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한글 kjv)

 

(마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시옵고,6:10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루어지이다.6: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6:12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들도 용서해 주시오며,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대개는 주로 예배를 마칠 때 주기도문을 많이 암송하고 있습니다. 또 주기도문은 축도 대신 암송하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주기도문에 축도와 비슷한 영적,물적 축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개신교회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서는 예배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1. 주기도문의 배경

 

‘주의 기도’(Lord's prayer)로 알려진 주기도문은 실제로 주님이 하신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르쳐 준 대로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기도를 늘 반복해서 암송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유대인들의 이런 잘못된 기도 관행을 고쳐주시기 위해 이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6:5-8).6:5또 네가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은 그들의 상을 받은 것이니라.6:6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은밀히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6:7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리라 생각함이라.6:8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닮지 말라. 이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심이라.

 

이 말씀이 끝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처럼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이 마땅히 기도해야 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유대인, 즉 앞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우실 왕국에 들어 갈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도 이 기도대로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시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문에 나오는 “우리” 역시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은 “주기도문”(Lord's Prayer)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의 기도”(Disciples' Prayer)라는 제목이 더 어울립니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10절)

 

여기서 아버지의 왕국은 이 땅에 세워질 “천국”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은 왕국을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문은 왕국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 상황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기간 동안 메시아가 통치하는 왕국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아가 오셨으나 유대인들이 거부함으로 왕국은 연기되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 죗값을 치루는 시기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 천년왕국의 직전 상황, 곧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불리워지는 대환란 때로 그 시기가 조정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문은 7년 대환란 때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기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1절)

 

환란 때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물건을 매매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면 음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듯이,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그날의 양식을 얻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들은 먹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주옵시며』(12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중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준다는 조건 하에서 용서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 시대, 즉 은혜의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는 믿는 자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만일 구원받은 이후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했다면 그는 그것을 자백함으로써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시대가 끝나면 구약처럼 행위가 따라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7년 대환란과 천년왕국 때입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이때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눅 16:19-31)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 있었던 구원과 지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13절)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환란에 처한 유대인들에게 이 기도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번 구원받으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보장을 받습니다(롬 8:38-39 ). 그러나 대환란 때의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인내로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히 3:14 , 마 24:13 ). 그래서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는 것은 매우 절박한 기도인 것입니다.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그들은 구체적인 악의 표상인 적그리스도로부터 구해 달라는 기도, 어떠한 악도 범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이 기도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환란 시대보다 더 절박한 시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말하는 “주기도문”은 교리적으로 이 시대를 위한 기도라기 보다, 앞으로 임할 왕국을 바라보며 대환란을 견디는 유대인들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기도의 내용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적용할 만한 구절이 있을지라도, 이 기도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예배 때마다 반복해 암송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 6:7) 에서 금지하신 “헛된 반복”일 뿐입니다.

 

 

2. 주기도문의 오용

 

(마6:7)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리라 생각함이라.

 

근본적으로 우상숭배자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면 자기들의 신이 기도를 잘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오늘날에도 세상 종교의 우상숭배자들은 묵주를 돌리거나 탑돌이를 하거나 하면서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교도들의 특징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도 이런 관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 기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모임에서든지 끝날 때에 반복적으로 이 기도를 외우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또 어려움을 겪을 때 주기도문을 많이 외우면 문제가 풀린다는 주장도 우상숭배자들의 생각과 같습니다. 주기도문을 마치 사교집단의 주문을 외우듯이 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창조주시며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런 쓸데없이 반복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주기도문이 주어진 명백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여전히 주기도문을 글자 그대로 따라서 기도해야 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더욱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부어야지, 단순히 암기한 말들을 반복해서 암송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시 50:15).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3:4)내가 내 음성으로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거룩한 산에서 내 음성을 들으셨도다. 셀라.

 

(시30:2)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고쳐 주셨나이다..

 

(시62:8)어느 때나 그를 신뢰하라. 너희 백성들아, 너희 마음을 그분 앞에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빌4:6-7)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기도문의 반복적인 암송은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쏟아 놓는 것이 아니라 기도문에 쓰여 있는 단어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이교도들이 행하는 관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기도 방법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감정의 표현을 인정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찍어내듯이 주기도문 을 암송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진심어린 기도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3.  천주교 주기도문과 개신교 주기도문의 차이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13절).

 

카톨릭과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을 괄호로 묶고 “고대 사본에, 이 괄호 내 구절이 없음”이라고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개역성경이 말하는 그 고대 사본이 바로 카톨릭의 바티칸 사본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 신자들은 이 부분을 외우지 않습니다. 그들의 성경 원본에 이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추구하는 교리는 무천년주의입니다. 즉, 실제적인 주님의 왕국이 이 땅에 임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왕국이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왕국이 주님으로부터 임하기 이전에는 어떠한 왕국도 인간들의 힘으로 이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떠한 평화도 이룩될 수 없기에 주님이 다시오셔서 주님의 왕국을 세우셔야만 합니다.

성경은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주어진 책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는 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는 주님의 왕국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기 위해 마지막에 이 구절을 주신 것입니다.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4.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의 왕국’이 임한다.

 

주기도문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왕국’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천국’(Kingdom of heaven)은 성도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성도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성경에서 ’(Heavenly Kingdom)로 번역되었습니다. 기존의 우리말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4:17) 등에 나오는 천국은 실제로 이 땅에 임할 주님의 왕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대부분은 왕국에 대한 얘기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동방에서 온 현자들이 (마2:2)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가?”라고 물었으며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4:17). 또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위의 명패에도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라.’라는 글이 붙어있었습니다(마27:37).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의 왕으로 이스라엘에 오셨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을 그들에게 제시하셨으나 배척당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면서 신약의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국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였으며(막1:1,14) 그래서 제자들에게 (마6:10)“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천국’을 제시하신 것입니다(마4:17). 천국은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왕국으로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입니다.

 

(단2:44).이들 왕들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넘겨지지 않을 것이요, 도리어 그 왕국이 이 모든 왕국들을 쳐부수고 멸하여 영원히 설 것이니이다.

 

예수님은 침례인 요한의 사역과 각종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천국은 영적으로 들어가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실제적인 몸을 입고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거듭나야지 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기도문은 바로 ‘천국’이 유대인들에게 속히 임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유대인들이 간구해야 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 성경은 이런 기본적인 교리를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도드릴 대상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가르쳐줍니다.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 외에도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죄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악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에 대한 기도와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주문처럼 외우는 것을 금하기 위해 주님께서 유대인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기도 방법이

소위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그분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기도와 간구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흘러나오는 말이 중요한 것이지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구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모든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만 합니다.

 

구약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지만 신약 시대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반복적으로 암송 기도를 하는 것은 기도 방법을 가르쳐주신 주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는 교회의 예배에서는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는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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