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사라져야 할 병폐



오늘날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병폐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병폐들이 교회를 부패하게 하고 사회를 지도해야 할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서구 교회들이 몰락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는 지금의 한국교회 현상과 맞물려 있음을 본다. 이제 우리는 곪아 터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상을 감추고 싸매는 일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할 것이 아니라 째고 치료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 타락의 중심에는 물질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인 병폐들이 무엇인가?

첫째, 문화적인 병폐이다

교회가 타락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물질적인 타락으로 국민 소득의 GNP(국민총생산)와 무관하지 않다. 방송에 의하면 한국인 GNP(Gross National Product)는 명목 소득이 2만 불이라지만 생활수준이 실제로는 3만 1000불에 달한다고 한다. 선진국 수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높은 GNP가 달갑지 않은 것은 그만큼 빈부의 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교회는 가난한 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부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일을 실행하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교회 시설의 확장을 보면 기도하고 말씀 배우는 영적인 측면보다는 교제하고 누리는 문화적인 측면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본다.

문화란 편리함이 우선이다. 그 편리함이 좋은 면에서 시작하지만, 마약과 같아서 점점 육을 만족하게 하는 길로 치달으면서 교회가 가진 본래의 영성을 허물어 가기 시작한다. 교회의 외적 성장을 꾀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보니까 문화 집중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교인의 숫자가 불어나게 되면 대부분의 교회가 문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의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육적 성장의 함정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의 큰 교단 총회들은 하회에서 들어오는 그 상회비가 엄청나다. 여러 가지 문화적인 명목의 총회 지원금이 또한 엄청나다. 그러한 돈들이 순전한 선교 정신에서 사용된다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각 부의 장이나 임원의 재량(裁量)에 따라 비목적인 부분에 제한 없이 지출되고 있는 일이 허다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감시하여야 할 감사부마저도 같은 통속이 되어서 이미 수입된 돈은 사용하는 자가 임자라는 말이 떠돈 지 오래다.

또한, 교회가 성장하면서 수입이 많아지고 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부서들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문화적인 명목에 의해 생긴 그 부서들은 먹이 사슬에 의해 담임목사에게 죽도록 충성하게 되어 있고 담임목사가 사용하는 금액은 제동을 걸 수 있는 일이 느슨하여질 수밖에 없고 그 틈을 타서 담임목사는 물욕이 서서히 자라게 되면서 아름다운 명목하에 많은 헌금이 공중에서 분해되어 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들은 오직 담임목사의 양심에만 맡기게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물론 담임목사가 물질 사용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제도적인 병폐이다

각 교단의 임시목사와 위임목사의 제도가 그것이다. 임시목사는 매년 시무를 투표로 결정 받아야 하는 것에 비해 위임목사는 시무 기간이 각 교단의 헌법에 따라 종신에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비민주적이다. 민주적인 것이 다 옳지는 않지만, 시무 기간에서 임시목사는 제한적이고 위임목사는 무제한적이라는 차별은 분명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에서는 임시목사를 시무목사로 하고 3년마다 시무를 결정하게 되어 있지만, 위임목사는 아무런 제동이 없다. 위임의 본래 목적은 결격 사항이 없으면 은퇴 연한까지 시무하게 되어 있지만 크고 좋은 교회가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예사였음은 그 제도의 실수임을 알아야 한다. 임시목사는 항상 제도권 아래 있고 위임목사는 언제나 제도권 밖에서 군림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올바른 제도라 할 수 있는가?

합동 측에서 개정되기 이전의 임시목사 시무 기간은 1년이다. 1년 시무 기간이 끝나면 개 교회 교인총회(공동의회)를 통하여 계속 시무 연기를 상급 기관인 노회에 청원하여 노회에서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이행치 않는다면 개 교회 시무권이 상실된 무임목사에 해당한다. 이러한 무임목사가 노회에서 가부권 결의권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그 결의는 무효라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제도들은 기득권자들은 누리고, 기득권자들은 비기득권자들을 누르려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감각에 따른 제도이다. 목사가 되면 복음 전파와 그 수행에서, 회무와 그 업무 수행에서 평등해야 하나 어디에서나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회가 구성되지 못한 작은 교회들은 당회장권이 없으므로 말미암아 제한이 따른다. 노회장이 될 수 없다거나 따라서 총회 총대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부작용은 당회 구성을 위해 자격 없는 장로들을 배출하게 되고 그 장로들에 의해서 교회는 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담임목사의 양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의식적인 병폐이다

개척 교회 목사가 외부의 도움으로 자가용이나 사택을 가지게 되면 감사보다는 비난이 먼저 쏟아진다고 한다. 개척 교회를 하면서 무슨 자가용이냐고 하는가 하면 개척 교회를 하면서 무슨 사택이냐고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가용과 사택이 있으니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재정적으로 잘 나가는 교회들은 목사의 자가용은 고급이어야 하고 주택도 고급이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목사는 하나님이 세운 직분이나 생활비도 대통령보다 많아야 하고 대통령보다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자동차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척 교회는 상상도 못할, 운동을 명목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원정에 나서서 골프를 치거나 휴양을 즐긴다는 것이다.

어느 원로목사님께서는 목사가 수백, 수천만 원짜리 카메라로 자기 즐거움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개척 교회 목사에게는 전도해서 부흥시켜야지 고급 카메라로 사진 촬영 다닐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도 자기는 고급 자가용에 고급 주택에 수백 수천만 원짜리 카메라로 사진작가에 견줄 만한 여가를 즐기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누릴 것 다 누리면서 개척 교회에 지원하는 일에는 인색함을 넘어서 멸시하고 지원을 막아야 할 방법에 급급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 구조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자기는 좋은 환경에 의해서 누리면서 개척 교회 목사가 타력에 의해서 혜택을 받은 것을 감사와 위로는 고사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행위는 그 본인의 의식 구조가 얼마나 퇴락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강한 자는 누리고 약한 자는 누리지 못해야 한다는 원리는 흑백논리이며 차별 논리요 약육강식의 논리다. 가진 교회와 가진 목회자가 못 가진 교회와 못 가진 목회자에 대하여 올바른 목회자 올바른 교회가 되려고 한다면 주님처럼 언제나 배려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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