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안의 신비주의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객관적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아니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노력을 말한다. 따라서 신비주의 특징은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수단을 무시한다는 것과,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기도나 명상 또는 금욕과 고행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마음속에 일어나는직접적 체험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신비주의란 원래 이방 종교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것인데, 기독교에도 들어 와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특히 중세 교회에 성행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신비주의자로는 끌레르보의 버나드와 마이스터 에카르트가 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도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일제 시대의 고난받는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을 노래한 이용도와 자기가 곧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황국주가 대표적인 신비주의자들이다.

 

 

해방 후의 성령 운동

 

7, 80년대에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성령 운동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분석하기도 했지만, 이보다도 훨씬 더 깊은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한국인의 심성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 한국의 전통 종교들에서는 객관적 규범이 결여되어 있으며 주관적인 체험과 기복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전통적인 무속신앙(shamanism)은 모든 물체의 배후에 정령(精靈)이 있다는 물활론(物活論, animism)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질병과 재앙을 쫓기 위해서는 무당(shaman)을 불러 이러한 악귀들을 쫓아내고 달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앙 체계에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며,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규범이 있을 수 없었다. 오직 그 당시의 질병과 재앙을 피하고 나 혼자 복 받으면 된다는 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이고 실용적인 생각만이 지배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와 유교 하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수천 년을 지내 온 한국인의 심성에는 살아 계신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자리잡기 어려웠으며, 이 세상에 내재하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훨씬 더 솔깃하고 생래적으로 친근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성령을 통해 우리가 온갖 은사들을 받으며, 병이 낫고 부자가 된다고 가르칠 때, 한국 사람들이 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직접적으로 성령과 교통하고, 성령을 통해 복을 받으려는 신비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의 감정주의 신앙

 

이러한 한국 교회의 신비주의적 경향은 90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동안의 경제 발전에 따라 7, 80년대와 같이 병 낫고 부자가 되는 일차원적인 기복적 경향은 조금 완화되었지만, 다른 형태의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경향은 한국 교회를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며 신비주의적 경향을 몰고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도찬양두 가지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1) 기도

한국 교회 성도들의 기도하는 방식은 서양의 성도들에 비해 큰 차이가 난다. 서양 사람들은 대개 조용히 또는 소리내지 않고 기도한다. 그러나 한국의 성도들은 대개 왁자지껄하게 기도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또는 같은 말을 주문처럼 반복할 때가 많다. 이것은 자기의 감정에 의지하여 기도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와야 기도가 되고 마음속에 확신이 와야만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생각하는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의 결과이다.

 

이러한 것은 살아 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감정의 상태에 따라 들으시거나 안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믿음으로 진실하게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6:8).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웅성거리는 통성기도를 좋아하고, 의미 없는 말들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은 다 초월하신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며, 한국 사람들의 내재적인 신관 내지는 주관주의적이고 체험적인 신인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2) 찬양

요즘 들어 한국 교회에 크게 일어나고 있는 찬양 열풍도 한국 교회의 신비주의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찬양 그 자체는 좋은 일이며 요즘 나오는 복음성가들 중에는 가사도 좋고 곡이 아름다운 것이 많아서 신앙생활에 큰 활력이 되며 기쁨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늘 새 노래로 찬양하며 즐거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금에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찬양 열풍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우려할 만한 측면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참되게 찬양하는 것에서 벗어나 점점 주관적이고도 감정적인 자기 만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다짐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위엄을 높이는 찬양이라면, 형식과 방법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열광적이고 반복적인 찬양을 통해 나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뜨겁게 하며, 그 가운데서 마음속에 감정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이것은 거룩한 찬양을 자기의 이기적인 욕구 만족을 위해 오용하는 것이 되고 만다. 여기에는 한국 민족의 뿌리 깊은 주관적이고 기복적인 종교적 심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발전은 위험한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극히 주관화되고 감정적으로 되며,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희박하며, 그저 자기 기분에 좋은 대로 신앙생활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와 아울러서 그들이 믿는 바신앙의 내용교리에 대한 관심이 매우 약화되어서, 아주 초보적인 교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신앙이 주로 자기의 주관적 감정의 만족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무관심사회 의식의 결여등 윤리 부재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윤리 의식의 약화

물론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젊은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요 잘못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내재주의적, 신비주의적, 이기주의적 종교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기독교의 참 하나님을 믿을 때에도 내면적으로,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믿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이미 신앙의 주관화, 내면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객관적인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관심의 약화는윤리 의식의 약화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 실천해야 한다는사회적 사명을 등한히 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그저 교회에 와서 통성기도하고 열광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자기 마음에 만족을 얻으면 그뿐이라는 이기주의적 신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신앙에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사로 주일을 어기고 쉽게 주일 예배에 빠진다. 그저 기분 나면 한번씩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마음속에죄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 시간에 그들의 죄를 분명히 지적하지 못한 영향도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총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객관적인하나님 말씀의 붕괴와주관주의적 신앙의 발로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것은 예로부터 있어 왔던신비주의의 한 형태로서, 한국의토속적 신앙에 뿌리를 둔 종교적 심성 때문에 쉽사리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되며,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뉴 에이지 운동의 영향이 가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은혜의 수단인 말씀


따라서 이러한 위협과 도전에 직면한 한국 교회는 과거 2천년 동안 전통 교회가 가르쳐 왔고 특히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했던 ‘은혜의 수단으로서의하나님의 말씀에 좀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며, 이처럼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신비주의가 만연하는 시대에 객관적인하나님의 은혜의 사실들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교가 단지 성도들의 ‘마음속에은혜를 끼치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성도들이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신앙의 내용에 좀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배우는 ‘성경 공부에 좀더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체험이나 감정에 선행(先行)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더욱 힘차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을 존중히 여기며,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사명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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