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번창하는 이유?


악인의 번창, 의인의 고난, 재난의 발생 등은 바로 신정론(Theodicy)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세계의 모든 것들을 섭리하신다면 전쟁과 질병, 기근 등 악과 고난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이 세계의 악의 현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전능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전념하시되 선하지 못한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악과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신앙이 없는 자에게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악의 문제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중 욥기는 바로 이 신정론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이 문제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1. 학자들의 견해

1) 루터
이러한 신정의 문제에 대하여 루터는 명백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루터는 악이 선을 위하여 있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악을 통하여 선을 요구하며 죄를 통하여 의를 완성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하여 우리가 이웃에 대한 죄를 미워하고 벗어버리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의를 간절히 바라보게 하며 불의에 대하여 반항심과 혐오감을 갖게 한다. 이에 루터는 하나님이 인간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잎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2) 헤겔
전체적으로 볼 때 헤겔의 역사철학은 신정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기 소외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활동이다. 그러나 세계의 유한한 것은 그 속에 부정적인 것, 악한 것, 불완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도 악한 것을 부정함으로 세계를 보다 높은 진리의 세계로 발전시킨다. 세계의 모든 것은 신적 정신인 하나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악은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활동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요소이며 정신에 의해 부정되고 고양된다. 이와 같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악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정립된 것이다. 선과 악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악은 선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으며 악의요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선이라 유한한 세계에 있을 수 없다.

3) 틸리히
틸리히는 악을 비존재로 생각한다. 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곧 무(無)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유한한 존재로 실존한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힘에 참여하기 있는 동시에 비존재와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실존하는 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고다 악의 위협과 존재의 힘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 있다. 존재로서의 존재는 선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완전히 악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과 사귐을 나누고 있으며 모든 것의 운명에 참여한다. 따라서 악한 것도 하나님에게 참여되어 있다. 그것은 선한 것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일시적으로 악할 뿐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세계는 구원사이며 신정이다.



2. 욥의 친구들의 견해

1) 죄의 결과
환난 가운데 있는 욥에게 그의 친구들은 그러한 환난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선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고 악하면 벌을 받을 것이다(욥4:7,8; 욥8:20; 욥20:5).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욥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으로서 번영이 아니라 엄청난 환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런 문제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2) 교육적 의도
친구들은 또한 하나님은 인간들의 성장을 위해 환난을 주신다고 한다. 환난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난은 인간을 시험하거나 훈련시켜서 인간이 악을 행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욥5:17). 이러한 견해는 성경에서도 가르치는 바이다(잠2:12; 히12:7). 그러나 이것도 모든 문제에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3. 성경적 견해

1) 예언자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인의 형통함과 패역한 자의 안락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었다(렘 12: 1).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고 악인이 의로운 자를 삼키는 것을 그대로 두시는 이유를 물었다(합1:13). 이들은 자기 민족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살폈으며 미혹에서 일깨우려고 환난을 주시는 것으로 보았다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제시하시면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이상적인 좋은 시절이 오면 의로움이 진실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지금도 진실이 패하는 것 같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로움이 승리할 것이다(합2:2-4).

2) 욥과 시편 기자
환난의 이유를 몰라 하나님께 항의하던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신비를 말하는 질문을 하시면서 욥에게 나타났다(욥38:4).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미미한 일부인 욥이 무엄하게 창조주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항거하기 어려운 질문에 지쳐 욥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회개하나이다"(욥42:2-6). 욥은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다. 욥이 가지고 있던 문제는 하나님을 체험함으로써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시편 73편의 기자도 악인의 형통함에 대한 문제를 안고 씨름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성소에서 주를 뵙고 해결을 본다(시73:17). 이러한 답변은 명쾌한 논리가 없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악인의 번창, 의인의 고난, 악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없다. 구약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합리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구원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지시해 준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악에 대해 승리하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미래 세계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만이 문제의 해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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