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성령세례다!


 

성령세례.. 성령세례.. 많이들 떠듭니다..

성령세례의 뜻도 모르고 말입니다.

 

성령세례는 대체로 성령사역을 한다는 이들의 전용어처럼 보입니다.

 

성경에 성령세례라고 언급한 부분들을 죽 나열하고서는 

“봐라~ 성령세례를 모르면 무식한 것이다.” 또는 “성경을 모르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참에 확실히 하겠습니다.

 

성령세례를 모르면 무식하다고 말하며 성령세례와 성령사역을 엮어서 가르치며..

 

성령의 역사를 임파테이션. 방언. 예언. 신유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어떤 신비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당신이야말로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자라는 것을 이 시간 회복교회는 성토하는 바입니다.

 

성령세례는 합성어입니다.  

성령 + 세례입니다.

 

성령사역도 합성어입니다.  

성령 + 사역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서의 세례도 그리고 성령사역에서의 사역도 모두 성령을 보조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성령세례의 핵심은 성령입니다. 성령사역의 핵심도 성령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성령세례와 성령사역을 한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지도 않은 채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끔찍한 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블랙코미디가 목회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일부 목회자들의 쓰레기 같은 성령해석이 세례와 또는 사역과 결합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성령세례와 참된 성령사역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 어긋한 가르침을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더 직접적으로 성령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임파테이션이 따위가 아닙니다.

신유가 아닙니다. 방언도 아닙니다.

예언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된 성령님의 사역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의 사역의 핵심은 바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이셨습니다.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때 무엇으로 책망하시겠습니까?

 

바로 말씀을 사용하셔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뜻은 또 무엇입니까?

 

진리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따라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뜻은 우리를 말씀 가운데로..

말씀 중심의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종합해 성령님의 사역의 핵심을 설명하겠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떠나 살았던 사람들을 다시 말씀 중심의 삶으로 인도하셔서 그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

그로 인한 죄 등을 깨닫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심판을 준비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

 

이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본질입니다.

아니 전부입니다.

 

따라서 성령세례란 바로 우리가 말씀을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즉, 성령세례가 특별한 능력을 행하는 외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들을 통해 그런 능력이 나타난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비적인 요소가 지금 시대도 나타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처럼...

 

개나 소나 모두 다 예언하고.. 모두 다 방언하고 .. 모두 다 병 고치고 .. 모두 다 귀신 축출하고 ..

모두 다 기적 행하는.. 것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이토록 어지럽게 변한 것은 굉장한 병리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 거듭 반복하지만, 성령님이 일하시는 본질은 성도로 하여금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제1의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결코 어지러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는 그리고 성령사역은 바로 말씀사역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세례와 성령사역을 한다는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신유.. 예언.. 방언.. 축사.. 등에 관심 두는 것을 멀리하게 하고,

오히려 더 말씀만을 가까이하고.. 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사는.. 오직 말씀으로 살고.. 말씀으로 죽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세례와 성령사역을 한다는 목회자들이 걸어야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사역을 한다는 이들이 성도로 하여금 말씀에 집중하도록 인도합니까?

 

아니면 오히려 말씀에서 멀어지고 신비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인도합니까?

 

우리 냉정하게 한국교회의 현실을 돌아보십시다.

 

성령사역을 한다는 목회자들도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도를 오직 말씀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방언.. 예언.. 신유.. 능력 행함 등 신비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그때 열한 사도와 베드로의 모습을 보십시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최초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보십시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무엇을 했습니까?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성령으로 말씀을 온전히 깨달은 베드로의 말씀 선포를 듣고 사람들이 방언했습니까?..

신유했습니까?.. 능력 행했습니까?.. 병 고침이 나타났습니까?..

 

지금 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의 제자가 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진짜 사역입니다.

 

여기에 기적 같은 신비는 성령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역사하셨던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일부분의 신비를 마치 성령사역의 핵심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참담한 짓입니다.

 

영식이가 금과 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금을 두고 철을 엄청나게 자랑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철을 삽니다.

어느새 철은 최고급의 물건이 되고 금은 쓰레기가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이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말씀에 비하면 신비는 그저 말씀을 서포트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서브하는 역할의 신비를 말씀보다 우선시해서 가르친다면

이는 금을 쓰레기로 만들고 철을 귀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우매자들을 양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훗날 금을 요구하시는 임금이 오셨을 때 시민들의 손에 금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다 임금님의 나라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영식이의 미혹을 듣지 않고 금의 가치를 알아서 금을 고이 간직한 이들..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금인 말씀을 가까이하고 소중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철인 신비에 착념해 말씀을 멀리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금인 말씀보다 철인 신비를 더 부각시켜 성도를 미혹시킨 목회자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엄청난 지옥의 고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끝을 묵상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베드로의 설교로 인해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물건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남의 필요를 바라보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도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 가지로 압축하면 무엇이 됩니까?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남의 필요를 바라보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모이기를 즐거워했다는 뜻은 바로 말씀 중심의 사람으로 그들이 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세례.. 성령사역의 참된 목적입니다.

 

참고로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고 혹자는 말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바로 기사와 표적이다.

 

옳습니까?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당시의 사도들은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써야했으며 교회 공동체를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창세로부터 예정된 교회(이것이 성경적인 예정론의 핵심입니다)를 세워야 하는 책임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통해 성령님께서 빈번하게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신 것은 성령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이 완성되고 또 교회라는 공동체가 모습을 갖춘 후에는..

다시 말해 사도의 역할이 끝난 후에는 이제는 말씀으로만 성도들이 양육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예언하고 예수님께서 예언되신 바대로 성육신하신 이후에는

더는 예수님의 초림 예언이 필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초림 예언을 증명하시려고 엘리야에게는 불로서 응답하셨고

엘리사에게는 성벽을 둘러싼 천군과 천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표적과 기사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시려는 성령님의 일하심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하심의 핵심의 중심은 바로 성도를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에 있으셨습니다.

 

따라서 내가 21C에 새로운 사도다! 라고 말하는 신사도를 보시며

성령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실 수밖에 없으신 겁니다.

 

자칭 사도라고 하며 그들이 행하는 일들이 대부분 임파테이션.. 으다다다 방언.. 신변잡기적인 예언.. 신유..

부를 노래하는 것.. 능력 행함 등.. 성도들을 말씀이 아닌 이교도적인 신비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 사도는 없습니다.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인 성경의 완성과 교회 공동체 설립이 모두 끝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완성됐기에 이제 더 이상 초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령님의 신비적인 능력은 종종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왜냐면 성령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살아계셔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나타나는 신비도 역시 결국에는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임을 깨닫는다면

 

성령의 신비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바로 말씀으로 회귀해서

다시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말씀 중심 자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신비를 역사하신 단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령세례는 그리고 성령사역은  

바로 말씀사역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곧 성령님이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예수님은 말씀이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님도 말씀인 것입니다.  

고로 성령님의 사역이란 바로 말씀의 사역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단 하나의 가치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바로 말씀으로 살고 말씀으로 죽어야 한다는 말씀 중심 가치관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성령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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