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봇(Ephod)

제사장의 의복으로, 가슴과 등을 덮는 긴 조끼 모양의 상의이다(출 28:4).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하였다(출 28:6-30).

에봇은 금색, 청색, 자색, 홍색, 흰색 등 다섯 가지 색상의 실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출 28:6), 

견대를 달아 그 견대에 각각 여섯 명의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 두 개를 붙였다(출 28:9-11).

또 에봇 위에 매는 띠는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붙였다(출 28:6-8).

 

대제사장이 아닌 사람들도 에봇을 입은 경우가 있었는데, 다윗과 사무엘이었다.

다윗은 언약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 베 에봇을 입고 춤을 추었으며(삼하 6:13-15),

사무엘은 어렸을 때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다(삼상 2:18).

한편 아비아달은 다윗에게 도망올 때 에봇을 가지고 왔는데(삼상 23:6),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도망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였다(삼상 23:9).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이에 대해 사사기 기자는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었다고 적었다(삿 8:27). 

에봇이 올무가 된 또 다른 경우로는 미가가 있다(삿 17:5).

 

금방울(Gold bell)

금으로 만든 소리나는 방울을 말한다. 금방울은 제사장의 에봇 받침 겉옷 가장자리에 달았다

(출 28:33).

 

 

제사장(Priest)

 

제사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을 했다.

 

히브리어로는 ‘코헨’(kohen)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이외에 애굽의 제사장 (창 41:45; 47:26), 블레셋의 제사장(삼상 6:2),

다곤의 제사장(삼상 5:5), 바알의 제사장(왕하 10:19), 그모스의 제사장(렘 48:7), 아세라와 바알의 제사장(대하 34:5)에게도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제사장의 모습은 성경 시대 초기에 자신을 위해 제사드렸던 아담, 가인, 아벨,노아, 아브람 등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 외에도 가족을 위한 제사장으로 일했던 가장들(출 12:3), 국가를 위해 제사장으로 뽑혔던 아론 자손 제사장,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제사장이셨던 예수님(히 3:1)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믿는 모든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본다(벧전 2:9).

 

제사장의 의미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고 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가 되어 제사를 집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본을 보였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제사장 직분을 존속시킴을 통해 이어졌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출 34:19-20; 민 18:15; 신 15:19),

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주관했던 아론 자손 제사장,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출 28:29) 등으로 나뉜다.

 

제사장의 임무

: 제사장은 아론 지파에 속한 사람만 될 수 있었으며(출 28:1; 레위 1:5, 7-8) 육체적인 흠이 없어야 했다(레위 21:16-23). 제사장들은 다윗 때에 24반으로 나뉘어 일주일씩 봉사하고 안식일 저녁에 다음 번과 교대했으며(대상 24:1-19), 큰 절기 때에는 모든 제사장들이 함께 봉사했다. 이들 24개 가문 중 16개는 사독 가문, 8개의 가문은 이다말의 가문이었다(대상 24:1-19).

 

제사장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성소나 제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민 16:40). 그들은 매일의 희생 제사를 주관했고(민 28:3-8)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대하 15:3; 겔 7:26) 하나님의 뜻을 묻고(출 28:30) 문둥병자를 가려내는 일 (레 14:2)도 했다. 재판관의 역할도 하여(신 17:8-9; 대하 19:8-11) 간음한 여인을 검증했고(민 5:11-31), 나실인의 정결 제물(민 6:1-21)이나 서원제(레 27:8-25) 등을 드리는 것에도 관여했다.

또한 제사장들은 축제일이나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기도 했다(민 6:22-27).

 

제사장의 재산들

: 제사장들의 재산 목록 1호는 하나님이었다(민 18:20). 하나님이 이들의 분깃이자 기업이었던 것이다.

이 외에 제사장들은, 

첫째로, 첫 아들과 짐승의 첫 새끼, 첫 수확물 대신 바친 돈(출 22:29; 민 18:15-16),

둘째로, 제사 때의 희생 제물 즉 제사 때의 요제물, 거제물(민 18:8, 11, 19), 소제물의 남은 것(레위 2:3),

셋째로, 레위인이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일부(민 18:26-28) 등을 받았다.

또한 48개의 레위인의 성읍 중에서 13개가 제사장들에게 주어졌다(수 21:4, 13-19).

 

 

대제사장(chief priest, high priest)

 

성막과 제사의 일을 담당했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고 제사에 관한 제반 사항을 지휘했던 제사장직의 최고위자이다.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대부분 ‘학코헨 학가돌’(hakkohen haggadol; 위대한 제사장)과 ‘학코헨 함마쉬아흐’(hakkohen hammashiach;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가 쓰였고 어떤 곳 (왕하 25:18; 대하 19:11; 렘 52:24)에서는 ‘코헨 하로쉬’(kohen haro’sh; the chief priest)가 쓰였는데, 개역성경은 모두 대제사장으로 번역했다.

 

신약에서는 ‘아르키에류스’(archiereus; 단수)와 ‘아르키에레이스’(archiereis; 복수)가 쓰였는데, 단수로 쓰일 때는 현직 대제사장(신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 가야바로서, 그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인물이다)을 가리키거나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을 가리킨다(가야바- 마 26:57; 요 18:13; 안나스-눅 3:2; 요 18:24; 행 4:6; 아나니아- 행 23:2; 24:1). 복수로 ‘대제사장들’이라고 쓰일 경우는 공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 가문들, 저명한 대제사장의 문중들과 함께 다스리는 대제사장들과 과거의 대제사장들을 포함한다(행 4:6). 여기에 성전을 관리하던 책임자들과 경비 대장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종교적인 권위를 지닌 집단으로서 언급되며, 개인적으로는 언급되지 않고 공회의 다른 관원들 (눅 23:13; 24:20)과 서기관들(마 2:4; 20:18; 21:15)과 서기관들 및 장로들(마 16:21;27:41; 막 8:31; 11:27; 14:43, 53; 눅 9:22)과 장로들(마 21:23; 26:3)과 함께 등장한다.

 

대제사장은 아론으로부터 엘르아살로 계승되었으며(민 20:23-29; 27:18-23), 그 이후부터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장자에게만 계승된 종신직이었다(민 25:10-13).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그 성격이 변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헤롯 및 로마 정부에 의해 임의대로 임명되기도 했다.

 

대제사장의 임무와 규례

: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에 세움을 받은 자(히 5:1)로서 일차적으로 매일 소제를 드리는 일과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레 16:2,11, 14, 34; 히 9:7; 10:3).

 

특별히 일 년에 한 번(7월 10일)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Yom kiphur; 욤 키푸르)은 대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였다(레 16장; 히 9:7; 10:3).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고 단독으로 속죄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권속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는데 그러기에 앞서 대제사장은 번제단에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 담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준비된 향료를 분향하여 법궤 위 속죄소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레 16:11-13). 대제사장은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먼저 속죄소 동편(입구편)에 손가락으로 그 피를 뿌리고, 또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렸다(레 16:14). 첫 번째 피를 뿌린 것은 지성소를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일곱 번 뿌린 것은 대제사장 자신의 속죄를 위해 뿌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한 두 번째 제사에는 두 마리의 염소가 드려졌다(레 16:6-10).

제비를 뽑아 그 중 한 염소는 잡아서 세 번째로 지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수송아지처럼 속죄소 위와 아래에 뿌렸으며, 다른 한 염소는 대제사장이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후 광야로 내보냈는데(레 16:21-22), 이를 ‘아사셀 염소’라고 불렀다.

이때 비로소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를 벗고 나와서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번제를 올렸다(레 16:23-24). 대속죄일에는 특이하게도 위엄스런 본래의 대제사장 복장이 아니라 단순한 세마포 옷을 입고 이 예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죄에 대한 겸손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

: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1. 죄(罪)의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렸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레 16:11; 히 5:3).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로서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이었다(히 5:1-2).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히 4:15) 자기 자신을 위해 속죄할 필요가 없으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2. 대제사장의 반복적인 제사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으로 설명된다. 우선 대제사장의 제사 반복은 대제사장의 수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의 숫자는 아론 이후로 많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죽음으로 인하여 항상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히 7:23).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히 6:20; 7:21). 예수님은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한다(히 7:24). 또한 대제사장의 반복은 대속죄일의 시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은 매년 다른 것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만 했다(히 9:25). 그러나 예수님의 제사는 자기를 단번에 드린 단회적인 것이며(히 9:26; 히 10:10), 이 때문에 ‘영원한 제사’(히 10:12)라고 부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의 종말론적인 성격과 영원한 성격이 결합된다(히 1:2).

 

3. 대제사장의 반차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만(히 5:4)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다 (히 5:6, 10; 6:20).

히브리서 기자는 6-7장에 걸쳐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임을 집요하게 입증한 후, 어떻게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큰 대제사장인지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히 7:1-3).

둘째, 아론(또는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멜기세덱과의 관계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예물을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는데 (창 14:18-20; 히 7:4-10), 낮은 자가 예물을 드리고 높은 자가 축복을 하는 법이다.

셋째, 멜기세덱의 시간적인 우선성 때문이다. 멜기세덱은 레위(또는 아론)보다 훨씬 먼저 활동했다(히 7:5, 10).

넷째, 대제사장의 조건 때문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맹세로 되었다(히 7:11-28).

           아론의 반차에서 나오는 대제사장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히 7:16상)을 따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에서 나오신 그리스도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히 7:16하)을 따르신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자는 율법의 계명으로 된 대제사장이요, 후자는 맹세의 말씀으로 된 대제사장 이다(히 7:28).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4. 대제사장의 기능의 문제이다.

먼저 대제사장이 섬기는 공간은 땅에 있는 성소이지만 예수님이 섬기시는 공간은 하늘에서이다.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히 8:1-2). 이 장막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히 8:2).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섬기신다(히 9:11; 참고, 9:24).

 

5.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있어 제물의 피가 중요하다는 점은 공통적이나 종류가 다르다.

대제사장은 속죄를 위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사용하지만(히 9:12-13, 19; 10:4)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신다(히 9:12, 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는 온전한 속죄를 이루지 못하지만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예수님의 피는 진정한 속죄를 이룬다(히 9:14).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

 

: 히브리서는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유사점을 ‘이와 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히 5:5). 우선 신분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되는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영광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히 5:4-5).

히브리서 기자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와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는 두 개의 시편으로 입증한다.

또한 성품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히 5:2) 같이, 예수님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시다(히 4:15).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는 것’(히 5:2)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에 … 심한 통곡과 눈물’(히 5:7)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부제사장(Priest next in rank)

 

대제사장을 돕는 직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스바냐는 부제사장이었다 (왕하 25:18).

 

제사장의 위임식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 이혼당한 여인 등은 제사장의 아내가 될 수 없었는데, 이는 제사장이 거룩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레 21:7). 제사장들은 스스로 몸을 성결하게 해야 했으며(출 19:22), 제사장으로서의 역할 수행도 먼저 거룩한 위임식을 행한 후에 할 수 있었다(레 8장).

제사장의 위임식은 7일간 진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제사장들은 성막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레 8:33-35). 위임식은 먼저 회중을 모으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도록 명령하신 것을 공포했다(레 8:2-5).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물로 깨끗이 씻긴 후(레 8:6) 예복을 입힌 뒤 관을 씌우고 거룩한 관이라고 쓴 금패를 붙이고(레 8:7-9) 다시 관유를 머리에 부었다(레 8:12). 마지막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한 뒤 불사르고,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 번제를 드렸다(레 8:14-21).

 

제사장들과 교육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 예배에 대한 책임이 있었으나 때때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부름받기도 하였다. BC 688년에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성읍으로 순행하며 인민을 가르치도록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었다 (대하 17:9).

제사장들이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포로기 후에 명확히 나타난다.

제사장 가계(家系)의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던 자로 소개되고 있다(스 7:6, 10). 후에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여러 레위인들이 더불어 서 있었는데 (느 8:2-6) 이들 교육가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낭독하는 내용을 백성들이 깨닫도록 도왔던 사람들이었다(느 8:8).

 

대제사장과 결혼하면 안되는 사람들

 

거룩한 임무를 맡았던 대제사장은 특별히 구별된 삶이 요구되었다.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된 그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거나 애도해서는 안되었으며, 그의 부모가 죽었을지라도 그 주검에 가까이 하여 몸을 더렵혀서도 안되었고(제사장의 경우는 허락되었다), 성소를 떠나서도 안되었다. 또한 과부나 이혼한 여자나 더러운 여자나 창녀와 결혼해서도 안되었으며 오직 자기 백성 중의 처녀와 결혼할 수 있었다(레 21:10-15).

 

제사장의 옷에 금방울을 달았던 이유

 

제사장의 옷에 금방울을 단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첫째는 제사 의식을 수행할 때마다 방울 소리를 듣고 엄숙한 마음 자세와 신중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둘째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왕들이 백성들에게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방울 달린 옷을 입었는데 제사장들도 옷에 방울을 달아 그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본다.

 

셋째는 방울 소리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목적에서 방울을 달았다고 해석한다.

 

넷째는 왕이신 여호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보기도 하였다.

 

다섯째는 말씀의 선포, 말씀의 기념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위의 견해 중 첫째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제사장의 옷이 제사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므로 옷에 부속되어 있는 방울도 제사와 관련되어 달았을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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