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시 반대질문 대답하기


전도시에 반대질문을 한 경우는 문제를 성의 있게 대하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게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전도대상자가 솔직한 질문만 가지고 있다면 복음이 전해지는 동안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전도자가 옳은 자세와 태도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1. 이의 사실들과 질문들에 대한 전도인의 자세

 

1) 전도 중에 나오는 이의 사실과 질문들은 나오는 대로 처리 한다.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은 추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 전도자는 대답한 다음 잇는 말을 통하여 계속 복음으로 연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질문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잇는 말을 사용한데 익숙해야 한다. “이 말씀이 곧 복음이고, 이 복음은 다음의 네 가지 단계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죄로 물든 본성이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2) 성령께서 이의 사실과 질문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3) 이의 사실이나 질문이 제기되기 전에 미리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만일 듣는 사람이 정직한 질문만 갖고 있다면 복음이 전해지는 동안에 그 질문들이 해답될 것이다. 문제가 잘못된 질문이면 정답을 얻기가 어렵다.

둘째로, 만일 전도자가 옮은 자세와 태도만 갖고 있으면 대부분의 이의 사실과 질문들은 제기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2. 질문들을 다루는 방법

 

1) 서로 협의하라

논쟁을 피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 시에 “벌써 생각해 보신 일이 있군요. 참 좋은 질문이십니다”와 같은 말은 논쟁을 피하는 내용이다.

 

2) 감정적인 대결을 피하라

대화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의 신앙심에 관한 것일 때 감정적인 것에 쏠리기 쉽다. 한 개인의 신앙생활은 개인적인 문제에 속한다. 개인적인 믿음에 대해 논하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감정적인 대결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이 부정적으로 되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 알면서 왜 억지를 쓰십니까? 예수님에 대해 그것도 모르세요?”와 같은 내용은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심적으로 감정 대결이 생긴 상태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3)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 그들의 생활양식이 어떻든 간에 정중하게 대하여야 한다. 불신자들은 교인들이 혼자 선한 체하고 자기 의만 내세운다고 생각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대접을 받는 대로 전도자를 대할 것이다.

 

4) 친절해야 한다

전도인은 친절해야 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든지 아니면 그 마음속에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행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은 이의 사실과 질문에서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친절하게 대하면 부정적인 반응도 잘 나탄지 않을 것이다.

 

5) 우리의 동기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동기가 어떤가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방법이 달라진다. 우리가 거기에 간 동기는 무엇인가? 오직 사랑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충분히 표명하게 만드는 전당한 동기가 될 수 있다.

 

3. 이의 사실과 질문들을 처리하는 단계들

 

1) 1단계는 잇는 말을 만든다

잇는 말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아름다운 가족관계이십니다.”

 

2) 2단계는 이의 사실을 질문으로 바꾸어 본다

상대방이 질문한 내용을 질문함으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정확한 해답을 주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구원을 어떻게 받는다고 설명합니까? 돈이 있어야 교회에 간다고 하셨는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3) 3단계는 그 질문에 답변한다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성경말씀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4) 4단계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한다

복음으로 돌아 올 때에 잇는 말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으로 진행되게 해야 한다.

 

4. 성도들이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질문 처리하는 방법

 

1) 엉뚱한 질문이 나올 때에 당황해서는 안된다

엉뚱한 질문은 상대방이 관심이 적어졌다는 신호이다. 전도자는 상대방에게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본 복음의 내용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2) 감전대결을 피하라

전도자는 부정적으로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논쟁조로 나올지라도 전도자는 언제나 부드럽게 그의 심령에 파고들어야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고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게 한다. 다투게 되면 이겨도 전도자는 이긴 것이 아니다.

 

3)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주어라

전도대상자가 반대 질문을 하더라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혹은 “이미 생각해 보았군요”라고 대답하면 상대편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주게 된다.

 

4) 진실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라

상대편이 화를 내거나 적의를 나타낼 때 진실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아주 효과가 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일에 조애가 깊으시고, 지성적인 분이십니다. 이런 선생님과 영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적절한 한 마디 말이 논쟁을 미리 막아 준다.

 

5) 성경에 근거한 말로 대답하라

반대 질문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있어 상대방에 큰 감화를 줄 수 있다. 상대방의 질문을 성경을 답하면 모두 수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6) 뒤로 미루라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평소에 생각하던 질문일 경우 뒤로 미루고 상대방의 의도대로 진행해서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뒤로 미루어야 한다. “그 문제도 중요하지만 다음 기회에 말씀 드리고 제가 하던 말을 계속하겠습니다.”

 

7) 복음증거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위의 “3번 질문을 처리하는 단계들”을 활용하라

 

8) 때로는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실례를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왜 기독교에 교파가 많은가”에 대해 예화를 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부모에게 여러 자녀기 있을 수 있고, 자녀들의 성격이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마다 엄격히 말하면 교리적인 차잉가 조금씩은 있으나, 구언문제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9) 질문에 답을 모를 경우에는 정직하게 대답하라

“그건 좋은 질문이시군요. 하지만 그 문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도 문제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선생님이 이것을 알고 싶으시면 제가 알아다 드리지요.” 상대편에게 정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 우리가 논의주인 본문으로 들어가실까요?”

 

10) 설득은 무엇(what)보다 왜(why)가 효과적이다

새로 나온 전자 제품의 기계 속 내용을 설명하는 것보다 제품의 용도와 효과를 설명하는 것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대부분의 불신자에게 기독교의 원리(What)를 설명하는 것 보다 꼭 필요한 이유(Why)를 설명할 때에 결신을 많이 맺게 된다.

물론 불신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하나님과 기독 신앙이란 무엇(What)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신의 순간에는 하나님과 기독 신앙이 그의 삶에 왜(Why) 필요(Need)한가를 납득시켜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

불신자 스스로 기독교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온 경우가 아니라면 불신자에게 ‘기독교란 무엇인가?’라고 신학적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상대방을 지루하게 만들고 거부감을 줄 우려가 많다.

전도 설득이란, 전도대상자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왜(Why)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섣불리 교사처럼 강의식 전도를 함으로서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기 보다 친절한 안내자(Guide)가 되어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

 

Why 전도화법

What 전도화법

기독교란 왜 필요한가?

신앙이란 왜 필요한가?

믿음이란 왜 필요한가?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는가?

기독교란 무엇인가?

신앙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란 무엇인가?


 

11) 눈물과 유머가 쉽게 마음의 문을 연다.

영국인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유머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유머는 음식에서 양념과 같아서 대화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체면을 생각하며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어서는 감동을 줄 수가 없다. 불신자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유쾌한 웃음과 솔직한 사연들을 털어 놓을 때에 답답한 마음이 시원함을 느껴서 마음의 문이 열리고 호의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유쾌한 웃음보따리와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운 간증들을 말함으로 불신자에게 감동을 주어 변화를 갖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5. 흔히 있는 질문들

 

불신자에게 전도할 때 처음부터 순순히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14:22)

예수님께서 전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사단의 방해와 환난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였다. 전도자는 전도 할 동안 사단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사단은 전도자를 직접 방해하기도 하지만 전도자의 환경과 처지를 전도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주변 사람들을 부추겨서 방해한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전도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과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여 사단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희망적인 말과 생각을 함으로서 전도자의 무의식 속에 사단이 주는 망령된 생각이 들어올 수 없게 한다.

 

전도는 거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녀온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바꾸려고 하는 새로운 제의에는 우선 거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교인과 교회가 한집 건너 한집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부분의 불신자는 누구를 통해서든 신앙생활을 권유받았을 텐데 지금까지 불신자로 남아있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불신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전도대상자가 거절을 했다고 주저하거나 단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서 “이제부터 전도를 시작하라는 뜻이 구나”라고 생각하고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평신도들은 “냉정한 거절을 받으면 어떻게 할까? 하며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도를 두려워하고 전도하러 밖으로 나가기를 싫어한다. “어느 누가 그렇잖아도 교회를 나가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참 잘 오셨습니다” 라는 대답하겠는가? 그런 답을 기대하면서 전도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그토록 전도자를 기다렸던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불신자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전도에서 ‘거절’ 이란 불신자를 구원으로 이끄는데 어차피 건너가야 하는 강으로 생각하고 거절 받는 것은 전도의 시작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

 

서양에서 자주 제기 되는 빈도 수 순서대로의 질문 주제는 일곱 가지가 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문제이기에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다른 종교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혼전 성관계는 잘못된 것인가? 뉴에이지 운동은 기독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동성연애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무엇인가?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 모순되는가? 삼위일설은 비성경적이고 믿을 수 없고 부적절한 것인가? 우리는 소망을 묻는 이들에게 유순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다음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에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을 요약하였다. 전도대상자의 나이, 지식, 환경과 경험 등에 따라 대답 내용을 적절하게 조절하여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이의 사실과 질문을 처리하는 단계들을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1) 나는 예수 안 믿어요.

이 말을 들을 경우 불신자 마음속에 있는 사단의 비명소리로 듣고 “전도를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바꾸어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을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기도하자.

 

2) 불신자가 “너나 잘 믿지 왜 귀찮게 구느냐”고 할 때

불신자가 복음을 거절한 것이지 전도자의 인격을 거절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싸움하지 말고 “예수 믿어보세요! 너무 좋아요. 다음에 또 올게요.” 라고 예의를 갖추어 말하고 온다. 전도자는 ‘복음은 싫어도 그 사람은 마음에 든다’는 평을 받아야 한다.

 

3) 나는 죄가 많아서 교회 못 가겠다는 경우

나도 죄인임을 공감하고 용서를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마 9:13; 막 2:17))라고 말한다.

 

4) 교회는 위선자가 많아서 가기 싫다는 경우

위선자는 어디에나 있지만 위선자들이 와서 착해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도 위선자는 책망하셨다. 구원받았다고 금방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병원에 안 가면 어리석은 것이다. 가서 치유를 받아야 하듯이 교회 나와야 한다고 권면한다. 처음에 그 사람 말을 인정해준 다음 내 말을 한다(Yes, but).

 

5)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받아 천국 가서 그 사람 만날까봐 못가겠다”는 경우

어떤 일로 속상했는지 물어보고 대신 사과한다. 그 사람을 인정해 주면서 “그래도 믿어야 된다. 그 사람 때문에 지옥에 갈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밥에 돌이 있다고 밥 전체를 버릴 수 없듯이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니 예수를 믿어야 된다고 말한다.

 

6) 돈을 번 후에 믿겠다는 경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사람은 한치 앞을 모른다. 만일 오늘이라도 우리 삶의 주인이 부르신다면 모든 것을 놓고 가야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금 믿어야 한다.

 

7)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더 착하게 살고 있다는 경우

죄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 모두 생각으로 죄를 짓는다. 하나님 외에는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마19:17)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고’고 했다(잠 27:1). 11).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의인도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라(요 1서 1:8, 10; 롬 3:23; 롬 3:10,12; 렘 17:9; 전 7:20).

 

8) 교회에 안 나가도 착한 일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교인들이 모범적이지 못한 행동에 대한 잠재적인 반감에서 나오고 있다. 질문 방법을 통해 차근차근 대답하는 것이 좋다. 교회에 왜 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착한 일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착한 일을 양심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착한 행실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네 가지 질문을 전부 대답하는 것이 좋고, 상황에 따라 복음대지에 연결될 부분의 대답으로 해도 좋다.

 

9) 교인들이 더 위선적인 것 같아요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이기에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 수 있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만이 완전한 분이기 때문이다. 배추에 배추벌레가 있지만 김치를 먹는 것과 같다(히 12:2; 약 3:2; 롬 3:23; 롬 3:10-12; 렘 17:9).

 

10) 성경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보여 주는 2가지 계시가 있는데, 자연 만물을 통해서와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실 예수님과 이 땅에 사셨던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다(딤후 3:16; 벧후 1:21; 요 1:1-2; 마 5:18; 마 24:35).

 

11)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든지 아니면 이해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을 보지 않고도 믿듯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이 있다. 공기, 바람, 가스, 족보 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이다(시 14:1; 시 10:4; 잠 1:7; 삼상 2:6-7; 고전 1:18).

 

12) 헌금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교회에 안 나갑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오셨고 또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천국가기가 부자보다 쉽다고 하셨다.(고후 8:9; 마 19:23-24).

 

13)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좀 쉬면서 살고 싶습니다

성경은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하라고 하셨다. 주5일제 근무이지만 바쁘시군요. 참 안식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어거스틴은 말하고 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14) 종교는 다 같은 것 아닙니까?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을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참 구세주이시고 구원의 길이다(행 4:12; 요 11:6; 요 11:25-26; 벧전 3:18).

어떤 종교를 믿던 상관하지 말라는 경우에는 “독약을 모르고 먹어도 죽는 것처럼 어떤 종교가 살아있는 종교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라.

 

15) 죽으면 그만이지 지옥이 뭡니까?

고등종교는 내세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직접 언급하셨다. 미국에 가 본 이야기를 통해 눈에 안보여도 있는 것을 이야기 하라(계 21:4; 계 21:18-21).

 

16) 부모님의 반대가 두려워 못 믿는다

현 세대가 부모님과 어려운 세대인데 부모님과 좋은 관계이다. (질문한다) 구원은 어떻게 받는 다고 생각합니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요. 먼저 구원받고 부모님을 진전으로 섬기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행 16:31).

 

17) 나중에 믿겠다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르기에 당신이 구원받을 문제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라(잠 27:1; 눅12:29; 마 16:26; 고후 6:2; 사 55:6; 전 12:1).

 

18) 조상의 제사 때문에 못 믿겠다

제사는 유교의 풍습이다. 제사는 부모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달랜다는 뜻이 있다. 제사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니 손해만 본다(고전 10:20). 기독교는 참 효를 강조한다. 성경에 족보가 쓰여진 것만 봐도 조상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제사지내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섬기는 것을 알려 주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기에 추도의 정으로 추도예배를 드린다. 부모님에 대한 정성은 다를 바가 없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가 깡패와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도 귀신과의 교재를 원하지 않는다(고전 10:20; 출 20:12).

 

19) 예수 믿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지옥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죽음이 오기 전에 지금 회개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벧후 3:9;딤전 2:4; 고후 6:2; 신 4:30; 눅 23:42-43; 사 1:8).

 

20) 나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핑계일 수 있다. 거절을 위한 거절 즉, 가짜거절인지 살펴봐야 한다. 거절을 위한 참된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진짜 거절이라도 편견과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그 원인을 찾아내서 바로 잡아줘야 한다.

 

(1) 가짜거절 -① 무조건 거절(무조건 ‘안 믿어요’ 하는 경우)

② 회피용 거절 - ‘생각해 보고요’

③ 농담용 거절 - ‘하나님이 보여야 믿지요’

④ 거짓말 거절 - ‘불교 믿어요’

(2) 진짜거절 - ① 신앙의 교리에 대한 의문 - 죄와 구원에 대하여 이해가 안 간다.

② 편견에 의한 거절 - 위선적인 교인들 때문에 싫다. 성공한 후

나가겠다.

(3) 불교신자 경우 - 그 사람 종교를 인정한 후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말한다.

 

21) 맞벌이를 해서 바빠서 못 간다는 경우

육신이 피곤할수록 교회 나와서 영의 안식을 누려야 마음에 평안이 오고 쉼을 얻을 수 있다.

 

22) 몸이 약해서, 남편 때문에, 게을러서, 믿어지지 않아서, 생활이 어려워서, 자녀가 어리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참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이 땅에서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 했습니다.(약 4:14) 상대방이 거절하는 이유를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로 역공격을 한다.

 

23) 왜, 꼭 기독교만 믿어야 하느냐, 너무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다.

자매님을 낳아주신 분이 한 분이듯이 우리 하나님도 오직 한 분이다(행 4:12). 많은 성인들 가운데 예수님만 부활 하셨다. 기독교는 살아있는 종교이다.

 

24) 혼자서 성경을 보고 있다.

혼자서 성경을 읽다보면 해석을 잘 못하여 성경을 오해할 수 있다. 신앙생활은 함께 할 때 불이 붙는다.

 

25) 성경을 믿을 수 없다

성경은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믿게 된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도 몇 번 읽으면 싫증나지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느껴오는 감정이 다르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믿게 될 것이다. 무신론자였던 ‘류 월리스’도 무신론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벤허’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26) 교회와 목회자가 너무 많다.

술집 많은 것보다 낫고, 경찰서 많은 것보다 낫다. 백범 김구선생도 경찰서 1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지존파나 고재봉도 사람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27) 기독교는 왜 종파가 많으냐

한 몸에 잇는 손가락도 길이가 다르듯이 성경을 보는 관점에 따라 교파가 달라지지만 교파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무가 자라면 가지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기독교 종파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야기를 해준다.

 

28) 술, 담배를 끊은 후 나가겠다.

물론 생각은 좋다. 그러나 스스로 끊고 나온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저절로 끊게 된다.

 

29) 시댁이 불교라서

우리나라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시부모님이 지옥에 간다고 따라 갈 수는 없다.

 

30) 시부모님 돌아가신 다음 믿겠다.

참된 효도는 시부모님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시부모님 지옥 보내고 혼자 천국가면 안된다. 그것은 참으로 불효하는 것이다.

 

31) 예수 믿어봤지만,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만뒀다

아비의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이다(히 12:6-7). 잠깐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는 것이다. 아버지 마음에 들기만 하면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신다. 징계는 3,4대 이지만 축복은 자손만대까지 주신다고 했다(출 20:5-6).

 

32) 하나님이 사랑이면서 왜 지옥을 만들었는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다. 지옥은 거짓 선지자들과 사단을 위해 만들었다(마 25:41)

 

34)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느냐? 이 땅에서 잘 살면 되지 내세는 못 믿겠다.

미국에 가지 않고 뉴욕이 있는 것을 알듯이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35)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다.

그래도 믿어야 된다. 언제 종말이 올지 모른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히 9:27)

 

36) 예수의 탄생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

기독교에서 기적은 보편화된 사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볼 때는 기적이라도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죄인이 죄인을 용서 할 수 없고,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죄인들을 용서하고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죄 값을 치루셨다. 우리는 단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천국을 선물로 받게 된다.

 

37) 교회는 안 나가지만 하나님은 믿는다.

학생이 학교를 안 나가면서 학생이라 할 수 없다. 학생은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교육, 교제, 봉사, 친교 등을 해야 믿음이 병들지 않고 자랄 수 있다.

 

38) “우리 토속 종교를 믿어야지. 왜 서양 종교를 믿는가?”

기독교는 우주적인 복음이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의 자녀로 그 계보가 아담에게까지 이른다. 다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메시아를 그곳에 보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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