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행적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서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 네 복음서의 이적사화, 성전정화사화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모으시려고 하셨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과 한맺힌 이들(마태 5,3-12 = 루가 6,20-21), 무식한 이들(마태 11,25-26 = 루가 10,21), 그리고 직업상의 죄인들과 윤리상의 죄인들(마르 2,14-17; 루가 15; 마태 11,18-19 = 루가 7,33-34; 마태 21,31-32 = 루가 7,29-30; 마태 22,1-10 = 루가 14,15-24)을 편애하셨다. 또한 당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던 어린이들(마르 10,13-16)과 여자들(마르 5,25-34; 7,24-30; 12,41-44; 14,3-9; 루가 7,36-50; 8,1-3; 13,10-17; 18,1-18; 요한 4,1-42; 7,53-8,11)을 가까이 하셨다. 예수께서 여자들을 존중했는데 당시엔 무척 파격적 처신이었다(졸고,“신약성서의 여성관”,《한국 가톨릭 교회 이대로 좋은가?》, 분도출판사 1998, 55-104쪽). 예수님은 이들 밑바닥 인생을 애련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넘치는 자애로운 분이셨다. 

 
왜 그러셨을까? 악한 사람들에게나 선한 사람들에게나 골고루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느님(마태 5,45),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동같은 하느님,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같은 하느님, 잃은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같은 하느님(루가 15장), 만 탈란트나 되는 천문학적인 빚을 기꺼이 탕감해주는 임금님같은 하느님(마태 18,23-35), 해 떨어지기 직전에 단 한 시간 일한 품팔이에게도 그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서 하루치 일당을 주는 선한 포도원 주인같은 하느님(마태 20,1-16)을 의식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소외자들에게 저 자비행, 보살행을 실천하셨다. 예수님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아빠를 깊이 깊이 체험하고 맑고 맑게 체현하셨다. 

2. 네 복음서의 이적사화


1) 개관
이 글에서는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행하셨다는 구체적인 이적사화만 살피겠다. 이적사화 집성문, 그리고 수난·부활사화에 나오는 이적사화는 다루지 않겠다. 네 복음서의 기적은 마냥 신기한 사건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 심오한 진리를 가리키는 징표·표징이다. 요즘말로 기적은 비사를 가리키는 상징행위이다. 공관 복음서의 경우 기적은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가리키는 상징행위이다(神論的 表徵). 이와는 달리 요한 복음서의 경우 기적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을 알리는 독보적 계시자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행위이다(基督論的 表徵). 예수 어록과 네 복음서에 실린 이적사화를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어록 편집자는 50-60년대에 주로 예수의 말씀 전승들을 모아 예수 어록을 엮었다. 그는 치유이적사화 한 편(마태 8,5-13 = 루가 7,1-10), 구마 이적사화 한 편(마태 12,22-23; 9,32-34 = 루가 11,14)을 채록했다. 이는 어록에 잘 어울리지 않는 예외 현상이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치유 이적사화 8편, 구마 이적사화 4편, 소생 이적사화 1편, 자연 이적사화 5편, 함계 이적사화 18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서 구마 이적사화가 돋보인다. 구마사화에서 마르코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인 예수께서 사탄과 그 졸개들인 마귀들을 제압했다고 한다. 마르코가 예수의 이적사화를 18편이나 채록한 것은 그리스 이적사화집(aretalogy)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김득중,《복음서의 이적 해석》, 컨콜디아사 1996, 62-64쪽).


마태오는 예수님의 말씀 전승을 중히 여겨 다섯 곳에 모아 실었다(5-7·10·13·18·23-25장). 마태오는 예수님의 이적사화를 그분 말씀의 보조수단으로 여겼다(김득중, 같은 책, 177- 181쪽). 마태오는 8-9장에다 이적사화 10편을 모아 실었는데, 그것들을 마태오의 출전인 어록 및 마르코의 이적사화들과 비교해 보면, 마태오가 확장한 경우도 있고(마태 8, 5-13 비교 루가 7,1-10), 중복한 경우도 있다(마태 9,27-31; 20,29-34 비교 마르 10,46-52 / 마태 9,32-34; 12,22-23 비교 루가 11,14). 그렇지만 마태오가 마르코 복음의 이적사화 이야기 부분을 축소한 경우가 훨씬 더 잦다(마태 8,1-4 비교 마르 1,40-45; 마태 8,14-15 비교 마르 1,29-31; 마태 8,28-34 비교 마르 5,1-20; 마태 9,1-8 비교 마르 2,1-12; 마태 9,18-26 비교 마르 5,21-43). 마태오가 이적사화를 옮겨쓸 때 이야기 부분은 축소하거나 삭제한 반면 예수님의 말씀 부분은 비교적 잘 보존한 사실로 미루어, 마태오는 이적사화 자체보다는 그 의미에 관심을 쏟았다고 하겠다. 마태오가 고유 전승에서 오직 자연 이적사화 한 편만 채록한 사실도(17,24-27) 그가 이적사화 자체에는 별로 이끌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루가는 마르코의 이적사화 18편 가운데서 6편은 삭제했으나(아래 이적사화 목록 중 11-15·18) 12편은 옮겨 썼다(이적사화 목록 중 1-10·16-17). 그리고 예수 어록에 실린 이적사화 2편도 다 옮겨 썼다(이적사화 목록 19-20). 또한 루가는 고유 전승에서 이적사화 5편을 채록했다(이적사화 목록 22-26).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이적 4편(사도 3,1-10; 5,1-11; 9,32-35·36-43), 바울로의 이적 5편(사도 13,8-11; 14,8-12; 16,16-18; 20,9-12; 28,7-8)을 소개한다. 그러니 루가는 마르코만큼이나 이적사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마태오가 예수님의 행적보다는 말씀을 중히 여긴데 비해서 루가는 그 둘을 다 소중히 여겼다(루가 24,19). 아니, 루가는 말씀보다 예수님의 행적을 더 강조했다 하겠다(사도 10,38).


요한 복음에는 이적사화 7편이 실려 있다(이적사화 목록 10-11·19·27-30). 요한 복음서 필자가 표징 출전이란 책에서 이적사화 7편을 옮겨 썼다는 것이 루돌프 불트만 이래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이미 서두에서 말했거니와, 공관 복음서의 기적이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가리키는 상징행위라면(神論的 表徵), 요한 복음서의 기적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계시자로 드러내는 상징행위이다(基督論的 表徵).


이제 네 복음서의 이적사화를 일별한 다음 유형별로 분류하고나서 촌평을 내리고자 한다. 안식일에 치유이적과 구마이적을 행하신 것을 눈여겨 보라. 예수께서는 안식일 규정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병자를 돌보셨다(1-2·5·24-25·28-29).

2) 네 복음서의 이적사화 목록


마가

마태

누가

요한

1. 안식일에 가파르나움 부마자를 고치시다

1,21-28


4,31-37


2. 안식일에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1,29-31

8,14-15

4,38-39


3. 나병자를 고치시다

1,40-45

8,1-4

5,12-16


4.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2,1-12

9,1-8



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시다

3,1-6

12,9-14

6,6-11


6.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4,35-41

8,23-27

8,22-25


7. 게라사의 부마자를 고치시다

5,1-20

8,28-3

8,26-39


8.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다

5,21-24·35-43

9,18-19·23-26

8,40-42·49-56


9.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5,25-34

9,20-22

8,43-48


10. 오천 명을 먹이시다

6,30-44

14,13-21

9,10-17

6,1-15

11. 물 위를 걸으시다

6,45-52

14,22-33


6,16-21

12. 시로페니키아 부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치시다

7,24-30

15,21-28



13.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다

7,31-37




14. 사천 명을 먹이시다

8,1-10

15,32-39



15. 베싸이다의 소경을 고치시다

8,22-26




16. 귀신들린 간질병자 아이를 고치시다

9,14-29

17,14-21

9,37-43a


17. 예리고의 바르티매오 소경을 고치시다

10,46-52

9,27-31;20,29-34

18,35-43


18.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11,12-14·20-21

21,18-19



19. 백부장의 중풍병자 종을 고치시다

8,5-13

7,1-10

4,46-54


20. 귀신들린 벙어리를 고치시다

9,32-34;12,22-23

11,14



21.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꺼내다

17,24-27



22. 물고기를 많이 잡다



5,1-11


23. 나인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



7,11-17


24.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치시다



13,10-17


25.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시다



14,1-6


26. 나병자 열 사람을 고치시다



17,11-19


27.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다




2,1-12

28. 안식일에 베쩨타 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5,1-18

29.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태생 소경을 고치시다




9,1-41

30. 라자로를 살리시다




11,1-53

3) 이적사화 분류
네 복음서에 실린 이적사화 30편은 흔히 네 가지로 대별한다.

곧, 몸의 병을 고치신 치유 이적사화, 마귀를 쫓아내신 구마 이적사화, 죽은 사람을 되살리신 소생 이적사화,

그리고 자연에 이변을 일으키신 자연 이적사화로 대별한다. 

각 이적사화 앞에 매긴 숫자는 '네 복음서의 이적사화 목록'의 일련번호를 가리킨다.

(1) 치유 이적사화 14편
치유 이적사화는 마르코 복음에 8편, 예수 어록에 1편, 루가의 고유사료에 3편, 요한 복음에 2편이 실려 있다.

요한 4,46-54은 마태 8,5-13 = 루가 7,1-10과 닮았기 때문에 따로 세지 않았다.
.


마가

마태

누가

요한

2. 안식일에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1,29-31

8,14-15

4,38-39


3. 나병자를 고치시다

1,40-45

8,1-4

5,12-16


4.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2,1-12

9,1-8



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시다

3,1-6

12,9-14

6,6-11


9.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5,25-34

9,20-22

8,43-48


13.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다

7,31-37




15. 베싸이다의 소경을 고치시다

8,22-26




17. 예리고의 바르티매오 소경을 고치시다

10,46-52

9,27-31;20,29-34

18,35-43


19. 백부장의 중풍병자 종을 고치시다


8,5-13

7,1-10

4,46-54

25.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치시다



13,10-17


26.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시다



14,1-6


27. 나병자 열 사람을 고치시다



17,11-19


28. 안식일에 베쩨타 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5,1-18

29.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태생 소경을 고치시다



9,1-41



(2) 구마 이적사화 5편
구마 이적사화는 마르코 복음에 4편, 어록에 1편이 실려 있다. 요한 복음엔 구마 이적사화가 없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

1. 안식일에 가파르나움 부마자를 고치시다

1,21-28


4,31-37


7. 게라사의 부마자를 고치시다

5,1-20

8,28-34

8,26-39


12. 시로페니키아 부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치시다

7,24-30

15,21-28



16. 귀신들린 간질병자 아이를 고치시다

9,14-29

17,14-21

9,37-43a


20. 귀신들린 벙어리를 고치시다


9,32-34;12,22-23

11,14



(3) 소생 이적사화 3편
소생 이적사화는 마르코 복음, 루가의 고유 사료, 요한 복음에 각 1편씩 실려 있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

8.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다

5,21-24·35-43

9,18-19·23-26

8,40-42·49-56


23. 나인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



7,11-17


30. 라자로를 살리시다




11,1-53


(4) 자연 이적사화 8편
자연 이적사화는 마르코에 5편, 마태오의 고유 사료와 루가의 고유 사료와 요한 복음에 각 1편씩 실려 있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

6.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4,35-41

8,23-27

8,22-25


10. 오천 명을 먹이시다

6,30-44

14,13-21

9,10-17

6,1-15

11. 물 위를 걸으시다

6,45-52

14,22-33


6,16-21

14. 사천 명을 먹이시다

8,1-10

15,32-39



18.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11,12-14·20-21

21,18-19



21.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꺼내다


17,24-27



22. 물고기를 많이 잡다



5,1-11


27.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다




2,1-12


4) 유형별 평가
(1) 치유 이적사화
① 병명
치유 이적사화에 명시된 질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마 이적사화 두편(16·20)도 함께 살펴본다.
고열 2. 안식일에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마르 1,29-31 병행
나병 3. 나병자를 고치시다 마르 1,40-45 병행
       26. 나병자 열 사람을 고치시다 루가 17,11-19
중풍 4.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마르 2,1-12
      19. 백부장의 중풍병자 종을 고치시다 마태 8,5-13 = 루가 7,1-10
      28. 안식일에 베쩨타 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 요한 5,1-18
마비 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시다 마르 3,1-6 병행
하혈 9.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마르 5,25-34 병행
청각언어장애 13.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다 마르 7,31-37
언어장애 20. 귀신들린 벙어리를 고치시다 마태 9,32-34; 12,22-23 = 루가11,14
시각장애 15. 베싸이다의 소경을 고치시다 마르 8,22-26
      17. 예리고의 바르티매오 소경을 고치시다 마르 10,46-52 병행
      29.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태생 소경을 고치시다 요한 9,1-41
간질 16. 귀신들린 간질병자 아이를 고치시다 마르 9,14-29 병행
척추병 24.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치시다 루가 13,10-17
수종 25.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시다 루가 14,1-6
② 유형
복음서 치유 이적사화의 양식을 보면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짜여 있다.

이는 그리스 치유 이적사화의 양식과 닮았다(알폰스 봐이즈,《성경은 무엇을 기적이라고 하는가?》,

분도출판사 1987, 48-57쪽). 그렇지만 복음서 치유 이적사화의 양식은 극히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달리 이야기하겠는가?
③ 신앙
그리스 치유 이적사화와 아주 다른 점이 복음서 이적사화에 있는데, 그것은 치유자와 환자의 신앙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기적을 행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마태 17,20 = 루가 17,6; 마르 11,23 = 마태 21,21). 예수께서는 환자가 나으려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하시는 당신께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형태로 말씀하셨다(마르 1,40; 2,5; 5,34; 7,29; 9,19; 10,47·52). 나자렛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불신한 까닭에 그분은 고향에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으셨다고 한다(마르 6,5). 치유자와 환자 사이에 교감이 있어야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치유자의 신앙과 환자의 신앙을 다 강조하는 문단도 있다(마르 9,22-24).
④ 치유 이적사화 이해
동양인의 처지에서 예수님의 치유이적을 풀이한다면 예수님은 기의 작용으로 병자를 고치셨다고 하겠다(졸문,“생명의 힘, 氣”《공동선》, 1997년 5·6월호, 41-48쪽). 예수님은 축기와 운기의 도사였다고 생각된다. 어디 그 뿐이랴, 예수님은 하느님 아빠의 영능을 충만히 받으셨다(마르 1,9-11). 예수께서는 기가 충만한 데다가 하느님의 영능을 듬뿍 받으셨으니 그분이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치셨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예수께서는 치유이적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능력을, 곧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생생히 보여주셨다. 이어서 다룰 구마 이적사화도 치유 이적사화처럼 이해하면 무난하다.

(2) 구마 이적사화
복음서에 나오는 구마 이적사화는 5편인데 그 가운데 무려 4편이 마르코 복음서에 실려 있다(이적사화 목록 1·7·12·16). 요한 복음서에는 구마 이적사화가 한 편도 없다. 마르코는 마치 예수님과 사탄이 격전을 벌이는양 구마사화를 서술한다. 그 단적인 예로, 안식일에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부마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마르 1,21-28)를 들겠다(요아킴 예레미아스, "사탄의 권세를 분쇄하신 예수",《신학전망》20(1973년 3월), 124-139쪽).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은 다음 논거로 분명한 사실이다.
- 사료별로 보아 예수 어록, 마르코, 마태오의 특수 사료, 루가의 특수 사료에 구마에 대한 언급이 두루 나온다.
- 전승별로 보면, 그리스 구마 이적사화 양식의 영향을 받은 구마 이적사화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오래되고 신빙성도 더한 단구들이 있다. 어록(마태 12,28 = 루가 11,20)에 실린 단 구를 루가에 따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으 니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 유대교 율법집인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 43a항에서도 예수님의 구마행적을 시인했다. "과 월절 전날 저녁 때 예수를 매달았다. 그러기 사십일 전에 전령이 이렇게 외쳤다. <예수는 성밖으로 끌려가서 돌을 맞아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마술을 부리고 이스라엘을 현혹하 고 빗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를 변호할 말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발설하라.> 그러나 변호하 는 말이 없었으므로 과월절 전날 저녁 때 그를 매달았다."
끝으로 해석학적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귀신들이 우굴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전기불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50년대에만 해도 귀신 이야기가 무성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불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종합병원에도 구마과란 없고 그 대신 신경정신과가 있다. 구마사화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병자들이라 하겠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마행적은 예수께서 당신 영능으로 정신병자를 고쳐 주신, 정신요법이라 하겠다.

(3) 소생 이적사화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신 이야기(마르 5,21-24·35-43), 나인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리신 이야기(루가 7,11-17), 라자로를 되살리신 이야기(요한 11,1-53)는 죄다 예수 부활을 전제하는 사화들이다. 소생 사화의 뜻인즉, 예수께서는 부활하시어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주님이 되셨다는 것이요, 주님을 믿으면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라자로 소생사화에 극명하게 언표되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요한 11,25).

(4) 자연 이적사화
예수께서는 사람의 병든 몸이나 병든 마음을 바로잡으셨다. 그런데 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사람 밖의 자연에 이변을 일으키셨다는 일화가 8편 실려 있다. 자연 이적사화를 대할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따위 사실 여부를 따지지 말고 그런 이야기가 전하는 근본 취지를 물을 일이다. 자연 이적사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언표하기도 하고, 구약성서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기도 한다.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마르 4,35-41),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마르 6,45-52)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드러내는 현현이적(Epiphaniewunder)이다. 이 현현이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 이야기와 몹시 닮았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마르 6,30-44)와 사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마르 8,1-10)의 전례가 구약성서에 있다. 곧, 엘리사 예언자가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다는 이적사화가 그것이다(2열왕 4,42-44). 마르코 이적사화의 뜻인즉, 빵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인 엘리사 예언자도 위대하지만, 그보다 예수님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졸저,《마르코 복음서》, 분도출판사 1981, 78-79쪽). 자연 이적사화 전반에 관해선 졸저《마르코 복음서》, 63-64쪽과 알폰스 봐이저가 지은《성경은 무엇을 기적이라고 부르는가?》, 127-143쪽을 보라.


3. 성전정화사화

예수께서는 30년 4월 초순에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다. 넓은 이방인 구역(450 x 300 m) 어느 한 곳에서 소·양·염소·비둘기 등 제수를 사고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그리스·로마 화폐를 이스라엘 전통 셰켈로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으며, 성전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고 한다(마르 11,15-25).


예수께서는 성전 제사를 폐기하시는 뜻으로 전대미문의 상징 행위를 하셨다는 풀이가 있는데(페로,《예수와 역사》, 152-153쪽), 아무래도 과잉 해설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장사로 소란한 성전 분위기에 의분을 금치 못하신 것 같다. 아울러 이방인 구역에서 장사를 허락해서 돈벌이를 하는 대제관과 제관장들에게 분개하셨으리라. 예수님은 성전정화 사건으로 대제관과 제관장들의 분노를 사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셨다고 보면 틀림없다(마르 11,18).


예수께서 가야파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희한한 고발이 있었다. "우리가 들으니 이 사람 예수는 말하기를 <나는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 버리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는 고발이 있었지만 증인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아서 유효한 증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마르 14,58-59). 사실 예수께서 친히 성전을 허물겠다고 하신 적은 없다. 다만, 구약 예언자들이 성전 파괴를 예고한 것처럼(미가 3,12; 예레 26,6·18) 예수께서도 성전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고하셨을 따름이다(마르 1`3,2; 루가 19,44).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는 졸문“예수 수난사 연구”,《종교신학연구》제9집, 분도출판사 1996, 349-350쪽을 보라.


[참고문헌]


* 요아킴 예레미아스 씀, 정양모 역,“사탄의 권세를 분쇄하신 예수”,《신학전망》 20(1973년 3월), 124-139쪽.
* 알폰스 봐이즈 지음, 김윤주 옮김,《성경은 무엇을 기적이라고 부르는가?》, 분도출판사 1987.
* 휴버트 리처즈 지음, 정승현 옮김,《예수의 기적》, 분도출판사 1993.
* 김득중,《복음서의 이적 해석》, 컨콜디아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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