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 족속에 대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B.C. 12세기 초 또는 B.C. 13세기경 가나안 해안 지역으로 이주해 온 민족이다
‘블레셋’이란 히브리어의 ‘펠레쉐트’란 말로부터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초기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결국 이들의 위협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왕국 시대가 탄생하였다.
기원과 정착
B.C. 13세기는 고대 근동 지역의 대격변기였다.
즉 기존의 정치 체제가 붕괴되고 에게 해 유역에서 수리아나 소아시아를 거쳐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과 애굽 국경 지대로 이주해 왔다.
그리스와 발칸, 심지어는 더 먼 북쪽 지역에서 온 해양 민족들이 헷 제국을 멸망시키고
애굽을 위협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해양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히 애굽 국경 지역으로 밀어닥친 민족이었다.
렘 47:4; 암9:7 에서 보면 이들은 그레테와 에게 해의 북쪽 섬들
또는 소아시아의 남쪽 해안에서 이주해온 자들로 나타나 있다.
애굽 국경 지역으로 밀어닥친 블레셋 사람들은
애굽 왕 메르넵타에게 B.C. 1224-1211년경에 저지를 당하자
팔레스타인의 해안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들의 영토는 점점 확장되어 북으로는 '욥바'에서 남으로는 '와디 가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의 주요 거주지는 해안 지역의 아스돗, 아스겔론, 가자와
내륙지역의 에그론과 갓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일강의 델타, 누비아, 가나안의 남서부 지역에서 애굽의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그 후 애굽 세력이 아시아 지역에서 약화된 B.C. 11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독립을 획득할 수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싸움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정복한 가나안 사람들을 추방시키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가나안족들의 문화를 많이 도입한 후
가나안족들의 통치자들이 되었다.
블레셋은 '장관' 이라 불리는 관리들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성경에 나타난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들을 보면
대부분 그들의 우상인 다곤. 아스다롯. 바알세붑
(삿16:23; 삼상5:2-5; 31:10; 왕하 1:2) 등의 이름을 본따서 붙였던 것 같다.
이스라엘인이나 가나안인이나 애굽인들과는 달리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할례하는 관습이 없었다. (삿 14:3; 15:18; 삼상17:26).
성경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용맹성을 입증할 만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칠병기를 사용하기 전에
벌써 이런 것들을 사용하였으며 (13:19-22),
전쟁터에서 병거와 보병을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 (암 1:6-8).
이스라엘과 블레셋
창10:14;21:32,34;26:1-18; 출13:17; 15:14; 23:31에 나타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연대의 착오인 것 같다.
블레셋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 시기는 출애굽 이후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먼저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계속적인 침략을 당했던 것 같다
(수 13:2-3; 삿3:3; 10:6-7; 13장 -16장).
사무엘 시대까지 블레셋 사람들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부족 공동체를 위협하였다.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는 등의 패배를 맛 본 이스라엘(삼상4장),
기존 체제의 지도력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하나님께 그들을 통치해 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에도 블레셋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끔씩 블레셋에게 승리를 빼앗기도 했다
(삼상13:3; 14장;17장;23:1-5).
사울 왕이 길보아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하자
그의 후계자로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다윗 왕은 예루살렘 근처 르바임 계곡에서 블레셋 군과 두 번 싸웠는데,
그들을 게셀까지 몰아내 버렸다(삼하 5:17-25).
그 후 곱과 갓에게도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21:18-22).
이와 같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이 바로
'다윗의 용사들'(21:16-22; 23:8-19)이었다.
솔로몬 왕 치하에서는 블레셋과의 분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참조. 왕상4:21).
분열 왕국 시대의 블레셋
솔로몬 제국의 붕괴는 주변 국가들이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게 만들었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 애굽의 압력이 다시 가중되게 만들었다.
애굽 제21왕조의 이름 모를 왕이 게셀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으며(왕상9:16-17),
시삿 왕은 B.C. 917년에 가사에서부터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의 결속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초창기에 블레셋과 자주 국경 분쟁이 있었다(왕상 15:27;16:15).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하던 때
블레셋은 남유다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가운데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대하17:11).
그러나 여호사밧 왕의 후계자인 여호람 왕 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남유다의 왕궁까지 침입하여 약탈해 갔다(21:16-17).
그후 웃시야 왕은 블레셋 성읍들인 가사.아브네.아스돗 성들을 점령하고
그 성벽을 헐어버릴 정도로 대 승리를 거두었다(26:6-7).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드글랏 블레셀3세에게 항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블레셋 사람들이 남유다를 침공하여 일부 성읍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28:16-21).
블레셋은 여러 선지자들의 묵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14:28-31;렘25:20;47장;겔25:15-17;암1:6-8;욥1:19;습2:4-7;슥9:5-8).
분열왕국 시대의 블레셋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처럼 앗수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앗수르의 아닷-나라리 3세(B.C. 9세기 후반)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비문에 그 일을 기록해 두었다(ANET, p.282).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3세 역시 B.C. 734년에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는 아스겔론 성과 가자성을 침공하였으며,
사르곤 2세도 B.C. 715년에 갓 성을 무너뜨렸으며 B.C.712년에 아스돗을 정복하였다.
그 후 계속되는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하여
블레셋의 나머지 성읍들도 결국 앗수르 세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블레셋을 멸망시킨 나라는 앗수르나, B.C. 612년 앗수르 멸망 이후
침공해 온 애굽 왕 느고2세도 아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었다.
B.C. 604년 느부갓네살이 블레셋을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타국으로 강제 이주시킴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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