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설득(persuasion): 신앙에 대한 반박질문이나 문제에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고전5:11)


-선포(proclamation): 알리고 대화하고 선포한다


-능력(power): 복음이 선포될 때 나타나는 능력을 통해 전파할 수 있다


-기도(prayer): 예수님처럼 계속 기도한다(막1:35-37) 

○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치유하시는가?

20세기 많은 사람들은 치유라는 문제에 대해 두려움과 회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수 많은 치유의 예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셀 수 없이 나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경에 나타난 치유
치유는 하나님의 본성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순종하면 건강과 치유를 주시겠다고 약속했다(출23;25-26).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출15:26).가장 놀라운 예는 나병을 치유했던 나아만 장군(왕하5:14)을 들 수 있다.치유는 한 사람의 생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또한 어떤한 댓가의 지불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완벽한 치유가 있다.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림이 있는 그날(새하늘과 새땅)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지극한 행복의 땅이 될것이며(고전:9) 영원히 썩지 않는 영화로운 새 육신을 가지고(고전15:42-43) 더이상 죽음과 슬픔도 없는(계21:4) 완전한 치유함이 있을 것이다.
치유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의 선물로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며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오늘날에도 그 나라의 활동의 일부로서 기적적인 치유는 계속 행해지고 있다.


-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치유
여러가지 초기 교회의 책들을 살펴보면 치유가 초기 교회의 일상적인 활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사도들로부터 시작해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치유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기독교의 빠른 성장 이유가운데 하나도 치유를 들 수 있다.오늘날 가장 신실한 사람들에게조차도 회의주의가 숨어 있지만 우리의 이성 아니 적어도 우리의 상상력은 신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활동을 한다것을 알아야 한다.하나님은 그가 기뻐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가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기적을 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 오늘날의 치유
하나님 치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하시다.그 예가 너무 많아 특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다.어떤 사람들은 치유의 은사를 받기도 한다.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의 치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치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물론 기도한다고 모든 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이 기도할수록 더 많이 치유 받을 것이다. 

○ 교회에 대하여

교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다섯가지가 있다


-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그리스어로 교회는 에클레시아는 '사람들의 모임''집회'라는 뜻이다
신약의 교회는 대규모(celebration),중간규모(congregation),소규모(cell)의 세가지 종류의 모임이 있었던 것 같다.
celebration은 대규모 모임으로 큰 교회 혹은 작은 교회 여럿이 모인 것을 말하며 congregation은 속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로 잘 알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의미하며 cell은 2-12명 정도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의 모임을 말한다.


- 하나님의 가족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삶에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1:12)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며 성령은 우리의 내주자가 되신다.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다.우리는 형제자매이며 서로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사랑할 의무가 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 서로서로 교제하며 빛을 내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몸
사도 바울은 다멕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으로부터 크리스천을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는 음성을 듣고 교회가 사실상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의 하나된 모임이다.그러나 모두가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러가지 은혜의 선물을 가지고 여러가지 섬기는 일을 하는 지체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것이다(순종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요 겸손은 기쁨에 이르는 길이며 하나됨은 개성에 이르는 길이다).우리는 한 몸에 속해 있기 때문에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모든 크리스천의 교회의 일부이다.


- 성전
신약이 말하는 유일한 교회 건물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건물이다.예수님이 주춧돌이 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이루어진 것이다.구약이 장막중심의 예배였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시는 교회가 지금의 중심이다.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으로 인해 제사장과 제물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신부
구약이 이스라엘의 남편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남편되심(사54:1-8) 결혼 관계의 모델이 되심을 말하고 있다.그것은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엡5:25-27).교회가 신약성서의 이미지와 가까워 진다면 예배가 더이상 지루하고 재미없지는 않을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합당한 신부가 되어야 하며 예배와 전도를 통해 그의 업적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 한번의 삶을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천은 군중속에 섞이지 말고 주위 세상과 달라야 한다.

세상에 무언가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빛을 비춰야 한다.
삶에 변화를 받아야 한다. 

주님을 위한 열심을 내어야 하며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몸을 드려야 한다. 

우리의 시간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우리의 소망을 의탁하고 드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유와 돈을 드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귀와 우리의 입을 드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완벽한 자유는 없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데는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과 조롱을 받더라도 우리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 삶을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우리앞에 놓이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가야 한다.


십자가를 견뎌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관계을 유지하며 그분께 사랑을 받고 평생동안 섬기는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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