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성경에 없는 기독교 최대 명절’ 성탄절의 기원과 역사

 

 

거리에 화려한 트리에 전구가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면, 크리스천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뜨곤 한다.

교회에서도 세속화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가장 떠들썩한 축제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의 탄생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그 유래가 이교도의 풍습과 닿아있다는 점은 성탄의 의미에 대한 회의론까지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이 성탄절을 그저 즐거운 명절로 보내더라도, 크리스천들은 진정한 성탄의 의미에 대해 알고 기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

 

왜 ‘12월 25일’ 일까 ?

 

그렇다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비판거리가 되는 성탄의 유래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이 언제인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목동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등의 기록을 들어 한겨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아직 예수 탄생시기에 대한 학술적인 증거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성탄절이 12월 25일로 된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배경에는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에 퍼져있던 미트라교의 영향이 있다.

고대 근동의 종교였던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와 합쳐지게 된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확장에 따라 로마 헬레니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전에도 로마에는 태양신 숭배사상이 있었고,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농경의 신을 섬기는 축제가 있었다.

 

3세기 후반,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는 미트라교 신봉자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빛의 신 미트라는 로마에 넘어와서 태양신 숭배와 혼합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태양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이후의 날인 12월 25일을 태양신이 재생하는 날로 기념해, 축제를 열었다.

이러한 때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며 로마 카톨릭이 태동한다.

이어 카톨릭은 태양신 숭배 사상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이 날을 성탄절로 정했다고 한다.

 

바꿔야 해, 말아야 해

 

핍박받던 종교에서 어느덧 지배종교로 부상하게 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탄절에 이미 널리 펴져있던 더 많은 이교도적 풍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일종의 토착화 선교 전략이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성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근동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탄생일이 부적절하게 기념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고 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기독교인들은 “서방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며 “태양숭배를 기독교 축제로 받아들였다”고 비난했다.

이후에도 로마 카톨릭은 비성경적인 풍습을 받아들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인데, 이는 고대의 성목(聖木)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트리로 사용되는 상록수 뿐 아니라, 장식용인 호랑가시나무와 겨우살이도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신앙의 상징물이다.

 

이러한 변질에 대해 종교개혁 이후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적극 반대했다. 영국 청교도들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1664년 크롬웰의 의회 장악 때 성탄절을 금지하고 이를 지키는지 감시했다.

 

이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간 후, 미국 청교도들도 동일한 기준을 택했다. 1659년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다.

이러던 것이 1836년 앨라배마 주에서부터 다시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하기 시작해 남북전쟁이후에는 미국 전지역으로 확산됐다.

오늘날 성탄절은 또다른 이교도적 풍습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의미는 없어지고 상업문화만 팽배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은 많은 비판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 날이 ‘성육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성탄의 본질을 저해하는 것들을 차츰 제거해가며, 건전하고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성탄절을 폐지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비성경적인 크리스마스

 

1. 크리스마스의 유래

 

"크리스마스"(christmas)란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뜻입니다.

미사란 라틴어 "MASSA"에서 온 말인데, 이것은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미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릴뿐입니다(요4:23~24).

장로교회의 창시자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주의 만찬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살하는 모독적인 행위로 그런 행위는

곧 미신이며 우상숭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도 오히려 좋지 않은 단어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비롯되었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그것의 비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냥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날은 바빌론의 태양신의 날입니다. 12월 21일은 동지로, 지구가 태양의 영향력에서 가장 멀어지는 날이며, 24일부터 태양의 영향력은 커지기 시작합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여기에 생명이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했는데,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태양신인 바알의 생일이 12월 25일이 되었습니다.

태양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며 경배되었는데, 그 이름은 탐무즈, 호러스, 이시스, 솔 등으로 불리웁니다. 그래서 태양신의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마시고 즐기며 술 취하고 아기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날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4세기까지의 어떤 성도도 이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지만,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고전11:26) 대영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이레니우스와 터둘리안은 축제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삭제하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카톨릭이 이교도들을 무조건적으로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함께 수용한 이교도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4세기 후반에 고대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영구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영백과사전」도 그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기독교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 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 축제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른을 기념하는 축일 '사투르날리아'(12월 17일)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로마력 설날(1월 1일)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나무들과 전나무들,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도에게나 기독교도에게나 겨울 축제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 등불들과 관련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 또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12월 25일에 지켜 온 잘 알려진 나탈리스 인빅티의 태양 축제(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탄생)는 우리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된다"(제3권, p. 727, Christmas).

 

카톨릭의 무지와 타락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도의 명절이 그들의 주장과 논리대로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안에 전승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만큼은 무신론자들인 공산권 국가들과 회교 국가들과 힌두교 국가 등 타종교와 문화권에서도 그토록 관대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곧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의미하는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연중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술 마시고 음행하며 더 많이 흥청거리는 날이 된 것은 바로 이날이 이 세상의 신을 경배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여러 증거들

 

○ 성경의 증거 

(들판에 있던 양떼들)

우리는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으며,

밤에 들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상당히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 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모든 양떼를 집으로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습니다. 에스라10:9-13을 보면,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다 월력-우리 월력으로는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또는 11월초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에 그들이 묵을 방이 없었음)

유대인들은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4-17, 참고 - 출 34:24; 시 50:5).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유다인의 7대 절기 중에서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을 지키러 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 근교에는 각처에서 올라온 많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저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조차도 거할 장소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마리아와 요셉이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의해 호적을 등록하려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유다인의 절기 중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상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독을 통해 유대인들의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듣고 이 시기에 맞춰 호적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위력은 정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요1:14)라고 쓰고 있습니다. "거하시니" 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가 바로 장막절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장막절에 출생하셨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의 장막절은 지금의 월력으로는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경에 해당합니다.

 

( 만삭된 여인이 한겨울에 여행?)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에 모든 여인과 아이들도 자기들이 속한 도시에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길고 오랜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한겨울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만삭의 몸인 여인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지방의 겨울이 그렇게 혹독하게 춥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

 

겨울이 유대인들에게 있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면, 아이들이나 여인들이,

특히 아기를 밴 여인이 여행을 한다거나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 여러 문서들의 증거

 

또한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이외의 다른 여러 문서들에서도 증명됩니다.

 

아가페 성경사전(1991)은 "그 날짜는 분명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로마인들의 축제(Natalis Solis Invicti,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에 맞서서 선택되었다."라고 말하며, 카톨릭 백과사전(1991)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라고 말합니다. 삼성문화사에서 출간한 국어사전(1993)에도 "크리스마스는 로마의 농신제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 성경신자들의 실행을 통한 증거

 

1620년대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인사를 주고받거나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는 행위를 사탄의 관습으로 간주하여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였고, 그것을 위반할 경우에는 5실링의 벌금을 물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날이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620년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 이민에 관한 기록을 보면 메사추세츠 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것까지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 크리스마스 때 행하는 여러 풍습들에 대한 고찰

 

○ 크리스마스 트리 

고대 바빌론 전설에서는 한 푸른 나무가 죽은 그루터기에서 솟아날 때 새 푸른 나무는 님롯이 탐무즈를 통해 부활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농신제 기간 중 붉은 열매들로 전나무를 장식했습니다

(월쉬의 <대중관습의 진경>).

 

성경에는 이방인들이 푸른 나무를 경배했다는 내용들이 나옵니다(왕상 14:23).

 

"그 백성들의 관습은 헛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숲에서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기술자가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 그들이 그것을 은과 금으로 꾸미고,

못과 망치로 고정시켜 움직이지 않게 하는도다. 그것들은 종려나무처럼 곧게 서 있으나 말을 못하고, 걸을 수도 없으니, 꼭 붙들어 주어야 하느니라.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것들이 악을 행할 수도 없고, 또 선을 행함도 그들 안에 없음이라"(렘 10:3-5).

 

위 성경구절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도 사실상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나무를 잘라 장식들을 꾸며 이를 즐거워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선물교환 

"친구들과 어울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크리스마스와 농신제가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에게서 받아들인 일임이 틀림없다"

(대영백과사전 12권 pp.153-155).

 

"크리스마스 시즌과 관련된 상당한 것들, 즉 휴일들, 선물교환 및 일반적인 온정은 이교주의의 잔존물인 로마의 겨울 농신 축제가 계승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다"(베일리의 <로마의 유산>).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4세기 경 네덜란드의 대주교인 "성 니콜라스"를 따라 부른 것입니다.

그가 결혼을 못한 가난한 새 여인에게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여 준 것이 전설이 되어 신발 또는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이교도의 사랑의 신인 베스(Bes)가 겨울에 북극에서 썰매를 타고 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전설과 혼합되어 오늘날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가 된 것입니다(대영백과사전 19권 pp.648-649).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볼 때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만든 전통이며, 오히려 사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신의 날이나 농신제의 축제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4. 죽은 종교와 산 신앙

 

어떤 이들은 우리가 12월 25일이라는 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그 특별한 탄생의 의미를 기리는 것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기념하고 싶다면 정확한 날을 알고 기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 계신 부모님의 생신 상을 차려 드리면서 제 날짜도 아닌 날에 요란을 떤다면 좀 우습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기념되기를 원하셨다면,

그 날짜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놓으셨을 것이건만 성경은 그 날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탄생일을 강조하는 것은 죽은 종교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공자, 맹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마르크스, 레닌은 모두 유교, 불교, 회교, 인본주의,

공산주의 등 인간적인 발상으로 종교와 이념을 만들었지만, 태어난 날만을 자랑할 뿐,지금도 무덤에 묻혀서 그 가르침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탄생일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함으로써 그분의 신성을 제거하려는 인간적이며 마귀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2천년 전 육신을 입으셨지만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전통의 편에 설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너희가 얼마나 더 두 의견 사이에서 지체하려느냐?

주가 하나님이시면 그를 따르라. 그러나 만일 바알이면 그를 따르라"(왕상 18:21).

 

그래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는 것을 성경적인 교리로 믿고 실행하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전통"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비춰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니, 단지와 잔을 물로 씻는 것과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자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도다"(막 7:8-9).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하시더라"(막 7:13).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알려졌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도다. 나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9-11).

부활절, 크리스마스는 이교도적인 카톨릭의 축제이고, 추수 감사절은 미국인의 명절이며,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은 유대인의 명절일 따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고 선포해야 할 것은 바로 그분의 죽으심일 뿐 날이나 절기가 아닌 것입니다(고전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4~26)

 

 

부활절(Easter)에 대한 바른 이해

 

지난번에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배경과 그 이교적인 유래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이제부터는 부활절이 과연 주님께서 명하신 주님의 절기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전통에 따른 사람의 절기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부활절(Easter)의 기원

 

부활절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과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달걀에 색칠을 했을까요? 부활절을 언제부터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과 로마의 감독 안티케투스가 서로 주고받은 서신에 "부활절 논쟁"이 있었다는 불확실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타 문서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축제를 지켰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부활절을 축제의 날로 잡아 기념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영백과사전」초판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경이나 사도적 교부들의 저술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지켰다는 암시는 없다. 특정한 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이 축제일이나 기타 다른 어떤 축제일도 지키라고 명한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이스터'(Easter)란 이름으로 지켜지는 부활절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또 이 기념일은 그 당시에 '이스터'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기념일은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질 따름입니다(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습니다. 주후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부활절을 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카톨릭 백과사전」, p. 505).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로마 카톨릭주의에서 나온 '이스터'(부활절)를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단어는 'Resurrection' (성경에서 총 41회 언급)인데, 왜 '이스터'(Easter)를 부활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유다인들의 유월절 주간(유월절은 니산월 14일에 있었으며 이것은 유다 민력으로 7월에 해당하며 우리 달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고, 그 주간에 무교절, 초실절 등이 동시에 있음)에 있었는데, 왜 부활절을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영어사전과 신학사전에서 '이스터'(Easter) 항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웹스터의 신국제 사전 제3판」(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펑크와 와그날의 대학표준사전」(Funk & Wagnalls'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1.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제, 혹은 부활제가 거행되는 날 

 

「시사 엘리트 사전, 1987년판」

 

"부활절(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 3월21일 이후의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

 

 

「현대 영한 사전, 1994년판」

 

"그리스도의 부활절, 춘분(春分) 3월 21일의 만월. 그 날이 만월이 아니면, 그 뒤의 만월 후 최초의 일요일이며 그 날짜는 정해진 것이 아님.

이 날을 '부활절'(Easter Day)이라고 말하며 기독교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중요한 축제일임. 원래는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의 제일(祭日)임." 

 

「성서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1979」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사탄을 숭배하는 신비 종교들이 극도로 성행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태양신 숭배' 혹은 '바알 숭배' 그리고 '월신 숭배' 등이었습니다. 태양신(솔, 호루스)은 최초의 적그리스도이자 바빌론 왕국을 세운 '니므롯'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창10:8,9). 그의 이름은 '담무스'(Tammuz)라고도 하는데(겔 8:14) 그는 원래 니므롯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는 자기 남편 니므롯이 죽자, 그 니므롯이 환생하여 담무스가 되었다고 사람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이 담무스는 바알이라고도 불리며(렘 19:5), 마르둑, 벨, 오시리스, 쥬피터, 오리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담무스의 어미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특히 고대 영국의 색슨족은 이 '이쉬타르'란 이름을 취해 이스터(Easter, 빛과 봄의 여신)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터'(Easter)는 에오스트레, 오스테라, 아스타르테, 또는 이쉬타르 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부활절 풍습: 부활절 계란, 부활절 토끼, 사순절 등 

원래의 이스터는 하늘의 여왕을 기념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로서, 이것을 상징하는 심벌로는 플레이보이지의 심벌인 '토끼'와 하늘의 여왕인 비너스 혹은 이스터의 탄생을 상징하는 달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스터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기간 중에 행해지는 관습들 역시 이교도들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활절 달걀을 삶아 색칠하여 먹는 것 등은 비기독교적인 이교도의 관습입니다. 어떤 이들은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듯 그리스도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는 의미로 부활절 달걀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결코 성경이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고대 바빌론 신화에는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굉장히 큰 전설상의 달걀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달걀에서 여신 아스타르테가 부화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고대 바빌론 사람들 사이에서 달걀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신 아스타르테(혹은 이스터)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달걀을 자기들 종교의 거룩한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바카스의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알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한편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으며 중국인들은 종교축제 때에 염색하거나 색칠한 달걀을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자기들의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로마에서는 풍작의 여신 케레스를 섬기는 행렬이 지나갈 때 계란을 앞세워 갔으며, 일본에서는 거룩한 달걀을 봄의 여신의 상징으로 색칠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들은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로서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바빌론의 알 숭배 사상의 자취는 우리 나라에도 유입되어 '박혁거세 신화'에서도 발견됩니다.

 

「대영백과사전」은 달걀을 채색하여 먹는 이런 '알 숭배 사상'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까지로 소급하여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이교도들의 관습이 기독교와 연관을 맺게 되었을까요? 「카톨릭백과사전」에 나오는 다음 인용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달걀 사용이 금지된 까닭에 사람들은 부활절 날 부활의 기쁨을 상징하는 붉게 칠한 달걀을 상에 가져 왔다. …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경축하는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과 접목되었기 때문이다"(「카톨릭백과사전」제5권 p. 227, '부활절' 항목).

  

부활절과 관련되어 이교로부터 유입된 부활절 관습에는 부활절 달걀 외에도 부활절 초, 부활절 토끼, 부활절 백합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부활절 토끼의 경우를 들어보면, 「대영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 … 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또 위에서 인용한 「카톨릭백과사전」은 "토끼가 이교의 상징으로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왔다"고 말하며,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진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 까치」은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부활절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일출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절 일요일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태양이 떠오를 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한편 이 일출 예배의 모형은 해돋이 때 해맞이를 하던 고대 태양 숭배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해가 뜰 때 부활예배를 드리는 것이 결코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관습은 성경에 없는 것이며 이교에서 비롯된 혼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언자 에스겔 시대에 참 하나님을 아는 자들도 태양숭배에 빠졌고, 그것을 자기들 종교의 일부분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주의 집 안뜰로 들어가기로, 보니, 주의 전 문 앞 현관과 희생단 사이에서 약 스물 다섯 명이 주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6).

 

백성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곧 해돋이 때의 의식임을 보여줍니다. 대언자 엘리야 시대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습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불의 신도 됩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단도 직입적으로 바알 숭배와 맞섰던 것입니다. 이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습니까?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습니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 18:25,26) 즉, '동틀 때'였습니다(「로마 카톨릭의 어제와 오늘」, 랄프 E. 우드로우, 기독교문서선교회)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관련한 의식들은 여러 형태로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위치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지산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례자들은 산기슭을 오르는 동안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한다.... 종종 흰 예복을 입은 수백 명의 신토 순례자들이 그들의 거처에서 나와 떠오르는 태양에 시를 읊는 것을 볼 수 있다"(도빈스,「 세계 예배 이야기」). 

 

고대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경배하기 위해 동틀 녘에 함께 만났습니다. 이스터란 이름에서 비롯된 봄의 여신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심지어 'East-er'(동쪽-사람)이란 단어 자체도 이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쪽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과 부활절이란 이름 그리고 봄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담무스는 죽임을 당한 뒤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세미라미스)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고 합니다.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담무스의 부활은 농작물의 다수확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해 매년마다 극적으로 재현되었다.

 해마다 사람들은 이쉬타르의 은총과 은전을 얻기 위해 이쉬타르와 함께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이 신의 귀환을 축하해야 했다"(스미스,「인간과 그의 신들」).

 

새로운 식물이 움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겨울을 끝내고 새롭게 봄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해마다 이교도의 봄축제 의식과 교리들을 받아드렸는데, 이에 대해 에스겔 대언자는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겔8:14)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연계의 소생이나 또는 봄에 새로운 식물이 소생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년 중 봄에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믿음에서 떠나 세상과 결탁한 4세기의 교회가 이교도들의 봄축제를 받아들여 기독교와 혼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영백과사전」은 이같은 혼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큰 축제일을 기념하는 데에 있어서 이교도들의 많은 의식과 관습을 통합시켰다."(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기독교는 천주교를 말하는 것임)

 

이제 사순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후 5세기에 그 당시 교회와 초대 교회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마르세이유 수도원의 수사였던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수함이 변질되기까지는 사순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순절 행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순절에 사십일 간 금식하는 관행 역시 바빌론 여신을 섬기는 자들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담무스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합니다. 히슬롭은 이 사순절의 '40'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40일의 하루는 담무스가 지상에서 살았던 한 해를 말하며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날'로 정해 놓은 날이다."

 

고대에는 40일이라는 기간을 우는 날로, 금식하는 날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이는 담무스의 은총을 얻어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봄을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의 준수는 바빌론에서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멕시코인, 그리고 한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히슬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이 사순절은 담무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에 없어서는 아니 될 예비기간이 되었던 것 같다"(「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쿠르드족 중 사탄 숭배자들은 지금도 매년 봄에 40일 동안 금식을 합니다. 쿠르드족은 이같은 관행을 일찍이 그들을 지배했던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멕시코인들도 봄에 40일간 계속되는 축제를 엽니다. 멕시코의 이런 관습에 대해 험볼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춘분이 지난 지 삼일 후부터 태양신을 위한 40일 간의 종교적인 금식이 시작된다."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것은 윌킨슨의 책「이집트인들」을 참고하면 알 수 있습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습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고기나 그 밖의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먹지 않는 기간, 즉 "거룩한 금식기간"이라고 부르는 사순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 것은 6세기경이었습니다. 카톨릭 학자들은 이교주의로부터 받아들인 관습들이 교회 내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 이를 시인하고 있습니다(「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p.390. '이교주의' 항목). 그러나 그들은 비록 이교도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많은 것들을 기독교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이교도가 이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40일간 금식을 했다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자 이와 같은 동일한 방법을 취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이교도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역시 해 뜰 때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달걀을 사용했지만 무덤 앞에 놓인 큰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한다해도 무슨 상관이 있단 밀인가?" 

 

이 모든 주장이 합리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안전한 지침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너는 스스로 조심하여 그들이 네 앞에서 멸망한 뒤에 그들을 따라감으로 올무에 걸려들지 말며 또 그들의 신들을 좇으며 물어 말하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리라, 하지 말라.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그와 같이 행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주께서 미워하시는 일 곧 그분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자기 신들에게 행하되 심지어 자기 아들딸들을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음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거기에 더하거나 빼지 말지니라."(신12:30-32). 

 

끝맺음의 말 

 

부활절 문제 역시 크리스마스 문제와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결코 제 아이들에게 계란을 만들게 하거나 부활절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고, 물론 사순절이니, 재 수요일이니 하는 카톨릭 전통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이 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주간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고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물론 미국과 같은 경우는 이 날이 휴일이므로 집에서 쉬면서 몸과 마음에 재충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의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는, 이 세상이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세상이 무어라 하든지, 이제는 내 마음에서 정한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런 명절들의 유래에 대해 살펴본 것입니다. 이제 이런 것을 알게 된 독자께서는 자신과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행하면 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이 일년 내내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넘쳐나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직 이것만이 성탄절과 부활절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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