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누가, 왜, 어떤 기준으로 정경화했을까?
오늘날의 구약성경은 누가, 언제, 왜, 어떤 기준으로 정경화가 이루어졌을까?
구약 정경화에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가, 언제? :
주후 90년,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한 얌니야(Jamnia)에서
‘요하난 벤 자카이’(Johnan Ben Zaakai)라는 랍비의 주제로 유대인 학자들이 모여 종교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를 통해 구약성경 39권이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정경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요하난 벤 자카이’(우리말로 하면, ‘자카이의 아들 요하난’)는 어떤 인물이고, 왜 얌니야까지 왔을까?
요하난은 주후 1세기에 활동했던 바리새파의 대표적인 랍비로 율법학자였다.
그는 주후 70년, 로마 황제 디도(Titus)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될 때,
그를 따르던 바리새인들을 이끌고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얌니야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인한 유대교의 쇠락을 막고,
율법 중심의 ’랍비유대교‘(rabbic Judaism)를 건설코자 ’율법학교‘(벧트 미드라쉬)를 창설한 인물이다.
왜? :
요하난은 왜 구약성경 39권을 정경화 했을까? 아마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인해, ‘제사 중심으로 유대교’가 존폐의 위기에 놓이자,
율법연구 중심의 새로운 ‘랍비유대교’를 재건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즉, 주후 70년 이후에 새롭게 출현한 ‘랍비 유대교’는 율법연구가 주요 일이었기에 신속한 정경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초기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주후 70년 이후에는 유대교와 초기교회와의 신학적,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실례로, 주후 80년경, 얌니야의 랍비 유대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축출하고자
‘쉐모네 에스레’(Shmoneh Esreh, 18축복 문)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일상 기도문에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내용을 첨가함으로 회당으로부터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출회시켰다.
주후 90년 경에는 유대교와 초기 교회가 아예 갈라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구약성경의 정경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너진 유대교를 개건하고 율법연구 중심의 ‘랍비 유대교’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
구약성경 39권 이외에도 당시에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39권은 제외하고 나머진 탈락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경화의 기준은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 모세오경과 그 내용이 일치해야 한다.
둘째, 에스라(Ezra) 이전에 기록된 것이어야 한다.
셋째, 히브리어로 기록되어야 한다.
넷째, 팔레스틴 내에서 기록된 것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정경화에서 탈락되었고, 이러한 책들을 ‘구약 외경(外經)’이라 한다.
구약외경에는 토비아서, 유딧서, 마카비 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이 있다.
참고로 이 일곱 권은 공동번역에 포함되어 있다.
예수 당시에도 어느 정도,
구약성경이 모세오경(토라),
예언서(느비임),
성문서(케투빔)라는 세 덩어리(눅 24:27, 44)로 그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모세오경이 제일 중요한 책으로 간주되었고,
그 다음은 예언서, 성문서였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정경화 되었고,
신약성경은 약 300년 후인,
397 년 칼타고 회의에서 27 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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