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면 예배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조각품이나 물건 또는 자연 앞에서 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정해진 곳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예배가 가능합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돌이나 나무에 조각을 새겨 생명이 없는데 생명이 있는 것처럼 가상하고 거기에 자기 삶을 드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실제적인 것이 됩니다.

교회의 많은 역할 가운데 남을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것들을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기쁨과 활력을 얻어야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예배생활의 실패는 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추운 겨울 주일 아침에 자녀들을 데리고 온 식구가 서둘러서 교회로 향합니다.

교통이 불편하거나 길이 막힐 때에는 더욱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주일 아침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날 예배가 늦은데다가 설교시간에는 졸기만 하고 아무런 은혜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짜증이 나고 교회생활이 시큰둥해집니다.

반면에 힘겹게 시간에 맞추어서 교회에 갔는데 그날 찬송이 너무 은혜로웠고 설교는 진한 감동과 강력한 도전이 되는 말씀인 경우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힘과 소망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면 한 주간의 삶이 훨씬 활기찰 것입니다.

마치 영혼의 최고급 비타민을 머근ㄴ 것처럼 바른 예배는 생기와 용기와 빛을 줍니다.

 

1.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개인이나 그룹이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섬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종교마다 일정한 양식의 예배의식이 있는데 많은 종교가 우상에게 예배합니다.

그 앞에 정성껏 음식이나 물건을 놓고 종교 대상과 일종의 흥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비싸고 좋은 것을 바치니 나에게 마음껏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을 찬양하고 기도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물을 드리기도 하는 그런 방법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남들이 공연하는 것을 구경하는 방청객이 아닙니다.

청취자나 객석에 있는 손님이 아닌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조용히 참석했다가 예배가 끝나면 아미 운동경기장에서 관객이 밀려나가듯이 자리를 뜨지는 않습니까?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경청하고 예물을 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오늘 이후로는 “예배 보러 가자.”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배를 구경하러 가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예배 드리러 가자.”로 바꾸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예배의 종류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상이 아직 고요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묵상의 시간이 끝날 때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끝내도 좋습니다.

다니엘은 외국에 포로로 끌려가 위험한 상태지만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예배했던 사람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많은 인물들이나 지금의 선교사들도 그들이 외지에 가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린다면 예배의 순서를 한 명씩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가 있는 가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예배를 드리니까 너무 지겹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난 후 그때 예배를 드린 것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풍성해졌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들이여!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한 달에 몇 번이라도 가족과 더불어 예배를 드리십시오.

어머니들이여! 아버지가 영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잘 도와주고 격려하십시오.

기도가 있는 부모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방황해도 곧 회복됩니다.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지 결국 돌아오게 된다는 많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이 드리는 예배 이외에도 소그룸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교회마나 사랑방 구역, 목장이라고 하는데 약 7~8명, 10여명, 15명이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일고 같이 기도하고 한 입으로 찬송하는 것은 혼자 드릴 때와는 다른 새로운 감동들이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드리는 공예배가 있습니다. 왜 이런 예배가 필요할까요?

예수 믿는 사람은 홀로 사는 로빈슨 크로소가 아닙니다.

로빈슨 크로소는 외딴섬에 혼자 지루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방과 연결이 끊어진 외딴 섬이 아닙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각 성도가 그 몸에 붙은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손이 아무리 잘났어도 발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합니다.

 

“예배드리러 교회에 갑시다.”라고 말하면 “아! 나는 예수를 믿지만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교회에 가면 미운 사람이 많아서 싫습니다. 또 목사가 자꾸 돈 이야기하는 것 같고 누가 뭐라고 그러는 것 같아요.” 등등 별별 필계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라디오나 TV에서 방송되는 설교를 듣는데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훨씬 잘하더랍니다.

집에 누워서 예배드려도 마찬가지이며 헌금은 수표로 써서 보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별로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교인들도 많은데 그럴 바에야 서로 믿을 수 있는 가족끼리 집에서 예배하면 하나님이 안 받아주실까요?

반기독교적인 나라나 선교지의 선교사 가족이 그런 식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 가족 예배라고 해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마음에 맞는 이들과 예배를 드린다면 주님의 기대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고 반드시 삶속에서 문제를 야기시킬 것입니다.

 

3. 예배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공동예배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성도 각 사람이 성전 건물의 벽돌과 같다고 가르쳐줍니다.

벽돌 하나하나가 귀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건물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돌, 큰 돌이 같이 얽혀 져서 서로 의지하고 있어야 교회가 세워져 나갑니다.

그럴 때 자기 몫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기 어려운 선한 일을 더불어 하기 위해서도 예배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아프리카 르완다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없지만 한 사람이 조금씩 냈더니 얼마만큼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지혜와 용기를 얻고 영적 싸움에 나설 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는 교제를 하기 위해서도 예배가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못 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변에 모범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옆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할 일이 있구나!’ 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의 동화책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어린 아기를 늑대가 산에서 돌봅니다. 그 아이가 보고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늑대처럼 기어다니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람인데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필요하고 이웃 성도들이 필요할까요?

다 약점이 많은 사람들인데 다 허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다 허물 많은 사람들이지만 서로 보고 배울 것이 있습니다.

보고 배울 것이 없다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많이 배워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불장군으로 살지 마세요.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어 갑절이 되게 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어 반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4~25을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영국의 글래스 스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요일에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라. 그러면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당시 영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지 않고 거리를 헤매며 술집과 도박장으로 몰려다니더니 그의 말대로 세계에서 제일 많은 신학자와 선교사, 목사를 키우던 영국이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교회가 심각하게 쇠퇴한 나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 시대에 젊은이가 주일에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좌우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무엇에 제일 많은 신경과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주일에 자녀들을 학원에 보냅니까? 과외를 시킵니까?

이 시대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고 사는가가 한 나라, 그 민족의 미래를 대변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범죄에 깊이 빠지지 못합니다.

형식적이고 이름만 걸어놓은 기독교인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스임 받습니다.

혹시 하나님께 매주 예배드리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그 마음이 생활이 예배라면 하나님을 떠난 백성하고는 반드시 큰 차이가 있습니다.

 

4. 어떻게 예배드려야 할까요?

 

1) 준비된 마음과 단정한 복장으로 참석하십시오.

가장 높고 귀한 분을 만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대통령이나 왕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몸가짐과 말투에도 조심하는 것입니다.

소풍가는 차림이나 이웃에 놀러가는 복장보다는 왕이신 주님을 만나는 마음과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외모를 봅니다.

복장은 단정하고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입으십시오. 깨끗하고 단정하면 됩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음을 준비하고 헌금을 준비하고 할 일을 준비하십시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칠 것을 준비하고 봉사할 사람은 자신이 맡은 것을 준비하십시오.

교회에 갈 때 자신의 패션이나 보석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예배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참석하십시오.

예배 시간에 늦는 사람은 교회 가까이 사는 사람이 많은가요?

아니면 멀리 사는 사람이 많을까요? 가까이 사는 사람이 대부분 늦게 옵니다.

왜 그럴까요? 5분 전에만 떠나면 된다는 생각에 늑장을 부리다 늦어집니다.

반면에 30 넘게 걸리는 사람은 1시간 전부터 부지런히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집의 위치를 떠나 성도들은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예배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시게 하는 것보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허둥대며 달려와 어수선한 마음으로 예배드리지 말고 고요한 마음을 갖도록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십시오. 늦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부득이 예배 시작 후에 들어오면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누군가 대표기도를 하고 있으면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이 눈을 감아서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3) 모든 예배 순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예배시간에 방랑자가 있습니다.

다음 열 가지 종류의 방랑자 중에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첫째, 낙서파입니다.

주보에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온갖 메모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가 끝나면 낙서한 메모지를 버리고 갑니다.

 

둘째, 구경파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의 머리 모양인지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셋째, 먹자파입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뭘까? 저녁 식사는 어떤 것이 좋을까? 이것만을 생각합니다.

 

넷째, 분석파입니다.

찬양팀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저 찬양은 옛날에 들었던 것 같은데…

설교자 복장은 저게 뭐야? 목사의 넥타이가 양복에 안 맞네. 장식도 촌스러워! 등등.

 

다섯째, 자학파입니다.

졸음을 참느라고 자꾸 꼬집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넙적다리가 벌겋게 됩니다.

 

여섯째, 건축파입니다.

예배당을 둘러보면서 내주 장식을 연구합니다.

창문이 많다느니, 색깔이 짙다느니 사방을 보며 건축양식과 장식을 학문적으로 따집니다.

 

일곱째, 능청파입니다.

졸면서 지긋이 눈감고 은혜 받는 척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조는 것이 다 보입니다.

 

여덟째, 조급파입니다.

뭐가 급한지 자꾸 시계만 봅니다.

급하게 갈 곳도 없으면서 그러는 것이 습관이 된 것입니다.

 

아홉째, 탐구파입니다.

성경을 여기저기 뒤지는 것입니다.

종이에 손때가 묻었지만 읽지 않고 만지기만 합니다.

 

열째, 먼 산파입니다.

멍하게 한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드릴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찬송할 때 마음을 열어서 찬송하십시오.

익숙치 않은 찬송이면 이번 기회에 배우십시오.

자신이 아는 찬송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양한 찬송을 부르십시오.

기도시간에는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십시오.

성경을 읽을 때 함께 읽으십시오.

성경이 자신의 손에 익숙해지면 성경말씀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일에도 진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십시오.

헌금은 잔돈이나 푼돈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린 자녀가 있으면 주일학교 교사들을 신뢰하고 맡기십시오.

자녀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면 찬양과 설교와 기도에 깊이 참여하지 못합니다.

 

4) 자신의 성경책과 찬송가를 꼭 지참하십시오.

평생 곁에 두고 읽어서 손때가 묻은 성경이 되게 하십시오.

성경이 손때로 더럽혀지고 낡아질수록 그 영혼은 더욱 정결하고 주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성경이 낯설어서 구절을 찾기도 힘들고, 하나님의 말씀까지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드와이드 무디는 “천국에 가면 아마도 주님께서 우리의 성경을 보자고 하실 것입니다. 성경책에 손때가 묻고 흔적이 많은 사람은 그 마음이 정결하게 되었을 것이지만,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더러울 것인데 그것을 보고 상급을 결정하실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성경을 평생 읽으며 공부하십시오.

 

5)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잊지 마십시오.

구약시대에 성전에 빈손으로 오면 예배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소를 가져오고 양을 가져오고 돈이 없는 사람은 비둘기를 가져오고 비둘기 살 돈이 없으면 가루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예물을 드렸습니다.

얼마가 되든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헌금을 하십시오. 요즘은 물건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자녀들이 바르게 헌금할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 엉겁결에 헌금함에 돈을 집어넣지 말고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드리십시오.

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TV프로그램에 빠져 항상 예배시간에 늦었는데 어느 날은 헌금 시간에 들어왔습니다.

급하게 들어와서 가방에서 헌금을 꺼냈는데 천 원짜리를 헌금한다는 것이 실수로 그만 만 원짜리를 낸 것입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 다음부터는 반드시 헌금을 미리 준비하고 왔답니다.

 

헌금을 드리면서 짠순이, 구두쇠가 되지 마십시오.

쓰다 남은 것이 아니라 먼저 준비해서 드리십시오.

가정에서 어른에게 무얼 드리든지 정성을 다해 신경을 써서 드리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 10분의 1을 헌금하는 것을 반드시 가르치십시오.

예배를 드릴 때에는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많은 액수의 헌금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고 더욱 겸손히 헌금하십시오.

 

6) 자신이 전도한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십시오.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교회에 데려왔다면 다른 때와 달리 그날은 옷에도 신경을 쓸 것입니다.

전도된 친구가 그런 모습을 배우는 것입니다.

반면 예배시간에 습관적으로 조는 모습을 친구에게 그대로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친구가 성경 본문을 빨리 찾지 못하면 펴서 같이 읽어주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그러면 졸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려면 그렇게 전도해 보십시오.

 

7) 기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십시오.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다해서 경건한 예배를 드리십시오.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정리하고 옥토와 같은 부드러운 마음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거칠고 돌맹이가 많은 마음에는 생명의 씨앗이 잘 심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지 사람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실수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말 저말 근거 없는 말을 듣다가 혼란스럽게 됩니다.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왜 엉뚱한 사람들을 보고 실망하고 분노하며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합니까?

 

어느 부부가 예배를 마치고 차에 탔습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아까 우리 앞에 앉았던 그 여자, 옷 입은 거 굉장히 촌스럽죠?”

남편이 말합니다. “”난 못 봤는데…“

“여보, 우리 옆에 있던 남자 어깨 위에 비듬이 많아서 너무 지저분하지 않았어요?”

“난 못 봤소.” 그러자 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교회에서 뭘 본거예요?”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지 이 부인처럼 엉뚱한 것에 마음이 빼앗기면 안 됩니다.

교회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지 말고 중심을 예수님께로 향하는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8) 설교말씀을 경청하고 예배가 생활로 이어지게 하십시오.

주일설교를 위해 설교자들이 며칠씩 몇 주씩 기도하면서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서 경청하십시오.

어떤 때는 듣기 싫은 말도 듣고 가십시오.

듣고 세상에 나가서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교회에서는 “아멘”, “할렐루야”가 천장을 뚫을 것 같으면서도 나가자마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신앙도 없는 것처럼 살면 위선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진짜 예배자는 가정이나 일터, 학교, 어느 곳에서든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비상시에 대통령의 발표문을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이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5. “어떤 교회에 다닐까?”라는 고민

 

대부분 교회에 가면 자기 교회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횔ㄹ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에 큰 차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잘못 사귀어 이단에 빠져 일생동안 고생하고 재산을 모두 빼앗겨 인생을 망친 경우를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또는 교단 교파 때문에 고민하지 않습니까?

장로교가 옳은가? 감리교가 옳은가? 침례교인가? 성결교인가? 하나님의 성회인가?

대표적인 교단 다섯 개 중에 어떤 것이 옳은가? 성경에는 그런 파가 하나도 없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런 이유들로 바울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누가 그런 파를 만들었냐고 책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런 교파도 없다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장로교인만 가는 것도 아니고 감리교인만 가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에는 교단이나 교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결정할 때 교파로 결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러면 교인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좋을까요?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교회생활 하기에는 좋을지도 모릅니다.

건물이 큰 교회가 좋을까요? 예, 편리해서 좋을 수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도 좋습니다.

유명한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가 좋을까요? 집 가까이 있는 교회가 좋을까요?

멀어도 좋은 교회가 있다면 찾아가야 합니다.

어느 설교자의 말처럼 서울대학이나 하버드대학에 입학이 결정되었는데 멀다고 가지 않습니까?

집을 떠나거나 이사를 해서라도 가지 않겠습니까?

가능하면 인근에서 좋은 교회를 찾는 것이 좋겠지만 정말 너무 멀면 집을 옮기십시오.

교회가 먼 것이 아니라 집이 먼 것입니다.

 

크리스찬 와이즈(G. Christian Weiss)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통해 “건전한 교회를 선택하기 위한 9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1) 성경 전체를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전하는가?

성경 이외의 것을 전하면 100% 이단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을 몰라도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까?” 하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그 때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절대 그건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성경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인가를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분명하게 전하는가?

예수님께서 교회의 중심이심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는가?

아니면 교회의 설립자나 유명한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있는가?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이 영광을 받으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교회에 나오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확실히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회인지를 검토하십시오.

 

4) 새벽이나 주간 중에 기도 모임이 한 번 이상 있는가?

행사가 많아도 기도가 없으면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기 때문에 그런 곳에 가면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새벽기도회나 소그룹 기도모임이 있는 교회가 좋습니다.

 

5) 계속해서 영혼 구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가?

전도를 소홀히 하면 교회는 시들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요?

믿는 분들이 헌신하는 것도 참 기쁘지만 안 믿던 분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성경을 보았다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은지요!

구원 간증이 있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6) 설교와 찬양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가?

찬양이 신나는 음악 프로그램으로 그치고 멋진 웅변식 설교만 하고 끝나는가?

정말 노래 속에 생명이 있는가? 설교 속에 생명이 있는가?

설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가?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가?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프로그램이 화려해도 그 교회는 위험합니다.

 

7) 하나님의 거룩함이 강조되는가?

죄는 죄라고 지적하고 있는가?

천국만이 아니라 지옥에 관해서도 설교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죄를 보고도 “괜찮습니다.”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아닌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마음이 아프더라도 뼈아픈 말을 해야 합니다.

 

8) 전도와 해외 선교에 관심이 있는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정지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선교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전도에 주력하고 예수를 모르는 이웃들과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곳에 선교적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를 선택하십시오.

정기적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또 선교 활동을 하는지를 보십시오.

 

9)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가르치는가?

이 땅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고 가르치는 것은 삼가십시요.

이 땅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몰라도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의 삶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와이즈는 이렇게 아홉 가지를 다 점검하여 이 내용에 합당한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도 그렇고, 목사도 그렇고, 모두 다 연약합니다.

교회 안에는 성숙한 성도가 있고 방문자와 관심자 및 신앙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고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그럼 목사를 보고 판단할까요? 그래도 실수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는 기쁨이 있고 평안을 누리며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고난 중에 이기는 힘을 얻고 역경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성도의 깊은 사귐을 통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몸이 건강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처럼 건강한 교회는 소리없이 성장합니다.

건강한 교회에 속한 사람은 행복한 교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구원받은 행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구원이 확실해지고, 신앙이 성장해가고, 믿음의 헌신이 생기고,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그곳은 건강한 교회일 것입니다.

삶에 기쁨이 있고 예수를 믿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갈등이 많고 예배당에 가면 긴장이 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교회라면 과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요?

집에서도 교회가 생각나고 교회에 오면 좀 더 머물고 싶고 교인들이 서로 만날 때마다 기쁨으로 격려할 수 있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미 이단으로 판정 났거나 이당성이 있는 교회에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교회를 좀 더 부패시키는 이단드이 많습니다.

삼위일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천국과 지옥, 예수님의 구원 완성,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구원 등을 부인하는 교회는 절대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모험을 하지 마십시오.

교회라면 아무 곳이나 열심히 섬기면 된다는 식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아무리 스피드가 좋은 자동차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한다면 천천히 바로 가는 것보다 못한 것처럼,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고 해도 신앙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너무나 위험한 곳입니다.

한 번 잘못된 신앙의 길에 들어서면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고 혹시 기적이 나타나는 교회라 해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전한다면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6. 행복한 교회 생활을 위한 참고 사항

 

1) 가능한 한 모든 공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예배를 뒤로 하고 이 일 저 일로 분주한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경건하고 은혜로운 예배를 드린 후에 새 힘을 가지고 봉사의 현장에 나아가야 합니다.

유명한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행을 하다가 어느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에 분주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가 주님께로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 혼자서 접대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마리아가 저를 돕지 않는 것을 왜 그냥 두세요?”

“마르다야! 너는 너무 많은 일 때문에 그님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구나. 그러나 지금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란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고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그 마음에 분함을 갖고 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각 분야에서 섬기십시오.

그러나 종종 어떤 분은 교회에 오자마자 일만 합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된다면 신앙생활에 금방 원망이 생기고 불평이 생깁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은 간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주일예배 외에 새벽기도와 또 다른 예배에도 참석하십시오.

공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신앙이 건전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2)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십시오.

교회에 오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교제와 가르침 속에서 격려와 믿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자신보다 신앙이 약한 사람을 돕고 성도를 섬기며 선한 일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인정과 대접을 받고자 하면 언제나 실망하고 불평이 생깁니다.

먼저 인사하고 섬겨 보십시오.

항상 섬기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교회생활이 훨씬 밝아지고 기쁨이 생깁니다.

 

3) 방관자나 구경꾼이 되지 말고 참여자가 되십시오.

운동경기장이나 영화관에 가면 어떻습니까?

정해진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지만 관람하면서 너무 재미가 없으면 나와 버리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경기나 영화에 친구나 가족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마 맨 마지막까지 남을 것입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관람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잘하나 못하나 보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참여자가 되십시오.

남들의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당사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4) 교역자와 성도들을 비판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조력자가 되십시오.

불평과 원망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습관이 됩니다.

목사들도 허물이 많고 약점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오지만 기대하다가 실망도 합니다.

설교자도 격려와 기도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항상 말씀을 공부하고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에 목사들은 기도 제목도 없고 평안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사에게도 자녀문제, 가정문제, 미래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들을 때마다 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6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앙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사역자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일도 사역자들과 함께하리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설교할 때 나 혼자 선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두렵지만 기도의 중보자들이 뒤에서 함께 선다고 생각하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비난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지원하고 격려하십시오.

교회를 나누는 일에 앞장서지 말고 적극적인 협력자가 되십시오.

교회와 주님을 위해서 말없이 순종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5) 교회를 위해서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즐겁게 드리십시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만 드려야 한다면 이 세상에서 자격이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한 성도가 교회에 와야 하는데 집에 돈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교회에 가는데 헌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기도한 후 온 집안을 뒤졌더니 오래 전에 비상금으로 두었던 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하나님, 이번 주도 드릴 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감사헌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헌금은 하나님께서 만 배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 무엇인가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특권입니까?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주님의 교회에 직접적으로 우익이 되는 일을 찾아보십시오.

일거리는 항상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서 시간과 은사를 사용하는 것, 목회자와 성도를 섬기는 봉사, 교회를 청소하는 수고와 땀, 때마다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제공하는 손, 꼭 필요한 때에 보이지 않게 헌금으로 돕는 것 등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6)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생활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교회는 마치 전력 충전소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힘이 빠지고 실망하고 방황할 때 새 힘과 소망과 믿음을 공급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소금과 빛으로 환하게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일주일 내내 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정으로, 학교로 가서 성공적으로 사십시오. 기회가 되면 복음을 전하십시오.

성도는 교회에 모여서 힘을 얻고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성도들끼리 모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회와 주일예배를 소홀히 하면 신앙이 뒤쳐집니다.

분주한 일상 때문에 고단하고 힘들면 더욱 함께 모여 예배하면서 새 힘을 얻으십시오.

멀리 여행하거나 사업으로 출장을 가더라도 인근 교회에 나가 경건한 예배를 드리십시오.

 

아브라함은 어느 곳에 가든지 세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장막과 우물과 제단입니다.

제단은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장막을 세우고 우물을 팠지만 제단을 세운 기록은 없습니다.

그 가정은 풍지박산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했고 모세는 자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욥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바울과 스데반도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천국에 가면 전도나 교육이나 훈련이 없어도 주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의 찬양단은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할 것입니다.

천국의 설교자는 예수님이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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