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최태원(울산지구 전임간사)

 

죄는 인간의 삶이 지닌 가장 슬프고도 보편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죄란 현실적인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아무도 죄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들도 죄 문제를 붙들고 싸웠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어 사전에서는 죄를

도의에서 벗어난 악행,악사(惡事) 벌을 받을 만한 일 법률에 위반되어 형벌을 면치못하는 불법행위 (불교)교법을 어긴 무자비한 행위 (기독교)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죄에 대해 좀더 깊게, 심각하게 주장하며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고 기록하고 있으며, 시편 기자는 죄가 머리털보다 많다’(40:12),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51: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512절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다. 결국 성경에서의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서 죄는 언제나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및 인간과 도덕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의 관계 안에서 정의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죄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구약성경에 나타난 죄와 관련된 용어들


먼저 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과 구약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죄와 관련된 용어들은 어떤 것이 있고,

그 의미가 어떻게 사용되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먼저 구약성경에 나타난 죄와 관련되 용어들을 몇가지 의미 별로 살펴보자.

 

1) 선과 정의로부터 이탈을 가리키는 공식적 용어들 

 이것의 가장 일반적인 어근은 [하타]-실패,실수,-이다. 이는 헬라어 [하마르타노], [하마르티아]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용어의 동사는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을>것이 없을 것이며’(5:24)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없는 자더라’(20:16)에서 <잃다, 빗나가다>라는 구체적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이 동사는 동료 인간들(.20:9)이나 하나님(.5:7)께 대한 영적, 도덕적 과오를 나타내고 있다. 또는 죄에 수반된 형벌이나 죄과를 나타내기도 한다(.43:9). 그리고 이 용어는 특정한 어형으로서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행위, 특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속죄제물을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죄로부터의 정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6:26).

 

이 용어의 명사형 [하타트]는 종종 제의적 문맥 속에서 속죄 제물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어 있다. 또한 동사 [아바르]는 하나님의 말씀, 명령, 계율 혹은 계약등을 간과하거나, 이를 어기는 행위를 나타내는 형식적이며 비명시적인 용어다. 그밖에도 무지로 인한 과오을 나타내는 [샤가],[샤가그]방황하다, 길을 잃다라는 의미를 지닌 [타아]가 있다.

 

2)하나님을 거스리는 죄를 가리키는 신학적 용어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지닌 가장 심오한 단어는 [파사]-반역하다, 위반하다, 거스리다의 뜻-이다. 이는 단순한 실수나 오류가 아닌 <의도적인 불복종>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 국가에 대한 반역이나 사람들에 대한 범죄를 의미하기도 한다(.왕상 12:19; 1:3이하).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와 그의 계율의 위반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러한 죄에 수반되는 죄과를 가리키기도 한다(.33:9). 또다른 용어는 [하나프]-불경건하다, 속되다; 이 용어의 파생어들은<속됨, 타락>, <불경건한>, <속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있다.-로서 이는 거룩한 것에 대한 냉혹한 모독을 가리킨다. 동사형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혹은 하나님께 대하여 불경건한 태도를 취하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타락하다>의 의미도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또다른 용어는 [마알]-거짓으로 행하다-로서, 신성목독이나 하나님께 대한 배신을 가리킨다.

 

3)죄인의 내적인 상태에 대한 용어들 

 [아아]-그릇되게 행하거나 그릇된 상태에 빠지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악함을 나타낸다. 또한 심리적인 당혹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라아]-악하다-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질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하지만, 이 용어의 중요한 의미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의와 사악함 속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영적 악함이다. <행악자>,<악인>이라는 말은 곧 죄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라샤아]-죄짓다,사악하다; 파생어는 <사악하고, 죄된 행위>, <죄된>, <사악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의롭다>[차다크]에 정반대되는 용어이다. 이는 분명히 법적인 것에 연관되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법적 용어에 불과한 것이 아닌 죄인의 타락한 내적 상태를 가리킨다(. 1:4에서의 <죄인>, 57:20에서의 <악인>). 이 용어는 <죄인>을 가리키는 구약의 가장 중요한 용어다.

 

4)윤리적 성격이 강한 용어들 :

[라아]-악하다-[라샤아]-사악하다-, 둘다 윤리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용어로는 [하마스]-난폭하게 혹은 나쁘게 대하다; 파생어는 <난폭한 행위>의 의미를 지닌다.-, [아알]-그릇된 일을 행하다, 완악한 일을 행하다.-이 있다.

 

5)죄의 유해한 결과들을 나타내는 용어들 :

[아말]-고생,근심,불행-[라아]--와 용례가 비슷한 용어다. 그리고 [아온]도 여기에 속하며, 이 용어는 종종 사악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 근심과 슬픔을 가리키며(4;8), 이런 근심과 슬픔을 초래하는 죄의 전체적인 속성을 가리키기도 한다(1:13). 그리고 이 용어는 시편(. 64:2)에서 속임수와 거짓말의 악의에 찬 비방과 관련되어 있다.

 

6)죄과를 나타내는 용어들 :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죄와 죄의 결과인 죄과를 구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미 살펴본 용어들은 죄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죄과를 나타내는 특별한 용어도 있는데, 그것은 [아셈]-정죄받다,비난받다-이다. 이 용어는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로 인한 유해한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헌물로 바친 금으로 만든 독종과 쥐로 서술되어 있는 삼상 6:3-4, 8,17에 매우 분명히 나타나 있다. 여기서 이 용어는 사제법전과 겔40장 이하에서 종종 나타나있는 바와 같이 <속건제>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이 용어는 인간의 영적인 상황과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제책에 관련된 용어로 사용되어 있기도 하다.

 

7) 이상에서 살펴본 용어들은

구약성경 안에서 사용되어진 죄에 대한 어휘들 전체가 결코 아니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용어들은 죄가 완고함, 교만, 교리의 위반, 어리석음, 속임, 부정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구약에는 모든 특수한 죄명들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죄를 나타내는 여러 용어들이 종종 동의어와 함께 쓰여져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34:7,9; 16:16, 21; 9:6-9; 32;1이하, 51:1이하; 6:12-14; 1:4; 9:5)


 

2. 신약성경에 나타난 죄와 관련되 용어들


신약성경 안에는 죄에 대한 모든 옛 개념들과 용어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보다 더 심화되어 있고, 또한 놀라울 만큼 변형되어 있다.

 

1)<선으로부터의 이탈>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용어들 :

약의 [하타]와 같은 의미를 지닌 [하마르티아]--는 고전적인 용법에 있어서 표적이나 길에서 빗나가는 것을 가리켰으며, 지적인 또는 도덕적인 오류를 가리키기도 했다. 때때로 이웃 동료들에 대한 그릇된 행위를 나타내기도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여기서 파생된 [하마르테마]<죄된 행위>를 가리키며, [하마르타노]<표적에서 빗나가다, 죄를 짓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하마르톨로스]는 죄인을 가리킨다. 신약에서 [하마르테마]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하마르티아]가 자주 사용되었는데, 일상적으로 죄된 행위, 특히 죄된 행위의 내적인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바울과 요한은 이 용어를 삶의 죄된 속성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하마르톨로스][라샤아]-죄있는자, 사악한자-의 번역으로 자주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에게 이 용어를 적용시키지 않고 그들의 적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적용시켰다. 이 용어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는, 사회학적-윤리적 의미에 있어서 세리나 매춘부와 같은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들을 가리킨다(9:10-11; 11:19; 7:37; 19:7; 딤전 1:9; 4:8; 5:20). 둘째로는 바리새인들은 이 용어를 그들의 규례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했다(9:16이하). 셋째는, 70인역에서 때때로 이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있다(26:45; 14:41; 6:32-34). 넷째, 보다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바,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있으며(8:38; 5:8; 2:17; 7:26), 또한 자신의 죄를 깨닫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있기도 하다(5:8; 18:13; 딤전 1:15).

 

죄를 가리키는 또 다른 공식적인 용어는 [파랍토마]-범죄-로서, 죄된 상태보다는 개인적인 과오를 나타내는 용어다(참조; 2:1 “너희의 [파랍토마]를 통하여 죽은”). 6:6에서 이 용어의 동사형인 [파라핍테인]하나님으로부터 변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다른 용어로는 [파라바시스]-위반-는 목적어와 함께 사용되어서 [파랍토마]보다 더 강경한 의미로서 고의적으로 도덕이나 율법을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파생어로 [파라바테스]<위반자>, [파라바이노]<도를 지나치다, 위반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신학적 의미를 지닌 용어들 :

여기에 해당하는 용어는 <무법>의 의미를 지니는 [아노미아]. 이는 또한 율법을 멸시하거나 율법에 거스리는 태도나 상태,<부정함>이나<사악함>을 가리킨다. <불복종>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파라코에]는 이따끔 신약에서 하나님께 대한 불복종으로 사용되어지기도했다(5:19). 죄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용어는 <불경, 하나님을 믿지않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세베이아]이며, 이는 인간에 대한 그릇된 행위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죄를 가리킨다.

 

3)영적인 사악함을 나타내는 용어들 :

[카키아], [카코스] 그리고 [포네리아], [포네로스]<나쁜, 악한>의 뜻을 나타내며, 모두 성격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의 악을 가리킨다. 이 용어들은 70인역에서 [로아][라아]의 번역어로, 도덕적이고 영적인 타락을 가리킨다. 그리고 명사적으로 사용된 이 용어의 중성 형용사[포네로스]는 도덕적인 악을 가리키며, [호 포네로스]는 특히 악마를 가리킨다(13:19).

 

4)윤리적, 법적 용어들 :

고전적인 용례의 그릇된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는 [아디키아]-불의, 불공정-. 신약 안에는 [아디케마: 비행], [아디케오: 그릇된 일이나 불의를 행하다], [아디코스: 불의하게]가 있다. 특별히 나쁜 일에 대하여 <죄가 있음> 혹은 <책임져야 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인 [에노코스]는 약간 드물게 사용되어 있다(. 3:29). 그리고 마 6:12(참조. 11:4)에는 [오페이레마]--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지고 있는 죄의 무거운 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3. 죄의 기원에 관한 고찰

 

구약에서는 인류 죄의 기원에 대한 고찰이 이상할 만큼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창세기 3 장의 타락 기사가, 비록 그 안에 <>를 가리키는 용어가 사용되어 있지는 않지만, 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신약에서도 이에 대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5:12),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5:19)라고 기록하고 있다.

 

죄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악마적인 영향력에 의해 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의 뱀을 악마로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3장 자체 안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한 아무런 암시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구약에서의 죄의 기원은 역사적, 우주론적 고찰을 통해 찾아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삶속에서 <실존적으로> 죄의 기원을 추구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성경에는 죄를 인간의 피조성이나 성적인 출산으로 인해 생겨 난 것으로 보는 견해는 전혀 없다. 14:1, 15:14; 51:5 등의 구절에서 단지 인간은 잉태되었을 때부터 죄인이며, 연약한 육체는 모든 악에 쉽게 빠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레미아는 죄가 인간의 타락한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리고 죄인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존재의 중심에서 그의 창조주 하나님과 불화 관계속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29:13)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인간 마음의 죄악의 깊이에 대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17:9)라고 했다. 모든 죄악은 바로 이러한 악한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지 않는 한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11:19, 18:13, 36:26).

 

죄가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있는 까닭에 모든 인간들은 죄로 더럽혀지는 것을 면할 수 없고, 그 어떠한 행동도 죄로부터 완전히 면제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제의적인 죄, 사회 정치적인 죄, 교만과 증오와 시기심과 같은 영적인 죄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죄는 인가의 의도와 욕망 속에도 깃들어 있다(20:17). 뿐만 아니라 죄에는 다른 사람이 전혀 모르고있는 죄(19:12; 90:18)나 죄인 자신마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죄(4:2이하)가 있다.

 

야고보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4-15)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가 악에 끌리는 성향(정욕과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마땅히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13:14, 5:16-21), 이러한 욕망들을 제어하지 못한 책임은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죄의 원리를 제시한다. 예수님도 죄는 인간의 타락한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말씀하셨다(7:21-23). 또한 바울은 육체를 죄의 연합체이자 수단으로 봤다. <육체>란 용어를 영의 영역에 상반되는 인간 안에 깃들어 있는 악의 영역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육체의 <열매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몸에 속한 죄들일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속한 죄들이기도 함을 분명히 하고있다(5:19-21). 7:5-8:13에는 육체가 율법, 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4. 인류의 삶에 나타난 죄

 

1) 원죄(peccatum originale)

인간은 죄악된 상태와 조건 안에서 태어난다. 이 상태를 원죄(peccatum originale)라고 한다. 이 죄를 원죄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원초적인 뿌리로부터 파생되는 때문이며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생명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모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인간의 삶을 오염시키는 모든 실제적인 죄들의 내적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담의 불순종은 전 인류에게 죄성 (罪性)과 죽음을 가져왔는데 이레니우스 (Irenaeus, 주후 130-202)는 말하기를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함께 범죄 했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출생전의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이라고 한 것같이(7:8, 10)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그의 머리에서 함께 범죄한 것이라 했다.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은 말하기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의 본성이 더러워지고 그 영혼 속에 악이 깃들게 되었는데 아담으로 인해 그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본성의 오염을 원죄 (原罪, original sin)라 불렀다. 원죄교리를 최초로 분명하게 말한 이가 터툴리안인데 범죄 전의 아담은 순전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손들에게 물려준 인간본성은 죄의 경향성을 띤 오염된 본성이었고 따라서 아이들까지도 죄로 오염된 채 출생한다고(51:5)보았다. 한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중심한 동방의 교부들은 원죄사상이 약했다. 클레멘트(Clement, 30-100)는 아담이 완전하게 창조되지는 않았지만 순종함으로 완전함에 나아갈 수 있었는데 타락함으로 영생을 잃고 의지는 악화되어 죄를 짓는 경향성(傾向性)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이기는 하나 그 후손들은 그들 스스로 죄를 짓게되기까지 아담의 타락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모태에서 적신(赤身)으로 나올 때(1:21) 어린아이는 죄와 상관없는 깨끗한 상태에서 출생한다고 보았다.

 

아무튼 원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며(3:4), 죄의 종(6:16)이 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으며(3:19), 죄값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6:23). 게다가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었고(3:2), 구원(1:16)과 복음(28:19)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2) 자범죄(Actual Sin)

원죄는 인류의 대표인 아담의 자유로운 행위, 곧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그의 행위와 이로 인한 인간 본성의 부패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원죄는 인간의 오염된 자질 또는 상태이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패가 모든 자범죄의 거룩하지 못한 원천이다.

 

자범죄(실제적 죄)라는 용어는 몸을 통하여 행해진 외적 행위들 뿐 아니라 원죄에서 유래하는 모든 의식적인 사유와 의지를 가리킨다. 결국 원죄는 하나요 자범죄는 다양하다. 자범죄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의식적인 의심이나 악한 계획 또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특별한 의식적인 욕망이나 탐욕 같은 내적인 자질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속임 도둑질, 간음, 살인 등과 같은 외적인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3)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이 죄에 대해서는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며, 기도해도 소용없다. 이 죄는 일반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 불린다. 주님은 마 12:31,32 과 이와 상응하는 병행구절에서 이 죄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며, 6:4-6; 10:26-27 그리고 요 5:16 은 이 죄에 대해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이 죄는 증거와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성령의 증거를 의식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중상함과 동시에 질시와 증오심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어둠의 권세 잡은 자의 일로 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 죄는 진리를 의심하거나 단순히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다만 마음의 확신과 양심의 조명과 믿음의 판결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회개를 거부하고 양심을 마비시키며, 죄인을 완고하게 만듦으로써,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죄 뒤에 회개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죄를 범한 사실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자들은 이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5. 죄의 결과

 

1) 최초의 죄의 결과

최초의 죄의 결과는 인간 본성의 전적인 타락이다. 죄는 그의 전인(全人)에 전염됨으로써 그의 본성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몸과 영혼의 모든 권능과 기능이 손상을 입게 되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말하고있다(6:5; 14:3; 7:18) 여기서 말하는 전적인 타락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에 있어서 조차 타락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적인 타락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삶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전적인 부패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 인간은 원의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인간은 참된 생명과 복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었으며, 그 결과로 영적인 죽음이 초래되었다.(2:1,5,12; 4:18)

 

또한, 이 죄로 인해 수치심과 벗은 부분을 가리려는 시도를 통해 나타났다. 다음으로 죄책감이 있었다. 영적인 죽음뿐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까지도 초래되었다. 인간은 죽을 수 없는 상태로부터 죽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하강했다. 인간은 원래 취함을 입었던 흙으로 되돌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3:19) 바울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으며(5:12),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6:23)

이 변화에는 거주지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초래된다. 인간은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낙원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를 표현할 뿐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순종하는 생활을 계속할 때 인간에게 베풀기로 약속한 더 충만한 생명과 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나무 접근조차 금지되었다.

 

2) 죄에 대한 실제적 형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그들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동시에 그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최고 통치자로서 각 국가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선포하기도 하셨으며(1:1-2:3), 예언자들은 수차에 걸쳐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2:10-21, 5:26-30; 25:8-11, 9, 18:16, 3:10-11).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죄는 악한 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수반되는 죄과와 그것의 고통스러운 결과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왕상 8:32에서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행위를 그들의 머리에 돌리사 그들을 심판하시니라고 했다. 죄는 더 많은 죄와 더 큰 고통을 낳으며, 이러한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위하고, 이에 따르는 평안과 안녕의 모든 축복들을 향유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고통과 불행 속에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을 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26:27-28)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을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RSV, do not punish us)"(12:11)라는 구절 속에서도 역시, 고통은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되었으며, 큰 고통은 큰 사악함의 형벌로 이해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나라가 파멸되고, 그들이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로 간주했었다(왕하 17:6이하). 그러나 의인이라고 해서 항상 번영을 누리는 것이 아니며, 악인이라고 새서 항상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21: 17-26; 73; 12:1-4)과 고통의 정도가 항상 죄의 크기에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1:13)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초래된 삶의 고통은 인간의 삶 전체를 교란시킨다. 인간의 육신적인 삶은 연약성과 질병의 포로가 되어있으며, 그로 인해 불안과 쓰라린 고통이 초래되기도 했다. 인간의 정신 생활 또한 그를 좌절하게 만드는 갖가지 방해거리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이로 인해 인간은 종종 삶의 기쁨을 빼앗기고, 일상적인 의무를 담당할 기력을 상실하며, 때로는 정신적인 균형을 완전히 잃고 만다. 인간의 영혼 자체가 이미 갈등하는 사상, 열정, 욕망의 전투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해체의 상태에 들어가며, 이때 아주 독초와도 같은 고통이 뒤따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피조물 전체가 허무한 것과 부패의 굴레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낙원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경고하신 형벌은 사망이다. 이것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는 에덴 동산에서의 금령과 이러한 금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에게 선고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는 말씀속에 잘 예시되어있다. 인간의 사멸성은 죄에 대한 형벌 즉 결과로 규정되어있다. 모세 오경의 율법들에는 가장 사악한 죄들에 대해 사형이 언도되어있다(21:15-17, 20:10-16).

 

그리고 회개치 아니한 사악한자들에게 이에 대한 형벌로써 죽음이 언도되어 있는 경우에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73:27; 3;19). 즉 여기서의 사망은 전인으로서의 인간의 죽음 곧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죄 가운데 죽는다”(8:24)허물과 죄로 죽었다”(2:1,5)라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 즉 이 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서 다시는 영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인, 하나님께 대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죽음은 영적인 죽음의 절정이요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속박이 제거되고 죄로 인하 부패가 완성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저주받은 자에게 임한다. 인간의 생명과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는데, 이것은 가장 두려운 의미에서의 죽음이다. 인간의 외적 조건은 악한 영혼의 내적인 상태에 부합한다. 양심의 고통과 더불어 육체적 고통도 뒤따른다. 고통의 연기는 영원토록 솟아오른다.(14:11)


 

6. 죄의 해결책에 대한 고찰


죄에 대한 일련의 모든 논의들은 이러한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제시되어온 해결책에 대한 고찰없이는 결코 완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구약에서는 죄로부터의 궁극적인 해결책을 명백하게 제시하고있지는 않다. 히브리인들은 각기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죄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 먼저 그들은 제의의식을 통해 속죄를 구하였으며, 또한 후대의 유대 율법주의에서는 토라의 모든 내용과 해석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죄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영적인 깊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이런 방법들 속에서 궁극적인 위안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고백과 신뢰를 통해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내어 맡겼으며, 결국 구약성경적 신앙의 가장 지고한 통찰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3:8)는 고백이었다.

 

신약에 와서는 죄의 본질과 그 결과에 대해 구약처럼 어두운 견해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러한 사항들을 보다 명백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약은 죄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있는 까닭에 죄를 심각하게 취급할 수 있었다. 신약의 이런 엄격한 가르침의 참된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로 함을 인식시키는데 있다. 죄에 대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다. “육신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3-4).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하시리라”(1:21).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 그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오셨다”(9:13).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또한 그는 참으로 세리와 죄인이 친구이셨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다. 즉 죄인은 거룩하시고 은헤가 풍성하신 분과 마주 대하게 될 때,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이를 완전히 내어버리게 되는 것이다(참조. 5:8; 7:37이하; 19:8)

 

예수는 또한 세례요한과 마찬가지로(3:2, 1:4, 3:3)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선포했다(9:2, 18:3). 그후 이 메시지는 교회가 세계 각지에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가장 절박하고도, 핵심적인 선포내용이 되었다(24;47, 2:38, 5:31, 10:43).


서신서들에서는 그리스도의 사역, 특히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화해가 죄의 세력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로 제시되고 있다. (3:25, 4:25, 5:21, 7:25; 고후5:21; 1:4; 1:14; 2:17; 벧전 2:24, 3;18; 요일1:7; 2:2; 4:10; 1:5). 바울은 또한 죄인은 율법의 행위와는 별도로 오로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 이것은 또한 죄인의 중생과 변화를 포함하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은 이제 그리스도안에있는 새로운 인간으로서(3:10-11),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이제 그 안에 사는 것은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이시며(2:20), 이로 인하여 그 속에 있던 옛날 죄된 본성은 죽고, 새로운 영적 생명이 솟아난다(8:10, 고후5:14-15; 벧전 2:24; 3:18). 이제 그의 의무는 더 이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되는 것이다(12:2). 그는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1:13).

 

이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의를 얻는가어떻게 죄과를 벗어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새로운 삶의 영역 속에서 계속적으로 살아갈 것인가?’하는 성화의 문제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다. 그러나 바울의 체험처럼 아무리 고결한 성인일지라도 죄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단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사이의 참다운 차이는 그들 각자의 삶의 원칙에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결코 죄에 넘겨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매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11:4)라고 기도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으며, 항상 하나님의 은총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7. 맺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신.구약 성경의 용어적 의미와 죄의 기원, 인류의 삶에 나타난 죄, 죄의 결과들 그리고 죄에 대한 해결책들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에 대해 결코 무관심하실 수 없으시다. 그래서 그는 진노를 나타내신다. 이것은 성질을 참지 못해 내는 격정이 아니라, 죄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며, 그분의 거룩함으로부터 비롯된 악의 없는 의로운 목적이다. 우리의 양심의 고통은 하나님이 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노력으로 죄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고(7), 그의 진리를 분별 할 수도 없다(고전 2:14). 다만 하나님만이 우리를 이끌어 변화시킬 수 있다(3:3이하; 6:44,45).

 

죄의 중대성과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소망을 제시한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죽으심, 부활을 통해(10:45), 죄를 용서하시고 결국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도말 하신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이미 죄책과 심판에서 놓임을 받았고, 그들의 삶에서 어느 정도는 죄의 권세를 정복하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의 마지막 단계는 새 창조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21:22 - 22:5)




죄의 기원


죄는 대부분 성경에 문서로 죄의 목록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죄로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도 천사의 타락, 선악과 범죄, 포악함에 대한 인식은 있었는데

노아홍수는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인간의 범죄로 심판을 받은 사례였다

그러므로 죄의 목록에 대한 문서의 기원은 율법이지만 사람의 본성에 있는 도덕률은 인간의 양심에 심겨진 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양심이 죄의 여부를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사의 타락 : 천사장이었던 루시퍼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반역하여 사탄이 되었고 반역에 참가했던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가 되었다

인간의 타락 :  아담과 이브가 신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과일을 먹은 것이 죄의 기원이다

최초의 살인 : 아담의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함으로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사탄의 유혹 : 사탄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혹하고 사람이 미혹당함으로 죄를 짓게 한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죄란 무엇인가?


율법과 양심의 도덕률


인간이 율법(십계명)을 거스르며 의식적으로 자율 의지를 발동하는 것이지만 양심에 심겨진 도덕률은 죄책감으로 자각한다.

죄의 관념은 종교 일반에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유태교나 기독교에서 뚜렷하다.

성서의 죄를 가리키는 원어는 본래 '목표에 어긋나다' '기준에서 벗어난 것' 뜻으로, 신이 요구하는 의지를 거역한 인간이 인격적인 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깊이 스스로를 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기준이 되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악한 행동만이 아니라 악한 생각도 포함한다. 또한 죄는 개별 행위만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죄의 결과 : 추방과 심판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사탄과 반역에 참가한 천사들도 하늘에서 추방당했다

노아대홍수 인류의 타락 : 인류의 포악함이 극에 달해 노아가족 외에 모든 인류가 홍수로 멸망당했다

소돔과고모라 도시 타락 : 성적타락으로 인해 불과 유황이 비같이 내려 도시를 태워버렸다

민족의 타락 :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질 때 전쟁을 통해 징계하셨다

개인의 타락 : 예수께서는 어린양의 피로 속죄함을 받지 못할 경우 죄의 결과는 사망과 심판 즉 불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 경고하셨다



죄의 유형 : 죄를 지은 대상

하나님께 지은 죄 :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무신론,진화론,공산당)), 신성모독, 우상숭배(거짓종교, 탐욕,반역,불순종)가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이 목록은 죄로 인정하지 않지만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에서 보면 본질적인 것이다

사람에게 지은 죄 :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으로 살인,도덕질,음행,거짓말,비방,불법,교만,악행,폭력,악한생각 등이 있다

사람에게 행해진 죄들도 사회법에 불법인 경우와 위반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사회법에 위반되지는 않지만 마음에 지은 범죄도 죄로 인정된다



속죄와 용서 : 중재자 여부

성경에서는 죄를 규정하고 비참한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죄의 용서, 속죄방법에 대해서도 안내한다

타종교, 불교나 이슬람, 힌두교는 죄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지 않을 뿐 아니라 용서의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이지 않다

불교에서 죄는 업보로 가고 업보는 다음 생애를 결정짓는데(윤회).. 해탈, 열반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다

불교의 해탈은 번뇌와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관계없이 사는 것(욕망을 가지든 버리든 상관없다)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는데 신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속이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기독교에서 죄는 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야 소멸된다

불교에서는 죄를 해결하는 주체가 당사자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중재자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사람사이에 지은 죄도 내가 상대방에 지은 죄를 잊어서 해결하려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용서해야 해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죄의 크기, 경중

큰 죄, 작은 죄, 용서받을 수 있는 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있는가?

어떤 죄가 가장 큰 죄인가요?

수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한 신자가 천국에서 크다 인정함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죄는 가장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이끈 사람일 것이다

기독교를 공격하고 사람들을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만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진화론을 만든 다윈이 그렇고 신무신론의 기수들이 그렇고 히틀러,모택동,김일성처럼 사상으로 미혹한 독재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물론 석가모니나 무함마드는 가장 정점에 있고 그를 따랐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다



교회안에서 죄의 경중을 따진다면

잘못된 진리로 이끈 거짓선지자들이 있을 것이고 타락한 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을 실족하게 한 종교지도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습 자체는 죄가 아닐 수 있지만

명망있는 지도자가 세습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게 했다면 실족하게 한 죄를 그에게 물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죄는 파급성과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죄의 용서를 받는 방식에서 죄의 크기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를 받으므로 그들의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1~5)


심판의 시기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존재, 악의 허용을 가지고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악을 방치하는가?" 묻는다

사람의 생전에는 하나님께서 악인이나 선인에게 똑같이 공급하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5)

악인이라도 기본적인 은혜를 공급하는데 차별이 없다

특별한 경우 심판을 죽기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근본적이고 파국적인 심판은 사후에 일어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죄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 중 공통적으로 성도의 승리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죄로부터 자기 옷을 지키는 자이며, 어린양의 피로 두루마기를 씻는 자다
이기는 자에게는


- 천국의 생명나무의 열매를먹을 수 있고
- 면류관을 얻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을 수 있고
-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 철장으로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받으며
- 흰옷을 입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며
- 성전의 기둥이 되며 새 예루살렘성에 새 이름이 기록된다
- 보좌에 앉을 수 있는 권세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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