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실패의 여덟 가지 유형들


우리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죄의 법에 묶여서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는”(롬 7:18) 생활이다.

생활 가운데 우리는 실패하고 죄에 묶여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그처럼 높은 생명이지만 우리의 생활은 실패하는 생활을 살고 있다.

성경의 기록과 우리의 체험을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 여덟 가지 형태의 실패들 또는 죄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 영적인 죄


교만은 영적인 죄이다. 질투와 불신 또한 영적인 죄이다. 고의로 남의 결점을 찾는 것도 영적인 죄이다. 기도의 부족이 영적인 죄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도 영적인 죄이다. 이러한 영적인 일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지만 이러한 일에서 실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다.


한때 교만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어떠한 교만도 다 영적인 죄이다. 당신이 진보하는 것을 막는 어떤 교만도 영적인 죄이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것을 보고 참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속한 일들에서 뿐 아니라 영적인 일에서도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앞선 것을 보고 견디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누가 영적인 일에서 자신보다 전진했을 때 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그를 억누르려 한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에 있어서도 질투하는 것은 죄이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악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 믿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문장도 믿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험을 받을 때 그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믿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마르틴 루터의 아내가 언젠가 장례식 옷차림을 하고 루터에게 “당신이 이렇게 근심하는 것을 보니 당신의 하나님은 죽었습니까?”라고 말한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생활하지 않고 또 하나님과 좋은 교통을 갖고 있지 않다. 하루하루를 느슨하게 지내고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날들을 허비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않고 또 그분과 교통도 없이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는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싫어하며 하루하루를 낭비한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생활이다. 죄와 실패는 있지만 영적인 생활이 없는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합당하게 자아를 처리하는 공과를 배우는데 전혀 부지런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내려놓는 공과를 배우는데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전에 어떤 두 형제가 있었는데 아주 작은 일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음식을 같이 먹었는데 그 중 한 형제는 밥을 먹을 때 항상 고기를 먼저 먹었다. 다른 형제는 이런 상황을 보고 몇 일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두 주일 되던 때,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와 헤어져 버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작은 일에서 드러난다. 나는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좋아한다. 허드슨 테일러는 집을 떠나 전도하러 다닐 때에 거의 매번 가장 좋지 않은 방과 침대를 선택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당신이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여준다.

 


2. 육체적인 죄


죄에는 영적인 죄가 있을 뿐 아니라 육체적인 죄도 있다. 간음을 범하는 것 같은 죄는 육체적인 죄이고, 우리의 눈이 제한을 받지 않는 것도 육체적인 죄이며, 다른 사람과 합당치 않은 관계를 갖는 것도 육체적인 죄이다. 이런 일에서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눈이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눈으로 죄를 짓는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 관계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이 육체적인 죄이며, 사람의 행동 가운데 있는 죄이다. 어떤 죄들은 몸과 관련이 없지만, 어떤 죄는 몸과 관련된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의 눈은 다루심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오늘날 눈이 범죄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이런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눈이 처리받지 않았다면 결코 하나님의 이기는 생활을 체험할 수 없다.


친구 관계에 대하여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한 형제가 믿지 않는 사람과 지나치게 특별한 친구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자. 이러한 일이 세상 사람의 눈에는 죄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정하신 생명에 따른다면 그러한 관계는 죄이다. 이것은 상대가 자매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한 서양 선교사가 말하기를 어떤 믿지 않는 사람이 자기와 특별한 친구관계를 맺고자 했었을 때 자신은 그러한 일이 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친구 관계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3. 생각으로 지은 죄 


죄에는 영적인 죄와 육체적인 죄가 있을 뿐 아니라 생각으로 지은 죄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죄는 없다. 또한 어느 정도 육체도 처리받았다. 하지만 생각을 이기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방황하는 생각, 떠돌아다니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을 집중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의 생각은 유리하거나 떠돌아다니지 않고 산만하지 않지만 생각이 더럽고 망상적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의심이 가득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알기 전에는 통과시키지 않고 알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기는 생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생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방황하고 집중하지 못하며 표류한다. 생각이 표류하는 것도 심각한 것이지만,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생각이 더럽고 오염되어 부정한 생각이 속에서 끈질기게 맴도는 것이다. 이번에 어떤 자매를 만났는데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왜 계속 떠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내가 만난 어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이 왜 계속 더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상상 때문에 손상을 받았다. 또한 의심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를 받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길가에서 어떤 형제를 만났다 하자. 당신은 그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므로 그 형제가 당신에게 무슨 의견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의 집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은 잠을 잘 자지 못하여 머리가 아프고 환경이 너무나 견디기 어렵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그의 표정이 당신에 대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상상이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남의 마음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계 2:23).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생각으로 죄를 지었고, 판단이 너무 많았다. 망상도 너무 많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이러한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생각이 처리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기는 생활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떤 형제는 알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서 모든 일의 이치를 알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분석하려고 하며 알려고 한다. 그의 생각은 지나치게 활동적이어서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알려고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이러한 종류의 알고자 하는 욕망은 죄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것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4. 몸과 관련된 죄


어떤 죄들은 몸과 관련된 것들이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꼭 더러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큰 일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죄인 것이다. 어떤 이는 먹는 것에 너무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이는 잠자는 것에, 어떤 이는 건강이나 개인적인 몸치장에, 어떤 이는 군것질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또 어떤 이는 자기 몸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먹는 것에 묶여서 항상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한번도 금식한 적이 없다. 당신이 그와 식사를 같이 해보면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젓가락을 들 때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식욕이 좋아서 음식을 아주 많이 먹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여, 음식에 절제가 없는 것도 역시 죄이다. 먹는 것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곧 죄이다.


어떤 사람은 잠을 약간 덜 잤다고 얼굴에 몹시 힘든 표정을 짓는다. 일을 처리할 때에도 안절부절하고 말할 때도 횡설수설한다. 이것 또한 죄이다. 어떤 사람은 군것질을 좋아해서 군것질하는데 돈을 많이 쓴다. 어떤 사람은 몸치장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꼭 좋은 옷만 입으려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건강에 집착하여 어떤 것이 독이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가를 세심하게 구분하며 모든 것에 제한을 받고 모든 것을 위험스럽다고 생각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은 자신의 몸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고생하거나 병든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것은 자신의 몸 때문에 스스로 묶이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한다고 말했다(고전 9:27). 이것은 몸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몸을 통제 아래 두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몸은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기 위해 새벽 기도를 희생시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먹으려고 성경 읽는 시간을 희생시키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군것질을 탐하고 외적인 치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 무릇 이런 일들에서 자신을 관리할 수 없는 것은 다 죄이다.

 


5. 기질적인 죄


기질은 사람의 성격과 관련되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특징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 자기의 기질을 갖고 있다. 주님이 오신 것은 다만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려 함이 아니라 또한 기질에서 구원하려 함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아주 고집 세고 어떤 이는 항상 원칙을 내세운다. 그들에게 2 더하기 2는 반드시 4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매우 정확하지만 동시에 매우 딱딱하다. 그들이 맞다고 한 것은 맞은 것이고 틀리다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그들은 굽힐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어느 때 어떤 일에 든지 항상 자신이 대법원 판사이다. 물론 그들이 의롭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러한 의에는 뿔이 있다. 그가 형제를 대할 때에 온유와 달콤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이 보여 주는 의로움은 매정하고 완강한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은 죄이다.


어떤 사람은 매우 유약하며 일을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좋고 나쁜 것이 없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람은 앞에서 말한 고집 센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 사람들은 호인(好人)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호인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계실 때 호인이셨는가? 형제자매들이여, 이런 기질도 죄이므로 처리해야 한다. 어떤 형제는 딱딱하지도 않고 호인도 아니지만 자기를 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또 어디에 있든지 항상 말하려고 한다. 어디에 있든지 기회가 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려고 한다. 어디에 있든지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비로소 만족한다.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고 결코 잠잠히 있지를 못한다.


어떤 형제는 너무 잘 위축된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한 구석에 앉는다. 이것도 죄이므로 처리해야 한다. 어떤 형제는 매우 조급하다. 또 어떤 형제는 매우 느리다. 어떤 형제가 한번은 자신이 성질을 내는 것도 빠르고 그치기도 빠른 것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집에서 화를 크게 낸 후 오 분이 지난 뒤에는 문제가 사라지고 사무실에 갈 때에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그러나 아내와 자녀들은 하루 종일 고통을 당한다. 그가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이상하게 느끼며 자신을 좋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처리해야 할 죄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일이 하루 지연되든 열흘 간 지연되든 다 좋다고 한다. 이것은 게으름으로서 마땅히 처리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기질이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그의 행함과 처신이 극히 엄격하여 모든 일에 날카롭게 남과 대립하고 빈틈이 없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지도 않고 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단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다. 매우 빈틈없이 계산적이며 어떤 일도 느슨하게 풀어놓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엄격하지는 않지만 매우 인색하다. 이러한 사람은 몇 개의 동전이라도 남에게서 꼭 받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강도질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하인이나 인력거꾼에 대해서조차도 항상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이 너무 많다. 어느 곳이든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조용하지 않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단점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에 관해 늘어놓는다. 무언가를 알 때 꼭 말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을 과장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그가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조금 지나치게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 말할 때 드러나는 사람의 기질이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기기를 갈망하고 또 이기는 생명을 살고자 한다면 이런 모든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반드시 이겨야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오늘 내가 왜 이런 것을 말하는가?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너무도 하나님의 생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의 눈은 사람의 단점만을 볼 줄 알고 사람의 장점을 볼 줄 모른다. 그는 입으로 항상 형제를 비판하는 말만 한다. 이번에 중국 북부지방에 있는 한 형제가 이러한 일들에서 승리하고 돌파하는 일이 있었다. 과거에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의 흠만 보는 사람이었다. 어떤 형제가 자기에게 오면 그에게 예닐곱 가지의 잘못을 지적하고 저 형제가 오면 그에게 예닐곱 가지의 잘못을 지적하곤 했다. 나는 그 형제에게 당신이 다른 형제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당신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의 기질이자 그의 천성이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들은 모두 죄이다.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다 이런 것들 아래 있지 않고 이런 것들 위에 있다.

 


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가짐이 없음 


우리에게는 소극적인 면에서 앞서 말한 많은 죄들이 있을 뿐 아니라, 성경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것도 죄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이 읽은 하나님의 명령 중에서 읽고 순종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얼마나 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는 얼마나 되는가? 어떤 자매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항상 먼저 다투고 나서야 순종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참되게 순종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죄이다.


근심이 죄라고 느끼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가?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다. 이 명령을 지킨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가? 형제자매들은 근심이 죄임을 알아야 한다. 무릇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다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만일 당신이 염려한다면 그것은 곧 범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볼 때 근심, 염려는 다 죄이다. 사람이 볼 때는 근심도 염려도 죄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근심을 죄로 보며 염려도 죄로 본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범사에 “하나님, 당신께 감사하고 당신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 당신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홉 아이를 둔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는 성경이 말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 어머니로서 반드시 염려해야 하며, 만일 염려하지 않는 다면 그것이 죄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염려하는 가운데 두 아들을 잃었고, 다른 아이들도 염려 가운데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 이 자매는 염려가 죄인 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염려를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다.

나아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다. 승리하고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다. 

 무릇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다.
 


7.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음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그분께 철저하게 헌신할 것과 아내와 자녀들을 그분께 드릴 것을 요구하셨고 또한 우리의 사업과 금전을 그분께 완전히 드릴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조금 남겨두려고 한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여, 구약에서는 십분지 일을 드리는 규례가 있지만 신약에서의 우리의 드림은 십분지 십으로서 우리의 집과 토지와 아내와 자녀들과 당신 자신을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줄까 봐 두려워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를 고생시킬까 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그에게 “당신은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과거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말씀을 듣고 오늘부터 부모님께 순종하겠다고 말했다 하자. 생각해 보라. 그의 부모가 고의로 아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며 고의로 고생시키겠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부모가 아니라 법관일 것이다. 만일 부모라면 그의 자녀들을 특별히 긍휼히 여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께서 고의로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당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아버지인 것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오직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게만 참된 능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나님 손에 둘 수 있고 그의 부모와 아내와 자녀들을 하나님 손에 둘 수 있으며 자신의 금전을 하나님 손에 둘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을 자신이 취하지 않으며 또 세상에서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아가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다. 무릇 일이나 물질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승리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일수록 능력이 있다.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마치 하나님께 “더 가져 가소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헌신은 즐거운 생활이며 능력 있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헌신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는 능력이 없다.

 


8. 죄악을 품고 마땅히 자백해야 할 죄를 통회하지 않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처리했지만, 마음속에서부터 자신들이 처리한 것들이 죄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편 66편 18절에서 말한 그들의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이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어떠한 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해 버리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것들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기꺼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남몰래 사랑하는 것이며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비록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으려 하고 또한 우리의 입으로 그러한 것들을 갈망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은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기뻐하고 거기에 발을 내딛기 전에 마음이 먼저 그곳에 가 있었는지 모른다. 많은 때 죄는 밖의 행위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그것이다. 만일 당신의 마음에 여전히 품고 있는 죄악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죄악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여러 가지 죄들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다. 한 형제가 어떤 형제에게 죄를 범했는데 나중에 자신이 이것을 깨닫고 기꺼이 자신이 범죄한 것을 시인한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그는 몇 가지 외적인 변화를 보인다. 그를 대할 때 특별히 잘 대해 주며 만날 때는 손을 꼭 쥐고 더 친밀하게 그를 접대한다.  


형제자매들이여, 태도를 바꾸는 것은 우리의 최상의 방법이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배상해야 할 것들과 배상할 돈이 있는 지도 모른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긴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당신은 당신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죄를 자백하는 것에 관하여, 자세한 죄들까지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없다. 성경이 당신에게 죄를 자백하라고 했지만 소설책을 이야기하는 것같이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이라고 말했다(마 18:15). 사람들이 당신에게 죄를 범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당신에게 와서 “형제님, 제가 당신께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마땅히 그를 용서해야 한다. 감추어진 많은 이야기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고 또 듣고 나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형제자매들이여, 아직도 마음에 사랑하고 있는 죄는 얼마나 되는가? 처리하지 않고 남겨 둔 죄는 얼마나 되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기지 못한다면 그러한 죄들에 대해 승리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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