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표현된 화학


화학세계 1999년 2월호
이광, 박영태(계명대, 화학과)


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금속과 비금속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이제부터 무기 및 유기 화합물의 출처, 용도, 응용에 관해서 언급히기로 한다.



1. 산, 염기, 염

1.1 아세트산

식초는 고대인에게 알려진 유일한 산이었다. 식초(vinegar)는 음료로서 그리고 음식에 조미료로서 사용되었다. 포도 식초 또는 묽은 아세트산은 잠언에서 언급되고 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醋)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잠 10:26; 25:20).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1). 흠정역 성서(KJV)에서 4복음서의 저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 관한 기사에서 초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1.2 탄산나트륨

현대에서 사용하는 나이터(niter, nitre)는 질산칼륨(saltpeter) 혹은 질산나트륨(Chile saltpeter)을 의미한다. 고대인의 나이터(niter 혹은 natron)는 전혀 다른 물질, 천연의 탄산나트륨이었다.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부근에 와디 나트룬(Wadi Natr n 즉 Natron Valley)이 있는데, 해면보다 낮다. 나일강의 홍수에 의하여 호수로 되는데, 여름에는 거의 마른다. 이 거대한 나트론(탄산나트륨과 탄산수소나트륨) 광상은 수 천년간 채취되었다.


탄산나트륨에 대한 식초의 효과를 언급한 잠언은 산이 거품이 일어나면서 탄산알칼리와 반응하는 유사한 중화반응을 묘사한 것이다. "……as vinegar upon nitre, so is he that singth songs to an heavy hearts"(Prov. 25:20). 마르틴 루터는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에서 나이터 대신에 탄산칼슘(Kreide)을 사용하였다. 일부의 나이터는 아마도 불순물로서 탄산칼슘을 포함하였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시대에서 탄산나트륨은 오늘날처럼 세척제로서 사용되었다. 「네가 잿물(nitre)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렘 2:22). 일부의 번역자는 나이터 대신에 잿물(lye)를 사용하였다. 예레미야의 시대에서 지방이나 기름을 알칼리로 비누화하여 진정한 비누(soap)로 알려진 물질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천연의 소다(탄산나트륨)나 비누나무(soap plant, Salsola 및 Salicornia)를 태워서 얻은 인공 탄산나트륨였을 것이다. 타키투스(Tachitus)는 유리 제조에서 나이터(niter)의 사용을 언급하였다.


이집트인들은 또한 나이터를 사체의 방부처리에 사용하였으므로, 이것은 아마도 야곱(Jacob)과 요셉(Joseph)의 사체의 방부처리에도 사용하였을 것이다(창 50:3, 26). 방부처리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다른 물질은 역청이었다.


고대의 나이터의 약간은 나무와 다른 식물 재료를 태워서 그리고 재를 물로 걸러서 녹아나는 알칼리에서 만들어진 탄산칼륨이었다. 고대에서는 탄산나트륨과 탄산칼륨을 구별하지 않았다. 17세기에 이르러 화학자들이 광물 알칼리(소다)와 인조 알칼리(탄산칼륨)의 성질이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이 천연 탄산나트륨 자원이 감소하여 수요에 대응할 수 없게 되자, 가장 값싼 원료인 소금에서 이것을 제조하는 방법이 연구되었다. 초기의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르블랑(Nicolas Leblanc, 1742-1806)의 공정(process)이었다.


알칼리(alkali)나 칼륨(kalium)도 원래는 아랍어이다. 알(al)은 영어 정관사(the)에 해당한다.
칼리(kali)는 아랍어로 식물을 태운 재(qaliy)로 "나무의 재"라는 의미이다. 이 알칼리(alkali)라는 말은 점차 일반화되어, 나무의 재에서 추출한 물질이 갖는 성질, 요컨대 강한 염기성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알칼리로 부르게 되었다. 후에 이르러 육상의 식물의 재는 탄산칼륨, 바다의 식물의 재는 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이라는 것이 알게 되었지만, 당시의 아랍인들은 모두 칼리(qaliy)라고 불렀다. 이 두 가지를 불꽃반응으로 구별한 것은 마그랫(A. S. Marggrat)으로, 1761년이었다. 1807년 영국의 데이비(Humphry Davy)는 나무의 재를 전류에 의하여 융해하고, 전기분해로 칼륨과 나트륨을 발견하였다.



1.3 석회와 석고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모르타르(mortar)와 회반죽은 조제(粗製)의 석고(CaSO4 2H2O)를 부분적으로 탈수될 때가지 가열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로마의 모르타르는 석회석을 가열하여 만들었다, 그것은 습도가 높은 이탈리아의 기후에는 석회 모르타르가 더 오래 지탱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루카스(1867-1945)는 기제(Gizeh)의 피라밋이나 카르나크 신전에 사용되었던 모르타르는 석고에서 만든 것이었고, 또한 투탕카멘왕(B.C. 14세기경의 이집트왕)의 묘의 회반죽은 모두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부근에서 지금도 만들고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고 언급하였다.


모세는 후에 그의 백성들에게 계명을 따르고, 그리고 그 계명을 큰 회칠한 돌에 쓰도록 권고했다(신 27:2). 오늘날과 같은 책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돌에다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법을 기록하여 여러 지방에 세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습관이 성행했었다(수 7:26; 8:29; 24:26, 27; 삼상 7:12; 삼하 18:17).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02년 몰간(M.J. Morgan, 1857-1924, 프랑스의 고고 학자)이 수사(Susa)에서 발굴해 낸 함무라비 법전(Hammurabi's Code)이 있다. 아뭏든 팔레스타인에는 돌이 많았으므로, 그러한 돌비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나 건축물의 외벽 따위에 석회를 발라 그 위에 각종 문양이나 글을 새기는 기법은 고대 애굽에서 성행하던 양식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체류 당시 이 기법(技法)을 배웠을 것이다.


고대의 무덤은 가끔 무덤의 밖을 희게 칠해졌다. 예수는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였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도다」(마23:27). 바울(Paul)이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말할 때, 같은 모습의 말을 사용하였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도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행 23:3).


이사야는 석회가 타는 것을 언급하였다:「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사 33:12). 석회는 산화칼슘의 통칭으로 수산화칼슘(소석회)를 포함하기도 한다. 석회석을 가열하여 석회를 얻는다. 석회(CaO)는 물과 작용하면 높은 발열을 하면서 소석회로 된다.
CaCO3 → CaO + CO2
CaO + H2O → Ca(OH)2 + 15.2 kcalmol-1
이사야는 또한 석회석(chalkstone)을 언급하였다(사 27:9).



1.4 다른 칼슘화합물

성서에서 언급된 다른 석회질 물질은 골회(boneash), 설화 석고alabaster), 대리석이다. 고대에서 귀금속을 정련하는데 사용되는 다공성 용기는 골회로 만들었으므로, 골회 형태로서의 인산칼슘은 사용되었지만, 성서의 야금학적 유추(metallurgical analogy)에서 이 사실이 언급되지 않는 것같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모압(Moab)의 서너 가지 죄과들로 인해,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에돔 왕의 뼈들을 불살라 석회로 만들었음이라」(암 2:1). 사람의 뼈가 불살사지는 것이 열왕기상 13:2와 역대하 34:5에서도 언급되었다.


현대의 설화 석고(alabaster)라는 말은 가끔 반투명한 석고(CaSO4)의 일종에 대해서도 사용되지만, 이집트의 설화 석고는 방해석(calcite, 탄산칼슘의 투명 결정체)의 한 형태이다. 설화 석고는 반투명하거나 불투명하였다. 베다니(Bethany)의 마리아(Mary)의 이야기와 값진 향유가 4복음서에 언급되었는데,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옥합(alabaster box)이 언급되었다.


다윗(David)이 성전을 위해서 준비했던 값진 물건의 하나는 대리석이었다(대상 29:2). 이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은 아가에도 언급되어 있다. 「다리는 정금 받침대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as pillars of marble)」(아 5:15).



1.5 소금

팔레스타인의 남부에 위치하는 사해(死海)는 오랜 성서의 본문에는 「염해(鹽海」(창 14:3; 수 3:16; 12:3)로 서술되어 있다. 사해의 해수의 성분은 고형 성분으로서 25%의 염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반 해수의 농도의 약 7배이다. 주된 광물질은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칼륨의 염화물과 브롬화마그네슘이다. 사해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며,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소금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소금은 생할에 필요한 필수품의 하나로서, 포도주, 밀, 기름과 함께 열거되고 있다(스 6:9; 7:22). 따라서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스 4:14)라는 표현은 왕으로부터 급료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료(salary)는 라틴어의 소금(sal)에서 유래하였다. 소금은 음식에 양념으로(욥 6:6), 그리고 물건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데 사용되었다(출 30:35). 약용으로서 소금의 성질에 관한 지식은 예언자 엘리사(Elisha)가 악성 전염병으로 감염되었던 요단강을 치유하기 위해서 물들의 원천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설명된다(왕하 2:20, 21), 그리고 신생아에게 탯줄을 끊은 후에 소금을 뿌렸다(겔 16:4).


또한 소금은 분명히 파괴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아비멜렉(Abimelech)이 언약을 깬 세겜(Shechem)을 점령하고, 그 징벌로 풀도 나지 않게 소금을 뿌렸다(삿 9:45). 소금을 비유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소금 구덩이는 황량함과 불모의 모습을 나타내었다(신 29:23; 습 2:9). 사해의 진흙 구덩이와 늪은 소금이 주어질 것이다(겔 47:11).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린 롯(Lot)의 아내의 유명한 이야기(창 19:26)는 아마도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에서 자연적인 암염(rock salt) 형성을 설명하는 듯한 전설이다. 사해의 동남쪽에 있는 만(灣)의 서남 해안을 따라 약 5마일 이상 길이에 걸쳐서 결정성 소금의 100피드 층이 그 위에는 점토와 석회석으로 덮여서 뻗어 있다―이 전체 덩어리는 예벨 우스둠(Jebel Usdum, "Mount of Sodom")으로서 알려져 있다. 이 이름이 평원의 도시(Cities of Plain)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굴 같고 또한 갈라진 틈이 있는 소금 층은, 마치 롯의 아내와 소금 기둥의 이야기를 말할 때, 전설에서 지적되는 뾰족한 탑을 반복하여 이루었던 것처럼 보인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는 흔한 소금에 대해서 실질적인 또한 비유적인 암시가 많다. 소금은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다:「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며, 누룩이나 꿀의 발효작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고대 서아시아 지방에서는 쌍방이 소금을 먹음으로써, 언약을 맺는 풍습이 있었다. 소금 언약( covenant of salt)(민 18:19)은 여호와와 다윗과 그 자손과 맺은 언약처럼(대하 13:5), 영원히 지속하는 언약인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도 소금에 대한 비유가 있다(마 5:13; 막 9:49-50; 눅 14:34; 골 4: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눅 14:34; 막 9:50)라는 구절에서 소금은, 먼저 「언약의 소금」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즉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지면, 그것을 다시 맺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5:13은 소금에 관한 해석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즉 신앙인은 「땅의 소금」(the salt of the earth)이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서 인간의 세계를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 그것에 맛을 내게 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눅 14:35).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라는 구절은, 바울이 일상 생활에서 소금을 알맞게 맛을 내듯이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진실함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여야 함을 강조한 골로새 4:6의 훈계로 잘 설명될 것이다. 헬라어의 '소금'은 '지혜' '재치'를 상징한다.


마태복음 5:13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예수가 산상보훈에서 언급하였던 「땅의 소금」 혹은 맛을 잃은 소금은 불순한 염화나트륨이었고, 염화나트륨이 녹아버린 후에는 맛이 없는 잔유물로서 남고, 그리고 원래의 소금과는 구별하기 어려운 흰 점토 (또는 아마도 석고)가 함유되었다(마 5:13; 막 9:49-50; 눅 14:34). 그래서 소금이 맛을 잃었다고 말하였다.


구약성서에서 몇 번 소금 골짜기(valley of salt)가 언급되었다. 암염(rock salt)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소금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가 논의되었다. 브엘세바(Beer-sheba)의 동쪽에 있는 와디 엘-밀(Wadi el-Milh, salt)은 이름이 유사다. 더욱 그럴듯한 위치는 에스-셉카(es-Sebkha)로서 사해의 남쪽의 황량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소금 땅(a salt land; 렘 17:6)이다. 먼드렐(Henry Maundrell)이 1699년 시리아의 알렙포(Aleppo, 성서에서의 Berea)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부근에 있는 소금 골짜기(salt valley)를 방문하였다. 암맥(岩脈)에서부터 소금의 일부를 맛을 보았을 때, 바위에 부착되었던 부분은 소금기가 있었지만, 비에 노출되었던 부분은 완전히 맛을 잃었었던 것을 발견하였다. 반세기 후에 성지를 방문했던 하셀퀴스트(Hasselquist)는 사해 부근의 토양을 소금으로 충만된 무른 점토로서 서술하였다. 커티스(W. E. Curtis)는 건조기에 사해 부근의 매마른 땅은 소금과 석회로 덮혀 있었다고 하였다. 스트라본(Strabon, 63 B.C.-25 A.D.)은 18 A.D.에 암염의 채굴과 염천(鹽泉)에서 소금을 제조하는 것을 기술하였다.


세익스피어의 『햄릿(Hamlet)』 1막 2장 158-160행에서 인용한다.

Ere yet the salt of most unrighteous tears
Had left the flushing in her galled eyes,
She married.
(거짓 눈물의 소금기로 인해 충혈된 눈의 핏발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을 하다니).

인류가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시작한 수렵(狩獵)·어로(漁撈) 시대에는 짐승과 생선 등의 고기에서 적당한 염분을 섭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소금을 구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농사를 주로 하며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게 되자, 자연히 생리적으로 소금을 필요하게 되었다. 소금은 음식물의 소화(위산)에 관여하여 단백질의 용해와 아밀라제의 활성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소금을 만드는 것은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하였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오랜 문헌인『상서(尙書)』설명편(說命篇)에서 은대(殷代)에 이미 조미료서 소금이 사용되었다고 기술되고 있다.『주례(周禮)』에는 염인(鹽人)이라는 관직이 있고, 고염(苦鹽), 산염(散鹽), 형염(形鹽), 이염(飴鹽)이라는 네 종류의 소금을 관리하였다. 고염(苦鹽)은 쓴 맛이 나는 소금으로 마그네슘염을 많이 함유한 것일 것이다. 산서(山西)의 운성염지(運城鹽池)의 소금이다. 산염(散鹽)은 결정의 입자가 작은 소금으로 바다물을 증발시킨 것이다. 형염(形鹽)은 결정의 입자가 큰 것으로 암염(岩鹽)이라고 생각된다. 이염(飴鹽)은 맛이 좋은 소금으로 현재의 청해성(靑海省)에서 생산하였다. 약리학과 본초학(本草學)에 대한 오랜 문헌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천일염(天日鹽)과 암염(岩鹽)이 기술되어 있다.


주(周)의 초기에 제(齊, 현재의 산동성)에 임명된 강상(姜尙)은, 대규모의 제염업을 일으켜 나라의 재정을 풍성하게 하였다. 춘추시대, 제(齊)의 관중(管仲, 645 B.C. 사망)이 전매제도를 만들었다. 한(漢)의 무제 원수4년(武帝 元狩4年, 114 B.C.)에 소금의 생산 운송 판매의 전부를 관청에서 운영하였다.


우리 나라의 제염업의 기원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곤란하지만 매우 오래 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고구려 대무신왕 13년에 옥저를 귀속시키고, 고구려인을 배치하고 조세(租稅)로 고기와 소금을 거두는데 감독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2세기 이후 소금 생산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여 고려 충선왕 원년(1309 A.D.)에 소금 전매제도를 시행하였다. 염호(鹽戶, 소금을 생산하는 집)가 생산한 소금을 관청이 직접 판매함으로써, 국가에서 소금의 유통을 장악하며 재정 수입을 얻고자 하였다. 1907년 우리 나라에서 천일제염이 시작되기 전에는 바닷물을 가열하여 수분을 제거하여 소금을 얻는 방법(煎熬製鹽法)에 의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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