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의 역사   


< 역사 배경 >     
     
본문 말씀 = 삼하2:1~4     
     
유다 지파의 중심 성읍(城邑)인 헤브론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重要)한 성읍들 중(中)의 하나이다.          
그 증거로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이 이 곳에서 유다 지파의 왕(王)으로 즉위(卽位)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러면 헤브론에 대하여 자세(仔細)히 살펴 보도록 하자.     


     
1. 지리적 특성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약(若) 27km 지점(地點)에 위치한 성읍(城邑)으로서 오늘날의 "에르루메이데"에 해당(該當)한다.     
     
이는 현재 헤브론 시의 바로 서쪽에 위치한 언덕 지역으로서

그 언덕의 높이가 요단 서편 지역의 성읍(城邑)들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海拔) 927m에 달한다.     
                   
그리고 이 성읍의 주변 지역에는 물이 풍부(豊富)하여 비옥(肥沃)한 계곡이 있어 포도원과 기타 여러 종류의 과수원으로 유명(有名)하다.     
     
          

2. 헤브론과 관련된 성경의 주요 사건     
     
01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은 헤브론 부근 마므레 상수리 나무아래임  창13:18  
     
02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로 헤브론(Hebron)의 막벨라 굴을 삼  창23:19  
     
03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이 곳에 막벨라 굴에 장사됨  창49:29~32, 50:12, 13  
     
04  모세 시대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이 곳을 정탐함  민13:22  


05  아모리 족속(族屬) 연합군과의 전투시 여호수아가 헤브론 왕(王)을 나무에 매담  수10:1~27  
     
06  갈렙이 이 성읍을 기업으로 분배받아 정복함  수14:12, 13  


07  레위 자손의 성읍(城邑) 중 하나로 도피성이됨  수20:7, 21:11  
 

08  다윗이 도피(逃避) 생활 중 아말렉 족속을 치고 그 탈취물을 나누어 준 유다 성읍들 중의 하나임  삼상30:30  
     
09  다윗이 이 곳에서 7년 반 동안 유다 지파를 다스림  삼하5:5  
 

10  압살롬이 이 곳에서 다윗에 대해 반란을 일으킴  삼하15:7  
 

11  분열(分列) 왕국(王國) 시대에 르호보암이 이 성읍(城邑)을 국고성(國庫城)으로 삼음  대하11:10  


12  바벨론 포로(捕虜) 이후(以後)에도 유다 자손(子孫)들이 이 곳에 정착(定着)했음  느11:25  
     
     
3. 역사적 개요     
     
헤브론의 본래 명칭은 "기럇아르바"이며 이것은 "네 겹의 성읍(城邑)"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네(四) 성읍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브라함이 거주하였던 마므레(창13:18, 23:19)뿐이다.     
     
처음에 헤브론은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에 의해 번갈아 점유(占有)되었으며,

B.C. 13세기 초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곳을 정복할 무렵에는 일종의 도시 국가(國家)로서 아낙자손의 세 씨족인 아히만,

세새, 달매(민13:22, 수10:1~27, 15:13, 14, 삿1:10, 19, 20)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시에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된 헤브론은 그 이후 줄곧 유다 지파의 중심 성읍으로서의 기능(機能)을 해 왔으며,

이스라엘 다윗 왕국(王國)과 사울 왕국(王國)으로 분열되었을 때에 약 7년(年) 반동안 다윗 왕국의 수도(首都)로 활용(活用)되기도 했다(삼하5:5).     
     
이후 이 성읍은 로마 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A.D. 68년) 오늘날에는 이 곳의 동쪽 지역에 새(新) 헤브론 시가 세워져 있다.     


     
4. 의의(意義)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헤브론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에 중요(重要)한 영향(影響)을 끼쳤던 곳이다.     

본문(本文)에 나타난 바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이 곳에서 7년(七年) 반(半) 동안이나 유다를 다스린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事實)이 잘 나타난다.     
        
더욱이 헤브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틴을 점령하기 이전부터 가나안 도시(都市) 왕국(王國)의 하나였고(수12:10),

이후 도피성의 하나로 레위인의 성읍(城邑)이 되어 왔던 것이다(수21:13).     
     
한편 헤브론 언덕에 관한 후대(後代)의 고고학적(考古學的) 발굴 역시 헤브론이 여러 시대(時代)에 걸쳐 중요(重要)한 도성이었음을 입증(立證)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주위의 12m의 높고 견고(堅固)한 성벽(城壁)이 있으며, 길이가 7.5m나 되는 고인돌로 이루어진 막벨라 굴의 유적이라든지, 

롯 시대의 견고한 성벽, 에쉬테모아에서 발굴된 고대 회당의 유적과 아람어 비문(碑文)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적(遺蹟)들과 헤브론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은 성경 시대 당시에 헤브론이 가장 유서(由緖) 깊은 곳의 하나였음을 증거해 준다.     
     
< 그랜드 종합주석 >  

 



헤브론(Hebron, 족장들의 고향)


현대 이스라엘에서 중앙 산맥을 따라 북쪽의 나사렛에서부터 남쪽에 있는 브엘세바까지는 60번 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이 지나가는 곳은 이스라엘 족장시대 즉, 창세기의 배경지역이 펼쳐지는 구원 역사의 핵심 지역이다.

헤브론(Hebron 또는 Hevron)은 아랍어로는 이브라힘 알칼릴(All-Khalil)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친구 아브라함"을 의미한다.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약 30 km 떨어져 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 산악지역의 족장도로인 60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베들레헴에서 브엘세바 사이에 있으며, 해발 930m에 위치해 있다.


 



해발 900 m ~ 1000 m 지대인 헤브론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포도의 특산지이며 농산물 거래 시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곳이다. 유리 세공과 토기, 가죽 제조업이 발달했고 팔레스타인 경제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헤브론에는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막펠라 무덤"과 아브라함의 상수리나무가 있던 "마므레(Mamre)가 이곳에 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살아오고 있었던 곳이었다. 성서에서는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헤브론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마크펠라 동굴(The cave of Machpelah, 장로/족장의 동굴이라고도 함)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되는 족장들이 매장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인 '키르얏 아르바'에서 키르얏은 "동네"를 의미하며, "아낙 사람 아르바의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네이다. 전승에 따르면 막펠라 동굴에 묻힌 사람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아담 등 4 사람인데, 아르바는 숫자 "4"를 의미하므로 이 4사람의 무덤에서 "키르얏 아르바"라는 동네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설명으로는 성서 시대에 동맹을 맺은 이 지역의 4개 도시 또는 언덕 위에 세워진 4개의 도시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아브라함 시대 이후로부터 이곳 헤브론은 유대인(유대 지파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 되었다.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된 후, 도읍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서 7년 동안 유대 땅을 통치하면서 헤브론을 유다의 수도로 삼기도 했던 곳이다.(삼하 2:1~3)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왕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 왕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피살당한 곳도 헤브론이었고,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곳도 바로 이곳 헤브론이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족장들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중요한 곳이었다. 사울이 죽은 후 BC 1000년경 다윗은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원로들과 계약을 맺었고, 원로들은 다윗에게 그들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 유대 땅을 다스리도록 세워주었다. 헤브론에서 다윗은 이렇게 유다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을 다스렸다. 그리고 다윗 왕은 통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다윗도성으로 옮겨 33년 동안 통일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헤브론은 다윗이 그의 왕국을 건설했던 곳이면서도 그의 일생에 있어서 뼈아픈 곳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이때에 다윗 왕은 압살롬을 피해 요르단으로 달아나야만 했다. 

 
헤브론은 유대 민족이 바빌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와서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BC 166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그리스 지방의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기는 제사로 인하여 더럽혀지고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기 시작하자 유다 마카베오가 주동을 하여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여 항쟁을 계속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대 땅을 다스렸던 분봉왕 헤롯 대왕은 BC 20년에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묻혀 있었던 막펠라 동굴을 막아 버리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처음에는 지붕이 없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거대한 성벽을 건축했다. 성벽은 강하면서도 단순하게 건축되었는데 200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파괴되지 않고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막펠라 족장들의 동굴 무덤

족장들의 도시인 헤브론의 역사는 하란을 떠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시하신 땅으로 그의 장막을 옮겨 살다가 흉년으로 인하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면서 아브라함은 그의 장막을 해발 950m의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나무가 있던 곳에 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헤브론에서 살다가 숨을 거두었는데, 이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이 없어 헤브론의 원주민에게서 은 400세겔의 비싼 값을 주고 땅을 샀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로 산 땅이 바로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이었다.


이 막벨라 동굴은 그후 아브라함 일가의 가족묘지가 되었다. 아브라함도, 그 아들 이삭과 그의 부인 리브가도 그곳에 묻혔다. 또 야곱과 그의 부인 레아도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조상의 3대에 이르는 족장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묻혀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마므레 (Mamre) - 아브라함의 상수리 나무

이집트로 내려갔던 아브람은 아내와 자기의 모든 소유를 거두어 롯과 함께 이집트를 떠나 네게브로 올라가 가축을 치면서 큰 부자가 되었다. 이때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람은 롯에게 그가 원하는 땅으로 가게하여 분가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때 롯은 물이 넉넉하여 주님의 동산과 같이 풍요로운 요르단 들판을 선택해서 떠나가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게 되었는데 이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땅과 땅의 먼지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복을 약속받은 아브람이 다시 옮겨간 곳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자리 잡은 후 아브람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아브람이 마므레의 참나무 곁에서 살고 있을 때 롯이 살고 있었던 소돔 성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곳에서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브람은 자신의 훈련받은 장정 318명을 불러 단(Dan)을 거쳐 다마스쿠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 롯을 구하고 빼앗겼던 모든 재물을 찾아 왔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치고 롯을 구해 돌아올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임금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하였던 일이 있었다. 이 일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고 하늘의 별들만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모든 나라의 아버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시고, 아브라함은 계약의 증표로 할례를 받게 된다.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참나무 곁 천막 어귀에 앉아 있을 때, 자기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땅에 엎드려 그들의 발을 씻어 주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어 가라고 청하면서 대접했다. 그리고 사라에게 말하여 고운 밀가루로 빵을 굽고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사라가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축복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멸망시키려고 하신다는 말을 사자들로부터 듣게 되자 아브라함은 소돔에 살고 있는 롯을 생각하여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곳이 마므레였다.


마므레의 참나무로 잘 알려진 마므레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이기도 하며 헤롯 대왕이 건설했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돌담 성벽이 지금도 남아있다.

출처: http://www.haeunchurch.com/board_ljxq48/7292



헤브론은 교제의 자리를 상징한다. 또한 마므레는 '뜨겁게', '열렬하게'라는 뜻이 있다. 창세기 13장 18절을 보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즉, 아브람은 여호와와 뜨겁고 열렬하게 교제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고 예배드렸다는 것이다.

헤브론 - 막벨라 굴의 의미

헤브론은 성서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현장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작전 중, 갈렙은 길갈에서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요구한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헤브론은 이스라엘 중앙 산악지역 중에서도 금싸라기 땅으로 유대 광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물이 풍부하고 좋은 땅이 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그녀를 장사 지내기 위해 헷 사람 에브론으로부터 막벨라 굴을 구입한 곳이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 굳이 막벨라 굴을 막대한 거금을 들여가면서까지 구입할 필요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먼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장지는 단순히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묘지는 그 매장지가 속한 땅의 소유권이 매장지의 주인에게 있음을 증거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매장지는 대를 이어서 사용하였고 중요한 유산 목록이었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구입은 언약의 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위에서 말한대로 매장지는 그 땅의 소유권이 매장지를 구입한 사람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약속을 주셨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가나안 땅 전부를 받지는 못했고 막벨라 굴만을 구입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막벨라 굴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정복하게 될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것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헤브론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팔레스타인에 분리 국가를 명령하였으나, 당시 아랍국가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듬 해인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단독으로 국가를 세웠다. 이에 반발한 주변 아랍국들은 1973년까지 이스라엘과 계속된 4차의 중동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아랍국가는 유엔이 지정한 땅마저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West Bank), 동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오늘까지 돌려 주지 않고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치 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출범하여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부단한 노력한 결과 1974년 유엔에서 PLO는 ‘옵서버 단체’로 인정받게 되고, 2012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이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참관국’으로 격상한다는 내용의 결의 안을 표결에 부쳐,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 138표, 반대 9표, 기권 41표로 통과시켰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한다는 계획을 승인한지 65년 만의 일이다. 이제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팔레스타인은 ‘단체가 아닌 국가’의 지위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협상할 것이다. 


헤브론 (Hebron)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지만 출입은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이곳까지는 약 20km 정도 된다. 헤브론 입구 검문소에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관광객을 태운 택시는 통과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운전하는 빈 택시는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헤브론은 성경에 나오는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과 관련되어 있어,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성지이며 조상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헤브론’이라는 이름은 서부 셈족어에서 유래하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헤브론의 철자 “Hebron'에서 각 음절 ‘hbr'은 ‘동료’, ‘결합’, ‘친구’ 라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은 헤브론을 ‘아브라함 알-칼리’(Ibrahim al-Khalil)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친구 아브라함’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친구로 선택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벨라 동굴 입구에 ‘아브라함의 모스크’라는 쓴 안내판이 서 있다. 


아브라함과 헤브론 

족장들의 도시인 헤브론의 역사는 이집트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겨, 해발 950m의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하므로 시작되었다. (창 13:18~33)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헤브론에서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이 없어 헤브론의 원주민에게서 은 400세겔의 비싼 값을 주고 샀다.(창 23:16-18)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로 산 땅은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ㆍ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레아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이 묻혀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

ⓒ김환기 



고대 이스라엘의 매장지는 동굴무덤이었다. 이 막벨라 동굴은 그후 아브라함 일가의 가족묘지가 되었다. 아브라함도, 그 아들 이삭과 그의 부인 리브가도 그곳에 묻혔다. 또 야곱과 그의 부인 레아도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에 이르는 조상과 부인들이 묻혀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다윗과 헤브론

이스라엘 역사에서 헤브론은 다윗 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다윗왕이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임명되었다. (삼하 2:1~4) 다윗 왕이 유다 왕으로 7년 반 동안 헤브론에서 통치하였다.(삼하 5:44).

한편 유다 지파를 제외한 11 지파로 연합한 이스라엘 왕인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한 삼 형제가 길보아 전투에서 모두 죽는다. 사울의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통하여 나라의 재건을 꿈꾼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은 되지 못했다.

당숙인 ‘아브넬’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나, ‘이스보셋’과 갈등으로 인하여 ‘아브넬’은 다윗에게 투항을 했다. 하지만 아브넬은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 장군에 의하여 죽고, ‘이스보셋’은 ‘레갑과 바아나’에 암살당한다. 이들은 상을 받을 줄 알고 다윗에게 ‘이스보셋’의 목을 받쳤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들의 통치자 ‘이스보셋’을 배반하여 죽인 죄목을 들어 두 사람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삼하 4장) 

다윗은 통일왕국의 왕이 된 후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후로 다윗은 그곳에서 33년간의 통치를 한다. 다윗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종교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헤브론은 다윗에게 수난과 슬픔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다윗 왕에게 반란을 꾀한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던 곳도 헤브론이었다. (삼하 5:44)


헤롯왕과 헤브론

예수 탄생 당시 가나안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막벨라 동굴 위에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2천 년을 지내오는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파괴되지 않아 헤롯왕이 건축한 많은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본존되어 있다.

길이 30m, 폭 22m, 높이 18m쯤인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이삭과 리브가의 무덤,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다. 물론 실제 무덤이 아닌 기념묘이다. 실제 무덤은 이 건물의 지하층 동굴 부분에 있지만 내려가 볼 수는 없다. 14세기 아랍인 통치자들이 무덤이 있는 지하 동굴 쪽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폐쇄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은 아랍인들이 관리를 하였으나 6일 전쟁 후 반은 회당으로 나머지 반은 모스크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무슬림의 기도시간이라 모스크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입구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 토라(Torah)를 읽으며 기도에 열심이었다. 창살 넘어 아브라함의 무덤이 보였다.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을 중심으로 ‘모스크와 회당’으로 갈라져 있다.  


 

 아브라함의 무덤 창살, 유대인 쪽에서는 창살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김완기)



막벨라 동굴은 ‘회당과 모스크’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다.

만약 같은 빌딩에 ‘모스크, 교회, 회당’이 함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건물을 사용하는 '이맘와 신부와 랍비’가 함께 모였다.

이들은 헌금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궁금했다. 

‘이맘(Imam)’이 말을 꺼냈다. “나는 원을 그린 후 주머니에 있는 돈을 하늘로 던져, 원 안에 떨어진 것을 하나님 것으로 생각하고 헌금합니다.”

가톨릭 ‘신부(Priest)’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반대 입니다. 원 밖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때 유대교‘랍비(Rabbi)’는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비 성서적입니다. 성서적으로 합시다.

나는 돈을 던져서 하늘에 있는 것은 하나님 것, 땅에 떨어진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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