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응답의 장애물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허락된 가장 위대한 특권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대적은 개인과 교회가 드리는 기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탄은 교회가 기도하는 능력만큼만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따라서 기도의 능력을 없애기 위해 기도에 대한 오해들을 이용한다.

기도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은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꼭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다.

 

기도에 대해 배울 뿐, 직접 기도하지 않을 때


첫 번째 장애물은 성경과 기도에 대해 배우기만 할 뿐, 기도하는 일에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무엇에 '대해' 배우기는 하나 그것들을 실제로 '행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릇된 만족감에 빠진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며 이론일 뿐 실제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을 때 사탄은 기뻐한다.

 

기도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어느 정도 기도한 것처럼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진리를 삶에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깨달은 지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도 응답에 대한 큰 장애는 우리가 기도를 아는 지식에는 전문가인데 반해

실제로 기도하는 일에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데에 있다.

기도에 대한 최고의 예의는 배운 대로 즉시 기도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고 지적인 동의로 끝날 때


지적인 동의는 믿음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잘 모른다.
지적인 동의란 머리로 그 말씀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 거기에 감탄하고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게 해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핵심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는 하지만 그 분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분이 계시하신 바이며

그 안에 담겨 있는 모든 말씀이 다 진실임을 동의한다.

그렇지만 역경과 위기가 닥쳐올 때 그들은 "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알지만 제게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변명한다.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믿지도 않는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말씀을 많이 아는 일에는 그럭저럭 성공하겠지만 영적인 삶에 관한 한 실패한 인생이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말씀을 행하는 자이지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다(약1:22).
말씀은 씨앗과 같으며, 그것이 한번 좋은 밭에 심겼다면 그 안에 있는 힘으로 씨았은 성장하게 된다.

야고보서 1장22절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들은 바를 믿고 행함으로 그것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과 뜻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넘어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을 갖지 않고 단지 바라기만 할 때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갖는 대신 그저 '소망하는' 정도에 그치는 나머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주실 때 소망(hope)은 두 가지 방향으로 기도 응답을 방해할 수 있다.


첫째, 현재적인 믿음을 적용할 곳에 미래적인 소망을 잘못 적용할 때이며,
둘째, 그 소망이 단지 무언가를 바라는 수준일 때이다.


성경적인 소망은 믿음에 기초하는데,

왜냐하면 소망은 그 믿음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을 확신에 차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망은 아름다우며,

우리가 천국을 바라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장차 주님 안에서 약속된 모든 것을 고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성경적인 소망을 통해 우리는 미래에 얻게 될 축복들을 확신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망은 잘못 적용되면 기도의 응답을 방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이 삶에서 주시려는 복들이 있는데,

만일 그것들을 미래로 돌려버리면 우리는 믿음을 사용하여 얻으려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믿음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응답도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수준 정도의 소망이 있다.

이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며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소망도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의심에 둘러싸여 있다.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어'". "잘 될거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거야".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바람에 그치는 소망'이다.
이런 생각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과 기도를 훈련하는 데 있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 일어나야 할 축복을 구했다면 '그랬으면 좋겠어'라는 바람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라. 

 간구한 것이 지금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확신해야 한다.

바라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우리를 일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믿음이다.

'바람' 의 다른 말은 "언젠가는" 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고립된 섬에서 지내왔는가?

 

우리들은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린다.

그런데 구했던 것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그분은 우리가 구한 것들을 이미 이루셨지만, 우리는 믿지 않았다.

그것을 소유한 자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주실 수 없다.

우리가 그분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84:11).

 

믿음을 더 달라고 기도할 때


누가복음 17장 5절에서 사도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외친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놀랍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믿음을 더 달라고 할 때, 우리는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셈이다.

나는 우리가 믿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 기도는 사실상 불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러므로 응답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으로 들어와 우리가 그에 따라 살게 되면서 자라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으며 이것을 실천할 때, 믿음이 오고 또한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다.

우리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크신 분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도 그에 따라 움직이신다.

믿음의 성장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받아들이라. 말씀을 아는 지식이 우리 믿음의 한계다.

아는 것만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이 균형 잡혀있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주는 지역교회에 속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갖가지 일상에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기에,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고 하셨다.

 

세상의 염려와 게으름의 문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기도를 등한시하는 일이다.

단순히 게을러서 그럴 수도 있고 생활하는 것이 바쁘고 마음을 빼았기는 것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게으르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우리 모두는 이 부분에 있어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6)이라는 책망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런 유형에 대해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은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마13:22)라고 하신다.

만일 누군가가 기도 외에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삶의 여러가지 염려로 인해 기도 생활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가 기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거기에는 아무 열매가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0절은 말씀한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 스스로 만족하여 지속적으로 양육 받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말씀을 듣고 빨아들여 적용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영적인 성장과 기도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을 보게 된다.

 


기도에 장애가 되는 35가지     


케노시스 영성원 -

01. 마음이 얽매여 있는 상태.
02. 자기중심적인 마음.
03. 여유가 없다.
04.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어서 생각이 마음을 빼앗을 때.
05. 끝도 없는 자질구레한 용무에 쫓기고 있을 때.
06. 피로, 생활이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07. 초조할 때, 외적 압박을 받을 때.
08. 자제심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어떤 한계에 와 있을 때.
09. 인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10. 사회적 원인 (물질적 풍요, 편리함,) 능률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때
11.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릴 때.
12. 기도에 대한 지도가 결핍되어 있을 때.
13. 의욕을 잃고 타성적이 되어 있을 때.
14. 현상유지에 머물러 향상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때.
15. 추상화된 개념 세계에 살고 있을 때, 또는 분석에만 치우쳐 있을 때.
16. 머리로만 기도하여 마음이 메말라 있을 때.
17. 세속적 쾌락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을 때.
18. 그럭저럭 이 정도로 좋을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을 때.
19. 자신이 지쳐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언제나 분주한 기분으로 있을 때.
20. 어떠한 자극에 대하여 만성이 되어 있을 때.
21. 목적의식의 결여.
22. 현실에서 도피해 있을 때.
23. 올바르지 못한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24. 형식주의적인 생활.
25. 과신, 교만, 마음이 둔해 있을 때.
26.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을 때.
27.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을 때.
28. 기도를 할 수 있는 고요함과 개인적인 공간이 없을 때.
29. 기도에서 오는 기쁨을 실감하지 못할 때.
30. 기도에 대한 갈망이 부족할 때.
31. 사람들과의 불화, 비판,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32. 자기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 체험에 눈뜨지 못할 때.
33. 자신의 가치관과 신앙의 가치관에 차이가 있을 때.
34. 마음이 닫혀 있을 때.
35. 기도의 준비가 부족할 때.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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