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30.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성경을 살피면 구원받는 과정이 나타난다.

영혼 구원하는 과정이 일정한 과정이라고 단정 할 수 없지만 성경에 나타난 대로 정립한 신학적인 방편은 아홉 단계의 서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 소명(召命. καλειν)의 단계이다.

 

부름받음

소명이란 말은 불러낸다는 말이다. "소명이란 말의 원문은 아메르[רםֵאָ]부르다, 카라[ארָקָ] 블러내다, 청하다, 칼레인(καλειν:이란 말은 불러내다,

초청하다, 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자들을 불러내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인 것이다.

[마 22:1-2]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눅 5: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행 13: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방편은 모든 창조물을 통하여 부르시고 선지자들과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부르신다.

소명에는 외적인 소명과 내적인 소명이 있다. 외적인 소명은 그 대상이 광범위하다. 선택 자나 선택받지 못한 자나 모두 부르심을 말한다. 그들을 부르신 것은 복음과 선지지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고 결국 선택한 백성을 위함이다. 내적인 부르심은 선택한 자들을 말씀으로 부르시고 그 부름에 순종하도록 선택받은 자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심이다 즉 선택받은 자들을 복음과 성령으로 구원의 은혜에 초청하신 것이다. ​

그러므로 성도가 믿게 되는 것은 자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화하여 믿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고전 15: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2. 중생 (中生. παιγγενεσια)의 단계이다.

 

가듭남

중생이란 말은 내가 이 세상에 생존해 있는 어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인데 영적인 새로운 탄생 또는 도덕적인 새로운 변화를 말한다.​

 

1) 영적인 탄생은 거듭남이라 한다.

중생이란 말의 원문은 팔린게네시아(παιγγενεσια) 다시 나다, 아나게나오(αναγεναω) 거듭 나다, 위에서 새롭게 테어나다, 카이노스크티조(καινοσκτιζω)창조하다, 새로 지음 받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요 3:3-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 난다는 말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니다. 니고데모의 말대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산채로 생명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영이 된지라.

 

처음 창조한 땅은 에레츠(אָפַר)이고 인간을 창조한 흙은 아프르(ארץ)이다. 흙에는 여러 종류의 흙이 있는데 아파르는 육신을 형성하는 원소를 말한다. 흙은 고정된 창조물로서 활동하지 못한다. 그 코에 생기 즉 생명력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에 활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기는 생명력이고 생명력은 사람인 것이다.

 

모든 창조물은 말씀으로 명령하여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었다고 했다. 지으시고란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형상을 만드셨다는 말이다.

 

창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란 말은 복수로서 삼위 일체 하나님이 함께 창조했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다. 생기란 느쉬마트 하아힘(חיים נשמת)움직이게 하는 기운을 말한다.

 

모든 창조물은 말씀의 명령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인간은 삼위 하나님이 함께 흑을 빚어서 모양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말은 생기를 나누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기는 하나님의 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도록 창조 했다는 말이다.

 

생령이란 활동하게 하는 영이라는 말이다. 활동하게 한다는 말은 바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행동은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란 뜻이다.

 

인간의 육신은 이미 죽은 영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한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타락한 옛 사람은 죽은 영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삶 사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생명력에 의하여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 하여도 그리스도의 생명력 즉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2) 거듭남은 성령 세례를 말하기도 한다.

[요일 2:29]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중생은 거듭남이다 성령 세례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생은 하나님의 주관 하에 우리 믿는 자 안에 영적인 새 생명을 심으시므로 영적 성향의 변화를 말한다. 영적으로 새롭게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인격적 성향이 변화되고 거룩을 향한 행동의 변화가 된다.

중생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영과 성향과 도덕을 재생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새 생명을 심어 영적 인격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3) 거듭 난다는 말은 양자의 영을 받는 다는 말이다.

[롬 8:14-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는 다는 말이다. 우리의 생명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의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처럼 부모가 자녀를 낳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들로 삼으심을 말한다.

4) 거듭 난다는 말은 주님의 영으로 접붙임을 말한다.

(롬 11:17-18)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 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를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 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다.

(롬 11:24)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접붙임이란 원래의 원목을 자르고 뿌리 부분을 남기고 다른 생명을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돌감나무는 아무리 가꾸어도 돌감이 열린다.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돌감이 열린다. 잘 가꾸면 돌감이 크게 열릴 수 있다 그러나 돌감나무는 돌감만이 열린다. 그러기에 참 감이 열기 위해서는 접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3. 신앙(信仰, πιστοs, πιστεω)의 단계이다.

 

신앙

신앙이란 원문은 아무나(הנַוּמאָ) 성실하다, 믿고 바라보다, 에문(ןםִאֶחֵ)믿는다, 아멘(ןםַאָ) 동의하다, 인정하다, 의지하다, 빠닿(חטַבָ)신임하다, 의지하다, 신뢰하다. 피스토스(πιστοs 또는 피스테오(πιστεω)신임에 기초한 확신, 미쁨, 충성이란 의미를 가진다.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신앙이란 구원을 얻는 유일한 은혜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을 의탁하여 의뢰하는 인격적 신뢰이다. 구원을 얻는 일에 자신이 전혀 불가능함을 알고 구원의 갈급한 상태에서 그리스도께 나와 그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영, 나의 인격, 나의 장래를 의탁하는 것이다.

신앙에는 일시적인 신앙이 있고 감정적인 신앙이 있고 인격적인 구원의 신앙이 있다. 일시적인 신앙은 지적으로 인정하기는 하되 그리스도를 의뢰하는 일에 순종하지 않는다. 감정적인 신앙은 마음으로 결심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환경에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그리스께 의지하지 못하는 것을 말 한다.

이 신앙을 씨뿌리는 비유로 가르치셨다. [마 13:18-23]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4. 회심 (悔心 μετανοια επστρφη)의 단계이다.

 

회심

회심이란 말은 원문은 나캄(מהַנָ), 후회하다, 애통하다 , 슈브(בוּשׁ)방향을 바꾸다 돌아서다, 또는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 회개하다, 후회하다, 에프스트로페(επστροψη)돌아오다 라는 의미이다.

[행 14:15]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살전 1:9]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고후 7: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사 55: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회심이란 하나님의 재 창조적 역사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떨어져 하나님을 등지고 산 자가 자신의 가는 길이 멸망의 길임을 깨닫고 돌아와 자복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회심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며 죄에 대하여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회심에 있어서 국가적인 회심이 있고 개인적인 회심이 있는데 국가적인 회심은 전 국가가 돌아오는 자복하는 광범위한 회심이고 개인적 회심은 개개인이 하나님께 돌아와 자복하는 회심이다.

회심의 성질은 도덕적인 회심이 있고 일시적 회심이 있다 도덕적인 회심은 믿지 않은 사람들도 가지는 뉘우침 또는 자각(自覺)으로 구원과 상관이 없는 회심이다 일시적 회심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때 그때 깨닫기는 하되 하나님께 돌아오지는 않는 회심이다.

신앙적인 회심은 단 회적 회심과 반복적 회심이 있는데 단회적인 회심은 단 한번 구원에 입문하는 회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원죄를 용서 받는 것이다. 반복적인 회심은 성화의 회심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지은 죄를 그때 그때 깨닫고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이다. 단회적인 회심은 믿음을 가지는 구원의 회심이고 반복적 회심은 하나님의 자녀로 성화하는 성화의 회심이다 .

 

5. 칭의(稱義 δικαιοω)의 단계이다.

 

칭의

칭의의 원문은 티미움 카다(מיםִת אדַקָ). 의롭고 칭하다. 디카이오(δικαιοω)인데 의롭다고 선언하다. 법적인 면에서 하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롬 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칭의는 죄인의 신분이 의인의 신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칭의는 죄인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요구를 만족시키므로 그를 믿는 자가 얻어지는 법적인 신분 보장을 선언하신 은혜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을 선언하는 은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음으로 얻는 신분이다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의인이라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단행된 하나님의 은혜의 선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칭의는 다른 말로 말하면 인 맞은 자이다.(계 7:2-4)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6. 수양 (收養, ουιοθεσιαs, εξουσιαν.)의 단계이다.

 

양자

수양의 원문은 아담 카운(מדָאָ ןוּכ)아들로 삼다,ּ 아담 하사브(מדָאָ בשַחָ)아들로 인정하다. 휘오테시아스(υιοθεσιαs,) 또는 에큐시안(εξουσιαν)인데 아들로 세우다, 법적인 권위를 주다, 란 의미가 있다.

[갈 4:6]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눅 15: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롬 8:15-17]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갈 3: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성화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족보에서 제명된 자들을 양자의 영을 주시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수용하시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들을 양자의 영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나게 한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입적시키는 주권적 은혜이다 아들로 입적시키는 것은 그의 후사를 삼으시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와 하나 된 은혜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확신하고 아들로서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려 한다.

 

7. 성화 (聖化 αγιαζω) 단계이다.​

 

성화

성화(聖化) 원문은 카다쉬(שׁדַקָ) 거룩하다. 하기아조(αγιαζω)거룩하다, 분리하다, 구별하다, 란 의미가 있다. 성화(αγιαζω)란 말은 신약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인데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해야 할 자들과 구별하여 성령과 말씀으로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화 되어야 하고 도덕적으로 성화 되어야 한다. 영적인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며 도덕적인 성화는 인간과 합력 한다 타락한 영성을 제거하고 거듭난 영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말씀으로 성화 시키시고 성령으로 성화 시키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환경 특히 고난을 통하여 성화 시키신다.

 

여물지 않은 곡식은 불에 태운다고 했다.

마 3:11.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신앙이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 있다고 했다.

고전 3:1-2.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 가르침에 빠지는 자들을 어린 아이 신앙이라고 했다.

엡 4: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 갓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5:12-14.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동안 지식을 사용함으로서 안단을 받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성화되지 못한 신앙을 쭉정이 신앙이라 말하고 어린 아이 신앙이라 했다. 쭉정이 신앙은 불에 던진다고 했고 어린 아이 신앙은 더 자라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구비되지 못했기에 교회를 통하여 타락한 본성이 거룩하게 변화 되어야 한다.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을 성화라고 한다.

 

 

8. 견인 (堅忍)의 단계이다.

 

견인

견인(堅忍)이란 말은 초함 하타하(םחָוֹה םתַחָ) 인치다. 사프라기스(σφραγις) 엘루오스(έλυος )보장하다, 또는 인치다, 하나님께 담보로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장을 표시한다는 의미이다

[요 13: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계 14:3]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견인이라는 말을 택하여 성화 된 자를 구원의 여부를 피해자에게 의존하지 아니하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말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부름 받고 성화 된 자들을 비록 악에 빠질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은혜로 영원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견인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인 치신 것이다 인이란 노예시대에 한 노에가 주인에게 속할 때에 팔에나 이마에 불도장을 받는다. 이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로서 주인의 완전한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담보되어 하나님께 영원히 귀속하는 것이므로 칼빈의 오대 교리중 하나인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다

또한 견인이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보로 하여 십자가의 보혈로 예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환난의 바람에서 환난의 바람을 일으키는 천사들이 해하지 못하도록 십사만 사천 인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쳤다.

 

계 7:2-4.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인마에 인치기 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 각 지파 중에서 인 침을 받은 자들이 심사만 사천이니.

 

9. 영화(榮化)의 단계이다. 독사조(δοξαζω)

 

영화

구원의 완성 단계이다. 영화라는 말은 하데이트(תדֶהָאַ), 카보우드(דוֹבכּ ) 영광스럽다 영화스럽다, 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원하고 화려한 삶을 말한다. 구속의 최후의 국면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사업에 의하여 얻어지는 구속의 완성이다.

[고후 5:6-8]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엡 1:21]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계 21: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믿는 자들의 영혼은 죽을 때에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로 영광스러운 변화를 받는다 그리고 육체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생명의 부활에 이를 때에 영광스러운 변화를 받는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로운 삶을 시작되는 것이다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전 15: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5:51] 보라 !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계21:1-4]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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