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기도문의 정의

주기도문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하나님 나라)는 교리로서 사도신경과 관련되고, 후반부(인간생활)는 윤리로서 십계명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내용(what)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방법(how)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기도의 내용을 획일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모본(pattern)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기도문은 <마6:9-13 >과 <눅 11:2-4 >의 기도문 중 마태복음에 나오는 기도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기도문이란 마태복음의 것을 말합니다.

2. 주기도문의 구성

1) 형식적 구분

주기도문은 형식적으로는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의 대상을 부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둘째, 기도의 내용("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셋째, 송영("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 내용상 구분

주기도문의 내용을 분류하면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관한 기원으로 2인칭 단수 대명사를 쓰고 있습니다.

둘째, 사람(우리)에 관한 간구로서 1인칭 복수 대명사를 쓰고 있습니다.

성격상 이 두 부분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영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3) 후반부의 간구의 내용

그리고 사람에 관한 간구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3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용할 양식에 관한 부분은 현재적인 것

둘째, 죄 용서에 관한 것은 과거적

셋째, 유혹(시험)과 악에 관한 것은 미래적

3. 내용설명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1) '우리 아버지'라는 친근한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지존자 하나님을 친밀하게 부르도록 허락하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호칭은 단 14회이지만, 신약에서는 170회 나타난다.

 

2)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의 뜻은 멀리 은하계 어느 구석에 떨어져 있는 우주 공간의 어떤 특정지역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초월성, 영성, 거룩성, 하나님의 영적 자유를 상징하고 포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빈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 우주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은 '땅'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피조영역이며, 지음 받은 실재로서 무한한 생명창세기조의 가능성, 잠재성, 충만성, 그런 의미에서 영적 실재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피조물과 함께 생명과 은혜의 빛으로서 현존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항상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이시다. 만유 안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지만 항상 하나님은 만유를 초월하여 만유 위에 계십니다(<엡 4:6>).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 대하는 심정으로 경외와 감사와 깨끗한 맘과 정성을 다하여 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태도로 드리는 불경건한 예배나 기도는 차라리 드리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덜 손상시켜 드리는 일입니다. 흔히 예배가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방편으로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것을 엄히 경계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자세는 순수해야 하고 겸허해야 하고, 정성을 다한 것이어야 합니다. 햇빛과 우로를 선한 이와 악한 이에게도 고루 내리시는 영원자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야하고 하나님을 불러야합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1) 국어학적으로 우선 전통적인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나라'라고 하는 주격에 붙는 토씨 '가, 이' 중에서 옛날로 올라 갈수록 '이'가 많이 쓰여졌던 흔적입니다. 현대 국어문법상 받침 없는 주격 체언에는 '가'를 써야 합니다.

 

2)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영광, 통치가 온전하게 실현된 영역입니다.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현존을 제약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영광의 임재가 하늘나라를 규정합니다. 하늘이라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늘입니다.

 

3) '당신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안에서, 성령의 강림과 교회의 출현 안에서 이미 땅 위에 시작되었고 임했으나 아직 온전한 영광의 모습으로 완성되지 아니하고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늘나라 비유들은 하늘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곧 '이미와 아직'(already … not yet)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 사람들을 통하여, 땅의 피조물들 안에서, 또 그들과 함께 이뤄지기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과 삶의 모든 선물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과 하나님의 뜻의 구현에 동원하여 쓸 것을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재능, 시간, 물질, 은사, 능력, 기회, 생명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의 도구와 그릇(容器)이 될 것을 다짐하는 기원입니다.

 

2)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드리는 크리스천은 결코 이 세상의 일들을 소홀히 하고 저 하늘나라만 앙망하는 타계주의 신앙, 몰역사주의 신앙, 영지주의적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주기도문은 성육신적 영성을 강조합니다. 하늘의 뜻과 땅위의 뜻이 하나로 통일되고, 하늘과 땅이 함께 영광의 나라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1) 우리가 교회 공동기도문에서 사용하는 주기도문은 개역성경을 따르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이라는 단어는 '오늘'이라는 단어의 뜻과 매우 다릅니다. '오늘'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헬라어 쎄메론(Semeron)이라는 단어는 24시간 곧 하루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성경은 '오늘'이라는 헬라어 쎄메론을 this day, today로서 번역하고, 독일어 성경은 heute로, 중국 한문성경은 今日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한글 "개역성경"이 '오늘날'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늘의 시대,' '최근의 시기,' 즉 하루가 아니라 상당한 시간의 길이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의 뜻을 가리울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표준성경"은'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번역하여 원문에 좀더 가깝고 충실한 번역을 하였습니다.

 

2) '일용할'이라고 "개역성경"에서 번역한 헬라어는 에피우시온(Epiousion)인데 그 의미는 '필요한,' '존재에 필수적인,' '오늘을 위한' 등의 의미입니다. "개역성경"은 "일용할 양식"으로, "새번역성경" 과 "공동번역성경," "표준새번역 성경"은 모두 '필요한 양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3) '양식'으로 번역한 원문은 유대인의 주식인 '빵'(Bread, artos)입니다.

 

4) '주옵시고'는 '주시옵고'로 번역하는 것이 국어학적으로 더 옳다고 합니다.

 

5) '오늘, 필요한 양식'이라는 말씀은 하루하루의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생명을 내가 담보하거나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 먹을 양 이상의 '만나'를 거두어 들였을 때, 곧 벌레가 생기고 썩어버리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했듯이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루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받아 산다는 '겸허한 마음, 빈 마음,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스스로의 자기 유혹, 곧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 하나님 없이 스스로 생명의 주인이 되려는 근원적 불신앙이 작동하여 스스로 유혹에 떨어지는 인간의 불신앙과 자기 파멸에서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시라는 기도입니다. 둘째, 인간보다 더 영적으로 간교하고 신령한 어떤 악의 실재들의 위협과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라는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악한 자'의 시험과 유혹은 반드시 인간의 자의적, 의지적 동의와 감정을 유발시켜서 시행하므로 첫째와 둘째는 현실 속에서 날카롭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악의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성경은 '악,' 또는 '악한 자'가 아무리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 의지의 자유, 그 책임성을 악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있으며, 악은 절대적인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을지라도 인간을 희롱할 수는 없으며, 인간을 악에 빠뜨릴 수는 있어도 인간생명을 파멸하거나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구약 욥기 참조).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당신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1) 송영 부분이 마태복음에서 괄호 안에 넣어 인쇄된 이유는 마태복음의 대부분 중요한 고대사본들 가운데서 (대개 주후 5~6세기 이전에 필사된 사본들) 송영부분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송영부분은 주님기도가 교회의 예배에 빈번히 사용되고 고백됨으로 인하여 후대에 덧붙여졌다고 봅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간구하는 것으로서만 끝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송영의 처음에 나오는 단어 '대개'라는 단어는 헬라어 '호티'(hoti)라는 단어를 중국 한문성경에서 참조하여 우리말 개역성경 번역시(1930년대) 참고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그 단어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그 의미는 영어의 because, for 등에 해당하므로, 우리나라의 말뜻으로는 '이는 …'정도입니다. 중국어 번역본에서 초기엔 <大槪, 大蓋>로 쓰이던 것을 그대로 참조하여 개역성경을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중국의 성경도 <以, 또는 因爲>로 번역하여 이 의미를 바로 잡았습니다. 우리 한글 번역본에서 1936, 1933년 신약성경 번역본에 <대개>로 썼다가 그 뒤, 그 번역이 원문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대체로'의 뜻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아예 생략하여 번역하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찬송가 앞장에 인쇄된 주기도문에 그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3) 기도는 허락된 은총의 선물이며, 기독교 신앙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기도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매개수단이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고,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신뢰와 하나됨 안에서 자녀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확신을 갖고 기도하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뤄주소서'라고 맡기는 절대신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송영이며, 찬양과 영광돌림은 인간존재의 제일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영광 받고 교제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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