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에는 1000억개 정도의 별이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지구입니다.

전세계의 인구는 60억 이상이 되는데 사람의 세포의 수는 60조개 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세포는 적혈구 세포인데 그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십분의 일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러면 우주는 맨처음 어떻게 탄생되었을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창 1:1은 3400년 전 쯤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이 세상이 창조된 것을 본 사람이 없고,

또 몰라서, 하나님을 알려주지 않아서...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주변에는 믿는 자보다 불신자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과 창조를 믿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교 교육 때문입니다.

생물시간에 배우는 진화론의 영향은 학교를 졸업하면 무신론자들을 트렉터로 추수하고

교회는 뒷 따라 가면서 이삭줍기를 하는 실정입니다.

만일 학교에서 창조와 진화를 동시에 가르치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진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지만 창조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과학은 증거를 중요시 하듯이 사람들의 믿음도 증거가 중요합니다.

증거없는 믿음은 맹신이요, 증거를 확보한 믿음은 당연한 믿음, 증거도 모른 채 믿는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 우기면 증거를 가진 믿음이 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진화가 증거가 있는지, 창조가 증거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진화론에서 지구는 46억년 전에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점점 진화했다고 합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쳐서 모든 생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합니다.

공룡은 중생대, 인간은 신생대에 생겼다고 하는데 계통 수(Evolution Tree)에서 보듯이

모든 생물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와서 점점 변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공통의 조상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고 확인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박쥐의 경우, 조상이 처음부터 박쥐가 아니라고 합니다.

척추동물의 진화는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쥐는 쥐 종류에서 변했다고 하는데 날개도 있고 새끼도 낳고 젖을 먹입니다.

쥐가 어느 날 박쥐로 변하는 것은 과학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쥐에서 날개가 나오려면 수백만, 수천만 년의 중간단계를 거쳐야 하고

중간 단계의 무수한 박쥐가 살았어야 하는데 중간단계의 화석은 없습니다.

이러한 상식적인 얘기는 학교에서 슬쩍 지나칩니다.

전세계의 박물관의 어떤 곳도 옛날의 박쥐와 오늘날의 박쥐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화석률(fossil ratio)의 80%이상이 화석의 중간 단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을 중간 결산 하자고 과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을 때

중간단계의 화석이 없다고 단정 짓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그사이에 인류는 진화론을 대부분 믿게 되었습니다.

진화에 대한 증거는 없는데 진화론보다 빨리 진화된 것은 없고

이론적 증거만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델을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날 지오그라피를 보면서 동물에서 찾으려 하는데

사람을 망치는 일입니다.

 

진화론은 연속적인 중간단계의 화석의 증거가 없습니다.

가끔 중간단계의 화석이 있는데 시조새입니다.

시조새는 도마뱀의 특징이 새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도마뱀에서 시조새로 변화되는 중간단계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멸종된 새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창조론에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종류별로 따로 따로 창조하셨습니다.

원숭이와 사람은 처음부터 따로 따로 창조되었습니다.

원숭이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는 아무리 교육시켜도 대학을 못 보내지만

사람은 교육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화론이 옳다면 사람은 원숭이를 닮아야 하고,

창조론이 옳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인데 많이 망가졌다고 봐야 합니다.

 

진화론이 옳다면 자기의 정체성, 자기 조상을 연구해야 합니다.

창조론이 옳다면 인간을 만드신 분을 연구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찾으려면 성경을 연구하고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입니다.

우리는 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창조를 믿을 수밖에 없는 근거가 무엇인가 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창조를 믿을만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알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대로 쓰면 됩니다.

우리가 진화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합니다.

진화론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렴풋이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를 믿어야 한다고 배웠지, 이해한다는 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창조는 믿지만 증거를 모르는 대단한 믿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창조의 증거를 알아야 합니다.

창조의 증거가 성경이라 하는데 성경이 증거가 아닙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증거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기록에 대한 증거가 따로 있는데 사람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사과를 처음부터 알지 못했으나 반복하여 학습하면 사과로 인식하게 되듯이

창조는 인간이 스스로 깨닫는 범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내용 중 가장 먼저 중요하게 알려주시는 것이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창조를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3:4)

- 너희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 (롬1:20)

 

건물은 사람들이 짓습니다.

사람은 사람들이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은 창조주의 작품입니다.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신적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때 진리인데 사실을 과장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명체는 창조의 결정적 증거물입니다. 생명체는 정교하고 확대할수록 세밀합니다.

반면에 비 생명체는 투박합니다.

잠자리는 진화론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고 창조론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맞습니다! 교회에서는 믿습니다! 가 됩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설계도(Blue Print)가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마다 설계도가 있고 유전자의 암호가 있습니다.

유전자(씨)가 있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닮습니다.

사람의 몸은 종류가 다른 단백질- 20종류의 아미노산이 생명체의 벽돌들로 되어있는데

아미노산 벽돌들을 순서대로 쌓은 기록이 설계도이며 DNA입니다.

DNA는 G/C결합과 A/T결합으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데 3개씩

한 묶음으로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가르킵니다.

아미노산의 단백질로 형성되어 우리의 머리카락과 손 발톱이 자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유전병의 원인을 몰랐는데 이젠 부모님이 물려주신 설계도의 몇번 째가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데 그것이 게놈 프로젝트입니다.

집안마다 설계도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들이 서로 다릅니다.

 

이젠 각자의 몸에 설계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계도가 있으면 설계자(Designer)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설계자가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설계하셨다면

우리는 설계자와 보고 듣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실 것인데 그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명체의 세포마다 DNA의 설계도가 있습니다.

 

인간이 발명한 모르스 부호는 .-의 2개의 기호로, Digital Code도 0,1의 2개의 숫자로

모든 메세지를 다 전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DNA는 G/C와 A/T의 결합으로 인간이 개발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 아주 뛰어나고

지혜로운 자가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 창조론이고 저절로 되었다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바늘 끝에 붙어있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대장균도 설계도가 있습니다.

DNA Code- 대장균의 유전 암호가 1000 page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중요한 알파벳이 틀리면 기형 대장균이 나옵니다.

사람의 경우는 세포마다 23쌍의 염색체, 30억쌍이 염기배열로

인간의 세포 하나 속에 100만 page 기록=백과사전 1000 권=10층 아파트 높이의

유전 정보(설계도)가 있습니다.

 

2001년 2월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 칩-4기가 D램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했습니다.

손톱만한 칩에 책 640권의 분량의 정보를 수록할 수 있는데 2004년 9월에는 60나노,

8기가 반도체를 개발했는데 무려 2만권의 책을 담는 용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과학과 지혜가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세포 하나에 1000권을 담는 용량은 하이테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도체 칩을 만든 과학자가 존경받는다면 세포를 만드신 설계자는 존경받고 찬양받아야 합니다.

 

깨닫는 것은 머리가 시원해지고 생각에 질서가 잡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은 물기와 기름기가 같이 나오지만 손바닥은 물기만 나옵니다.

만일 손바닥도 기름기가 같이 나온다면 우리가 잡는 물건들은 모두 미끌어질 것입니다.

로보트의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이 정말 어려운데

우리의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구부려지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뱃속의 태아도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139:13-14)

전능하신 하나님은 디자인의 황제이십니다. 아름다운 성품을 가지셨기에

우리들이 보든지 안 보든지 만물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때로는 동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유머스럽고 다소곳하시고 다정하신 성품을 알 수 있고

물고기들의 형형색색의 무늬와 색깔들을 통해 하나님의 섬세함을,

대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통해 무한 광대하시고 환상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고정된 틀이 아닌 다양한 성품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바라보며 감탄하면서 하나님을 알아주면 보람이 있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이지만 죄로 망가져 있습니다.

설계자가 망가진 사람을 가장 잘 고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설계자가 있으면 반드시 천국이 있습니다.

 

기적과 영혼 이란 주제가 궁금해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는데

역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끝났습니다.

오늘 다룬 내용들이 너무 중요하고 길어서 한꺼번에 올리면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부담스러울 것 같아 이틀에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과학적으로 볼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마14:19-21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이 나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약 2만명)을 먹이신 사건과

- 마14: 24-25에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사건이 나오는데

이 두 가지 사건들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적과 영혼을 과학적 원리로 이해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주(Universe)는 창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우주는 시간, 공간, 물질의 3가지 기본요소로 형성되어 있는데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공간은 x, y, z의 3가지 축으로/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로

각각 3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의 속성이 반영되듯이

하나님께서도 아버지(Father), 성자(Son), 성령(Spirit)의 3가지로 자신을 표현하셨습니다.

 

1. 과학의 시대와 성경

우주는 의도(목적)와 (지적)설계를 가지고 누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창조론이고

자연과정과 오랜 시간이 걸려 스스로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학교의 교과서는 진화되었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2. 과학적 합리성(scientific)

생각하는 방법에 질서가 잘 잡혀 있으면 진리를 잘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어느 것이 옳은가, 혹은 과학적인가?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할 때 과학적 합리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믿어요' 라는 것은 정리가 안 되었고 논리가 없는 것으로

기독교를 자칫 감정적 종교로 오해하게 하거나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그래서 교과서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성경을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과학자와 성직자와 토론할 때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과학자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왜 그럴까요?

과학자는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자의 말이 절대적으로 신뢰를 주는 만큼 과학자가 훨씬 영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오늘날 시대에서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전공자들이 성직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과학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성경의 창조가 더 과학적이라고 하면

사이비라고 합니다.

우리가 길이를 재려면 자가 똑 발라야 하듯이 과학도 기준이 반듯해야 합니다.

 

과학은 좁은 의미에서 물질세계에서의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을 의미합니다.

과학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기 힘든데 과학이 무엇인가 라고 말하는 것은

사과가 무엇인가 와 같은 의미입니다.

동양사람들이 사물을 관찰할 때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분석적인 인식이 발달되어 있어

과학을 동양사람들 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과학은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이(who), 현재의 물리적 우주를(what),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how)인데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은 과학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4. 과학적 연구방법(4단계)

1)관찰 - 사물과 현상/ 질서와 조화

 

2)생각(왜,why) - 인과율/ 분석, 종합

예를 들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보는 것이 관찰이고,

왜 떨어질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과율이란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그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밝혀내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이 과학인데

이것은 과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과 영역에도 적용됩니다.

 

3)표현(express)

과학자가 연구한 결과를 표현할 때 이론과 법칙이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떤 것이 법칙이고, 어떤 것이 이론일까요?

이것의 기준은 재 관찰이 가능하고 예외가 없는 실험적 증명입니다.

 

법칙은 '-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항상 확인해도 같은 결과를 얻는 것으로 단정해도 좋은 것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중력의 법칙 등이 있습니다.

 

이론은 '-일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만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상대성 이론, 빅뱅 이론 등이 있는데 빅뱅 이론은 우주가 맨 처음 펑 터져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재 관찰이 불가능하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법칙과 이론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이다) 하셨는데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일 것이다)고 잘못 해석하여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할 때 주의할 점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일 것이다'에 사로잡혀 성경을 보니까

자기 해석을 하게 되고 자기 해석에 집착하면 성경말씀을 부정하게 됩니다.

 

법칙과 이론을 구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과학에서 법칙과 이론은 올림픽에서의 금메달과 은메달과 같습니다.

은메달이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1개보다 못하듯이

이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기존 법칙에 어긋나면 그 이론은 과감하게 버리든지

새로 연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확실한 법칙들에 근거해서 이론들을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4)응용(application)

일반 사람들은 법칙과 이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과학적 연구를 할까요?

진리탐구와 행복을 위해서 합니다.

사람들은 편리함을 위해 과학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지만

평안함을 얻기 위해 무엇을 발전시켜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평안함과 편리함이 둘다 필요합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평안함을 많이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과학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았으며

이 세상의 미래도 희망보다 불안하고 멸망 쪽에 가깝게 가고 있습니다.

 

5. 과학주의와 과학은 구별해야 한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여기는 것이 과학주의입니다.

우주와 법칙과 질서를 잘 연구하는 것이 과학인데 잘 연구하면 성경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드러나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과학주의는 과학으로 해결해야만 하고 과학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맹신에 가깝습니다.

민주주의, 공산주의, --주의는 뜻은 좋지만 대부분 배격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과학은 철학, 예술, 역사, 체육, 심리학, 문학과 같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며 진리를 밝히는 도구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가 비과학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실은 너무나 큰 손실입니다.

과학을 정리하면 믿음의 세계가 보입니다.

 

6. 과학적 연구의 한계

1)관찰의 한계 - 관찰할 수 없는 대상은 직접 측정하지 못합니다.

 

물리적 존재들에는

시간, 공간, 물질이 있는데 이것들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자연과학)/

비물리적 존재들에는 마음, 정신, 영혼들이 있는데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심리학)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존재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합니다.

그런 근거로 우리는 마음을 볼 수 있고 과학적으로 영혼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면 보여 주어야 믿겠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학주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2)증명의 한계 - 단정할 수 있는 것과 단정할 수 없는 것의 한계가 있습니다.

일회적인 사건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실험적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일회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직접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기록 확인입니다.

이것은 과학의 사실적 증명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도 기록이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가 일제시대 왜곡된 역사때문에 축소되었다고 주장하고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면 그럴듯하지만 역사는 증명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영역입니다.

역사관이란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기적도 증명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 생각하는데

과학적이고 합리적,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개미와 바퀴벌레와 메뚜기를 살펴보면 개미는 선을 따라 1차원에서 평생 살아갑니다.

바퀴벌레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만 2차원 밖에 경험하지 못합니다.

메뚜기는 풀쩍 뛰어넘는 3차원의 공간을 경험하며 삽니다.

어느날 개미가 길을 따라 가는데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면

개미 입장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바퀴벌레가 메뚜기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우리가 뛰어넘지 못하는 시간이란 차원이 있습니다.

시간이 우리에게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가고 있을 때 만약 우리 가운데 어떤 존재가 나타났다,

안 나타났다하면 기적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조상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다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분노하며 예수님을 치려고 했습니다.

과거에도 이미 존재하셨고 한동안 안보이실 것이고 장차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은

모두 시간의 차원입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 경험한 것만 인정하는 것은 닫힌 세계관이고,

그 이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열린 세계관입니다.

성경을 믿으면 저절로 열린 세계관이 생기게 됩니다.

 

3)과학자의 한계 - 도덕, 선악, 역사, 기적의 영역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전지전능, 영생불멸, 무소부재, 순결, 선, 정직, 공평...은 신의 속성입니다.

과학은 과학일 뿐,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르며,

제한된 영역만 이해하는 수많은 결함과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는 구도자일 뿐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표적 편견은 진화론은 과학적 원리로 생각하고

창조론은 종교적 교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대립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이 이원론적 세계관인데

과학은 객관적, 사실적,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종교는 주관적, 관념적, 감정적으로 접근합니다.

  

과학은 엄격한 기준의 실험적 증명입니다.

진화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에서 지구의 역사를 45억 년이라 했는데 재 관찰할 수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고 이론이기 때문에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진화되었을 것이다 가 옳은 표현입니다.

'-일 것이다'에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창조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하려면

창조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창조도 이론이고 과거의 일이고 역사입니다.

역사는 증명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미숙한 표현 때문에 진화론자를 사탄의 자식으로,

창조론자들을 광신도라 부르며 서로 싸우는데 둘 다 이론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증명은 안 되었지만 증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격투 끝에 B가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피와 머리카락들이 남아있습니다.

A가 B를 죽일 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증거가 구체적일수록 A가 가능성이 높지만 증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배심원들은 주로 증거를 통해 믿는데 그 상황은 증거+믿음이 됩니다.

이와 같이 창조와 진화도 같은 상황입니다.

 

 

결국 증거를 통해 믿게 되는데 앞으로 남은 10강 동안 수많은 증거들이 제시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과학적인 증거들은 모두 진화론을 지지했는데 교회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진화론 쪽으로만 계속 교육받은 것은 사회적인 책임입니다.

교육에서 양쪽 다 가르쳐야 합니다.

증거들이 뚜렷하려면 사람의 몸에 뼈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많이 주는데 당연한 증거로 알고 있으면

힘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과학

 

예수님의 몇가지 기적을 살펴보면,

 

1)포도주 기적(요2:7-11) 물(H2O) → 포도주(C2H5OH)로 <화학반응 법칙에 어긋남>

 

2)오병이어의 기적(마14:19-21) 오천 명을 먹이심 <질량보존의 법칙에 어긋남>

 

3)물위를 걸으심(마14:23-24) <부력의 법칙에 어긋남>

 

예수님의 기적은 모두 법칙에 어긋납니다.

이론이 아닌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법칙에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에 법칙을 정하신 분입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은

법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법칙을 정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법칙을 정확하게 알면 법칙에 벗어난 것도 압니다.

예수님의 법칙에서 벗어난 행동들 때문에 예수님을 오히려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록된 그대로 보지만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적을 단지 miracle이 아닌 sign(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메시야가 절대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증거입니다. 

 

4)부활의 기적(요11:25-26)

과학자들이 발견한 생명의 법칙 중에 죽음의 법칙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강력한 증거를 주고 가셨는데 부활 사건입니다.

 

과학이 무엇이지 모르면 생각이 구별되지 않는데

과학의 법칙을 알면 법칙을 벗어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의 기적은 의미 있는 기적으로 이해되어집니다. 

 

5)거듭남(重生)의 비밀(요3:1-10)

거듭남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영혼(spirit)을 가지고 있는데 영혼이 무엇일까요?

시19:7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성케’는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데 율법의 온전한 속성 때문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안경의 초점이 잘 맞으면 선명하듯이 과학의 원리를 알게 되면 신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1)차원(dimention): 길이는 길이로 인식하고, 무게는 무게로,

시간은 시간으로 인식하듯이 차원도 차원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로 볼 때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인식하려면 나의 마음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2)질서(order): 화가 나거나 마음의 갈피를 못 잡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질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 질서가 흐트러진 사람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3)표준(standard): 길이를 재는 자도 국제 표준 눈금이 있듯이

내 마음도 표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준 질서를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표준 질서이기 때문에 완전하여 영혼이 소성케 한다고 합니다.

내안의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완전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질서가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은 해병대의 spirit을 가지고,

불교신자는 불교 spirit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spirit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제 거듭남(born again)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지위와 학문을 갖춘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을 알려면 첫 번째 태어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되는데

정자는 생명의 유전 정보를 에너지(꼬리)가 하나의 완전한 난자에 들어가 정착하여 자라서

태어납니다.

사람이 살면서 외부로부터 생명에 대한 정보(말씀)가 들어오면

그 다음 세상,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천국)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듯 두 번 태어나는 것(거듭남)은 외부로부터 생명의 말씀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나 스스로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내 삶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말씀과 말씀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말씀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삽니다. 

 

“태초에 말씀(logos, true information)이 계시니라...”(요1:1)

진리의 메시지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요8:47)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 함이니라”(요5:38)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면 살고 안 받아들이면 둘 다 죽습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요8:37)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말이 spirit이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영적인 사람은 가장 성경적입니다.

영은 성경적인 질서를 가지고 말하는지 아닌지를 분별합니다. 

 

예수님의 임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요17:8)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길이를 재는 자는 국제 표준 눈금을 받아들이면 어디서나 통합니다.

천국에서 말씀의 자를 가지고 대어보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산 사람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자가 통하면 통과됩니다.

교회 다니면서 철학이 기준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악인의 꾀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8:51)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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